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대지를 달구는 정오에 뒤로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광야(曠野)를 달리는 한 대의 대형 화물차가 있다.
대형 화물차 앞의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세 명으로 보이는 인영이 보였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쥐고있는 토르, 우측 창가에 앉아 복희랑이 박살 내버린 일공장의 페허에서 발굴한 수십권의 장부를 뒷 쪽에 쌓아두고 한 권씩 보고있는 초고려(初高麗), 그리고 가운데에서 뒤로 기대어 정신없이 골아 떨어진 아주비응(峨嵀飛鷹) 복희랑(伏羲朗)
일행은 애초에 뇌신 이제석과 접선하기로 하였으나 일공장의 비밀장부를 보는 순간 작전을 바꾸어서 성약을 만들어내는 이공장에서 부터 칠공장까지 모두 박살내버리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들은 일공장의 입구 근처를 지키다 일공장을 찾는 화물차의 운전수들을 보이는 족족 사로잡아서 초고려의 사령제심안으로 다시는 야소교를 믿지말고 숨어살라고 역세뇌를 걸었다.
그런식으로 중형과 대형 화물차 이십여 대를 압수하자 더이상 일공장을 찾는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그 중에 토르가 고른 한 대의 대형 화물차에 장갑차를 싣고 위장하였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매마른 광야의 끝에는 녹음이 우거진 우뚝 솟은 하나의 산봉(山峰)이 나타났다. 산봉으로 왕복 이차선의 길이 있었다. 일행이 탄 대형화물차는 근처 수풀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토르가 수풀 근처에 화물차를 숨기자 체구가 비대한 초고려가 화물차에서 내렸다.
"기다려 얼마 걸리지 않을테니!"
화물차에서 내린 초고려는 자신만의 독창 은신술 유령무흔잠행술(遺靈無痕潛行術)을 시전하자 감쪽같이 차로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을 시전하자 초고려의 비대한 육신이 지면에서 일 척(尺)가량 떠오르더니 머리가 앞을 향하고 발이 뒤로 향하였다. 그리고 질풍같이 차도를 따라 날아갔다.
육천 년 전에 무공의 원맥(原脈)으로 소문난 삼대문파 가운데 대다라석밀궁(大陀羅釋密宮)이라는 대문파가 있었다. 대다라석밀궁은 대일금강밀궁(大日金剛密宮), 석천무량범원(釋天無量梵院), 소겁청법성사(少劫淸法聖寺) 이 세 개의 문파로 나눠졌다. 이 중에 석천무량범원에서 분가한 광림원(光林院)이라는 무림문파가 있는데 이 광림원은 훗날까지 무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창립때 부터 존재한 백팔종절예(光林百八種絶藝)를 비롯하여 광림원의 천무서각(天武書閣)에는 일만종의 각종 무서를 보관하고있었다. 이 중 백팔절예는 광림원 최고의 무공으로 외부로의 유출을 극히 꺼려하였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육지비행술이라는 절예 하나가 괴도(怪盜) 잔풍자(潺豊子) 길전(吉田)에 의해 외부로 유실되었었다.
육지비행술을 훔친 잔풍자는 삼 개월 만에 광림원의 추격대에 잡혀 척살(刺殺)되었고, 육지비행술 진본도 회수하였다. 하지만 지난 천 년 간 무림에서 절예의 경공술인 육지비행술을 시전하는 자가 세 명이 나타났다. 팔백 년 전의 산람괴수(珊纜怪獸) 장장(張長), 오백 년 전의 비행마왕(飛行魔王) 구기석(究技石), 삼백 년 전의 비선자(飛仙子) 위진(位眞) 이 들 모두 잔풍자 길전이 잡혀 죽기전에 베낀 육지비행술 필사본을 지니고 있었다. 세 명은 육지비행술 하나로 무림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로인해 광림원주의 귀에 들게되고 광림원주가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 척살되었고 가지고 있던 필사본은 그자리서 불태워졌다. 이런 육지비행술을 초고려는 능숙하게 시전하고 있었다.
산 속 차도가 끝나는 지점에 일공장에서 본 것과 같은 육중한 철문이 차도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유령무흔잠행술에 육지비행술 두 가지 상고의 절학을 동시에 시전하여 숨어드는 초고려를 철문으로 막을수는 없었다. 초고려는 육중한 몸집과는 달리 아주 유연하게 육지비행술로 철문을 뛰어 넘어갔다.
초고려가 대예배당으로 숨어들어 대예배당 내부를 다 뒤지며 비밀장부에서 본 내용중의 신천당의 계급체계를 떠올렸다.
