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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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지옥

회색영혼 3 6,081 2006.01.15 16:32

여기다 올려도 되나요?
예전에 이곳에 올릴 수없어서(등급이 안되어서), 여성회원게시판이랑 자게판에 올렸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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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어느날 교회에 나갔다가  신부님들의 설교를 한번 듣고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며 짐을 챙겨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시했다는 것이다.

"아들아, 동방에 가라, 미녀와 보석으로 가득한 동방으로, 내가 그곳에서 너를 부유하게 하고, 죽어서는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주겠다"

남편이 떠나고나서 전적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안나의 몫이 되었다. 신부님과 신의 말씀과는 달리 저먼 중동에서는 여전히 이교도들이 성스러운 이스라엘을 차지하고 있었고, 남편은 차디찬 시신으로 땅에 묻혔다. 순교자가 되었다는 위안도 안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나는 오열하면서 무너졌다. 안나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리석에 조각된 성자같은 순교자가 아니었다. 안나가 원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해줄 사람이었다. 따듯하고 피와 살이 있는 살아있는 남편이었다.

안나는 생활하수를 버리다말고 멈칫했다. 자루포대기같은 옷을 입은 한떼의 자칭 "회개자"들이 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큰소리로 울면서 홑겹옷을 입은 자신들의 몸위로 채찍질을 해댔다. 간헐적으로 묵시록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주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도다!"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여. 이제 불과 유황의 날이 올지니 두려워하라!"
사람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광장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성밖에서 흑사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을.

"정말 심판의 날이 오면 어떻게 해요. 엄마?"
어린 아들이 안나의 품에 파고들며 물었다. 안나는 웃으면서 아들을 끌어안았다.
"아마도 그냥 사람들은 살아갈거야."
이제까지 세상은 그렇게 움직여왔고, 사람들은 살고 죽었다. 이건 굳이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진리였다.
비릿한 피내음이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안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바람에 날린 수도복사이로 회개자들의 상처투성이 알몸이 드러났다. 짓무르고 곪은 상처위에서 다시금 피가 터져나왔다. 회개자들은 황홀경속에서 계속 소리치며 자신에게로 채찍질을 해댔다.

"오 주여!"
안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날 하루는 보통때의 하루와 다름이 없었다. 안나는 부지런한 여자였다.교회에 가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안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바느질을 했다. 부유한 이웃집 여자가 축제때 입고나갈 옷을 주문한 상태였다.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나는 문을 열었다. 곧바로 사람들이 집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사람들은 흙투성이 발로 집안으로 뛰어들어와 닥치는 대로 그릇을 깨부시고 침대 시트를 들춰냈다.
"왜, 왜그러시죠? 무슨 일이에요?"
안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이 저주받을 년. 요한슨부인이 벌써 다 털어놨단 말이다."
남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안나에게 옷을 맡긴 부잣집 마나님이었다. 요한슨부인은 안나처럼 과부였고, 재산이 많았다. 같은 과부라는 공통점때문에 둘은 말을 터놓고 사는 사이였다.

"무슨..."
여자들이 안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너무 아파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 마녀! 네년때문에 우리 영감이 병에 걸려서 죽었어."
"네년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벌써 부인이 다 말했단 말이다."
마녀라는 말에 안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벌써 그 마녀열풍이 안나가 사는 마을까지 온 것이었다. 한번 마녀로 지목되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죽을때까지.


"엄마!
집안쪽에서 한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들이 허공에서 몸부림치는 한스를 잡아올리고 있었다.

"안돼! 그앤 놔주세요!"
안나가 소리쳤지만 남자들은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안나는 집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옷은 이미 반쯤 찢겨나가 있었고 몸 구석구석에 자잘한 상채기가 나 있었다. 안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갑자기 흉포한 야수처럼 돌변해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삐그덕거리면서 수레가 굴러가고 있었다. 안나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맞은 편 수레에서 상처투성이의 알몸을 드러낸 여자가 타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박박 깍였고, 코가 뭉개진 얼굴이었다. 여자가 안나를 보고 헤하고 벌어진 입으로 웃었다. "요한슨부인?"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미안해."부인이 말했다.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어. 미안해." 여자가 말했다. 수레는 그대로 안나를 스쳐지나갔다. 부인을 태운 수레는 광장쪽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아아악."
안나는 발버둥치면서 비명을 질렀다. 바닥이 멀어져갔다. 안나는 까마득한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안나가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안나의 옷을 벗겼다. 수치심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그들의 손을 가차 없었다. 겉옷뿐 아니라 속옷까지 찢겨나갔다. 가장 민감한 부분을 감싼 천조각마저 벗겨나갔다. 몸의 체모는 모두 깍여나갔다.

마녀라는 혐의를 거부하자 그들은 안나를 공중에 매달아놓았다. 뒤로 묶인 팔하나로 안나의 몸무게를 지탱해야했다. 관절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안나는 비명을 지르다 말고 까무라쳐버리고 말았다.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안나도 물론 알고 있었다. 마녀라는 혐의를 인정할때까지 고문이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아직 한스는 어린 아이였다. 여섯살도 채되지 않은 아들을 안나는 그대로 세상속으로 내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껸져졌다. 그들은 기절한 안나를 강제로 깨웠다.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안나는 고문이 행해질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울었고, 죄를 인정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돌림병과 흉년과 이교도들의 침입마저도 자신의 죄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고문이 그치면, 그때마다 안나는 자백을 번복했다.
고문관들이 머리를 내저었다.



