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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26 : 다음... 그 뒤의 이야기... 2
(ㅡ.ㅡ)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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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7 16:49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9월12일(화) 05시30분21초 KDT
제 목(Title): 다음... 그 뒤의 이야기...
"민형이니? 나 용준이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나... 약혼한다... 일요일에. 놀러 와..."
"......"
수화기를 내려놓고서 웃었다.
녀석은 서두른 걸까.
정민이에 대한 미련의 싹이 다시 자라는 것이 두려웠을 게다.
한동안 결혼 안 할 것같던 녀석이 선 본 지 2주만에 약혼을 선언하다니...
장마비가 퍼붓던 어느 주말, staire는 함을 지게 되었다.
좋은 날 언성 높이고 얼굴 붉히는 건 피차 원하지 않는 일이라
함은 쉽게 쉽게 들어갔고
우리는 아울로스 대신 그 아가씨의 집에서 다시 잔을 들었다.
11시... 다들 추스리고 일어나는 시간에 용준이가 어깨를 짚는다.
"넌 조금 기다려라..."
"?"
꼬냑을 두 잔 이상 마시면 즐길 줄 모르는 거라던가?
그러나 우리는 2시간동안 둘이서 두 병을 비웠다. 두 시간, 둘이서, 두 병...
"무슨 얘길 하고 싶어? 신부 댁에 실례일텐데..."
"괜찮아. 지금 친구들이랑 함 열어보고 있으니까 한참 걸릴 거야.
여자들은 보석이나 옷 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지?"
"......"
"민형이 너...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 기억하냐? 거기 배경이 어디더라?"
"상해... 서구화의 물결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뒤뚱거리던..."
"오늘 저녁 이 집은 어때?"
짜식... 알 것도 같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중국 영화는
한결같이 화려하지만 어딘가 텅 비어 있는 상해를 배경으로 삼아
떠도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지.
함에 든 것은 한복과 비녀, 반지, 노리개...
그렇지만 둘이 마주 앉아 마시는 테이블에는 꼬냑과 훈제 연어. 치즈와 아몬드.
'복'자가 새겨진 은수저와 미끈한 곡선의 포크...
양복에 금시계를 찬 용준이와
가짜 달비에 댕기를 드리고 한복을 입은 그 아가씨...
"그래서... 넌 동서양 문화가 억지스럽게 짜맞춰진 결혼 풍속이 불만이냐?"
"아니... 처음엔 뭐가 불만인지 몰랐어. 그냥 싫었지..."
"......"
"이제는 알겠어... 이건... 졸부들의 돈지랄이야..."
저 녀석... 자기 장인어른을 향해 졸부라니...
"내가 왜 이런 비싼 양복에 금시계를 차야 하지?
내 능력으로는 어림없는 패물을 뭣때문에 선물하는 거지?
이건... 단지..."
그래... 무슨 말인지 안다.
의예과 시절, 아침마다 서로 다짐하던
'후진국 학생은 5시간 이상 잠을 자면 안 된다...'
'후진국 학생은 하루에 8시간 이상 공부해야 한다...'
'후진국 학생은 맥주를 마셔서는 안된다...'
치기만만하지만 맑았던 우리의 눈은 어느새 꼬냑 위에 흐릿하게 비치는구나...
"용준아..."
"......?"
"하지만 네 결혼이야..."
"알아... 너는 정민이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 거지?"
"......"
"걱정하지 마... 내 결혼을 소중하게 지킬 거야."
그래... 깨끗이 씻겨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같이 씻어내볼까?
......
둘이는 밤새 퍼붓는 빗속을 같이 걸었다.
용준이의 새 양복과 staire의 윗주머니에 든 디스켓이 후줄근해지도록...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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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눈 뜰때의 느낌만 솔직히 말한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