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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23 : 전신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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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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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7 16:45
[ CultureOfKids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5월10일(금) 01시16분02초 KST
제 목(Title): [의대시리즈] 전신 화상
* 이 글은 1995년 4월의 대구 가스 폭발 사건을 즈음하여 씌어졌습니다. *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5월01일(월) 02시48분35초 KST
제 목(Title): 전신 화상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
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 전태일, 1970년 8월 9일자 일기에서
인권 변호사 조영래씨가 이름을 감추고 낸 '전태일 평전'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도 전신 화상에 대한 남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대구에서 전해지는 몸서리쳐지는 소식들... 정치권과 언론의 치졸한 반응이야
넉넉히 예상했던 것이지만 그보다 더 깊이 내 가슴을 때리는 것은 '불에 탄 시체'
라는 대목이다. 그 수많은 '중상자'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전신 화상 환
자들...
일반외과 실습을 위해 파견 나갔던 어느 병원, 구로 공단에서 실려 온 전신 화상
환자가 staire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해 있었다. 무표정하게 씌어진 일반외과
교과서의 화상 부분을 대충 읽고서 병실에 들어갔다.
얼굴과 가슴, 배 일부 이외의 거의 전신에 뜨거운 물(보일러에서 터져나온 100도가
넘는 가압수)을 뒤집어쓴 환자는 안타깝게도 의식을 잃지 않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단내가 나는 그의 입김을 쐬어가며 vital sign(호흡수, 맥박수, 혈압, 체온)을 재고
그의 너덜너덜한 피부를 이잡듯 뒤지며 바늘 꽂을 데를 찾았으나 도저히 찌를 곳이
보이지 않는다. 혈압대를 감을 곳이 없어 혈압 란은 비워 두고서...
결국은 금기로 되어 있는 경정맥(jugular vein)에 바늘을 꽂아야 했다. 화상 치료는
체액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액 공급으로 시작되는 관계로...
전신 3도 화상의 참상은 어깨에 너덜거리는, 떼어내다 남은 작업복 조각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워카처럼 생긴 작업용 구두를 벗기다 묻어나온 살점 쯤은 관심
밖이다. 그보다 훨씬 더 처참한 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화상 치료의 가장 힘들고도 고통스러운 부분은 환자를 '닦아주는' 것이다.
(경고 :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여기에서 q를 누르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화상의 고약한 점은 그것이 아물어도 흉하게 일그러진 흉터가 남는다는 점에 있다.
손상을 입은 피부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콜라젠 섬유가 제멋대로 꼬이며 흉측한
모습을 남기는 거다. 그거야 미관상의 문제 아니냐고? 소규모의 화상일 때는 물론
외관상의 문제로 끝난다. 그러나 전신 화상의 경우에는... 재생되어가는 콜라젠
섬유가 이리저리 꼬이고 수축하면서 관절을 죄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완치된
후에도 관절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혈관을 죄어붙여
자칫하면 팔다리를 잘라야 하는 사태에 이른다. (이따위로 인간을 만든 조물주의
심술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우기 화상을 입어 흐물흐물해진 피하조직은
세균이 번식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밥'이다. 가뜩이나 화상에 따르는 스트레스로
면역 기능마저 정상이 아닌 환자에게 이것은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 화상 부위를 닦아주는 거다. 항생제와 링거 액에 적신
거즈를 손에 둘둘 말아서... 말이 좋아서 '닦아주는' 것이지 이건 '벗겨낸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합하다. 한 번 문지를 때마다 한 무더기씩 사람의 살인지 쓰레기통
에서 흘러나온 썩은 고기인지 모를 지저분한 것이 거즈에 묻어난다.
지저분한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 의사가 그런 것을 꺼린대서야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귀가 멍해지도록 목청껏 질러대는 비명... 이건 고문이다. 팔다리를
가죽끈에 묶인 채 침대에 고정된 환자의 고통에 감히 비할 바 아니지만 이런
환자를 닦아야 하는 고통 역시 인내의 한계를 넘나든다. 환자가 애처롭다고 해서
슬슬 닦아서 될 일도 아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은 무자비하게, 눈 딱
감고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말끔히 해치우는 것뿐이다.
어지간한 staire도 여기엔 두 손 들고 말았다. 손바닥 아래에서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CPR(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 : 심폐
소생술)을 하던 staire였지만...
TV에서 흘러나오는, 격앙된 앵커의 음성으로 듣는 '중상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staire의 귓전을 울리는 8년 전의 그 비명소리, 선연히 떠오르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과 비끄러맨 가죽끈이 끊어져라 당기며 온 몸을 뒤틀던 그의 몸짓 하나하나...
8년 전의 그때도 그랬다. 이런 살인적인 환경에 근로자를 방치하는 사업주와 정부에
대한 분노 이전에 한 개인이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이 staire의 단순한 머리속을
뒤덮었던 것처럼 오늘 뉴스를 보면서 어쩌면 수많은 시청자들에게는 그냥 무표정
하게 들릴 수도 있는 '중상자'라는 말에서 그 숱한 화상 환자들이 보내고 있을
고통스러운 밤이 떠오르는 거다. 불 속에 내던져진 전태일 열사의 순결한 영혼과
어느 불행한 노동자의 비명, 그리고 오늘도 참아서 해결될 수 없는 고통으로 지샐
대구의 부상자들, 이 모든 것이 한데 얽혀 동물적이라 해도 좋을 분노가 되어 끓어
오르는 거다.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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