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십이주천(十二週天)의 심법은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만 운기행공(運氣行功)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부가 창안한 금종무무심법은 직립(直立), 좌선(坐禪), 와수(臥睡) 세 가지 형태로의 운기토납(運氣吐納)이 가능하다.]
송학상단의 인부마차 안에서 요단은 누워서 잠들었다. 하지만 의식은 깨어있어 금종무무심법의 구결외우며 운기토납에 빠져있었다. 요단은 상단일을 도우며 틈만나면 그렇게 운기토납에 열중하였다.
서부대평원(西部大平原)
환제국 서부에는 이른바 끝없는 땅이라 알려진 대평원이 존재한다. 환제국 역사상 그 누구도 그 크기를 다 재지 못한 광활(廣闊)한 땅! 그런 이 곳에 인간의 영역이 선 그어 진것은 오천여 년 전이라고 전해진다. 환제국에서 남북 일만 리 동서 일만 리의 땅을 주거와 경작용으로 허가한 것이다. 워낙 비옥한 땅인지라 어떤 곡물이던지 뿌리면 뿌리는대로 다른 지방보다 두 배 이상의 결실을 맺었다. 해마다 환제국의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환제국 최대의 곡창지대였다.
송학상단이 이 곳을 지날때는 끝없이 보리밭이 이어졌고 이미 맥추가 한창이었다. 또 보리를 사려는 상단들로 관도는 항상 붐볐다. 마차 안에서는 인부들이 연초를 태우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한마디 씩 건넸다.
- 올해 보리가 풍년이구마
- 이 곳은 언제나 그래
- 여기 봄농사 수확만으로도 백성들 다 먹여 살린다지?
- 그래서 여기는 지난해 결실로 봐가며 한 해 농사 짓는디야.
- 올 해 우리 상단에서는 보리는 안살란가?
- 안 살 모양이구마 산다카면 벌써로 더 깊이 들어갔을낀데 올 해는 평원 끄트머리만 지나가는거 보미 안살라카는 기구마
송학상단의 행렬이 번잡한 관도를 막 벗어나 비교적 한산한 관도로 접어들었을 때 였다. 길 옆에 난 한 그루의 아름드리 고목이 밑동이 부러지며 관도를 덮쳐 관도를 가로막았다. 송학상단 선두에 있던 호위무사장이 손을 들어 상단을 저지시킬 때 좌우의 아직 추수를 하지 않은 보리밭에서 요란한 함성과 함께 각각의 병기를 든 삼십여 명의 도적들이 뛰쳐나왔다.
"도적떼의 기습이다!. 상단을 보호하라"
무사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죽여라"
쓰러진 나무 근처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왔다. 키가 팔척에 무지막지한 낭아봉(狼牙琫)을 들고 있었다. 도적떼의 두령인 듯 하였다.
행렬 여기저기서 병기 부딛치는 소리가 어지러이 들려오고 야간조 무사들까지 깨어나 가세했지만 도적떼에 대항하기가 역부적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도적떼 보다 호위무사들이 더 뛰어나지만 도적 떼의 실력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게다가 도적떼는 호위무사 보다 그 수가 두 배 많았다.
누워서 조용히 운기토납을 하던 요단이 급히 일어나 습관처럼 허리에 손이 갔지만 이내 허탈해하였다.
"젠장"
사환과 인부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도망을 갔지만 족족 도적떼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요단이 마차에서 뛰어내릴 때 자신을 노리고 판부(板斧)을 휘둘러 오던 도적의 멱살을 잡고 엎어쳐서 관도 바닥에 매다 꽂자 도적은 두번 꿈틀대다 뻗어버렸다. 요단은 판부를 집어들어 달려오는 도적을 향해 집어던졌다. 판부는 달려오 던 도적의 미간에 박혔고 도적은 절명하였다.
"이럴때 검이 있다면..."
