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총독 빌라도 - 2장 요셉 가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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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총독 빌라도 - 2장 요셉 가야바

김춘봉 0 2,851 2004.08.17 10:43
 

2장 요셉 가야바

                                       (1)
  예루살렘 일대를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시온산과 높이가 엇비슷한 또 다른 산.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키드론, 티로퓌온, 힌놈골짜기를 볼 수 있으리라.

시온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성전과 그 주변의 뜰은 하도 넓어서 그곳을 거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게 분명했다.

  담 역할을 하고 있는 스토아(회랑)는 본래 솔로몬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에 없던 것이다. 은연중에 로마신전을 모방한 건축물이지만 뙤약볕이나 비를 피하기 적당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시비하지 않았다.

장막절 축제기간 중에는 성인 남자들이 꽃다발을 회랑에 가져다 놓으면 축제 마지막 날 다시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다. 이 때, 꽃다발을 받으려다가 사람이 깔려 죽은 일도 있었으며 꽃다발을 받은 사람들은 밤이 깊은 시각까지 흔들며 기뻐했다.

  북쪽 높은 지대는 안토니요새의 우중충한 건물이 버티고 있다. 헤롯이 옛 바리스 탑을 지금의 요새로 재건할 때 주거에 필요한 시설뿐만 아니라 마구간과 연못까지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시 몇 달이고 버틸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요새다.

예루살렘 공략에 크게 기여한 로마의 호민관 마크 안토니의 특별 주문이기도 하려니와 요새의 이름도 그를 기리기 위해 안토니요새라고 명명했다.

  예루살렘은 높은 바위산 꼭대기와 같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마사다 못지않게 난공불락의 요새다. 견고하게 쌓은 제1, 제2, 제3 성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1성벽은 성전 산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다가 헤롯궁전을 감싸고돌면서 남으로 방향을 바꾸고, 다시 능선을 따라 내려가서 경사가 완만한 지역을 돌아 오벨산을 휘감아 돌면서 남쪽 성전의 회랑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을 다시 대각선으로 돌을 쌓아 윗성과 아랫성으로 갈라놓았다.

  윗성에는 막가비 시대 이전부터 하스몬 궁전이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정상의 아고라 지역에 새 궁전을 세웠으며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해서 고위 사제들 집이 윗성 안에 있다.

  아랫성에 빽빽이 들어선 가옥에는 사제와 돈 많은 상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은 동남쪽을 향해 알맞게 경사진 곳이라 중산층 사람들이 선호했다.

  제2 성벽은 바리스탑, 지금의 안토니요새와 신시가지를 끼고 북으로 한참을 나아가다가 서쪽에 위치한 헤롯궁전의 히피꾸스탑과 맞닿아 있다. 

  제3성벽은 성전 북동쪽 모서리를 따라 북으로 나아가다가 서쪽으로 돌아 산악지역을 감싸며 헤롯궁전 가까운 제2 성벽과 만났다. 제2 성벽을 이중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 성벽에는 아직 완공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나 불안하지 않았으며 축조가 덜 된 부분은 벼랑과 같은 곳이라 방어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곳 외곽 지역에는 성전 건축에 동원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손재주가 뛰어나서 천막을 깁거나 모형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머리가 비상한 자들은 토라의 필사본이나 그리스 또는 히브리어 책자를 아람어로 번역해 냈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사는 지역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지역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성전, 두 번째는 티로퓌온 골짜기다. 이 지역은 신시가지의 다마스커스문에서 아랫성 남문에 이르는 도로 주변과 그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로 주변에는 상가와 여관이 즐비했고, 실로암 연못에서 물 운반하는 사람들 때문에 인적이 끈기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이곳 티로퓌온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크시스뚜스 다리는 명물 중에 명물이다. 이 돌다리는 헤롯궁전에서 하스몬궁전을 지나 성전으로 들어가는 포장이 잘 된 크시스뚜스 도로 끝자락에 있다.

