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속눈썹을 닮은 아미월이 대의원 밤하늘에 은은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아미월 아래 대의원에는 제관(祭官)들의 기도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직히 들려왔오는 가운데 대의원 어느 전각의 지붕에는 흑색의 암행복을 입은 괴한이 흉흉한 안광을 흘리며 대의원을 굽어보고 있었다.
"흥 우상의 소굴 머지않아 불바다가 되리라!"
그렇게 한마디 내밷고 암행복을 입은 괴한은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의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흑색암행복을 입은 이십여명의 괴한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 통솔자로 보이는 괴한이 나직히 말하였다.
"모두 화섭자(火攝子)와 화염탄(火焰甁)을 잘 소지하고 있겠지?"
"옛"
그자리에 모인 괴한들 모두 절도있게 대답하였다.
"그럼 모두 복면을 써라"
통솔자가 준비한 복면을 뒤집어 쓰자 괴한들도 모두 준비하고 있던 흑색복면을 뒤집어 썼다. 복면에 눈구멍만 나 있었고 각각의 복면 이마부분에 흰색으로 일(一)부터 이십(二十)까지 적혀 있었다. 반면 통솔자 괴한은 이마에 장(長)이라고 적혀 있었다.
"좋다. 우린 지금 위대한 주님의 사역자로서 우리들은 지금 위대한 주님의 광명이 내릴 위대한 역사의 도표가 될 영광된 사명을 시작한다. 저 우상의 소굴을 태워버려서 위대한 주님의 사명을 완수하라. 뜻하지않게 잘못을 저질러서 실수라는 것을 하게 되며는 치아에 박아넣어 씹으면 독이 나와서 죽는 독단을 씹고 자결한다! 자 가라 주님의 위대한 사역을 완수하라~"
"옛"
괴한들 모두 약간의 무공을 익힌 듯 보법을 실행하여 빠르게 대의원으로 나아갔다.
"앗 이런 늦어버렸나?"
홀로남은 통솔자 괴한 앞에 바람이 일며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선하무녀와 아미월을 든 방령의 무녀
"뭐 뭐냐?"
통솔자 괴한은 허리 춤에서 ‘챙’ 하고 병기를 뽑아 들었다. 심하게 한 쪽으로 휜 기형검에서 짙은 혈색(血色)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헉 검기? 세달아 이자는 내가 맡을테니 넌 어서 괴한들을 뒤 쫓아라! 어서!"
선하무녀가 다급히 말하자 방령의 무녀는 고개만 끄덕이고 서둘러 앞서 간 괴한들을 뒤 쫓아갔다.
"필히 저지해야한다!"
통솔자 괴한이 이를 보고 서둘러 경신술로 방령의 무녀를 뛰 쫓으려하자 선하무녀가 괴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네녀석의 상대는 나다"
선하 무녀는 품에서 진방형의 큼지막한 흑지부(黑紙籍) 석 장을 꺼내들었다.
"에잇"
"호신부(護身籍)"
괴한은 괴한은 귀찮다는 듯이 기형검을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동시에 선하무녀가 들고 있는 흑지부 한 장이 불타 올랐다. 검기가 선하무녀의 허리어림을 가르는 찰나 검기는 무형의 막에 의해 튕겨서 소멸 되었다.
"설마 호신강기? 말도 안돼!"
괴한은 기형검을 바로잡고 선하무녀를 항해 돌진하였다.
"돌풍부(突風籍)"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괴한을 향해 선하무녀가 급히 흑지부 한 장을 날렸다. 부적은 허공중에 타서 사라지고 그 자리서 맹렬한 돌풍이 발생하여 기한에게 짓쳐들었다.
"크윽 무슨 사술을"
눈도 떠지 못할 정도의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괴한이 돌진하다 말고 일순 주춤하였다. 너무 매서운 바람이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괴한은 기형검을 바로 잡고 한가지 초식을 시전했다.
