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들 주로 자작시, 자작소설, 자작수필 등을 올려 주세요. 저작권이 있는 자료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
의대 series 16.2 : 의대생의 사랑
(ㅡ.ㅡ)
일반
0
3,427
2003.10.07 16:35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6월05일(일) 03시46분21초 KDT
제 목(Title): 의대 series 16.2 : 의대생의 사랑
Ignotum per ignotius...
(알 수 없는 것을 더욱 알 수 없는 말로 설명하다...)
- Thomas Aquinas
본과 1학년 여름을 맞은 경희의 편지를 받았다.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 달쯤 전에 떨어진 커다란 바위가 아직도 비직비직 저를
아프게 합니다..."
본과 생활에 쫓기던 경희와 혁이가 위기를 맞았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위로의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정현이를 생각한 것인가? staire는 점장이의 선을 넘고
있었다...
가을쯤에 정현이마저 영미와 좋지 않은 결말을 보았다. staire의 딸이 되기를
거부했던 유일한 아이 영미...
겨울 캠프, staire의 졸업생 환송회가 있는 캠프였다. staire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 악보를 몇 개 들고 캠프를 떠났다.
캠프 첫날밤. 경희를 만났다. 혁이와 어떻게 되었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의대생의 사랑... 그것은 몇가지 단계가 있어. 대개들 그 틀에 놀랍도록 잘 맞아
떨어지지. 우선 예과의 평범한 시기. 이 때의 사랑은 다른 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그렇지만 본과에 올라가며 많은 변화를 겪게 되지... 우선 본과 진입 직후의
혼란기. 공부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그동안 숨겨졌던 커플들이
좁아진 캠퍼스로 인해 일제히 공개되는..."
"맞아요. 우리 학년들도 그랬어요."
"그 다음엔 본과 1학년 중반의 위기... 과도한 스트레스에 서로를 감싸줄 여유들을
잃어 가는 시기... 많은 커플들이 이때 깨어지는 거야."
그것도 맞아요..."
경희의 얼굴에 쓸쓸한 그림자가 스친다...
"그다음은 본과 2,3학년의 free radical reaction phase... 무수한 커플들의
anastomosis(의대생들은 다 아는 단어... '이합집산')가 일어나는데... 잘 살펴보면
깨어진 커플들의 '조각'들이 멀쩡하게 공부 잘 하던 안정된 분자들을 때리며 반응이
일어나는..."
경희는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부터는 경희도 잘 모르는 얘기인 것이다...
"그리고 본과 3학년 후반의 성숙기. 남자애들은 의사와 결혼하느냐, 마느냐를 결정
하는 시기인데 대부분 '편한 마누라'를 원하기 때문에 과 여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식어가지. 반대로 여학생들은 자신을 이해해줄 남자는 의사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고... "
"음... 전 그럼 의사와 결혼해야겠네요. 제 야망은 두가지에요. 야망... 이라기엔
좀 우습지만요... 하나는 의사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엄마가 되는 것..."
"마지막으로 4학년때의 결혼 붐이지. 수많은 과커플들의 결혼이 이루어지는데
대체로 원래 사귀던 애들이 아닌 새로 이루어진 커플들..."
곁에 앉았던 예과생 성욱이가 뜻모르는 웃음을 지었다...
졸업생 환송회는 저녁 8시부터 시작되었다. 그전에 정현이를 만나 이중주 악보를
전해 주었다.
본과 4학년들의 순서가 하나하나 지나가고 마침내 공대 4학년 staire의 차례...
딱 10년에 걸친 학부생으로서의 SNUMO 생활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본과 1학년
들이 한사람씩 졸업생의 프로필을 소개하고 선물을 전한다. staire에게 선물을
전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경희였다.
"작년, 재작년에도 졸업하시는 선배님들을 떠나보냈지만 이 분의 졸업을 맞아 저는
처음으로 선배를 잃는다는 느낌에 가슴이 아파오는 걸 느낍니다. 인자한 아버지였고
늠름한 선배이셨죠..."
아니... 이런 과찬의 말씀(?)을... 경희는 고개를 숙이고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그동안 저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수학, 물리, 유기화학, 물리화학,
해부학, 병리학, 마이티(?), 화성법과 실내악, 그리고 푸가의 아름다움... 강민형
선배님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경희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선물을 전달받으며 경희와의 악수... 손이 차갑다. 그렇지만 경희는 내 손에서
따스함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그리고 귓속말...
"정현이에게 가 봐... 재미있는 악보가 있어..."
떠나는 자리에서의 마지막 인사...
"전 너무나 오랫동안 대학생이었어요. 이제는 학생이 아닌 저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기간이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학생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불현듯 4년 전의 이 자리가 떠오른다. 공대 신입생이 된 staire가 왔던 연이와의
겨울 캠프. 졸업하는 동기들을 축하해주러 왔다가 뜻밖에 같이 환송을 받았다.
내 감사패는 따로 주문해서 만든 것으로 다른 애들의 것에 '선배님의 졸업을 축하
드리며...'라고 되어 있는 데에 비해 내것에는 '선배님의 새출발을 축하드리며...'
라고 씌어 있었지...
선배가 어떻고 음악이 어떻고... 하는 실없는 얘기를 하다가 그만 목이 메었다...
"...저는 여러분을 잊지 못할 거에요. 아니, 여러분 곁을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왜냐 하면..."
그날 밤, 작은 연습실에서 경희와 정현이가 머리를 맞대고 이중주를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
* 덧붙임 : 이 글이 처음 씌어진 94년 6월로부터 20개월이 지난 금년 2월,
본과를 졸업하며 경희와 정현이는 결혼했습니다.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4-07 16:23:58 횡설수설(으)로 부터 이동됨]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