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단편)메리크리마스
회색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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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1 00:30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흥겨운 캐롤음악이 거리를 달구고, 백화점마다 대형트리가 들어선다.
"춥다."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중얼거렸다.
"추우면 그만 집에 가지."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내는 그런 나를 흘겨보더니 이제 막 다섯살이 된 딸아이의 손목을 잡고 대형트리로 걸어갔다.
"자, 이리와봐. 정말 예쁘지? 그렇지 미나야?"
아내는 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나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응, 예뻐. 엄마."
나는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뭐해, 자기 어서 안오고?"
"아빠, 빨리 와."
아내와 미나가 차례로 손짓해서 불렀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그 트리앞으로 갈 생각이 없다. 트리 앞에는 그것이 있단 말이다!
그것은 붉은 모자와 옷을 입고 그 통통한 배를 내밀며 연신 "호호호"하고 너털 웃음을 터트리거나 "메리크리스마스"를 목청껏 소리치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안다. 저건 실제 사람이 아니라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저것이 저앞에 있는 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생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나는 큰소리로 저들에게 외치고 싶다.
"어서 거기서 도망쳐!"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한가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그 비밀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특히 12월만 되면 나는 다시 잊고 싶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12월만 되면 모든 약속을 펑크내고 오피스룸에 처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성탄특집이랍시고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캐롤송이나, 크리스마스관련 프로그램은 나를 더욱더 두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날만은 텔레비전도 꺼버려야 했다. 유일한 낙은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에냐의 음악뿐이었다.
간신히 명상적인 선율에 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하면, 여지없이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다. 커텐을 젖혀보니, 교회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캐롤송을 합창하고 있었다. 촛불을 밝혀든 그들의 얼굴은 행복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니 소름이 끼쳐왔다.
나는 창문을 벌컥 열고 소리질렀다.
"꺼져, 이 미친 자식들아! 노래 부르려면 딴데서해!"
그들은 벙찐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이런 대접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크게 소리질렀다.
"어서 안가? 이자식들아! 딴데 가라고!"
옆집에서 캐롤송이 들려오면 인터폰을 해서 항의하기도 했다. 난 캐롤송을 참을 수없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 근방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근방의 성직자가 나를 찾아온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혹시 기독교를 싫어하십니까?"
"아니오."
나는 기독교를 싫어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믿기어렵겠지만, 한때는 나도 교회의 어린이 합창단원이기도 했었다.
"그러면 뭔가 기독교에 대해서 상처받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오."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제가 뭐 도울 거라도 있을까요?"
성직자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쾅. 나는 성직자의 코앞에서 현관문을 닫았다.
그는 그 나름대로 나를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나를 도울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나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이 끔찍한 기억을 벗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지인들과 이일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참다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인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박장대소하거나 안되었다는 눈초리로 나를 볼뿐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혹시 어렸을 때 성적인 학대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혹시 산타복장을 한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것 아닙니까?"
하고 말이다.
나는 성추행을 당한 것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다. 다만 크리스마스를 견딜 수 없이 싫어할뿐이다.
아내 선희를 만난 것은 오년전의 일이었다. 내가 선희를 좋아한 것은 단지 아내가 기독교인이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 한가지때문이었다.
당시의 아내는 23살의 미모의 여대생이었다. 연애할때조차도 나와 선희는 크리스마스에는 데이트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연락까지 끊는 나를 오해할 만도 한데,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식을 올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나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미나는 어느새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의미를 알아버리고 말았다.
"아빠, 우리는 왜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어?"
미나가 이말을 했을 때, 나는 올것이 드디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공포가 엄습해왔다.어떻게든 이아이에게 설명해야 한다.
"응.그건 우리집에 트리를 놓을 곳이 없어서야."
그래, 우리집은 그렇게 넓은 평수는 아니니까말야. 번거롭게 트리같은걸 놓을 장소는 없다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왜 우리집에 안와?"
드디어 듣고 말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놓고 말았다. 식은 땀이 흘렀다. 왜 산타클로스는 안와, 산타클로스는 왜 안와? 이말이 메이리쳐 머리속을 울렸다.
나는 고전적인 수법을 쓰기로 했다.
"산타는 없어."
왠지 내 말에 자신감이 없다. 딸도 그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미나는 크게 울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아내가 달려왔다. 아내는 딸을 달래면서 내게 힐난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자기 나하고 얘기좀 해."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아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보내야겠어. 우리 애만 기죽일 수 없잖아."
"크리스마스는 무슨..."