"야향검법(耶香劍法) 성령풍검(聖靈風劒)"
괴한의 기형검에서 짙은 사기(私記)가 피어올랐다. 괴한은 사기가 풀풀 날리는 검초로 무녀의 매서운 돌풍을 강한 회전력이 실린 검초를 시전하여 수어번의 검격으로 분쇄하였다.
"헉 그 검법은 혈향검법?"
"흥 받아라 야향검법 성혈보광(聖血寶光)"
괴한의 검이 날카로운 한 줄기 혈광이 되어 선하무녀를 쏘아갔다.
"헛 지파부우 커억"
선하무녀가 미쳐 부적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괴한의 검초는 선하무녀의 호신부를 깨뜨렸다.
"퍼엉"
폭음이 들려오고 선하무녀는 힘없이 뒤로 날려가다 곧 중심을 잡고 착지하였다. 하지만 이내 신형이 휘청하며 한 쪽 슬두(膝頭;무릎)가 굽혀졌다. ‘울컥’ 입가에 선혈이 가늘게 한줄 흘러내렸다.
"그 그 검법은 혈향검법 너 너는 우욱"
선하무녀는 한모금의 선혈을 뱉어 내었다.
"그 검법은 분명 혈향검법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매.."
"흥 그입 다물게 해주마!"
괴한은 빠르게 선하무녀를 향해 딸려와 또 하나의 검초를 시전하였다.
"야향검법 성천능태(聖子稜颱)"
괴한의 검은 혈광이 일며 묘한 곡선을 그려갔다.
"흥 지파부(地波籍)"
선하무녀의 손에서 흑지부 한 장이 타오르자 선하무녀의 발아래에서 부터 지면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빠르게 괴한을 덮쳐갔다.
"헛 또 무슨 사술을"
괴한은 급히 검초를 물결처럼 오는 지면을 향해 펼쳤다.
"파파파파파파파"
괴한의 검초와 충돌한 출렁거리는 지면은 괴한의 검초에 파훼되어 흙과 풀들이 일순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내려오는 흙비
"유사부(流砂籍)"
한 장의 흑지부가 빠르게 괴한을 향해 날아갔다.
"흥 어딜!"
괴한이 날아오는 흑지부를 이색검으로 양단해버리자 흑지부는 곧 공기중에 불에 타 사그라졌다. 괴한이 다시 검초를 잡으며 선하무녀를 노려보자 선하무녀는 뜻밖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헉"
괴한의 발목부터 해서 신형이 차츰차츰 지면속으로 빨려가고 있었다.
"수녕(水濘:수렁)?"
괴한은 어느새 자신이 무릎까지 빠져든 것을 보고 지면을 박차 어기충소를 시전하여 솟아 오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튀어 오르려고 발에 힘을 주는 순간 신형은 허리까지 수욱 빠져들었다.
"헉 안돼"
그제서야 괴한은 사태의 심각을 알게되었다. 유사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아래로 빠져든다. 선하무당은 죽기싫어 애처롭게 발버둥 치는 괴한을 향해 다가갔다. 선하무녀는 유사의 영향을 전혀 안 받고 있었다. 그녀가 유사부의 시전자인 이상 지면은 유사가 아닌 그냥 지면일 뿐이었다.
괴한이 어느새 두 팔 마저 잠기고 머리만 남겨두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을 즈음 유사부의 효력이 끝났는지 지면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괴한은 땅에서 두부만 나온채 사악한 안광을 뿜어댔다. 선하무녀를 노려보았다.
"찌익"
선하무녀가 괴한의 복면을 잡아 뜯자 거기서 땀에 절은 얼굴 하나가 드러났고, 괴한은 얼굴을 흉악하게 찡그린채 이를 갈아대었다.
"그래 과거 혈향마로 불린 이맹신이다. 하지만 나는 성령의 은혜를 입어 새로 태어났다. 너도 야소님을 믿고 회개하여 영원의 안식을 얻어라! 도무지(度巫祉)"
"아니 내 이름은 어떻게?"