  성전 동쪽에 위치한 기드론 골짜기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번제단에서 도살한 짐승의 피와 내장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이 피는 부지런한 농부들에 의하여 거름으로 쓰였으며 이곳 농장에서 생산된 포도는 알이 굵고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처럼 비옥한 땅이 조금씩 묘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곳에 시신을 묻으면 메시아가 나타날 때, 제일 먼저 부활한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였다.

  본래 유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 해 두었다가 1년이 지난 다음 시신을 꺼내 화장하면서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이 행사를 탈관식이라고 하는데 사제가문과 경건한 백성이 선호했다. 헤롯가문의 사람들은 왕실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주변을 치장했으며, 동굴무덤에 시신을 모셔놓고 부활의 때를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다. 극히 일부 사람들이 이 짓을 했다. 그들은 기드론 골짜기에 시신을 몰래 묻어놓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급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생전에 부활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시신에 향유를 바르며 썩지 않게 보관하지만 아직까지 살아난 사람이 없었다.

  서쪽에 위치한 힌놈 골짜기 독사의 못은 물이 풍부했고, 등고선이 성전 뜰과 비슷해서 헤롯은 이 물을 성전에 끌어들일 생각을 했다. 그는 수로 공사를 추진하다가 노환으로 죽었다. 지금은 방치된 상태이고, 헤롯 이후, 그 누구도 공사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2)

  예루살렘을 다녀간 사람들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성벽뿐만 아니라 성전 뜰의 석재 담과 거기에 붙어 있는 경고문을 기억할 것이다.

  그 유명한 크시스뚜스 다리를 건너 이방인 뜰에 들어서면 아무나 백성의 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석재 담과 마주치게 된다. 높이가 3엘레(약1.575m) 이어서 키 작은 사람은 발뒤꿈치를 세워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곳을 넘을 경우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아람 문자로 새겨진 경고문은 이방인을 겨냥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흰 린덴 옷에 넓은 띠를 두른 사제와 방망이를 든 레위인들로 편성된 순찰조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방인들은 공연히 주눅 들어 했다.

  이방인 뜰에는 구경거리가 많다. 회랑에서는 구술이 치렁치렁 달린 검정 외투를 입은 회당소속 랍비들이 설교를 했다. 이곳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단, 광야의 패거리가 아닐까? 의심하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는 뜻이다. 특히 랍비들이 이런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뚜로와 시돈 같은 도시에서는 유리그릇이나 거울을 생산 판매하다 보니 부유했고, 그래서 그들은 동전을 발행했다. 그들처럼 다른 동전을 소지한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서 동전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환전상들은 그들을 향해 호객행위를 했다.

  순례자들은 두 가지 십일조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는 성전에 바치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경비로 쓰거나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었다. 이 때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던져주었다. 축제를 위해 불결한 것을 피할 요량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비둘기에 모이를 주듯 했다. 먹이가 풍부하면 비둘기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거지가 많다.

  회당소속의 바리새인들은 모금함을 뜰 곳곳에 두고, 자선기금을 거두어들였다. 회랑에서의 설교와 축제기간 중에 모금사업은 성전에서 특별한 역할을 분담할 수 없었던 어정쩡한 신분의 그들에게 명분을 주는 일이기도 했으며, 그들은 구호사업을 벌리면서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자기 재산의 1/5 이상은 자선에 쓰지 말라는 랍비 가말리엘의 충고가 있고 난 다음부터였다. 이토록 자선은 신앙의 목표였으며, 자선에 따라 믿음의 정도를 인정받았다. 만약 헌금을 약속했다가 망설이기라도 할라치면 야훼를 속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갈릴리 출신 어느 젊은이는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노점상의 좌판에는 성전지붕을 모자처럼 만들어 여자의 머리 장식용으로 쓰는 황금의 예루살렘, 번쩍거리는 금으로 만들어진 본당의 모형, 이스라엘아 들어라! 이렇게 시작되는 세마가 새겨진 판화, 그것을 작은 글씨로 새긴 목걸이, 기도할 때 머리와 가슴 그리고 팔에 두르는 탈리트와 두 개의 끈이 매달린 테필린 부적상자도 있다.

