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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30 : 뒤늦게 쓰는 영화 '전태일' 감상
(ㅡ.ㅡ)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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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7
2003.10.07 16:52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12월05일(화) 23시32분32초 KST
제 목(Title): 뒤늦게 쓰는 영화 '전태일' 감상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이 세상 아무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보아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젠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 김민기, '이 세상 어딘가에'
금년에 본 첫번째 영화, 그리고 아마도 금년에 보는 마지막 영화가 될 것같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잡념으로 가득한 staire는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손을 씻을 데가 없어요'라며 울던, 손으로 각혈을 받아내던 여공의 해쓱한 얼굴이
10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시대 1985년. staire는 신도림동에서 야학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본과
1학년이라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었지만 84년부터 알게 된 학생들과의 정을
끊기는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한 아이, 자그마한 키에 핼쓱하고 여윈 선아라는
여공은 staire를 무척 따르는 편이었다.
선아에게서는 가끔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화사한 빛깔의 편지지와 약간 모가 져
있긴 해도 예쁜 글씨에서는 그녀의 궁핍한 모습을 전혀 엿볼 수 없었다. 어느날의
편지 끄트머리에 붙은 한 구절, '이만 쓸께요. 불빛이 흐려서 눈이 아프거든요...'
를 읽으며 비좁은 방에 쪼그리고 앉아 30촉 알전구의 침침한 불빛 아래 편지를 쓰는
선아의 모습을 떠올리긴 했지만.
한여름이었다. 방학을 맞은 staire가 안심하고 야학에 다시 참가하게 된 85년의
여름.
수업을 하다가 선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았다. 피곤한 몸으로 수업을 듣는
공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그냥 못 본체하며 넘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의 진경이가 그러는 거다.
"선생님! 선아 울어요. 아픈가봐요."
저런... 그러고보니 앞으로 옹송그려진 선아의 아랫배에 두 손이 가 있고 어깨가
들먹이고 있었다.
"선아야... 왜 그러니? 어디가 아파?"
"... 배가... 배가 너무 아파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선아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솔직이 말하자면 선아는 전혀
배가 아픈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던 거다. 하얗지만 까칠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소리를 죽여 들먹이는 조그많고 동그란 어깨... 그건 격한 고통에 못이겨
우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깊은 서러움에 의한 울음으로 보이는 거다.
어쨌든 선아를 들쳐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얼마나 기다렸을까. 의사 선생님이 staire를 불렀다.
"저 학생이랑 어떻게 돼요?"
"제가 가르치는... 야학에서 가르치는 아입니다."
"선생님인 셈이군요."
"예..."
"저 학생은... 배가 아픈 게 아니에요."
"????"
"빈혈 기미가 있고 호흡기에 이상이 있는 것같긴 하지만 배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왜...?"
"저 학생은 지금 누군가의 관심을 끌고 싶은 거죠."
"그럼 꾀병입니까?"
"꾀병은 아닙니다. 진짜로 아픈 거에요. 신경성이니 하는 것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각하면 돼요. 집안이 별로 윤택하지 못한 모양이죠? 가족 관계도 별로
좋지 않고."
집안이야 단칸방에 홀어머니와 남동생이랑 살고 있으니 윤택은커녕 빈민이라고
보는 게 옳겠고... 술과 도박과 가족들에 대한 손찌검으로 생애를 탕진한 끝에
공사판에서 죽은 아버지와 건달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국민학교 6학년 남동생,
봉투를 붙이며 생계를 잇고 있지만 궁벽한 생활에 찌들어 잔신경질을 부리는
어머니...
"맞습니다..."
"그래서 아마 야학 선생님들이 이 학생에게는 딴 세상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
지요. 관심을 갖고 가까이 대하고 싶지만 맘대로 안되는... 꾀병하고는 달라요.
심리적인 통증이죠. 서운함과 상실감, 패배감... 이런 것들로 인해 위축된 사람은
자연히 움츠리게 됩니다. 배를 쓸어안게 되지요. 마음이 무거우니 어쩐지 배도 아픈
것같아요. 묵직하게. 그래서 더 움츠러들고 그럴수록 더 아픈 것같지요. 거기에다
심리적인 효과로 서러움이 가세를 하게 되고... 나중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상의 고통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요. 악순환이죠. 누가 끊어주기 전에는
스스로 빠져나오기 힘든..."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글쎄... 난 의사지 카운슬러가 아니니까... 일단 그 학생을 잘 대해주도록 해요.
참, 그리고 호흡기 쪽은 조금 더 검사를 해봐야 하겠군요..."
그날 선아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staire의 손을 꼭 잡고서 밤을 보냈다. 여윈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내려다보며 손에 힘을 주었더니 이미 잠든 줄 알았던
선아도 수줍게 되쥐어 주었다. 선아의 입가에 미소가 스친 것같았다...
......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아니, 조금 더 그 뒷이야기가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기로
하자. 선아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진단이 나온 즉시 직장을 잃은 선아는 그녀의
신도림동 단칸방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라져버린 거다. 어디로? 돌아갈 고향
같은 것도 따로 없는 선아가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제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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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 '친구' 중에서 -
무궁화꽃을 피우는 아이
이른 아침 꽃밭에 물도 주었네
날이 갈수록 꽃은 시들어
꽃밭에 울먹인 아이 있었네
- '꽃피우는 아이' 중에서 -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퀭한 두 눈마다
빨간 노을이 물들면
웬지 마음이 설레인다
- '강변에서' 중에서 -
내 고향 가는 길 매서운 북녘길
찬 바람 마른 가지에 윙윙거리고
길가에 푹 패인 구덩이 속엔
낙엽이 엉긴 채 살얼음 얼었네
눈보라 내 눈 위에 녹아 흐르니
내 더운 가슴에 안아볼거나
뿌리채 뽑혀버린 나무등걸에
내 더운 눈물 뿌려 잎이나 내어보세
- '고향가는 길' 중에서 -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 '늙은 군인의 노래' 중에서 -
돈 벌어 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무슨 통뼈 깡다구로 만날 철야요
누구는 하고 싶어 하느냐면서
힘 없이 하는 말이 폐병삼기래
- 소리굿 '공장의 불빛' 중에서 -
지금 듣고 있는데요! 봉우리, 작은연못 등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