"과거 정종과는 다른 피냄새라는 뜻을 사파의 혈향문주(血香門主) 였던 나는 그 곳의 검법을 시전하면 피냄새가 난다는 뜻의 혈향검법을 대성하고 무림에 처음 나가는 초출(初出)을 하였다. 사파와는 다르게 어리석은 위선자들의 집합인 정종(正宗)의 고수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며 나의 이름은 높아져 명성은 치솟았다. 그리고 난 정종은 아니지만 무슨 말인지도 몰라도 다흥회의 최고 대가리라는 뜻의 총장이 이름난 고수라는 소문을 듣고 항사언덕을 향해 가던중에 나는 나를 가로막는 묘령의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 여자의 기습에 나는 그만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항사언덕 아래의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만큰 아주 깊은 벼랑으로 떨어졌다. 그 때 나는 주님의 은헤를 입어 성령의 감동으로 죽지않고 중상만 입은채 살아났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서 캐서먹으면 몸에 좋다는 약초를 채취하던 그 분을 만났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살아나는 재생의 기회를"
"그만 그만"
"왜그러느냐 도무지!"
"그냥 요점만 줄여서"
"난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다."
"으으으"
선하무녀 도무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결국 거기서 넌 기연을 얻어 살아났다는 거 아니냐?"
"흐흐흐 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날 위해 주님께선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분을"
"널 살린 그 분이 누구냐?"
"말할수 없다 그 분은 곧 우상을 추방하고 세상을 바로세워서 온누리에 주님의 은헤를"
"아 시꺼!"
그 때 이맹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미 늦었다 도무지 이 어리석은 여자야 크하하하하"
"늦어? 아차!"
도무지는 급히 뒤를 돌아 보았다. 대의원 여기 저기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도무지는 급히 신형을 대의원 쪽으로 날렸다.
도무지가 사라지고 땅에서 두부만 나온 이맹신은 몸을 가볍게 한 번 틀자 지면이 갈라지며 양팔이 쑥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 번 더 힘을 쓰자 이맹신의 신형은 지면에서 가볍게 빠져나왔다.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멀리 불길에 휩싸인 대의원을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년 나를 그냥 땅에 묻어두면 내가 빠져 나오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일개 범인이랑 무림인이 다르다는 것 쯤은 알아야지 차후 오늘 날 살려 둔 것을 땅을 치고 후휘하게 만들어 주겠다. 일단 작전은 성공이군 과거 혈향문도였다가 내가 성령의 은혜를 입혀 개종시킨 스무명이 아깝지만 어짜피 문도들은 나의 소모품이다."
그리곤 어디론가 신형을 날려 사라져갔다.
"불이야"
"불이야 불"
"불이다"
대의원은 달밤에 갑자기 일어난 불로 인해 난리였다. 제관들모두 자다말고 급히나와 불을 끈다고 분주하게 오갔다.
"어서 노제관님들을"
선하무녀 도무지는 최대한 빠르게 경공을 펼쳐 대의원에서 제일 높은 구 층 누각의 지붕에 올라섰다. 품에서 큰 황지를 꺼내어 펼치고 식지를 깨물어 피를 내어 황지에 부적을 그려갔다.
"다 그렸다. 광역폭우부(廣域瀑雨籍)"
황지에 선하무당의 붉은 피로 그려진 부적은 나풀나풀 허공으로 날아올라 대의원 중천에 도달하였다. 그 때 도무지가 주문을 외우자 허공에서 부적이 타서 사그라 지는 가 싶더니 별이 총총한 밤하늘엔 갑자기 적난운(積亂雲)이 생기기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툭 툭 한 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다 일순 굉장한 양의 폭우가 쏟아졌다.
"비다 비"
"와아 비다."