고문관들은 안나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웃들이 한사람씩 나와 안나와 대질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안나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한번은 저년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걸 봤어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마가레트가 얇은 입술을 다물며 말했다. 마가레트의 남편은 술주정뱅이에다가 다른 여자가 있었다.최근에 또다른 여자가 생긴 모양이었다.안나는 몇번 마가레트와 그녀의 남편이 싸우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보았고, 며칠 후에 마가레트가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로 거리를 다니는 걸 보았다.마가레트는 안나를 의심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가레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뻔하지요. 과부란 말에죠. 한번 남자를 경험한 여자에요.
그런 여자가 혼자 살수가 있겠어요? 분명히 다른 아내있는 남자들을 유혹할거에요. 창녀처럼!"

또다른 여자가 불려나왔다. 안나처럼 재봉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였다. 여자는 안나가 일감을 가져간다며 자주 안나와 다퉜었다. 몇사람은 안나와 지붕을 맞댄 사이였고, 그들은 심문내내 안나의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푹숙였다.
"엄마..."
낯익은 목소리에 안나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한스였다. 아들은 사제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자자, 아까 내앞에서 했던 말을 해라."
사제가 말했다. 엄마를 보는 아들의 눈동자가 울것처럼 흔들렸다.
"싫어요."
아들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방금 네가 네입으로 말했지 저여자가 마녀라고 했지 않았느냐. 자 어서 말하지 못해?"
사제가 아들을 쥐고 흔들어댔다.아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어서 말해!"
"그만해요."

안나는 목이 메어왔다. 안나는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당신도 어머니가 있겠죠? 당신이라면 어머니를 앞에 두고 그런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나는 소리를 질렀다. 곁에 서있던 남자가 안나의 뺨을 갈겼다.
사제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안나에게로 향했다.
"그래, 네가 이아이의 어미였었구나. 그사실을 잊었군.
마녀의 자식이니 사람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겠군."
사제의 말에 안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마녀의 자식. 그말은 한스가 평생동안 듣고 살아가게 될 말이었다.악마와 교접해서 낳은 자식이라고.


아들이 문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안나는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얼마후, 안나는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자신이 마녀라고 고백했다. 자신이 해본적이 없는 일들-다른 사람을 저주해서 죽이고, 마을에 흑사병을 부른 일들을 인정했다. 마녀들의 잔치인 싸바쓰에 참석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너와 같은 마녀의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안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나는 잘 몰라요. 사람들모두 얼굴을 드러내는걸 꺼렸어요. 아시겠지만...누가 자기가 밝혀지는 걸 좋아하겠어요." 안나는 자신이 듣기에도 어눌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안나는 여기 오기전에 잠깐 마주친 요한슨 부인을 떠올렸다.

얼마든지 아무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댈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최소한 안나를 고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나는 잠깐 마가렛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왠지 그일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처럼 여겨져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고문관들은 다시 안나를 천장에 매달아놓았다. 다리에 달린 돌이 추처럼 자꾸만 안나를 지상으로 이끌었다. 이미 지속적인 고문으로 팔다리는 기묘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안나는 비명을 질렀다. 비몽사몽간에 엉겹결에 몇사람의 이름을 뱉었다. 그들이 즉시 고문을 멈췄다.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그들이 아니에요." 안나는 말했다.

그들은 다시 안나를 천장에 매달렸다. 이전보다 더 무거운 돌이 매달렸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어! 당신들이 하는 일을 봐봐!"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이후에 더 심한 고문이 행해졌다. 안나는 강제로 달궈진 의자에 앉혀졌고, 뾰족한 침으로 수없이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안나는 두번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때, 안나는 수레에 실려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나는 자신만 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기저기서 여러여자들이 실려오고 있었다. 그들도 안나처럼 발가벗겨져 있었다. "마가레트?"안나는 자기옆에 앉아있던 여자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어떻게 된거에요?" 마가레트는 체념어린 시선을 수레너머로 보냈다. "남편의 빌어먹을 정부년이 남편이랑 같이 날 고발했어요." 마가레트가 말했다. "날 용서해줘요." 마가레트가 안나를 향해 말했다."용서할게요. 그리고 마가레트도 혹시라도 내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게 있다면 용서해주세요." 마가레트가 울음을 터트렸다.


광장에는 빼곡히 장대가 들어서 있었다. 안나와 마가레트가 나란히 장대에 걸렸다. 얼굴을 모르는 다른 여자들도 차례차례 장대에 걸렸다. 장대밑에는 나뭇단이 엮여져 있었다.
"엄마..."
구경꾼들사이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작에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제의 기도문 소리가 들려왔다.

안나는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어린시절, 안나는 엄마손에 잡혀 교회에 갔었다. 사제들은 불신자들과 죄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안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포에 질렸었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자극했다. 연기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올라갔다. 안나는 눈을 떴다. 아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였다. 열심히 자신이 한 일과 신에 대해서 자부심어린 찬양을 하는 사제들의 모습도 보였다. 자신처럼 불꽃에 타고 있는 수십 수백명의 여자들도 보였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 위로 번쩍이는 교회의 첨탑도.



안나는 그순간 깨달았다. 바로 이곳, 이세상이 지옥임을. 그리고 매달려서 내려다보는 저 십자가의 남자야말로 지옥에서 온 악마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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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꽹과리 2006.02.1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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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자작소설이라서 절대 저작권문제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뱀병장 2006.02.05 01:41
직접 지으신건가요?emoticon_058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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