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총독 빌라도 - 3장 사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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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총독 빌라도 - 3장 사람의 아들

김춘봉 1 3,773 2004.08.22 19:31
 

3장 사람의 아들
                                        (1)

  먼지를 뒤집어 쓴 납가새풀이 듬성듬성 돋아있는 다갈색의 유대광야. 낙타처럼 웅크린 산. 태양은 머리 위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어서 하늘에 뚫린 허연 구멍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내렸다.

이른 비가 내리는 계절이면서도 아직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신년제, 대 속죄일, 초막절 행사가 있는 티쉬리 월에는 한결같이 비를 기다리기 마련이고 초막절에는 기우제를 겸해서 지낸다고 했다.
  저 만치 앞서 가던 스르피티우스가 갑자기 채죽을 휘두르며 말을 몰았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수도원을 드나드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초라한 행색의 사내들이다. 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타나기라도 할라치면 스르피티우스는 급히 달려가 동태를 살피고 돌아왔다. 혹시나  시카리 당원이 아닐까 해서 확인하려는 게 분명했다.

시카리당원은 단도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사람들 속에 섞이어 있다가 로마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는 찌르고 도망을 갔다. 이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자국민을 살해하지만 유대인들은 신고하지 않았다.
보복이 두렵기도 하거니와 인두세는 야훼께 드릴 것을 로마황제가 빼앗아 간다고 주장하는 시카리당원들에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스르피티우스는 거동이 수상한 자를 미리 살피는 것이다.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보좌관임에 틀림이 없었다.

  오늘의 나들이가 이처럼 호송 병력까지 거느리게 된 것도 그의 충직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음에는 스르피티우스와 총독 단 둘이서 광야의 수도원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부인 프로크라가 사해 구경을 하고 싶다면서 따라 나섰고, 총독 내외 행차에 호송 병력을 붙이지 않으면 자신은 직무유기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이처럼 요란스러운 행차가 되고 만 것이다.

  벌써 돌아왔어야 할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마부에게 가보자고 했다. 일행이 스르피티우스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땅에 쓰러진 어떤 사람과 함께 있었다.

  스르피티우스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사내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사내는 여러 날 혼자 그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광야에 나가면 고행자들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자인 것 같았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이런 곳에서 사람이 버티면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꺼운 천과 지팡이 그런 것이 고작이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스르피티우스가 부축 해주어서야 간신히 일어났다. 정신을 차린 사내는 총독 일행을 알아보고 당황해 했다. 유대인 특유의 경계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스르피티우스는 사내의 소지품과 지팡이를 집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을 부릅뜨면서 때릴 듯 달려들었다. 정말 때리자고 한 행동이 아님을 금시 알 수 있었다. 우직한 그는 미친 짓 그만하고 집에 돌아가 가장 노릇이나 제대로 하라는 훈계를 그런 식으로 했다.

  광야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많다. 살무사도 있고, 전갈도 있다. 한 번 물리면 부기가 오래가는 모기 비슷한 해충도 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미문에 가면 먹을 것을 준다. 그러니 빵은 아닐 터이고, 기적을 바랬을까?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메시아를 기다렸을까? 이처럼 공연한 생각을 하면서 총독 일행은 그곳을 떠났다.

  쿰란 수도원은 건물 몇 채와 14개의 물탱크가 전부였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지하수를 찾지 못하고 키슬루, 테베트와 같은 우기에 빗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쓰는 모양이다. 

  풍채 좋은 노인을 앞세우고 그들이 마중을 나왔다. 총독은 부인에게 마차 안에 있으라는 눈짓을 하고 혼자 내렸다.

  노인은 그들이 말하는 의의교사였다. 의의교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질그릇 굽는 가마와 빵 굽는 화로 그리고 방앗간이 한 지붕 밑에 있어서 죄다 보였다.

방은 꾀나 넓었다. 방 한 편에는 기다란 책상 위에 잉크와 붓 그리고 두루마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금 전까지 뭔가를 쓰던 사내들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 보니 식당이었다. 식당 선반에는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다른 방에도 마찬가지였다. 벽 마다 선반이 있었으며 선반 위 질그릇에는 동물의 뼈가 종류 별로 들어 있었다. 놀라는 총독에게 의의교사가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서 동물의 뼌 줄 알았다. 그 물건은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했다. 부활 때 살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지만 사람의 뼈가 아닌 이상 흥미가 없어 방을 나와 버렸다.

이처럼 예정에도 없던 가택수색을 하게 된 것은 음산한 이곳 분위기 때문이었다. 
  의심 가는 곳이 없다고 판단할 즈음에 의의교사는 자리를 권하면서 앉으라고 했다. 총독은 사해를 둘러보고 예루살렘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의의교사는 아쉬워하면서 총독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스르피티우스도 집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무기나 쇠를 다룬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수도원 동쪽으로는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경사가 심한 곳이라 계단식 축대 위에 묘를 썼다. 수 백 개는 족히 넘어보였다. 무덤은 한결같이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었다. 가야바 말에 의하면, 광야의 수도원 사람들은 요한 히루카누스 시대 이전부터 쿰란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하스몬가문이 사독가문의 대제사장 직을 강탈한 후에 성전이 더렵혀졌다고 주장하면서 광야로 나갔다고 했다.

