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살성좌(天殺星座) - 흑포사신(黑袍死神) 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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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살성좌(天殺星座) - 흑포사신(黑袍死神) 二

꽹과리 0 2,903 2004.03.09 12:46
한쪽 어깨가 박살나버린 옥면수라는 차제에 생을 포기한 것처럼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흑포

사 신의 품안에서 좌수와 우수를 교차해가며 마지막 남은 진기 한방울까지 끌어올리며 역공

을 취했다.

역시 썩어도 준치인듯 혼신을 다한 옥면수라의 마지막 절기인 개차반권(槪叉般拳)이 펼쳐지

자 일순 매운 손속을 자랑하던 흑포사신조차 한걸음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고이헌 놈이로군'

'흐흐, 흑포사신 오늘 여기서 나랑 같이 뼈를 묻자'

상체를 흔들며 기이한 보법으로 흑포사신의 전면에 다가선 옥면수라의 좌수에는 어느새 그

가 애지중지하는 수라도(修羅刀)가 들려있었고...

거침없이 최단거리를 이용한 일검이 흑포사신의 목을 노리며 짓쳐들어오는 찰나 슬쩍 몸을

비틀어 수라검을 흘려보낸 흑포사신의 교묘한 쌍장이 대여섯개의 환영을 일으키며 옥면수라

의 명문혈과 견정혈을 동시에 제압해들어갔다.

순식간에 두개의 혈을 제압당한 옥면수라의 칠척 장신이 그자리에 허물어졌다.

'어서 죽여라...흐흐'

'죽이는 건 차후의 일이고 우선 몇가지를 대답해 주어야겠다'

흑포사신의 각(脚)이 숨 쉴틈도 없이 옆구리에 박히자 강렬한 통증에 눈을 질끈 감으며 옥면

수라가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는 순간

 

'말하라! 삼천(三天)안에 스며든 네 놈들의 간자명부(間者名簿)는 누가 가지고 있느냐?'

냉랭하면서도 표정이 없는 흑포사신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으...윽 그런게 설사 있다고 해도 내가 알리가 있겠느냐.. 교단에서 불과 87위인 서열로 말이

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군'

다시 매서운 발길질이 옥면수라의 안면에 작렬하고 연이은 타격음이 메마른 공기를 가를즈음
'모른다..하지만 곱게 죽여 준다면 이건 말해줄 수 있지'

'무어냐?'

격심한 고통을 견디어내며 옥면수라가 힘겹게 말문을 이어갔다.

'너희 용천(龍天)만 해도 삼 할 이상이 우리 야소교(耶蘇敎)로 회심한 지 오래다. 나머지 두

천(天)인 개천(開天),창천(昶天)도 마찬가질테고...대세는 기울었다만..흐흐 어떤가..그대도

야소교에 입문함이...'

흑포사신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며 그의 입에서 마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설마 그렇게까지.....짐작은 했었지만.. 더우기 개천(開天)까지...믿을 수 없다..'

'흐흐, 그것이 현실이다.어서 죽여다오... 야소천당(耶蘇天堂) 불신지옥(不信地獄) 알랄루야

(軋剌漏也)'

체념한듯 마지막 주문을 외우는 옥면수라의 일그러진 형상 뒤로 흑포사신의 핏빛 쌍장이 파

고 들었다.

'가라..외세에 혼을 팔고 그것도 모자라 제 겨레의 가슴에 칼을 겨누는 더러운 놈들..'

이미 숨이 끊어진 옥면수라의 시신 위로 차가운 눈길을 던지며 흑포사신이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이미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이다..누구를 믿거나 누구를 불신해도 결과는 같다... 살생첩만이

나의 유일한 지표이고 여기 기록된 자들의 참살만이 내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

낙조로 긴 여운을 남기는 들판 끝으로 흑포사신의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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