  안토니요새 근처에서, 가축을 매매하는 광경도 진풍경에 속했다. 그곳에서는 번제제물용 비둘기에서부터 황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축이 팔렸다. 거간꾼들은 모두 안나스 가문이거나 보에뚜스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두 가문 사람들은 성전에서의 상권을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물탱크 놋바다 에 물 채우는 일까지 간섭했다. 그들은 자기 집 하인을 시켜 물을 운반하면서 그 대가로 성전금고에서 돈을 가져갔다. 일부 사제들이 불평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방인 뜰 구석에는 성전공사에 필요한 자재가 수북이 쌓여있다. 아직 성전공사가 끝나지 않아 평일이면 일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전에서의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초부터 거룩한 영역의 본당 건물을 위해 사제는 목수나 석공 일을 배워 그들이 전담했으며, 백성과 이방인 노동자는 부대시설을 만들거나 뜰을 넓히기 위해 땅을 깎아 매립하는 일을 했다.

  이방인 뜰에서 14계단을 올라서면 포도 넝쿨처럼 아취를 이루고 있는 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 모양이 아름다워 미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여인의 뜰이다. 여인의 뜰에서는 각종 행사가 열리곤 했다.

미문 옆 목욕시설이 갖추어진 건물에서는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직무에 임했다. 발레리우스 그라투스가 유대총독으로 재임할 당시, 대제사장 지위에 있던 카미토스의 아들 시몬은 대 속죄일 전 날 저녁 땅거미 질 무렵에 목욕을 마치고 나오다가 어느 사제가 무심히 배튼 침이 예복에 묻어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안나스 쪽 사람들이 이 일을 문제 삼아 그를 대제사장 지위에서 물러나게 했다.

  여인의 뜰 한 편에는 거대한 금으로 된 촛대와 대형 탁자와 그 위에 금으로 된 4개의 접시가 놓여 있으며, 왕의 대관식을 위해 마련한 무대도 있다.

뜰 정면에는 반원 모양의 15계단이 있으며 레위인들은 이 계단에 서서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다.
  성전에는 모두 13개의 크고 작은 문이 있다. 여인의 뜰에서 그 중 하나를 들어서면 백성의 뜰이다. 백성의 뜰에도 높이가 1엘레(0.525m)의 석재 난간에 - 그 누구도 지팡이나 신이나 전대나 먼지가 묻은 발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곳 난간은 무릎 정도의 높이에 불과해서 본당 건물과 그 주변 경관을 훤히 볼 수 있다.

  그곳에서 성전본당 현관을 바라보면 거대한 대리석 탁자와 금으로 테를 두른 오목거울이 걸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거울은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빛을 반사시켜 성소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리아베데의 여왕 헬레나의 기증품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황후는 청동 포도주 잔과 또 다른 봉헌물을 헌납했고, 황제의 사위 마루쿠스 아그립바도 예물을 바쳤다.

  난간과 본당 사이 사제의 뜰은 돌을 깔아 맨발로 다니기 편하게 만들었으며 뜰 아래쪽은 번제단 지역이다. 삼나무 지붕의 도살장과 제단, 그리고 거대한 물탱크 놋바다가 그 곳에 있다.


                                       (3)

  오늘은 탐쿠이와 쿠빠 행사가 있는 날이다. 미문 앞 계단을 향해 거지들이 몰려왔다. 탐쿠이는 가난한 자의 주발, 꾸빠는 가난한 자의 광주리라는 뜻이다. 그들의 빈 광주리를 채워주기 위해 회당소속 바리새인들이 빵과 옷가지를 준비했다.

