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칠군단이 격퇴되자 그동안 교대근무로 밤잠 안자고 귀가도 못한채 담로성을 지키기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무장과 포졸들은 간만에 휴가라는 자유를 얻었다.
휴가라고 해봐야 담로성 내의 주거지에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굶은 아내들을 위하여 봉사도 하고 힘든 집안일도 대신해주고 아들 재롱도 보고 그렇게...
무장이나 포졸들 못지않게 바빠진 사람도 있었다. 상인과 석공들이었다.
그동안 담로성에 감도는 전운으로 인해 보이지 않든 외지 상인들이 다시 담로성을 찾기 시작하였고 담로성의 상인들과 시전(市廛)들은 모처럼 호황을 맞았다.
석공들은 도백의 명으로 어디선가 높이가 십척이나 되는 거석(巨石)들을 구해와 담로대첩의 기념물을 만든다고 분주히 오가며 정신이 없었다. 도백은 모처럼 활기를 띈 담로성을 시찰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백무장 요단이 불러들여 안식일칠군단과의 전쟁에서 그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전공을 세운 역사(力士) 실로암은 대력패장(大力武將)이라는 무장의 지위를 도백에게 제수받았다.
무엇 보다도 이번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백무장 요단에게는 용검무장(龍劍貴武將)이라는 유래없는 직위를 만들어 녹봉을 높이는가 하면 담로성의 모든 무장과 포졸들의 통솔권을 주었다.
모처럼의 평화가 찾아온 따사로운 오후 까까머리(光頭)의 거한 실로암은 그 남아도는 힘으로 석공들을 위해 무거운 돌을 옮겨주고 시간이 남을때는 농부들을 도와주었다. 혼자서 능히 백 명의 일을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힘들게 찾아온 평화와는 대조적으로 심각한 사람이있었다. 바로 용검무장 허리배기 요단이었다. 요단은 이번 전쟁에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요단은 휴가를 얻어 모처럼 군복을 벗어 던지고 평복을 입고 성읍을 둘러보았다. 평복을 입자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성읍을 한 바퀴 둘러 보았지만 왠지 아침부터 가라앉은 기분은 나아지지 않었다. 그러다 농지(農地)의 큰 대추나무 아래 팔베게를 하고 누워 근처에서 농부들의 찬사를 받으며 무덤덤하게 일만하는 실로암을 보고 미소지었지만 곧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버렸다.
요단은 나뭇가지 사이로 떠가는 흰구름을 보며 싱념에 잠겼다.
"무림(武林)이라..."
이번 안식일칠군단과의 전쟁에서 초고려 무궁화 복희랑이 보여준 무공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요단은 담로성의 제일고수로서 자신의 검술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무림인들의 무공을 경험하고 그 자부심은 산산히 부셔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오기로 수련장에서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지만 가슴 한 켠엔 알수 없는 답답함만 쌓여갔다.
요단은 열심히 일만하는 실로암을 보다가 문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석장생(石長栍:돌장승)의 익살스런 얼굴이 보였다. 그 때 요단은 석장생이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이 들었다.
"장승마저 날 비웃는구나 내 너의 목을 치리라"
일어나 허리춤에 찬 무장검(武將劍)으로 단숨에 석장생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쨍캉"
장승은 약간의 흠집만 나고 멀쩡하였지만 요단의 검은 두 동강 나버렸다.
"이럴수가 강철괴뢰도 베던 검인데 돌장승하나를 베지 못한단 말인가? 검이 녹슬었나? 아니면 나의 실력이 녹슬었단 말인가?"
요단은 부러진 자신의 검을 보고 자실하여 고개를 숙인채 힘없이 터벅 터벅 걸어갔다.
그 이후 담로성에선 더이상 백무장 아닌 용검무장 요단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도백이 친히 요단의 처소에 들렀으나 거기서 발견 한 것은 부러진 무장검과 도 백 앞으로 써놓은 한 통의 서신 뿐이었다.
「 도백대인 이렇게 떠니는 불충한 소장을 용서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심란한 사연이있어 소장 처음으로 담로성을
벗어나 세상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용검무장 요단 필」
도백은 부러진 칼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담로성에는 평화가 지속될 터 용검무장 부디 늠름한 모습으로 돌아오게나.
그 날 이후 도백은 이 번 사건을 환상께 보고하러 용검무장을 보내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혹시라도 서신을 읽은 도백이 자신은 붙잡을까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봐 요단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턱과 볼을 덮고있는 뻣뻣한 수염을 모두 밀어버렸다. 또 과감하게 상두(上頭)를 잘라내어 봉두(蓬頭:더벅머리)를 하고 머리칼로 눈을 살짝 가렸다.
마침 담로성에는 전쟁이후 모처럼 담로성을 찾은 상단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송학상단(松鶴商團)이라는 곳에서 이 년간 고되게 잡일을 할 인부를 뽑는다고 하였다. 급료가 생각보다 많자 다섯 명을 뽑는데 십여명의 장정(壯丁)이 송학상단의 인부가 되기 위하여 나섰다. 그러자 상단에서는 장정들의 근골을 일일히 확인하고 또 무거운 짐을 실제로 들어보게 하고서야 원하는 체격의 다섯 명을 뽑았다.
