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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4 : 잊을 수 없는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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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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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7 16:25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3월13일(일) 11시16분07초 KST
제 목(Title): 의대 series 4 : 잊을 수 없는 수술
앞에 소개한 JP의 수술...
환자는 췌장암 3기.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원래 몸속에 있는 대부분의 장기
(腸器:organ)는 serosa라는 막이 싸고 있어서 암이 퍼지는 걸 어느정도 막아주는
데 유독 식도하고 췌장(이자) 그리고 십이지장 일부, 대장 일부는 이게 없다.
그래서 암이 발견될 때쯤엔 이미 늦은 경우가 흔하다.
이 환자도 배를 열자마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의사의 입장에선 도로 꿰매
어 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면밀한 검사를 거쳤음에도 발견 못한 암조직이 뱃속
에 좁쌀을 뿌려 놓은 듯이 깔려 있는 거다. 당연히 수술장 분위기는 엉망진창...
(참고로 수술장의 모습을 조금만 알려드리죠. 수술대 주위에는 집도의,
assistant 1 (레지), assistant 2 (레지), 인턴, 전담 간호사, 마취의등 5명이
기본이고 그밖에 circulating nurse와 학생들이 있습니다. circulating은 수술에
참가하는 건 아니고 조명등 위치를 조절하거나 사람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등의 잡일을 합니다. 학생들은 대개의 경우 그냥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하는 게 고작이지만 경우에 따라 손을 쓰게 될 때도 있고. 신장 이식등
특수한 수술은 추가로 몇명이 더 필요하지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JP는 강의와 수술을 동시에 한다.
"췌장을 자를 때 덕트(pancreatic duct:이자액의 통로가 되는, 췌장 한가운데를
지나는 관)는 따로 묶고 자르는 거야. 이렇게..."
JP의 손놀림은 악기를 연주하는 듯 우아하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좀 굵은 정맥이 잘린 거다. (원래 그곳에는 정맥 같은
건 없는데. 일종의 가벼운 기형인 셈이다. 원래 수술 전에 혈관 조영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이런 건 다 확인하는데 놓친 게 있는 모양이다.) 시야는 금방 벌
겋게 물들고 만다.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는지 마취의사의 손놀림이 급해진다. 수
혈이 시작된다.
"Blood 2 pint 들어갑니다..."
상기된 듯한 마취의사의 목소리.(이분은 여의사인데 마스크를 벗으면 꽤 예쁜
얼굴일 것같지만 한번도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 2파인트는 적은 양이 아니다...
헌혈할 때 한번에 0.75 파인트정도 뽑으니까...
"모스퀴토..."
간호사가 모스퀴토(작은 지혈겸자)를 JP에게 건넨다. JP는 간호사 쪽은 보지도
않지만 간호사는 JP가 내민 손바닥 위에 쓰기 편한 각도로 모스퀴토를 얹어준다.
역시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보비... 아니 덱슨."
보비(전기 소작기)로 지져버리기엔 너무 큰 혈관이라 덱슨(봉합사의 일종)으로
꿰매는거다. 간호사는 반달 모양의 바늘(검은 덱슨 봉합사가 끼워진)을 물고
있는 니들 홀더(날없는 가위처럼 생긴 바늘 집는 집게)를 JP의 손에 딱
붙여준다. Assistant 2는 진공 튜브로 피를 빨아내고 assistant 1은 JP가 한땀
한땀 뜰 때마다 실꼬투리를 한손으로 묶고 (날아갈 듯 빠르다. 베테랑급
외과의는 1분에 80-100개의 매듭을 '예쁘게' 묶어낼 수 있다.) 다른 손으로
실끝을 자른다. 한손으로 어떻게 묶냐고? staire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보여드릴
텐데...
"디버 좀더 당겨..."
음... 문제가 발생했다. 디버(배를 가른 자리에 걸고 당기는 기구. 조금만 째고도
넓은 수술 field를 확보하기 위해 쓰인다. 많이 쨀수록 환자의 몸에 스트레스가
많이 가게 되므로 조금만 째고 힘껏 당기는 게 원칙...)를 들고 있던 인턴이 잠시
멍하니 서있었던거다. 설마 조는 건 아니겠지만 외과 인턴은 고달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선채로 맛이 가는 수가 있으니... JP는 이런 장면에선 용서가 없다.
