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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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아이

회색영혼 0 3,416 2006.01.28 03:11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원주민의 죽음을 위해

그리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위해

이글을 씁니다.





쏴아, 파도는 규칙적으로 해변에 밀려왔다 사라졌다. 모래에 반쯤 묻힌 깡통이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오셀로의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오셀로는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오늘도 오셀로의 하루일과는 다르지 않았다.해가 질때까지 오셀로는 종일토록 해변에 있을 것이다. 멀리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셀로는 애써 외면하면서 파도에 시선을 던졌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허름한 판자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판자촌에는 녹슨 깡통처럼 부서지는 소리를 내는 오셀로의 집이 끼어 있었다. 오셀로의 집에는  밤낮이고 히히덕거리는 반치매의 할아버지와 술병을 던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있었다. 오셀로의 아버지가 잠잠할때는 아직 술기운에 깨어나지 못해 잠들어있을 한낮뿐이었다. 그 순간의 평온마저도 여지없이 아기가 깨트렸다. 아기가 왕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화가 난 아버지가 술병을 던졌다.다행히도 아버지가 던진 술병은 아슬아슬하게 아기를 비켜갔고, 오셀로는 두번째 술병이 날아오기전에 얼른 아기를 품에 안고 그자리를 떴다.


아기는 오셀로의 누이의 아이였다. 오셀로의 누이는 매춘부였다. 누이는 관광객과 선원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다.누이가 벌어온 돈으로 오셀로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누이가 에이즈에 걸리면서부터였다. 그때 누이는 임신중이었다. 누이는 기독교인이었고, 어떤 경우에서도 낙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얼마후 누이는 몸을 풀었고, 아기는 선천적인 에이즈환자로 태어났다. 지금 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오셀로가 마지막으로 본 누이는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눈만 툭불거진 누이의 얼굴은 해골에 가까웠다. 그때서야 비로소 오셀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누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누이는 미친 듯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지만, 누이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찬송가나 십자가가 아니라 진통제였다.


문득 아기를 안은 팔이 무거워졌다. 오셀로는 잠시 아이를 해변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자지러듯이 비명을 질러대며 울고 있었다. 아이의 갈라진 입술이 너덜거리며 흔들렸다. 언제 저 상처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기어다니다가 날카로운 유리조각따위에 베인 모양이었다. 면역력이 없는 탓인지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아기의 여린 살갗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상처는 입술을 반으로 갈라놓다 시피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성이 안찬지 지금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계속 패여가고 있었다. 오셀로가 아기를 달래보려고 다독여보았지만 울음소리만 더 커질 뿐이었다. 오셀로는 달래는 것을 포기하고 아기옆에 앉아 멍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제 오셀로의 집에 왔던 백인 선교사들이 생각났다.선교사 부부는 오셀로의 판자같은 집을 둘러보고는 오셀로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했다. 부디 이 어린 양의 영혼을 구원해주시옵소서.  선교사 부부는 오셀로에게  무엇을 빌었느냐고 물었을때, 오셀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아버지가 술을 그만드시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 다음에 오셀로가 기억나지도 않는 어렸을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치매끼있는 할아버지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고, 더이상 누이와 아기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부부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으로 무엇이든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 말했다. 오셀로가 막 소원을 말할까하고 입술을 달짝였을때, 선교사부부가 영어로 시끄럽게 말을 꺼냈다. 아마도 선교사부부는 오셀로네 식구들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이집은 불결해. 여기저기 이와 빈대가 득실거린다고."
"이집 이래가지고 바람막이나 될까? 완전 판자집이잖아. 태풍한번 불면 다 날라가버리겠군."
"저 노인네좀 봐. 완전 미쳤잖아. 집안의 가장은 알콜중독자고, 집이 이지경인데도 일할 생각이 없어."
"하여간 원주민들은 무지하고 게을러. 도대체 일할 생각을 안해. 이들은 정말 하느님의 실패작이야."
두사람은 그렇게 떠들고는 오셀로를 향해 한번 웃어보이고서는 집을 나섰다. 오셀로는 그들이 나갈때까지 침묵했다.


오셀로의 할아버지는 백인들이 사라질때까지 침대밑에 숨어서 나올줄을 몰랐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할아버지는 한참후에야 침대밑에서 기어나왔다.  할아버지는 백인들을 유난맞게 무서워했다. 할아버지가 가끔 제정신이었을때 한말로는 백인들이 총으로 흑인들을 사냥했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오셀로만큼 어렸을때 멋모르고 친구와 함께 백인들의 목장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있었다. 울타리가 쳐져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사람은 한동안 목장에서 어슬렁거리면서 푸른 풀밭과 풀을 뜯어먹는 양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놀란 두사람은 정신없이 총소리가 들린곳과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친구가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할아버지는 놀라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차림의 백인 농장주가 화를 내면서 총을 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친구를 흔들었지만 친구의 눈에서는 초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정신없이 달아났다. 정신을 차렸을때 할아버지의 손가락은 사라지고 없었다. 할아버지도 손에 총상을 입은 것이었다. 백인 농장주의 총알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명대신 엄지와 검지를 빼앗긴 것이다.


