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과 신이 있다고 가정하고 쓴글. 설사 있더라도 개독이 말하는 천국과 신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두사람이 길을 걷고 있었다. 진해는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진해는 길거리에서 힘들게 짐을 나르며 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몸이 아팠다. 사실, 이전부터 가끔씩 가슴쪽이 따끔거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진해의 형편상 병원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 진료비삼천원조차도 진해에게는 하루생활비절반에 육박했다. 그리고, 진해는 병원이란 가볼데가 못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진해는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의 약품냄새와 의사들의 위압적인 말투를 신뢰할 수가 없었다.
진해는 그날도 길거리에 흩어져 있는 박스조각을 줏어모으기 시작했다. 진해는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무시무시한 장도를 찬 일본순사가 아직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었다.지독히도 가난한 집안인데다가 형제수도 열명이 넘었다. 공부를 할형편이 처음부터 되지 않았다. 결국 보통학교를 채 나오기도 전에 진해는 부모와 함께 일본인 지주의 차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차밭에는 어찌나 그렇게 벌레가 많던지. 진해는 깡통하나와 젓가락을 들고서 하루종일 벌레를 잡는데 시간을 보냈다.
해방이 되고나서 진해네 가족들은 이전에 일본인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을거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원래 그땅은 소작농이었던 진해네의 선조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땅이었다. 그렇게 해서 삼대가량이 그 땅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일본인들이 몰려들어와서 제대로 신고를 안했다며 멋대로 뺏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방이 된 후에도, 그땅은 진해의 땅이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전혀 그지역출신도 아닌 사람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진해는 그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그사람은 모교회 목사였다. 교회에서 일본인 천황부부의 생일을 축하했던 인물이었다.그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이 진정 하나님의 나라에 드는 일이라면서 마을을 돌며 참전을 주장했다.간신히 토굴에 숨어 있던 진해의 형을 강제로 끌어내서 전쟁에 보냈던 인물이기도 했다. 진해의 첫사랑 언년이도 그렇게 해서 정신대로 끌려갔다.
목사는 진해는 전혀 몰랐던 양도증서를 흔들어보이면서 자기땅이라고 우겨댔다. 그것은 일본인에게 땅을 빼앗겼을때 일본인들 멋대로 작성한 문서였다.어찌된 것인지 그문서는 목사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진해네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을 내주었다.진해네는 도시로 쫓기듯 올라갔다. 얼마후 전쟁이 터졌고, 진해는 가족과 헤어져 홀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게 마지막이었어. 진해는 박스를 줍다 말고 담배를 태워물며 회한에 차서 중얼거렸다.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더이상 떠도는 것에 지긋지긋하다면서 서울에 그대로 남았다. 다른 형제들은 우선 짐을 정리하고 내려가겠노라고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이 그어졌을 때에도. 가끔 진해가 들은 소문은 형제들중 몇은 군대에 지원했고 몇은 북으로 끌려가고 몇은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믿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해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시장에서 좌판을 벌리고 장사일을 했다. 아내를 만난 것도 그즈음이었다. 진해는 어떻게 해서 자신이 그 쫙찢어진 뱁새눈에 안짱다리였던 여자를 한눈에 반해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내가 저렇게 키작고 새카만 남자를 좋아할 수가 있을까. 아내는 나중에 그렇게 고백했다. 이 시장에서 좌판을 벌리던 행상이었던 두사람은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진해는 그때만해도 열여덟이었던 아내의 반짝이는 뱁새눈과 뒤뚱거리는 걸음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두사람은 얼마안가 혼인신고를 했다. 연이어서 네명의 자식도 보았다.
행상일도 어느정도 되어서 나중에는 작은 점포를 차릴 정도가 되었다. 행복하기만 했던 집안에 불행이 찾아든 것은 어느해 4월 이었다. 거리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데모를 하는 학생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군인과 경찰들이 그들을 막아세웠다. 학교간 큰애를 기다리며 이용원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진해는 그만 가슴이 턱 막히고 말았다. 그 텔레비전의 흑백화면에서 크게 클로즈업된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큰애였다.