신천당은 총재 이성만을 대장(大將)으로 하여 그 아래로 장관(將官)급을 고장(高將), 중장(中將), 초장(初將)이라 하였다. 그 아래 영관(領官)급을 두어 고령(高領), 중령(中領), 초령(初領)이라 명명하였다. 또 영관 아래로 위관(尉官)급을 만들어 고위(高尉), 중위(中尉), 초위(初下尉)라 하였다. 위관급 아래로는 부사관(副士官)급이있어 상사(上士), 고사(高士), 중사(中士), 초사(初士)라 하였다. 이 외에 군목관(軍牧官)의 특별계급을 만들어 군목장(軍牧長), 군목상(軍牧上), 군목중(軍牧中), 군목하(軍牧下)로 정하였다. 군목관은 주로 군교회로 배속되는데 부대장의 직위를 능가하는 실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군목은 특별계급이란 말이지?"
초고려는 대예배당 군목실에 잠입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여긴 별볼일 없구나"
초고려는 대예배당을 빠져나와 극히 빠른 시간에 부대 내를 다 뒤졌다. 그 와중에 언덕위에 정말 한 폭의 그림같은 호화주택을 발견하였다. 순간적으로 초고려는 호화주택이 군목관의 사택(舍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질풍같이 언덕위의 사택에 도달하니 여기저기 지키는 군병이 많이 보였지만 초고려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유령무흔잠행술로 유유히 사택안으로 스며 들었다.
사택 내부에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안 방에서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초고려는 피식 웃었다.
한 참 재미보나 보군. 하지만 산통을 깨서 미안하군
고양이 울음소리는 안방에서 여인이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지며 내지러는 교성(嬌聲)이었다. 초고려는 유령무흔잠행술로 교성이 들려오는 굳게 닫힌 안방문의 틈새로 소리없이 들어왔다.
사택의 안방에 평쳐진 광경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나체의 일남이녀가 함께 있는데 오척단구(五尺短軀:키가 150센티)의 얼굴에 마자(麻子:곰보)가 가득한 사내와 팔등신(八等身)에 제법 반반한 미모의 여인이 둘 있었다.
이 중 한 여인은 바닥에 놓여진 개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밀고 정신없이 먹고 있었고, 한 여인은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사내가 하체를 여인의 둔 부에 접촉할 때 마다 여인은 고양이 같은 교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두 여인의 목에는 개줄에 연결된 목사리가 채워져있고 개줄은 오척단구의 사내가 쥐고 있었다. 바닥에는 성약의 빈 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초고려는 벽에 걸린 제복을 보고 오척단구의 사내가 이공장의 군목관 조갑개(趙甲開)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척 보아하니 여인들은 약물중독으로 오래전에 이지를 상실하여 백치상태에서 군목관의 색노(色奴)로 살아가는 수인(獸人)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쩔수 없군. 여인들이여 부디 마음의 평안을 찾기를
"핏 핏"
초고려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두 가닥의 지풍(指風)이 사혈(死穴)인 천극혈(天隙穴:귀 뒤의 아래쪽 들어간 부분)을 가격하자 두 여인은 힘없이 픽 픽 쓰러져 죽었다.
"어라 이년들이 안일어서?"
군목관은 여인들이 죽은지도 모르고 발길질 해대었다.
"그만해라 여자들은 이미 죽었다."
군목관의 바로 귓 가에서 말소리가 들어오자 순간 군종관은 묘골이 송연하여 홱 뒤를 돌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군목중 조갑개 네 죄가 아주 크구나. 너는 절대 저 두 여자처럼 고이 죽지는 못하리라 그럼 분근착골부터 시작하자."
"누 누구야? 귀신인가?"
이공장의 군목관 조갑개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자였다. 어느새 권총을 쥐고 말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난사하였다.
"설치지마라. 조갑개 이제 시작이다. 분근착골(分筋搾骨)"
초고려의 손 끝에서 폭사한 다섯 가닥의 지풍이 조갑개의 요혈들을 가격하자 조갑개는 온 몸의 구석구석을 수만 마리의 개미떼가 뜯어먹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크크으그크 이 이놈 무슨 짓을"
조갑개는 고통속에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당해보는 고통이지?"
"주 주여!"
"그래 주를 열심히 찾아보아라. 네 주(主)가 나의 분근착골수를 멈추게 하면 내가 그 주라는 존재를 믿어보겠다."
순간 조갑개의 눈 빛이 달라지고 엄청난 비명을 질러대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실컨 질러라 여긴 내가 친 차음강막(遮音罡幕)으로 인해 방 안의 소리가 절대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분근착골에 당하면 전신 근육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모든 뼈마디를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래 방치하면 사지육신 삼백 육십 관절이 절단 나는 듯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무서운 고문수법이다. 고수일 수록 분근착골의 고문 수위를 잘 조절 할 수가 있다.
분근착골의 지독한 고문은 조갑개에게 기절할 틈 역시 주지 않았다. 아니 분골착근에 있어서 기절이란 단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초고려는 분근착골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갑개를 보면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십종고옹(十種苦瓮)"
어느새 초고려는 사람키 만한 옹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격공이물수(隔空移物手)로 조갑개를 손 안대고 진기만으로 번쩍 들어올려 옹기안으로 처넣었다. 조갑개가 옹기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옹기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 초고려의 장심으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