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series 9 : 해부 실습

bm.gif ar.gif


좋은글들 주로 자작시, 자작소설, 자작수필 등을 올려 주세요. 저작권이 있는 자료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의대 series 9 : 해부 실습

(ㅡ.ㅡ) 0 3,948 2003.10.07 16:31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4월20일(수) 00시58분52초 KST
  제 목(Title): 의대 series 9 : 해부 실습


나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전체를 통해 영웅이 한쪽 팔이나 한쪽 다리를 잃은

예를 발견한 적이 없다. 신화는 괴물들에게만 불구의 형벌을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 E. 윙거. '유리창의 꿀벌들'


사람의 몸은 아름다운 거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그건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나

그렇다. 시체들(cadaver)의 몸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시체와의 첫 대면, 창밖은 화창했지만 해부실에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 방에 4개씩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파란 천으로 덮인 시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윤경이는 그 광경에 벌써 질린 듯 울면서 뛰쳐나가고....


장갑을 꼈지만 주저하면서 천을 걷었다. 시체는 두꺼운 비닐에 싸여 아직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습기가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한 비닐을 벗기자 드디어

우리 조(10명)와 한 학기를 보낼 시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쩍 마른 남자.

피부는 다갈색으로 변색되어 있었고 눈을 채 못다 감은, 입도 약간 헤벌어진 처참한

표정.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를 덮쳐온 것은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였다.

최루탄을 연상시키는... 사후 강직으로 인해 약간 뒤틀린 자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30대? 아니면 40대? 머리가 검고 주름살이 적어

그보다 더 나이 든 시체는 아닌 게 분명했다.


첫날은 면도칼로 온몸의 털이란 털을 모조리 깎는다. 그러나 포르말린에 얼마나

담가 두었는지 피부가 불어 같이 슬슬 벗겨졌다. 까치집처럼 뒤엉킨 머리와 그밖의

모든 체모를 밀어내자 이제 제법 해부학 그림책(atlas)에서 보는 시체다운 모습이

되었다. 4구중 하나는 여자 시체인데 털을 깎고 나면 언뜻 보아서는 남녀 구별이
 
안되는 할머니였다.


아직 본격적인 해부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실습을 끝내고 나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저녁식사 시간인데도...


다음날부터 해부는 시작되었다. 피부를 벗기고 정맥을 발라 내는 일부터...

그림책의 그림들이 얼마나 idealize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각종 섬유들이

너덜너덜하게 얽혀 도저히 그림책처럼 깨끗이 발라낼 수가 없었다. 옆방에는 젊은

여자의 시체가 있었는데 제법 하얀 피부와 머리를 깎고서도 여전히 예쁜 얼굴

때문에 애들이 차마 칼을 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찾아온 조교가

그 시체의 코를 잘라버린 후에야 칼질을 할 수 있었다...


해부를 마치고 나면 저녁 시간이다. 그러나 몸에 짙게 배어버린 포르말린 냄새와

그 사이를 비집고 스며나오는 시체 특유의 퀴퀴한 냄새 때문에 식욕이 나질 않았다.

의대 도서관은 본과 1학년들이 뿜어내는 시체 냄새로 인해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띤다.


해부학은 본과  1학년 1학기동안  개설된다. 전체 강의는  3부분(팔다리, 머리와

목, 몸통)으로 구분되어  3번 시험을 본다. 그리고 매번의  시험에는 실습 시험

(땡시험)이 있다. 땡시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어쨌든 첫 해부는 다리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다리 부분을 샅샅이 찢어내고 나면

슬슬 해부에 익숙해진다. 칼질 솜씨도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윤경이도 애들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열심히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고 당겨본다. 게다가 이때쯤이면

이미 맨손으로 해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장갑을 끼고서도 거북하던 것이

이제는 맨손의 섬세한 감각을 위해 거의 아무도 장갑을 쓰지 않는 거다. 그리고

몸에 밴 시체 냄새에도 이미 무감각해진 지 오래. 저녁에 식욕이 없다는 것도 옛날

얘기다.


실습 시험 전날이면 실습실은 장터처럼 수선스럽다. 시체는 개인차가 워낙 심해

다른 조 시체를 보지 않고서는 실습 시험을 볼 수 없는 거다. 다들 여기저기 몰려

다니며 너덜너덜해진 혈관과 신경, 근육 이름들을 외느라고 바쁘다. 우리가 해부한

시체의 토막토막이 실습 시험 문제로 출제되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이 돌아가고 나서 staire와 영걸이, 석재, 성현이가 끝까지 실습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은 새벽 1시쯤. 갑자기 영걸이가 말했다.