진해의 인생에서 크게 한이 되는것 두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죽어도 어머니와 형제와 함께 서울에 남지 않고 홀로 부산에 내려온 것이요, 다른 하나는 큰애를 그날 그렇게 보냈다는 것이었다. 진해는 한번도 큰애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공부하지 못한 한때문에 큰애가 공부하기 싫다고 칭얼댈때면 매를 들며 엄하게 가르쳤다.'니미. 이럴줄 알았으면 그 좋아하는 고깃국이라도 실컷 먹게 해주는건데.' 진해는 땅에 묻히는 자식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내가 옆에서 통곡하고 있었을때에 진해도 같이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진해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고깃국이라도 해줄 것을.'
세월은 무정하게 흘렀다. 진해에게는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하건만, 사람들은 금방 그일을 잊었다. 둘째와 셋째애가 차례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넷째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집가서 잘살고 있었다. 아내가 지병으로 숨진 몇달전까지만해도 자식들은 분가한후에도 계속해서 진해부부를 찾아와 가끔씩 김치를 가져갔다. 혹은 옷이나 술따위를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뭘이런걸다.아내는 애들에게 형편도 어려운데 사오지 말라고했지만, 진해는 알고 있었다. 그날밤 내내 아이들이 사온 옷을 매만지고 있을 아내를. 며칠동안 아내는 저옷을 벗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숨을 거두기 직전 말했다.'순철아, 순철아. 어이고, 내자식아.' 순철은 첫아들의 이름이었다. 다른 자식들이 있었고, 아내도 그애들을 사랑했다. 아내는 그날 이후로 첫아들의 이름을 입밖에 낸적이 없었다. 그래서 진해는 아마 아내는 다 잊었나보다, 참 강한 사람이다 그랬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남은 자식들은 자꾸만 진해에게 찾아와 같이 살자며 성화를 해댔다. 진해는 그들의 그런 성화가 귀찮아서 아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진해는 알고 있었다. 둘째녀석이 요새하고 있던 회사가 안되는지 담배를 쌓아두고 피우고 있는 것을. 셋째녀석도 사는게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넷째는 딸녀석이니, 다른 집식구인데 시댁식구 눈이 신경이 안쓰일 수가 없었다. 진해는 이 단칸방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식들을 다 키워냈다.
아니 무엇보다도 진해는 지금도 가끔씩 순철이가 집에 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한번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진해는 그날 땅에 묻었던게 순철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고, 순철이는 평상시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학교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외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올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린 것이 벌써 수십년이었다. 진해는 쉬고 있던 몸을 일으키고 자기몸보다 무거운 박스를 등에 지었다. 이렇게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어서,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그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진해를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박스를 방금 내버린 가게집 여주인이었다. 여주인은 진해에게 전단지와 검은 책한권을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여기에 진리가 다 담겨 있어요." 진해는 여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뭐라구요?" "예수님 믿으세요. 그럼 천국가요." 천국이라. 진해에게 천국은 죽은 아내와 순철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더이상 노동도 없고 편히 쉬면서 함께 사는 것이었다. "죽은 아내도 볼 수 있는거요?" 진해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진해가 늘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부인이 교회에 나오셨나요?" "아니요."진해의 기억으로는 아내는 교회에 나간 적이 없었다. 아내의 종교란것은 절이나 무당집에 가서 부적을 타오는게 전부였다.
"그럼 천국에 안계시겠네요. 하지만 아저씨가 천국에 가면 불러올 수 있을거에요.그러니까..." 진해는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진해는 여자가 내민 책을 뿌리쳤다. 검은 책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니미, 이미친 여편네야. 이딴거 주는대신 장사나 잘해." 뒤에서 여자의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이 미친 영감아. 그래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나 가라. 고마운줄 모르고..." 진해는 묵묵히 박스를 지고 걸었다. 순철이나 아내가 없다면 무엇때문에 천국에 간다는 말인가? 그따위 천국 가고 싶지도 않다. 진해는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가슴에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입을 벌려 도움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더니 희미해져갔다.