아내의 시선이 무섭다. 나는 시선을 딴데로 돌리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다른 집 애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데 우리애만 안받게 할 순 없어."
"선물은 생일선물이면 되었지,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받아야해? 그렇게 돈이 남아 돌아?"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혔다. 아내도 지지 않았다.
"다른 집애들은 그런 돈이 남아서 받는 거야? 잔소리 하지 말고, 내일 우리랑 같이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
"왜?"
"왜긴 왜야? 트리 사야지!"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나까지 꼭 가야해?"
나는 두사람을 어쩡쩡한 걸음으로 뒤쫓으면서 말했다. 아내는 호주머니에서 표를 꺼냈다.
"응. 오늘은 트리랑 트리장식 쇼핑하고 저녁을 먹고, 미나랑 스케이트 타야해.
그리고 내일은..."
호호호호호....다시 그 특유의 너털 웃음이 틀려온다. 나는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다.
견딜 수 없다. 이 거리, 정말 최악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곳 저곳에서 캐롤 음악이 울려퍼지고, 트리장식으로 화려하게 덮혀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것을 견딘단 말인가?
아내는 백화점의 진열창에 달라붙었다. 저기 저 트리 어때?
응 괜찮아.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진열창에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트리를 칭칭이 묶은 색색등이 깜빡인다. 콜록 콜록...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사람들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손이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영상이 트리에 매단 둥근 공에 비치고 있었다.
동남아계열로 보이는 여성은 연신 기침을 터트리면서 유리관속에 필라멘트를 껴넣고 있었다.
작업환경은 매우 열악해보였고, 유리가루나 석면가루가 아무곳에나 흩날리고 있었다.
"자기 뭐해?"
아내가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영상이 사라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와 딸은 가게로 들어가 트리장식을 몸에 휘감으며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들 틈에 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소위 달동네라고 부르는 외진 동네에서 살았다.
못살아도 그래도 교회는 있었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이들은 교회로 갔다.
어느날 나는 교회 목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저기 달려 있는 천사상은 기분나쁘게 웃느냐고. 목사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웃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가끔씩 내게는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이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놈 취급당하기 쉽상이므로, 나는 이 사실을 숨겼다.
"그만 나가자."
아내와 딸의 손에 들린 종이가방이 불룩해져 있었다. 나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조립식 트리가 담겨 있는
묵직한 상자를 어깨에 지고 날랐다.
스케이트장역시 크리스마스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었다.
나는 스탠드에 앉아 아내와 딸이 깔깔거리면서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콜록콜록. 여지없이 그순간에도 여자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이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사이에서 보였다.
그 손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트리장식인 것이 분명한 색색 공이 보인다.
프레스 기계가 그 손을 찍는다. 여자가 잘린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피가 솟구치며 기계와 장식을 적신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린다.
나는 서둘러 아이스링크를 빠져나왔다. 아내가 화난 표정으로 딸을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정말 왜그래? 모처럼 크리스마스좀 잘보내려고 하는데."
"집에 가자. 그냥 집에서 저녁먹자."
나는 이제 애원하고 있었다. 더이상 이곳에 있기 싫었다. 아내는 나를 기가막힌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럼 혼자 집에가."
아내가 말했다.
지금쯤 아내는 미나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맡긴 쇼핑백을 풀어보았다.
아내가 산타대신 미나의 머리맡에 놓으라고 내게 주문한 선물꾸러미가 있었다.
미나가 그토록 갖고 싶어한 인형의 집대신 아내는 학용품세트와 문제집을 종이상자안에 넣었다.
애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아내의 고집을 누가 막겠는가.
나는 대충 그것을 갈무리해서 숨겨놓았다.
"잘 보낼 수 있어. 암, 그렇고 말고."
나는 내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고작해야 이틀이다. 이 기간을 나라고 다른 사람처럼 보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얼마후, 아내가 화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미나는 그래도 좋았는지 홍조가 띤 얼굴이다.
미나가 스테레오로 가더니 시디를 하나 넣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경쾌한 캐롤음악이 울려퍼졌다. 나는 불편한 웃음을 지으면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실수한 것 같다.
그 배불뚝이 영감이 순록과 함께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때 캐롤음악이 바뀌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당장 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질렀다. 미나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짓더니 으아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미나야. 괜찮아. 울지마."
아내는 미나를 감싸면서 말했다. 아내는 나를 쏘아보았다.
"자기 정말 왜 그래?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거야. "
아내는 미나를 재운 뒤, 내게 언성을 높히며 말했다.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고."
나는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정말 이상해. 크리스마스좀 조용하게 잘 보낼 수 없는거야?
