의대 series 26 : 우선... 좀 오래 된 이야기부터...

bm.gif ar.gif


좋은글들 주로 자작시, 자작소설, 자작수필 등을 올려 주세요. 저작권이 있는 자료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의대 series 26 : 우선... 좀 오래 된 이야기부터...

(ㅡ.ㅡ) 0 3,118 2003.10.07 16:48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9월12일(화) 04시50분27초 KDT
  제 목(Title): 우선... 좀 오래 된 이야기부터...


지난 6월에 이미 이대 보드에 올린 글이지만

다음 글을 위한 배경삼아 다시 올립니다.

---------------------------------------------------------------

우리는 아울로스에 갔었다.

자정이 지나고 1시가 넘도록 마시고 또 마시면서

13년을 끌어 온 용준이의 사랑을 이야기했다.


녀석이 정민이를 '찍은' 것은 의예과 1학년 때.

늘 정민이 주위를 뱅뱅 돌며 말없는 호소를 정민이에게 실어 보내기를 6년...

그러나 정민이는 그런 용준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졸업과 동시에 성규와 결혼했고

그날도 우리는 아울로스를 찾아 용준이의 씻겨내린 6년을 위해 잔을 부딪쳤다.


정민이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주부 의사가 되었고

성규는 레지던트를 마쳤다.


지난 겨울, 왜 아직 결혼 안 하냐는 내 물음에

'그러는 넌 했냐.' 라며 산낙지를 씹던 용준이의 눈빛은

정민이를 향하던 그 6년간의 뜨거움이 하나도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고...


엊그젠가 한밤에 요란하게 울린 전화,

성규가 머리를 심하게 다쳐 입원했다는...

내가 그를 찾았을 때 이미 성규는 뇌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을 거의 다 들어내는 뇌수술을 받아

회복되더라도 언어장애가 올 것임에 틀림없고

어쩌면 식물인간이 되어야 하는 그는 더 이상 내과의사가 아니었다.


결혼 후 7년, 이미 친구의 아내가 된 정민이는

넋이 나간 모습으로 병실을 지켰고

친구들이 모두 성규와 정민이를 걱정하고 있는 그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용준이의 타는 듯하던 눈빛을 떠올리고

남몰래 죄스러움에 몸서리쳤다.


용준이는... 돌아올 것인가

다시 정민이에게 손을 내밀 것인가.

어째서 나는 지금 성규보다도

13년을 골돌아 흘러 온 용준이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것인가.


아울로스의 어두운 구석에서

우리는 떠들썩하게 잔을 들었다.

내 눈에 괴어 넘칠 듯한 눈물은

성규를 위한 것도, 용준이를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내놓고 말하지 못할 사랑에만 예민한

유치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울고 있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19 시팔예수 사기지래(질에) 가로수 2007.08.04 5946
318 나 어린시절! 댓글+1 가로수 2007.07.18 5819
317 K,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무섭다는 너에게 댓글+1 항하水 2007.02.04 5494
316 <소설> 雷聲霹靂 - 玖拾壹 태동 七 댓글+1 꽹과리 2006.12.09 5562
315 [단편]두가지 동화 댓글+2 회색영혼 2006.12.07 5538
314 <소설> 雷聲霹靂 - 玖拾 구사일생 八 댓글+1 꽹과리 2006.10.26 5228
313 <소설> 雷聲霹靂 - 捌拾玖 태동 六 꽹과리 2006.10.04 4630
312 <소설> 雷聲霹靂 - 捌拾捌 구사일생 七 댓글+1 꽹과리 2006.08.10 5096
311 <소설> 雷聲霹靂 - 捌拾柒 태동 五 댓글+1 꽹과리 2006.08.10 5245
310 알에서 깨어난 예수 [2편] 한얼 2006.07.29 4658
309 <소설> 雷聲霹靂 - 捌拾陸 구사일생 六 댓글+3 꽹과리 2006.07.05 6346
308 알에서 께어난 예수. [1] 댓글+7 한얼 2006.07.26 9221
307 [펌] 대단한 반전이 있는 초딩소설 댓글+1 쯧쯧쯧 2006.07.18 5689
306 <소설> 雷聲霹靂 - 捌拾伍 태동 四 꽹과리 2006.06.27 4880
305 <소설> 雷聲霹靂 - 捌拾肆 구사일생 五 꽹과리 2006.06.23 4779
304 (공포단편)메리크리마스 댓글+1 회색영혼 2006.06.21 5663
303 <소설> 雷聲霹靂 - 捌拾參 태동 三 댓글+2 꽹과리 2006.06.18 5821
302 <소설> 雷聲霹靂 - 捌拾貳 구사일생 四 꽹과리 2006.06.16 5125
301 <소설> 雷聲霹靂 - 捌拾壹 태동 二 꽹과리 2006.05.20 4891
300 어느 기독교인의 일기 외전 신비인 2006.05.19 5251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34 명
  • 오늘 방문자 4,177 명
  • 어제 방문자 5,734 명
  • 최대 방문자 5,825 명
  • 전체 방문자 1,616,884 명
  • 전체 게시물 14,416 개
  • 전체 댓글수 38,042 개
  • 전체 회원수 1,668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