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series 10 : 땡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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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10 : 땡시험

(ㅡ.ㅡ) 0 3,173 2003.10.07 16:31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4월20일(수) 02시18분49초 KST
  제 목(Title): 의대 series 10 : 땡시험



땡시험은 해부학 시험의 꽃이다. 배점도 크지만 밤새도록 실습에 열중한 학생과

대충 놀고 지내며 남들이 해부해 놓은 것 구경만 한 녀석들의 차이가 확연하다.


우선 편한 복장으로 등교해야 한다. 구두는 금물. 조깅한다고 생각하고 길이 잘 든

운동화를 신는다.  시험 직전에 학생들이 한 방에 모이면  번호순으로 한 명씩

들어가며 시험이 시작된다.


시험장에는 시체에서 잘라낸 토막들이 배열되어 있고 하나하나  번호가 붙어 있다.

시간은 30초. 30초 이내에 시체 토막에서 표시된 부분(실로 묶거나 특별한  색이

칠해져 있거나...)의 이름을 써야 하는데 그 이름이 만만찮게 길기 때문에 보는

즉시 생각나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다. 'right recurrent laryngeal nerve'같은

이름을 2-3초 이내로 쓰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0초가 지나면 종을 친다.

'땡' 소리와 함께 2번 문제로 옮겨 가면 두번째 학생이 들어온다. 또 30초가

지나면 종소리와 함께 세번째 학생이.... 이런 식으로 40문제 정도를 풀고 나면

시험이 끝난다. 마지막 문제를 풀고 나면 손을 씻고 (이때쯤이면 이미 장갑을 끼는

학생은 드물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애들이 기다리는 술집으로 향하는 거다. 이때

누구나 한번쯤 뒤를 돌아보며 시험에 열중하느라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다.

"시험이 아니라 괴기전이군..."


한번은 땡시험 문제가 유리 접시에 담겨 있고 옆에 커다란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돋보기로 열심히 들여다본 문제는 malleus(귀속의 작은 뼈 3개중 하나인 '망치뼈').

좌우에 하나씩 있는 것이 문제로 나왔을 때는 right, left를 명시하지 않으면 감점

당하는데 이건 간신히 망치뼈라는 걸 알아볼 뿐 좌우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한참

고민하던 staire는 '땡' 소리에 놀라 그냥 malleus라고 쓰고 가벼운 푸트워크로

다음 문제를 향해 뛰었다.


어느 문제는 그냥 시체의 머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도대체 어디의

이름을 쓰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머리(왼쪽 절반)'이라 쓸 순 없고...

한참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다 마침내 귀에 작은 플라스틱 조각(빨간색)이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답은 'antitragus  of left auricle'. (귀를 겉에서 볼 때 해부학적

이름이 붙어 있는 부분이 몇 군데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helix, antihelix,

tragus, antitragus, concha, lobule, triangular fossa, scaphoid fossa, tubercle

of auricle, external auditory meatus...등이 있어요.)


1번 문제는 쉽게 내는 게 관례다. 앞 학생이 뛰어들어가면 그다음 학생은 입구에서

미리 1번 문제를 기웃거릴 수 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를 내어 누구나 맞힐 수 있게
 
하는 거겠지. 그런데 몸통 부분 시험을 볼 때의 1번 문제는 두고두고 화제거리가

되었다. 


staire가 앞의 학생 어깨너머로 슬쩍 기웃거렸는데... 이녀석이 문제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흠. 쉽다 이거지? '문제'는 시체의 가슴 부분을 통째로 올려 놓았다.

그런데 이거 이상하다... 녀석이 시체의 가슴을 마구 더듬기 시작하는데 이미

미소는 사라지고 황당한 표정이다. 30초가 다 되어 '땡' 소리와 함께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답안지에 끄적거린다. 거참, 도대체 문제가 뭘까?


staire는 문제를 읽어보고는 녀석처럼 씨익 웃었다. 시체의 가슴 아래에 있는 쪽지

에는 '몇번째 갈비뼈인가?'라고 씌어 있다. 뭐야, 간단하잖아... 어디보자, 하나,

둘, 셋, 네엣... 다, 다섯, 아니, 여섯? 음... 다시... 이거 장난이 아니군. 이렇게

혼란스러울 수가... 골격 표본(dry bone)을 볼 때엔 혼동할 이유가 없었는데...

살이 다 붙은 통갈비짝을 놓고 세려니... 중간쯤의 붉은 실이 감긴 뼈에 이르기도

전에 갯수를 놓치고 만다. 시간은 흐르고 초조해지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땡!"

staire는 멋적은 얼굴로 '7'이라 쓰고 다음 문제로 향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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