요단은 도적의 눈에 띄었고 세 명의 도적이 다가와 요단을 품(品)자형으로 에워쌌다. 그 중 정면의 양손에 쌍추(雙錘)를 든 도적이 요단의 두부를 공격해오자 요단은 가볍게 피하며 특유의 체술(體術)로 도적의 목을 웅켜쥐고 한 발로 도적의 무릅을 밟아 도적의 머리위로 넘어가 도적의 목을 꺽으며 멀리 집어던졌다. 그러나 잠깐의 여유도 없이 후면의 도적 두명이 각각의 병기로 요단의 등판을 노려왔다. 요단은 신형을 오른 쪽으로 누위면서 신형을 털어 회전중에 좌각(왼다리)으로 한 도적의 안면을 내려쳤다.
"와찍"
비골(鼻骨:콧뼈)과 두개골(頭蓋骨)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도적은 즉사하였다. 신형을 바로 안착하는 요단을 향해 세번 째 도적의 단창(單窓)이 요단의 귓가를 스쳐갔다. 요단은 즉시 신형을 틀어 도적의 단창을 오른 쪽 액와(腋窩:겨드랑이)에 끼우고 양손으로 단창을 잡아 당기자 도적은 요단의 힘에 단창을 빼앗기면서 수장(手掌:손바닥)이 찢어졌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요단의 손으로 옮겨간 단창이 목을 관통하며 경골(頸骨)을 박살내었다.
"검보단 못하지만 창이라면"
요단은 창을 능숙하게 휘둘며 도적떼를 향해 나아갔다.
"하압 미인인침세(美人認針勢) 사이빈복세(四夷賓服勢) 철우경지세(鐵牛耕地勢)"
"푸앗"
단창을 손에 쥔 요단은 신들린 듯 도적 열두 명을 찔러죽였다. 그 때 남은 호위무사의 수는 무사장을 포함하여 여덞 명 무사장은 낭아봉을 든 도적 두령과 겨루고 있었지만 패색이 짙었다.
도적들을 요단의 무예에 겁이 난 듯 대치만 하고 서로 눈치만 볼 뿐 요단 앞으로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다. 요단이 포지금세(鋪地錦勢)의 창세를 취할때 둔기에 두부를 가격당해 죽어있는 호위무사의 시신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호위무사 옆에 떨어져 있는 한 자루의 청강검(靑剛劍)이 눈에 띄었다. 즉시 단창으로 청강검을 쳐올려 왼손에 쥐었다.
그 때 였다. 도적 하나가 순간의 허점을 정확히 노리고 뛰어올라 요단의 두부를 향해 철봉(鐵棒)을 내리쳤다. 요단은 급히 왼팔을 들어올려 철봉을 막았다. 누가봐도 요단의 왼팔이 부러지리라 생각하였다.
"뎅"
하지만 요단의 외팔에서 기묘한 금속음이 울리고 도적의 철봉이 휘어졌다. 죽느냐 사느냐 사지(死地)의 전투에서 두 번의 기회란 없는 법이다. 한 번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 뿐이다.
"케엑"
요단이 던진 단창이 철봉을 내리친 도적의 입속으로 들어가 뒷통수(後頭)를 뚫고 나왔고 이어서 요단의 검에 목이 잘려나갔다. 요단은 앞으로 뛰어나가 대치하던 도적들을 수수깡처럼 베어나갔다. 검을 쥔 요단 앞에 도적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고 고수다."
"도 도망가자."
도적들은 줄행랑치기 시작하였고 여섯 명 남은 호위무사들도 힘을 얻어 요단과 같이 도적들을 베어가자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런 반면에 호위무사장은 도적 두령의 낭아봉에 맞아 오른 쪽 어깨가 뭉그러져 그만 병기를 놓쳐버렸다.
도적 두령은 흉소를 지으며 낭아봉으로 호위무사장의 두부를 내리쳤다.
"대 대장님!!"