요단의 체격은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로 다져진 일품(一品)의 근골과 외공이 있었고 정신통일의 선법(禪法)으로 기의 운용을 깨달아 일반 무장 열 명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백무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다.
인부를 뽑던 상단의 사환도 오랜 경험으로 인해 요단의 체격을 보고 두 말 없이 그를 고용 하였고 그렇게 해서 담로성의 용검무장 요단은 상단의 인부로의 생활을 하게되었다.
요단을 고용한 송학상단은 담로성의 특산인 과실(果實)과 향료(香料)들을 사들였고, 요단은 인부장의 명령에 따라 짐들을 마차와 낙타에 나누어 실었다. 거래를 끝내고 원하는 짐들을 다 실은 송학상단은 떠날 준비를 하였다. 어느새 행렬을 맞추고 선두의 기수가 소나무와 학이 그려진 송학상단의 기를 들어올리자 송학상단의 행렬은 말탄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담로성을 벗어났다.
요단을 포함한 인부들은 할일을 끝내고 다들 인부용 마차에서 연초(煙草:담배)를 주고 받아 태우며 담로성에서 새로 고용된 인부들과 통성명을 하는 등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인부용 마차는 네 마리 말이 끄는 넓은 사륜마차였는데 사방이 개폐식으로 되어있으며 안에는 좌석도 없이. 그냥 열세 명의 인부가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쉬고있었다.
요단도 그 틈에 끼어서 생전 처음으로 인부들이 건네는 담바고라는 것을 한 까치 입에 물었다. 인부 하나가 불을 붙이자 요단은 인부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빨아 흡입하였다.
"엇 콜고 콜록"
"이 사람 쑥맥이구만 그래 담바고 맛이 어떤가?"
"아우 매워"
연초에 관련된 환제국의 기록을 보자면 지금으로부터 천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제국의 남부 해안에 한 척의 이상하게 생긴 배가 난파되어 떠내려왔다.
한 촌락의 어부들이 이를 최초로 발견하였는데 배 안에는 청색 적색 황색 등 각양각색의 머리색을 지닌 코가 길고 키 큰 사람들이 죽어있었고 배에는 어부가 보지 못한 여러 희귀한 것이 들어있었다.
그 때 가장 나이많은 어부가 말하길 이 것은 먼 바다의 무인도에 집을 짓고 사는 해매(海魅)라는 바다도깨비들이고 이 배는 해매들이 타고다니는 배다. 해매들은 해신(海神)이 노여움을 사서 모두 죽은것이다. 우리는 해매들을 묻어주고 배에있던 해매들의 물건은 우리가 가지면 된다. 그렇게 해서 어부들은 배는 분해하여 집을 짓거나 어선를 만드는데 쓰고 배에서 나온 물건들은 어부들이 나눠 가졌다.
그 때 배에서 나온 물건중에 씨앗이 있어 심어보니 먹지도 못하는 풀이라 태워버렸는데 그 연기가 어부들에게는 구수하게 느껴져 어부들은 단 방귀냄새가 난다고 그 풀을 단방구라고 불렀고, 그 후 어부들은 그 단방구를 재배하였다. 그후 단방구가 와전되어 담바고가 되었다. 이것이 환제국에 전하는 담바고의 기록이다.
요단은 담로성을 떠난 후 들판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밤을 맞이하였다. 인부들을 태운 마차가 어느 부분에서 멈추자 인부들은 인부장의 지시에따라 기다렸다는 듯 마차밖으로 쏟아져나갔다.
인부들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상단 행수의 지시대로 인부들은 두 패로 나눠져 서둘러 고참인부들은 장봉(帳蓬:유랑용 천막집)을 치기 시작하고 나머지 인부들은 낙타에 실려있는 짐들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 조심조심하고 마차의 짐들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짐은 모두 내려서 이슬 안맞게 방습포로 잘 덮어놓도록 그리고 낙타와 말들 여물 잘챙겨주고 참 오늘 인부 새로 들였지"
행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저만치서 마차바퀴를 손보는 인부를 불렀다.
"이봐 인부장 강노인"
행수가 부른 강노인이라는 인부는 머리와 수염이 이미 다 새어서 검은색은 하나도 안보이는 노인이었다. 강노인은 하던 일을 놓고 행수앞으로 달려갔다.
"부르셨습니까 행수님"
"강노인이 책임지고 오늘 새로 뽑은 인부들 교육시키게 그리고 말들 편자도 좀 손보게"
"네네"
강노인은 아들 뻘 되는 행수에게 연신 굽신거렸다. 행수가 인부들이 쳐놓은 장봉안으로 들어가자 강노인은 요단을 비롯해 새로 고용된 인부 다섯 명을 자신 앞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옆의 또 다른 중년인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