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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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정 3

인드라 0 2,897 2004.11.07 01:13
기정은 차를 인도곁에 바짝붙이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최진희의 꼬마인형...운전석창을 내리고 차체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날밤 황홀한 시간을 난 잊을 수 가 없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당신을 알고 말았죠
말없이 흐르던 눈물을 난 감출 수가 없었네 창문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하나 둘 세고 있었죠
늦어도 그 날까지 약속만을 남겨둔 채로 밤이 지나고 새벽 먼길을 떠나갈 사람이여
부서지는 모래성을 쌓으며 또 쌓으며 꼬마인형을 가슴에 안고 나는 기다릴래요>

 

기정의 입에서 욕지기가 나왔다.

"씨바 누군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데 누군 손님이나 기다려야 하다니"

어디선가 짜바리의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6447. 6447 빨리 차빼세요. 지금뭐하는거야?"

"젠장 짭새 떳군. 에휴~ 이놈의 불경기는...." 아닌게 아니라 2004년의 가을은 잔인하리 만큼 경기가 얼어붙어 있었다. 오늘하루의 할당량이라도 채울수 있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어차피 채울수없다면 술이라도 마시리라 다짐하는것이었다.

아니 오늘은 흠뻑 취할것이다.

거세게 핸들을 잡으면서 악세레터를 밟는 오기정씨는 습관처럼 비웃음과 함께 욕지기를 뱉었다. "할렐루야"

잠시후 중앙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정은 옛추억? 아니 잔혹하리만큼 끔찍한 기억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곳은 교회에서 였다.

지금처럼 몸이 불지는 않았지만 제법 건장하던 기정은 사람좋기로 소문난 청년이었다.

믿음 또한 좋은것으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신실하다는 칭찬과 함께 두분의 사랑을 듬뿍받고있었다. 수요예배다 새벽예배다 빠지지않고 오로지 존경하는 목사님의 축원이 있는곳은 어디던지 따라다녔다. 그런 그에게 민정은 한떨기 백합으로 다가왔다.

성가대에서 그녀가 선창을 할때면 그는 은혜로 벅차올랐다. 민정은 그에게 오르지못할 나무처럼 여겨졌다. 그럴때면 자신의 처지가 저주스럽게 여겨져 가끔 아무도 몰래 술에 취하곤 했다. 그리고 술이 깨면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밤새워 회개하곤 했다.

그런 기정에게 심금을 터놓을수있는 친구가 있었다. 수열은 총망받는 인재였다.

준수한 용모에 훌륭한 집안으로 넉넉한 살림으로 각종헌금에도 거액을 스스럼없이 내어놓음으로 교인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고있는 청년이었다. 둘은 어린시절을 공유한 시셋말로 꼬치친구였던 것이었다. 기정이 수열에게 그녀에 대한 마음을 처음으로 터놓았을때 둘은 아무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열도 민정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주먹다짐을 하였다.

기정의 주먹질에 입술이 터진 수열이 피를 흘릴때 둘은 껴안고 취기에 소리내어 울었었다.

그일이후 기정은 그녀를 잊기위해 애를 썼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스마트한 수열이 그녀에게 더욱 어울리는 상대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교회에 가는 날도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교회내에서는 이미 민정과 수열은 하나의 커플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의 행복을 축복하면서 기정은 쓸쓸한 어깨를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야위어가는 기정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민정의 시선을 느낀것은 기정의 착각이었을까?  민정의 생일 그녀에게 초대되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한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었다.

그러나 수열의 꽃바구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그의 꽃다발....그는 아무도 몰래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쑤셔박고는 발끝으로 뚜껑을 슬며시 닫고 말았다.

민정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도곡을 수열과 민정이 둘이서 불렀다. 아름다운 화음과 갈채..

둘은 기정이 보기에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기정은 화장실간다면서 슬며시 나와 그길로 집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기정이 버린 꽃다발에 축하한다는 쪽지를 그냥 두고 온것을 기억하고는 안절부절 하지못했다. 그의 쓸쓸한 어깨위로 어느새 빗방울이 구슬프게 내리고 있었다. 기정의 뺨에 쏫아지는 빗방울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수없었다. 빗속에 서있는 그의 눈은 충혈되어있었다. 그리고 줄곳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알수없었지만 침대에 들어온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밤새 고열에 들떠 시달리고 있는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다음날도...

기정은 수요예배와 주일예배를 빼먹을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정은 건장한 청년이었기에 감기정도에 쓰러질일이 없을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한기에 기침에 붉어진 얼굴로 누워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진것은 꿈속에서의 일처럼 몽롱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것은 차츰 선명하게 느껴졌다. 방문을 누군가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열었는지도 모르게 기정은 문을 열고는 한동안 놀란 그는 턱이 벌어져있었다.

초롬하게 차려입은 민정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기정을 내려다 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밤 둘은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기정의 품속을 파고드는 민정의 머리칼이 향기로왔다.

기정이 버리고 온 쪽지를 소리내어 읽어달라는 민정은 너무도 사랑 스러웠다.

기정은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파란 새벽이 둘의 알몸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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