  헤롯 집권 초기 사독가문의 사람을 불러 대제사장 직분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그들 엣세네인들도 예루살렘에 와서 살았다고 했다. 그들은 세례의식을 통해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다시금 광야로 돌아갔는데 그들이 자랑하는 세례의식은 대제사장이 축제 이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정결의식을 일반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총독은 의의교사에게 인두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려야 합니다.”

의의교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주변 사람들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 하던 말과 다른 소리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말은 율리우스 카이샤르 이후, 로마의 일관된 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에 불과했다.
  로마는 그들의 패권 밑에 들어온 여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거부하지 않았다. 따라서 속주 백성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원이나 신전을 가지기 마련이고, 로마에서는 그들에게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바치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독은 의의교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슨 목적이 있으니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의의교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뱀과 싸웁니다.”

“뱀이요?”

하도 엉뚱한 대답이기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음행, 탐욕, 타락이라는 세 마리 뱀입니다. 음행은 일부다처제를, 탐욕은 죄인들로부터 벌어드리는 모든 재산을, 타락은 아주머니와 생질의 결혼과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웁니다.”

  총독은 대화를 나눌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젊은이들이 시카리당과 같은 불순세력에 동조하면 수도원을 부셔버릴 수 있다고 위협적인 말을 했다. 의의교사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야훼의 뜻이 아니면 그 누구도 통치자에 오를 수 없습니다. 비록 헤롯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카리 당과 다릅니다.”

  고독한 사람들이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부인이 없고, 모든 정욕을 버리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선호한 나머지 사회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을 파괴하는 그런 자들이었다.

  털거덕거리며 달리는 마차 안에서 총독은 가야바를 또 생각했다.

“아주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회당에서는 빈곤 계층의 출신이라 하더라도 일정기간 교육을 이수한 자에게는 랍비 칭호를 주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랍비는 구술이 치렁치렁 달린 검은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게 되지요. 광야의 엣세네인들은 그들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상급자가 되면 의복이나 다른 외부적인 우월성의 표시로 더 좋은 것을 착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 총독은 은연중에 누구의 메시지가 참신한 것인지 비교하면서 유대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모두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2)

  사해에 도착하기까지 빌라도와 프로크라 두 사람은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프로크라는 나름대로의 기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총독이 마차에 남아 있으라는 눈짓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심각한 병적 증세, 여자와 아이들을 기피하는 수도원 사람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총독의 배려가 있기 이전부터 프로크라는 수도원 사람들을 경멸했다.

‘순진한 자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모든 여인들로부터 지켜주소서, 율법을 모르는 여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속지 않게 해주시고 …’ 자우레가 흉내 내면서 그들을 비난했을 때부터였다.

  갈릴리 지방은 이곳과 아주 대조적인 곳이다. 잔잔한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의 풍경이 좋았고, 나무들은 푸르렀고, 꽃은 아름다웠다.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 구나 탄성이 절로 났다. 더구나 빌립의 아내가 외출하자고 꼬드겼을 때의 일은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혼례가 끝나고 신랑신부가 여행을 떠난 뒤였다. 헤로디아와 자우레 그리고 프로크라가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빌립의 아내가 말했다.

“사람 구경 가시지 않겠어요?”

세 여인은 구경할 것이 없어 사람을 보러 갑니까? 하는 표정들이었다.

빌립의 아내는 익살스러웠다. 그녀는 여자의 내면 깊숙이 숨겨 둔 끼를 자극했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요. 젊고 잘 생긴 남자가 있어요.”
헤로디아가 호들갑을 떨면서

“어머머, 이러다가 사돈께서 큰일을 내시겠어!”

그녀는 호기심이 동하면서도 내숭을 떨고 있었다.

“염려 마세요. 그 사람 말이 하도 신통하고 예사롭지 않아 해 본 소립니다.”

자우레가 맥 풀린 소리로 물었다.

“랍빈가요?”

빌립의 아내는 고개를 흔들면서,

“가 보면, 아시게 됩니다.”
마침내 여인들은 작당을 했다. 남편 모르게 다녀오기로.

“검소한 차림에 화장을 지우는 것이 좋겠어요.”
빌립의 아내 제안에 자우레는
"좋아요. 나는 농부의 아내처럼 차릴게요." 했다.

헤로디아는 배를 앞으로 쑥 내밀면서

“어때요? 임산부 같지 않아요?” 해서 한 바탕 웃었다.

  디베리아 시가지를 뒤로하고 어느 능선에 사람들이 모였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이 대부분이다. 네 여인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지만 귀부인 티를 숨기지 못했다.

  무리 속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립의 아내가 눈짓을 했다.