"너, 이런 생각 해봤니? 이 건물에는 지금 시체들이 우리보다 더 많다는 거..."

갑자기 으스스한 생각이 들어 시험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향하고 말았다.


두번째 부분인  머리와 목을 해부하기  위해 팔다리를 떼어내면  시체는 갑자기

왜소해진다. 어깨가 없어진 사람의 몸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우선 뇌를 꺼내야 한다. 뇌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음 학기의 신경해부학 교재로

쓰이는 것이다. 시체의 머리에 빙 둘러 금을 긋고 실톱으로 두개골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지더니 급기야

마른 천둥이 치는 거다. 애들은 기겁을 해서 톱을 내려놓고 매점으로 향했다.

'좀 있다가 해야지...'


날씨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짱해지면 다시 실습실에 모여 톱질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천둥 번개가 치고. 이상하게도 끝내 비는 오지 않고... 해부하다가 입에

한 조각 튀어 들어가도 뱉으면 그만인 경지에 이르렀지만 역시 찜찜하다.


머리뼈의 덮개(calvaria)를 떼어내면 뇌막을 가위질해서 열고 손으로 뇌가 허물

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당기며 12쌍의 뇌신경 뿌리를  끊어낸다. 그리고 나서

목 뒤의 1-2번 내지 2-3번 척추뼈  사이에 칼을 꽂아 연수를 자르면 뇌는 깨끗이

분리된다. 날씨 탓인지 누가 칼을 꽂느냐 하는 문제로 또 한참 실랑이가 있었다.


이제는 머리를 좌우로 두쪽낼 차례다. 그림책의 머리 단면을 보며 뼈가 있는 부분은

톱질을 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가위로 자른다. 마지막으로 입속에 가위를 넣어 혀를

좌우로 잘라주면 머리는 좌우로 갈라진다. 그러나 몸통에 여전히 붙어 있어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치 머리가 둘인 것처럼 보인다...


눈을 해부할 때면 괜히 제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찝찝하다. 그건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눈처럼 예민한 곳인 경우는 더 심하다. 정관을 자를 때 괜히 움찔하는

남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머리부분 실습 시험 전날 시체의 머리 하나가 없어져 화제가 되었다. 시체와 적출물

처리에 관한 규정에  엄격히 금지된 일이지만 누군가 집에서 공부하려고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의대생들은 태연하다. '그까짓 머리 반쪽...' 하지만 그녀석이 밤에

공부할 때 어머니께서 밤참이라도 준비해 불쑥 녀석의 방을 찾았다면...


몸통 해부를 마칠 때쯤이면 시체는 거의 빈껍데기다. 조각조각 뜯어내고 가뿐해진

시체를 보면 사람의 몸이 복잡하긴 해도 참 별 것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시체는 위가 주먹만하게 수축해 있었다. 얼마나 굶으면 저렇게 될까? 그리고 폐에는

마치 삶은 감자가 굳은 듯한 색과 질감을 가진 알 수 없는 덩어리 몇 개가 있었다.

조교가 폐결핵의 흔적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엉덩이에는 깊은 종기가 나 있었다.

환자가 몸을 뒤채지 못해 한 자세로만 누워 있다보면 바닥에 닿은 부분은 혈류가

나빠져 그렇게 썩어 버리는 것이다. 거의 뼈에 닿을 듯한 깊은 욕창(종기)을 보며

말년에 간병해 줄 사람도 없이 외로이 죽어간 폐병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

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환자는 가끔 돌아 눕혀야 해...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시체를 쌌던 비닐과 테이블이며 바닥 여기저기에 널린

너절한 조각들만 남기고... 그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화장하는 거겠지. 죽어서까지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분들이 이제나마 편안히 눈을 감으실까... 하긴 그 '눈'은 이미
 
조각조각 나버린 지 오래지만.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Comments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254 명
  • 오늘 방문자 4,440 명
  • 어제 방문자 6,870 명
  • 최대 방문자 7,815 명
  • 전체 방문자 1,770,181 명
  • 전체 게시물 14,418 개
  • 전체 댓글수 38,023 개
  • 전체 회원수 1,676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