할아버지말로는 예전에는 지금처럼 백인들이 많지는 않았다고 했다. 백인들이 이땅에 도착한 것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즉 오셀로의 고조부때 일이었다.오셀로의 고조부는 백인들이 멀리서 배를 타고 이땅에 도착한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비쩍마르고 볼품이 없었다. 그때 고조부의 마을사람들은 백인들을 두려워할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오랜 항해로 지쳐있는 그들에게 과일과 먹을 것을 주었다. 백인들은 답례로 구슬과 십자가등을 선물로 주고는 사라졌다. 다음에 백인들이 왔을 때에는 훨씬 더 큰 배와 불을 뿜는 총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고 십자가와 책을 손에 쥔 성직자들도 함께 왔다. 백인들은 총칼로 흑인들을 위협했다. 검은옷의 백인들은 흑인들을 강제로 개종시켰고, 혹시라도 이후에 "야만스러운"종교로 돌아가는 자가 있으면 감옥에 보내거나 태형을 가했다.


할아버지는 꽃과 과일로 정성스럽게 집안 한켠에 마련한 탁자위를 꾸몄다. 그리고 그앞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물건을 올려놓았다. 가끔씩 백인관광객들이 해변에서 어슬렁거릴때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이 집안을 들여다볼때마다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라서 탁자위에 놓은 유품들을 서둘러 품에 챙겨넣곤 했다. 할아버지가 젊었을때 백인들은 이런 것을 볼때마다 유품을 불태우고 흑인들을 심하게 채찍질했다고 했다.


그 백인 선교사가 왔을때도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침대밑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선교사부부는 웃으면서 탁자위에 놓인 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멍한 웃음을 침대밑에서 웃으면서, 그건 장식물이라고 답했다. 백인들이 집을 꾸미는 것처럼 자기도 집을 꾸미고 싶어서 꽃과 과일을 놓았다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가 반쯤 미쳐있는 것을 보고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가끔은 제정신을 차릴때가 있었고, 그럴때면 어린 오셀로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기도 햇다. 백인들이 오기전에는 이런 판자같은 집은 없었다고 했다. 태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만큼 튼튼한 집을 살았다고 했다. 배가 고픈 일은 거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물고기를 잡았고, 물고기가 질릴때면 이웃부족의 과일과 맞바꾸었다. 여자들은 화려하게 꽃과 진주로 장식한 풀치마를 입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의 흑인들은 건강하고 키가 컸다. 그런데 백인들이 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흑인들은 비루하고 왜소해졌다. 백인들은 여자들이 풀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고 음탕하다면서 강제로 옷을 입혔다. 얼마후 여자들은 백인들에게 몸을 팔았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자기네들이 발견했으니 자기네땅이라며 이땅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흑인들은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백인들은 문서를 내밀며 흔들었다. 그문서에는 구슬과 십자가를 받고 흑인들이 땅을 팔았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맨 처음에 이섬에 상륙한 백인들이 작성한 문서였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할때 아버지는 구석에서 코웃음을 치면서 술을 마셨다.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거야? 그따위 이야기는 그만 집어치우라고."
때때로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향해 술병을 집어던졌고,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얼굴위로 체념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해변 저편에서 백인들이 영어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오셀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목소리만 듣고서도 오셀로는 그들이 어제 낮에 찾아온 선교사부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셀로는 그들이 빨리 지나치기를 바라면서 끝없이 변화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셀로의 바람과는 다르게 두사람은 오셀로에게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두사람은 오셀로를 알아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금발의 부인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오셀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인은 오셀로에게 화려한 색깔의 사탕을 주었다. 오셀로는 사탕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거 더 먹고 싶니?"
부인의 말에 오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교회에 나오렴. 그곳에는 사탕이 아주 많이 있어.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단다. 교회에 오면 구원을 주실거야."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셀로는 까만 손바닥위에서 빛나고 있는 사탕을 바라보았다. 오셀로는 울고 있는 아기의 입에 사탕을 하나 넣어주었다. 아기는 사탕을 입에 물고는 열심히 빨았다. 사탕을 먹는 동안 아기는 우는 것을 멈추었다. 오셀로도 하나 입에 넣어보았다. 정말 달고 맛있었다. 갑자기 오셀로의 눈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셀로는 울음을 터트렸다. 우느라고 벌린 입에서 사탕이 떨어졌다. 파도가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냉큼 쓸어갔다. 손에 들려 있던 나머지 사탕마저 유리알처럼 모래위에 흩어졌다.  옆에서 아기가 의아한 눈으로 오셀로를 바라보았다. 사탕은 파도에 흔들리면서 진주처럼 반짝거렸다. 오셀로는 멍하니 사탕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셀로는 다시 멍한 얼굴로 아기를 안고서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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