왜 꼭 이날만 오면 자폐증 환자처럼 구냐고!"
"내말좀 들어봐."
이야기해야한다. 그래야 한다. 아내가 믿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말해야한다.
"난 어렸을 때부터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을 보곤 했어."
예를 들면 행상하는 아줌마의 등뒤에 달려 있던 낙태아라든지, 천사상에 매달려 있는 앙상한 여자아이를 본다든지 말이다.
"웃지마. 정말이야.
어렸을때 난 달동네에서 자랐어.왜 옛날이야기를 하냐고?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나는 형과 함께 살았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이후, 부모님은 일하러 타지에 나가셨고,
집에는 우리 둘뿐이었어."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나는 형에게 물었다. "왜 우리집에는 산타안와?"
텔레비전 속에서는 산타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허공을 날면서 집집마다 선물을 전해주는데,
왜 달동네 우리집에는 오지 않는걸까?
"연탄 굴뚝이 작으니까."
형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우리는 산타가 안와?"
마침내 형이 참지 못하고 소리질렀다.
"왜긴 왜야! 우리가 가난하니까 산타가 안오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된거야."
나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말했다.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이다.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자기 정신이 어떻게 된거 아냐?
아니면 충격을 받아서...."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저 트리 장식 만들던 여자 죽었어."
나는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저기 있는 색색등을 만든 사람은 결국 기관지염으로 세상 떠났지.
생산지를 잘 봐. 동남아나 그런 쪽일 거야."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내는 짜증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나중에 밤에 미나머리맡에 선물이나 놔둬."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은 말했다.
"우리집이 너무 가난해서 산타가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형의 말은 틀렸다.
부모님이 말했다.
"네 형은 사고로 죽은 거야. 죄책감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아. 엄마. 그건 진실이 아니야.
목사가 말했다.
"네 형은 하늘나라에 있을 거야. 착한 아이였으니까."
아니오 목사님. 형은 하늘나라에 없어요.
왜 사람들은 내말은 조금도 듣지 않으려는 걸까?
나는 미나의 방에 들어갔다. 미나는 새끈거리면서 자고 있었다. 나는 미나의 머리맡에 아내가 준비한 선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옆에 작은 꾸러미와 카드도 내려놓았다.
"내년에는 꼭 인형의 집을 사줄게."
내가 준비한 선물에는 작은 바비인형이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안방으로 돌아왔다.
달동네에는 바비인형이 없었다.
장난감 기차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없었다.
크리스마 케잌도 없었다.
반짝이는 색색등도, 과자도 없었다.
그런 것은 오직 텔레비전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트리장식을 만들다 죽은 그 검은 얼굴의 여인도 그랬을까?
그녀의 아이들에게도 단지 그런 광경은
텔레비전이나 동화책속에만 있는 것이었을까.
미안해.
나는 트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런 것뿐이야.
나는 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다 사라졌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형은 사고로 죽었다, 형은 사고로 죽었다,형은 사고로 죽었다. 형은 사고로...
나는 몰랐지만 형은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 동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호호호호...산타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잠을 깼다. 밖은 어둑어둑했는데, 형이 자리에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날아침은 무언가 이상했다.
달동네의 빼곡한 집 사이로 푸른 안개가 스멀거리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호호호...."
산타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개속에서 번쩍이는 두개의 불빛이 나타났다. 검은 형체의 생물이 안개를 뚫고 뛰쳐나왔다. 순록이었다.
순록뒤에는 붉은 썰매가 덜컹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붉은 색은 벽돌색에 가까워서 어딘지 불길해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썰매위에는 붉은 모자와 붉은 옷을 입은 산타가 앉아 있었다.
산타가 나를 쳐다보니 씨익하고 입술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건 형의 목이었다.
"안돼..."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툭툭...붉은 액체가 썰매안에 가득차 흐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썰매 뒷칸에 실린 붉은 자루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내방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데려온 것이다.
"네 형이..."
아주머니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교통사고로..."
무슨 말을 하는건가? 형은, 형은...
"형은 산타가 데려갔어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본게 환상이었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차라리 환상이라고...하지만...크리스마스는....
"오호호호호호..."
산타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들려온다. 나는 두려움에 질린 시선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덮고 있어야 할 두꺼운 커텐이 없다. 아내가 걷은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 괴생물체가 끄는 썰매를. 산타가 썰매위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호호호..메리크리스마스."
지금도 산타는 누군가의 피로 만든 선물을 배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창문쪽에 등을 보이고 돌아누웠다.
크리스마스는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