순식간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비로 인해 대의원 여기저기 옮겨붙던 불길도 폭우로 인해 일순간에 사그라졌다. 불이 꺼지자 허공의 적난운도 수명이 다했는지 허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날이 밝고 대의원 대환전 앞의 대장(大場:큰마당)엔 각각 다섯 구와 네 구의 시신이 나열되어 있었다. 다섯 구의 시신은 대의원 제관들의 시신이었고 네 구의 시체는 간 밤에 대의원에 방화를 시도하다 방령의 여인에게 잡혀죽은 흑색 암행복을 입은 개독의 시체였다.
대장에 준비된 태사의에는 계피학발(鷄皮鶴髮)의 노제관이 청려장(靑藜杖)을 쥐고 앉아있었다. 이 노인은 대의원의 태상원주로 대의원 최고 어른이었다. 그 곁으로는 나이가 지극해 보이는 노제관들이 시립하고 있었고. 선하무녀 도무지와 그의 조카인 방령의 무녀는 앞에 시신들을 두고 태상원주와 마주보고 있었다.
"선하무녀 이자들이 간밤에 본원을 습격한 무리더냐?"
태상원주가 카랑카랑하고 창노한 음성으로 도무지를 보며 하대를 하며 물었다. 태상원주는 선하무녀 도무지 보다 아주 배분이 높아 도무지에게 하대는 아주 자연그러운 것이었다.
"네 태상원주 여기 혈관이 터져 죽은 사내는 지난 밤 무욕지에서 절 습격한 자이고 여기 나머지 사내들은 여기 제 질녀(姪女)의 손에 죽은 자들이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대의원에 방화를 원천적으로 막을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럼 선하무녀가 상대한 그들의 우두머리는 누구인지 혹시 아는가?"
"네 저는 그 자를 땅에 가둬 놓았는데 확인해보니 이미 도주한 상태였습니다. 대의원의 불길을 잡으려 급히 달려온지라 그를 깜빡 잊고 있었사옵니다. 제 불찰이옵니다. 이 무녀를 꾸짖어 주시옵소서"
"아니다. 그런말 말라 무녀가 아니었으면 본원은 화마를 피하지 못할 뻔 하였다. 본원을 습격한 무리는 누구더냐?"
"네 그자는 과거 사파무림의 혈향문주 혈향마 이맹신이라는 자이옵니다."
태상원수는 배꼽까지 늘어진 백염을 만지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니 사파무림의 일개 문주가 왜 본원을 습격 한단 말이더냐? 사원과 무림은 엄연히 서로 불가침(不可侵)이 아니더냐? 아무리 사파라고 해도 그들도 일개 환국의 백성들이거들 그들이 왜 본원에 방화를......"
"고정하시옵소서 태상원주님 혈향문은 과거에 사파무림으 구성원이었지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지금은?"
"현재는 개독의 세력으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뭐라 개독? 그럼 여기 이자들이 모두 개독이란 말이더냐?"
"네 그러하옵니다."
"세달아!"
도무지가 그의 질녀인 방령의 무녀에게 눈짓을 하자 세달이란 이름의 무녀는 앞으로 나가 자신의 손에 죽은 괴한들의 몸을 뒤져서 각각 들고 있던 개독경과 나무십자가를 찾아내어 시체들 옆에 진열 하였다. 그러자 태상원주 옆에 시립한 제관이 걸어와 두툼한 서책 한 권을 들고 태상원주에게 전하였다.
"음 성경이라?"
태상원주는 호기심이 동해 성경을 한 장 한장 빠르게 넘겨갔다. 그러다 그의 얼굴은 심히 일그러졌다.
"천하에 이런 야색잡서(野色雜書)가 있었나? 이런것이 성경이라고?"
"화륵"
개독경은 태상환주의 손에서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재조차 남지 않고 그냥 사라졋다는 표현이 옳을것이다. 도무지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태상원주께서 무공을? 가히 박박귀진(返博歸眞)의 경지다’
"개독이라 개독이라...... 그동안 사원은 바깥세상과는 불가침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개독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한 만행이 극에 이른 지금 신들도 결코 그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따라서 본원을 포함하여 사림(祀林)의 연맹체인 신천맹(神天盟)을 결성하여 다물흥방회와 뜻을 같이 하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