"퍼칵"
호위 무사 두 명이 무사장을 부르며 달려갔을 땐 호위무사장의 머리통은 낭아봉에 두개골이 수박처럼 터지며 뇌수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놈 백주(白晝)에 관도에서 상단을 습격하고 사람마저 죽이다니 용서치 않으리라!"
요단은 기수식(起手式)을 취하며 도적 두령을 노리고 검을 찔러갔다.
"얼마든지 오너라"
도적 두령도 낭아봉을 붕붕 휘두르며 기수식을 취하였다.
"까캉"
요단의 청강검과 도적 두령의 낭아봉이 서로 부딛치자 불꽃이 튀어올랐고 그 상태로 둘은 밀리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히 힘이"
도적두령의 팔척의 육체에서 나오는 신력(身力)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담로성의 용검무장인 요단도 만만치 않았다. 둘은 한참동안 밀어내기를 하다 요단이 검을 뒤로 빼며 일 보 물러났고 도적두령은 낭아봉을 눞여 앞으로 찔렀다. 요단은 급히 청강검을 내리쳐
"캉"
불꽃이 다시금 튀어오르고 청강검의 날이 부러져 나갔다.
그래 어쩌면 가능하다.
요단은 청강검을 일부려 흘리고 도적두령이 거세게 내리치는 낭아봉을 손목으로 막았다.
"정신이 이상해졌나? 왜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대결을 지켜보던 호위부장들은 모두 요단의 손목이 부러지리라 여겼다.
"데엥"
둔탁한 종음(鐘音)이 울려퍼지고 동시에 도적두령의 낭아봉은 튕겨나갔다.
"맨팔로 나의 낭아봉을 튕겨내다니"
도적두령의 낭아봉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진동하였다. 그 때 요단의 오른주먹(右拳)이 도적두령의 아래턱(下顎)을 쳐올렸다.
"콰직"
"크으윽"
요단의 주먹은 도적두령의 아래턱을 작렬하고도 그 힘이 남아 윗턱(上顎)까지 부셔버리자 팔척의 도적두령은 나무가 쓰러지 듯 땅에 쾅 쳐박혔다.
"내 내힘이 이렇게 까지 금종무공(金鐘武功)의 효능인가?"
요단은 주먹이 낸 뜻 밖의 파괴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허나 도적두령과의 대결의 승리보다는 뒤 돌아 본 광경은 너무나 참담하였다.
상단을 이끌던 대행수와 행수, 서기, 사환이 모두 죽었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호위무사 다섯 자신을 포함한 인부가 둘이었다. 살아남은 인부는 강노인이었는데 도적들이 앞서 도망가는 인부들을 쫓아가 죽일 때 얼른 사륜마차 아래 숨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호위무사들이 요단에게 다가와 포권을 취하였다.
"은공 감사합니다. 덕 분에 살았습니다."
"과찬입니다. 저 역시 살기위해 죽기살기로 싸운겁니다. 그런데 이녀석들 느낌상 일반 도적같지는 앟습니다."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도적치고는 수법이나 모든게 매우 독랄합니다."
그 때 호위무사 하나가 도적들의 시체를 살피다 뭔가 발견하고 외쳤다.
"잠시만 이것좀 보십시오."
도적의 등에는 공통적으로 검극이 아래로 향하는 한 자루 흑봉(黑蜂) 문신이 있었다.
"이 이건?"
"왜 놀라십니까?"
요단이 묻자 옆에 강노인이 다가오며 말하였다.
"그 녀석들은 흑봉단(黑蜂團)이라네"
그러자 요단 옆에 있던 호위무사가 사색(死色)이 되었다.
"흐 흑봉단이요?"
"그렇다네"
흑봉단(黑蜂團)
강호의 삼대자객방파 중 야소애희방(耶蘇愛喜房)의 전투 부대이다. 흑봉단은 이번처럼 떼강도나 패싸움 같은 경우 인력 지원 용으로 자주 동원된다. 사대단주(四大團主)가 야소애희방주 김강금(金糠金)의 명령을 직접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