다음에 정신을 차렸을때, 자신은 길을 걷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기옆에서 걷고 있는 검은 형체의 남자가 있었다. "예, 예가 어디요? 우리는 지금 어디 가는거요?" 진해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대답했다. "당신은 죽었소. 아마 인간세상의 기준으로는 사흘정도 흘렀을 거요.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저승이요." "내가 죽었다구요?"진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진해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걷고 있었다. "주,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옥에 가나요? "진해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빙그레 웃기만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처럼 묵묵히 땅을 걷고 있던 회색정장차림의 남자가 대답해주었다. 그의 곁에서 검은 형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 나도 방금 죽었소. 죽으면 천국과 지옥에 갑니다. 주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남자의 말을 듣자, 그 가게 여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회색양복은 검은 얼굴의 저승사자들보다도 더 의기양양했다. 저승사자들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그저 웃기만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난 살아생전에 목사였소. 길잃은 어린양들을 보살피려고 노력도 많이 했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많이했고, 전도활동도 많이 했소. 방금전만해도 나는 강대상에 서서 설교를 하고 있었소. 그런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오더니 정신차려보니 여기 아니겠소? 이것도 주님의 뜻이겠지. 나는 천국에 갈거요." 진해는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은 방금전만해도 여주인이 내민 성경을 내던졌지 않았는가? 여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그래 나중에 죽어서 지옥에나 가라.'
길고 고불고불한 길은 어느새 광장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광장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이 어찌될지 궁금해하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재판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람들하나하나에게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재판관뒤에는 세가지 문이 있었는데, 하나는 천국에 가는 문이었고 둘째문은 인간세상으로 가는 것, 셋째문은 지옥에 가는 문이었다.
회색양복과 진해가 재판관앞에 순서가 되어 끌려나왔다.회색양복이 먼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어려운 사람들도 교회차원에서 많이 일했습니다. 어서 저를 천국에 보내주십시오." 재판관은 회색양복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사람들을 도와준건 사실이다. 그것만 본다면 천국에 가겠지. 하지만 너는 나보다도 더 너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너는 일제시대때, 일제의 편에 서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너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남자는 잡아서 징병대에 보내고, 여자는 정신대에 보내는데 앞장섰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아들과 딸을 잃었는지 아느냐? 너때문에 목숨을 잃은 남자들과 순결을 잃은 여자들에 대해서 알고는 있느냐?
신은 인간이 신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은 인간을 위해서 일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너는 저 오지의 원주민들을 도와주면서도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안타깝게 여기는게 아니라 교세의 확장을 더 생각했다. 그러면서 너는 그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야만인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차라리 신은 자신을 위한 찬송가보다, 신에게 침을 뱉고 가운데손가락을 보이면서라도 인류를 위해 사는 자들의 목소리를 더 사랑한다. 네가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하는지는 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 어디로 가겠느냐?" 순식간에 회색양복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양복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세번째 문으로 들어갔다.
진해는 깜짝 놀랐다. 목사조차도 지옥에 간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진해는 겁먹은 얼굴로 앞으로 나왔다. 재판관은 진해에게 말했다. "너는 한평생 가족을 위해서 살았다. 비록 가족만을 보고 살았지만, 아까의 목사보다는 훨씬 올바른 인생을 살았다. 살아 생전에 고생하며 살았으니, 너에게는 많은 선택을 주겠다. 어디로 가겠느냐?" 진해는 머뭇거렸다. 물론 셋째문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진해는 물었다.
"제 아내와 자식놈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머니는요?" 재판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번째 문을 가리켰다.진해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진해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두번째 문을 열었다.
"니미, 사실 사는게 엿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아생전에 좋은 기억은 모두 인간세상에 남겨두었지. 인간세상에서 가족들과 오손도손사는게 천국이지 별게 천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