오래 전부터 바리새인들은 자선사업을 원했고, 지금은 일정 금액을 성전금고에서 배당 받아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면 좋으련만 거지들은 자꾸만 손을 내밀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자들은 선심이나 쓰듯 기분 내키는 대로 집어주었다.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대제사장 가야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날도 그랬다. 빌라도 총독과 함께 이방인 뜰을 거닐다가 미문에서 탐쿠이와 쿠빠 행사를 보게 된 총독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가야바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찬성할 수도,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중에 저 만치, 초라한 행색의 젊은이가 혼자 서 있었다. 가야바는 숫기 없는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한 마디 했다.

“거기 있으면 네 몫이 있을 것 같으냐. 앞으로 나서 거라.”

젊은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야바 곁으로 다가왔다.

“나 말이요?”

“그래.”

가야바는 측은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는 당돌하게도 이런 말을 했다.

"언제까지 사육하시렵니까?"

가야바는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젊은이는 대답을 듣자고 한 말이 아닌 성싶었다.

그는 거지들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형제들이여! 새를 보시오. 나무를 보시오. 그것들은 제 힘으로 살아갑니다. 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우렁찬 목소리에 시끄럽던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 가 생각해 보시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합니다.”
옆에 있던 총독이 맞장구를 쳤다.

“저 보시오.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예루살렘이 거지소굴로 변해 가는 꼴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신기했다. 빌라도 총독은 어째서 사지가 멀쩡한 자들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주느냐고 따졌다. 빵과 써거스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집정관이 통치수단으로 구호사업을 벌린 일이 있다고 했다. 양곡을 나누어주고, 경기장에서 오락물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결과는 한심했다. 집정관은 재산을 날렸고, 백성의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만 못해서 그 후, 빵과 써거스 정책자는 로마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총독의 계획은 이러했다. 성전금고에서 돈을 지원하면, 취로사업을 통해 티로퓌온 길이 말끔히 포장 될 뿐만 아니라 사지가 멀쩡한 자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 이를 두고 일석이조라 했다.

  탐쿠이와 쿠빠 행사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긴 가야바도 마찬가지다. 구호사업은 필요하되, 무조건 퍼주는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총독이 취로사업 제안을 해 왔을 때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순전히 깃발사건 때문이다.

  빌라도 총독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서 안토니요새 망루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황제의 깃발을 세웠다. 망루는 성전 뜰을 감시하기 적당한 높이에 있었지만 그 곳에 깃발을 세울 경우 성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백성은 깃발 세우는 것을 싫어했고, 그동안 깃발을 세우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총독이 깃발을 세운 것이다.
  깃발을 세운 첫째 날, 백성은 다 함께 놀랬다. 두 번째 날은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세 번째 날에는 왜 가만있느냐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항의했다. 네 번째 날, 깜짝 놀랄 일이 또 발생했다. 여인의 뜰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황금방패가 놓인 것이다.

  그 방패는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들이 보내온 것이라 했다. 실은 그곳 랍비들이 자신들의 회당에 황금방패를 세우면서 하나를 더 만들어 보내왔고, 이곳 랍비들은 사제들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노리다가 총독이 깃발을 세운 틈을 이용해 잽싸게 갖다 놓은 것이다.

  황금방패 때문에 예루살렘이 들썩거렸다. 산헤드린 의원 70명이 패를 갈라 격론을 벌렸다. 바리새파 소속 의원들은 황금방패를 봉헌 물로 인정하려고 들었다. 사두개파 소속 의원들은 한사코 반대하면서 철거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헤롯 시대의 독수리 석상 이야기가 불거져 나왔다.

  황금방패가 놓인 그 자리는 독수리 석상이 있던 곳이다. 헤롯은 유대와 로마의 우호관계를 보장받기 위해 특별한 일 두 가지를 생각해 냈다. 로마황제를 위해 조석으로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 그리고 여인의 뜰에 독수리 석상을 세우는 일이었다.

  독수리 석상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헤롯의 외교적 수완이었으며 로마황실에서도 기뻐했다.

이런 가운데, 헤롯이 병석에 들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누군가에 의하여 독수리 석상이 파괴된 것이다. 헤롯은 크게 분노했고, 잡혀온 범인은 율법학자 맛디아스 문하의 어린 학생이었다. 학생을 잘못 가르친 죄로 맛디아스와 또 다른 사람이 잡혀왔다. 그 자리에서 맛디아스는 이렇게 항변했다.