팔꿈치로 퍽 소리나게 인턴의 옆구리를 때린다. (손은 쓸 수가 없으니...)
"이새끼 바꿔!"
circulating 두사람이 급히 달려와 staire에게 수술복을 입힌다. staire는 팔을
들고 서 있으면 된다. 연두색 가운형의 수술복은 뒤에서 묶도록 되어 있어
staire는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는 거다. 준비실 벽에 붙은 수도꼭지(역시
손을 쓰지 않도록 페달식으로 된)에서 소독액으로 손을 씻고 장갑은 circulating
들이 끼워 주고 마스크도 역시 circulating이...
"멋있네요. 잘하세요..."
circulating 한명이 내 등을 밀어 수술대 쪽으로 보내며 격려의 한마디. 이 꼴이
뭐가 멋있다고...
인턴이 빠져나간 자리를 staire가 채운다. 수술의사들은 어깨를 바싹 밀착하고
있기 때문에 좌우의 의사들이 모두 땀에 젖어 있는 걸 금방 느낀다. 내 오른
쪽 어깨에 단단히 밀착된 건 무서운 JP의 어깨... 디버를 힘껏 당기고 있자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JP는 학생에겐 관대하다.
"조명을 가리지 않도록 손을 낮추고..."
이순간엔 JP의 한마디가 곧 성경 말씀이고 수령님 교시인 거다.
마침내 혈관이 잡히고 수술이 끝났다. 피도 몇파인트 더 들어갔고... 이제 배를
닫는 일만 남았는데... JP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쑥 빠져나가는 바람에
staire는 넘어질 뻔했다. 마스크를 벗고 투덜거리며 사라지는 JP... 그러자
assistant 1도 뭐라고 중얼거리며 빠져나간다. assistant 2, staire, 그리고
간호사와 마취의만 남았다.
"닫아야죠."
간호사가 우리를 재촉한다. staire로서는 처음 맞는 상황인지라 assistant
에게 기댈 수밖에.
"선생님께서 닫으세요. 전 학생이라..."
이때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assistant의 대답.
"전 외과의사가 아니에요..."
세상에... 바느질 배우려고 어제 피부과에서 파견된 레지던트였던 거다...
이래서 두 초보의 위태로운 운전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간호사가 자상하게
이끌어준다.
우선 복막을 꿰매고 다음엔 근육층, 마지막으로 피부를... 당기거나 밀리지
않게 길이를 재어가며 한바늘 뜨고 묶고, 또 한바늘... 바늘을 직접 손에 들고
하는 게 아니라 니들 홀더로 물고 있기 때문에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눈치를 슬쩍 보니 피부과 레지던트도 악전고투중이다...
마취의사가 심전도 모니터를 보더니 아트로핀 주사기를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한마디.
"대충 해요. 깨어날 것같지도 않은데..."
그러니까... JP가 초보들에게 맡기고 나가버린 건 그때문이었군. 그렇다고
대충 할 수는 없지. staire가 살아 있는 사람을 꿰매는 첫 무대인걸...
바느질이 끝났다. 간호사는 돌아앉아 거즈 갯수를 확인하고 있다. (수술중에
뱃속에 집어넣는 거즈는 모두 일련번호가 붙고 대충 위치가 기록된다. 나중에
집어넣은 역순으로 꺼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조각 남기고 끝나는
수가 있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십중팔구는 재수술이다.) circulating들이
환자를 수술대에서 stretcher(바퀴달린 침대)로 옮기고 마취의사가 스트레처를
회복실로 밀고 간다. 회복실은 마취의사만의 세계다...
그 환자가 깨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사실 깨어났건 말건 결과는 그게 그거다.
staire에게 있어서 그분의 의미는... 시체에 비하면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나
근육은 부드러워서 꿰매기 쉽다는 걸 가르쳐 준 것 정도일까?
이상, 기계쟁이 스테어의 첫 수술 일기였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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