‘모세가 야훼께 배우고 자신이 깨달은 그 율법을 우리가 존중하고, 모세가 써서 후손들에게 넘겨준 그 율법을 우리가 당신 명령보다 더 중요하게 준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당하겠으며, 당신이 우리에게 괴롭힐 수 있는 모든 형벌을 기쁨으로 받겠습니다.’

헤롯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맛디아스와 또 다른 사람을 화형 시켰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당소속 의원들은 황금방패를 치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전보다 황제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고 한탄하면서 가야바는 빌라도 총독을 찾아갔다. 다섯 째 날이었다.

  가야바로부터 황금방패 이야기를 듣게 된 총독은 스르피티우스에게 방패를 가이샤라 회당에 옮기도록 지시했다. 방패가 옮겨지기 위해 마차에 실리는 동안 회당 사람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방해하지 못했다. 안토니요새 망루에 있던 깃발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회당소속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총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했다.

  깃발 사건이 종결된 다음 두 사람이 마주앉은 자리에서, 어떤 일을 구상 중인데 대제사장이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야바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가 탐쿠이와 꾸빠 행사장에서 도로 포장공사를 생각해 낸 모양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부임하자마자 깃발부터 세운 총독을 미워하던 안나스가 취로사업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회당소속 의원들도 찬성했다.

  빌라도 총독은 티로퓌온 도로 포장공사를 시작하면서 투니카 복장에 지휘봉마저 들지 않고 작업장에 나왔다. 노동자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빈둥거리지 않으면 노임 타령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한 대가가 겨우 1데나리온이야?”

이렇게 신참이 불평하면,
“힐렐 선생께서는 1데로빠이크를 받으며 일을 했다네.” 

고참이 볼멘소리를 했다. 신참이 이죽거리면서,

“옛날 사람이야 빵 6개 값 받고 일했다 치세. 나는 12개 값으로는 안 하네.”
“그러면, 어쩔 셈인가?”

“미문에 가야 지.”

이런 대화를 나눈 그들은 예외 없이 다음 날 공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총독은 미문에서의 구호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불구자는 격리 수용하고, 사지가 멀쩡한 자들에게는 일체 음식이나 옷가지를 주지 말라는 공문도 보내왔다.


                                       (4)

  땀쿠이와 쿠빠 행사장에서 가야바가 고민하고 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가야바는 의원을 소집하고, 안건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산헤드린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금 산헤드린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사두개파 의원들은 총독 건의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고, 바리새파의 회당소속 의원들은 펄쩍뛰면서 반대했다.

산헤드린에서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힐렐 선생께서는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마야와 압달리온 선생께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하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까지 구호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야훼를 기억하십시다.”

“예루살렘이 더 이상 거지소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보시오. 선한 목자는 푸른 초원으로 양을 인도합니다.”

“사람을 가축에 비유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소?”

이처럼 설왕설래하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티로퓌온 도로공사는 지지부진 상태가 되었다. 급기야 총독이 대제사장 가야바를 찾아왔다.

  예고 없는 총독의 방문에 가야바는 단단히 화가 난 줄 알았다. 그런데  총독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입장이 난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방인이면서도 불쑥 방문하게 된 것을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가야바가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총독은 집무실 중앙에 그어진 선에 주목했다. 그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하하하. 이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되겠지요?”
가야바도 따라 웃었다.

  대제사장 집무실은 백성의 뜰과 이방인 뜰을 구별하는 석재 담 선상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내부에도 두 지역을 구별 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백성과 이방인의 고충을 함께 들어주어야 하는 대제사장 직무상 필요한 조처였다.

내부에 선이 그어지기는 산헤드린 건물도 마찬가지다. 증인으로 이방인을 출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야바는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면서 회당소속 의원들 반대가 심각하다는 말을 했다. 총독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전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산헤드린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설명에 앞서서, 가야바는 총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라쿠스가 호민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농지개혁을 추진하려다가 반대 세력에 암살당한 일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바로 그 시대에 유대에서는 요한 히루카누스가 집권하고 있었으며, 그는 회당소속 바리새인들이 산헤드린 의석을 차지하도록 허락한 인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가야바는 회당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화제를 돌리려 했으나 총독은 티로퓌온 도로 포장공사를 끝내고 수도공사 - 헤롯이 시작하고 지금은 버려진 상태의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에게 전해 주시오. 노동력 부족으로 공사에 차질이 생기면 사마리아인들을 불러들일 생각이라고.”

가야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루살렘에 사마리아인들을 불러들이다니! 그는 황당한 나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안 됩니다. 이곳 사정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 같은데 … ”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두 가지 다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요.”
두 가지 다라니? 취로사업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마리아인들을 불러들여 그들과 화해라도 시키겠다는 말인가? 

이처럼 근심하는 가야바를 향해 총독은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려주었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조물주께서 안식에 들어가려는 바로 그때입니다. 나무들이 웅성거리더랍니다. 무슨 일인가? 조물주께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매는 왜 만들어주지 않으셨어요? 입을 모아 나무들이 말했습니다. 조물주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것은 너희들 몫이지 했습니다.

그 때부터 나무들은 창조적 과업에 동참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호두나무 경우를 살려볼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더랍니다. 크기는? 모양은? 색깔은?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사람이 지나가더랍니다. 그 순간, 느낌이 오더랍니다. 그래서 소리쳤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사과나무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밀림 구석구석에서 똑같은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호두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보고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마음에 쏙 들었으니까요. 사과나무도 사과를 보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호두나무 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누군가에 의하여 호두알이 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과나무 밑에서는 작은 사과 씨가 뿌리내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두 나무의 처지를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닙니까?

첫 열매 이후, 밀림의 생리는 도식화 되갑니다. 호두나무는 사람의 이빨에 대항하는 단단한 껍질 만들기에 주력하고, 사과나무는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며 사람과 함께 기뻐합니다.”

총독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 미운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시간부터 호두나무에 불과합니다. 그가 아무리 성전에 달려가서 기도를 한들 호두나무에서 사과를 달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을 형제나 이웃처럼 대해주라는 말이었다. 가야바는 여기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총독이 부족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사마리아인들을 불러들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산헤드린 의원들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가야바는 대안을 제시했다. 사마리아인들은 불러들일 수 없지만 안티바와 빌립 영토의 사람들은 무관하지 않겠느냐고.  

취로사업 본래의 목적이 바뀐 가운데 공사는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총독은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일손을 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예루살렘 주변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티로퓌온 도로공사는 준공을 보았다.


                                        (5)

  이번에는 수로 공사 때문에 말썽이 생겼다. 포장용 돌은 성전 공사장에서 쓰다 버린 자재를 수집해 바닥에 깔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수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석을 쪼개고 면을 고른 다음 이음새 부분에는 납을 녹여 붙이거나 석회 모르타르를 발라야 했다.

그러자면 정을 사용해야 하고, 망가진 정을 다시 불에 달구어 두드려 고쳐 써야 하니까 이 때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리가 문제였다.

  총독은 예루살렘에 철공소가 없는 이유를 몰랐다. 요한 히루카누스가 구리와 철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명령한 이후, 시가지에는 철공소가 없었다. 이 명령은 불문율처럼 지켜왔다. 헤롯마저도 성전공사를 하면서 시내에 철공소를 세우지 못하고 먼 지역 철공소를 이용했다.

이런 내막을 알 턱이 없는 총독은 날마다 현장에서 불을 피우고, 쇠를 두드리고 담금질을 해댔다. 이 때문에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그것도 윗성 주택가에서.

  처음에는 불평하던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벌렸다. 배후에 누군가가 있었다. 성전 경비대장 요나단이 배후 인물이었다. 그는 연일 공사장 주변을 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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