세 여인은 일제히 그 사람을 주목했다. 잘났다거나 체격이 크다거나 하는 특징은 없는 사람이다. 그저 평범한 젊은이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헛기침을 하기 마련인데 젊은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반응을 살피거나, 음성의 톤을 바꾸는 그런 유형의 사람도 아니었다.
  저 멀리, 밭에서 일하는 농부가 보였다. 젊은이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사물을 들여다보듯 그쪽을 보면서,

“예언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변화되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생명의 텃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계명의 단계를 뛰어넘어 생명, 그 비밀스러움을 펼쳐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깊은 상념에 젖는 듯 했다. 다시 무리를 둘러보면서,

“생명은 모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언약입니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하늘과 땅과 호수와 그리고 여러분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는 가까이 있는 들꽃을 가리키면서

“저기 꽃에 벌이 찾아들고 있군요. 분명 꽃 속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여기에 상응하는 보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 진실, 지혜, 성실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보물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세상은 이런 보물에 의해서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프로크라는 한 순간, 젊은이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찡하고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인가 가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선창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쁨이 배가되는 법이다.

프로크라는 그런 기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기 분량의 달란트를 쏟아 놓고, 풍성해진 자리가 천국입니다." 

보물 대신에 이번에는 달란트였다. 

천국에 대해서 헤로디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젊은이는 수월하게 풀어나갔다. 

"농부는 겨자씨 한 알이 어떻게 우람한 나무를 키워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씨를 뿌리고 가꿉니다. 사람이 어떻게 천국 문을 열고 풍성함을 가져올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일을 감당할 존재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모두가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누가 말했는가? 젊은이는 그렇게 말하는 자들을 향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중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프로크라는 괜히 화가 났다. 지금은 저토록 조용히 말하는 젊은이도 한 때는 분노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소경 된 자들이여! 너희의 무식함으로 말미암아 씨앗이 버려지고 있구나. 이렇게 호통 쳤을 것 같았다.

  젊은이는 계속해서 실물교훈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 품속에 있습니다. 용맹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맹수의 날렵함에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보살피는 손에 있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나아갈 줄 알고, 감쌀 줄 알고, 풍요롭게 합니다.”

젊은이에게는 유대인, 사마리아인, 로마인, 이방인, 남자, 여자의 구별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네 여인은 들떠 있었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인에게 복이 있느니라.”

헤로디아가 또 다시 배를 쑥 내밀며 익살을 떨었다. 여인들은 허리를 휘어잡고 한바탕 웃었다. 승자만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웃음이었다. 자유를 쟁취한 자의 기쁨이 여기에 더하랴 싶었다. 자우레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대 여자는 월경 중이거나 사내아이 출산 이후 40일, 여자아이는 80일 동안 이방인 뜰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그들은 불결하다는 말로 자신들의 무식을 드러냈다. 이 무식은 도가 지나쳐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여자는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에 빠지게 했다. 여자를 노예처럼 취급하거나 계명을 지킬 의무마저 없다고 무시했다. 광야의 수도원 사람들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으며, 랍비들은 말을 많이 하면서도 유독 여자 앞에서 함구 했다.

  자우레가 슬그머니 이런 말을 했다.

“귀족 가문에서는 딸에게 그리스어와 예절을 가르친답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예절이 바르고 교양이 있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여자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달리 하는 모양이었다.

  마차가 멈추었다. 프로크라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갈릴리 생각을 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훤하게 펼쳐진 사해를 보면서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허연 포말이 수면에 널려 있었다. 소금의 변형된 모습이다. 그것이 보기 싫었다. 발에 밟히는 시커먼 진흙의 감촉도 수상쩍었다. 물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살아 움직이는 물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입니까?”

총독은 소금기가 많아서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요단강을 거슬려 올라가면 갈릴리 호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요?”
총독은 당연한 말을 하는 그녀를 향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심각해지면서

“생물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총독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예루살렘 주변에는 광야와 사해가 있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새 하늘과 새 땅이요.”

프로크라는 사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요단강을 탯줄처럼 달고 있으면서 물고기를 거절하다니!”

이번에는 수도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모태를 외면하는 망가진 생명이여!”


                                      (3) 
  광야의 수도원 형편을 살피고 돌아온 총독은 푸블리카누스로부터 사마리아 장로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푸블리카누스는 세금징수 청부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일 인두세를 미리 계산해서 총독에게 견적서를 제출했다. 이 때 경합이 있기 마련이고, 낙찰자는  인두세를 선납하고, 일년 동안 인두세를 받아내기 위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다. 사마리아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가야바를 만난 자리에서 심마쿠스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가야바는 한 참을 생각하다가 모르겠습니다했다. 사마리아 장로이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 때서야 가야바는 기억을 해 내고 어떻게 그 사람을 아십니까? 하면서 물었다. 총독은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하면서 넘어간 적이 있었다. 푸블리카누스를 통해 사마리아 장로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알게 된 내용이었다.

  사마리아 장로는 다시금 그 이야기를 했다.

‘ …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심마쿠스는 헤롯의 청을 들어주다가 늘그막에 할례를 다시 받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결국 유대교 개종자가 된 심마쿠스를 사마리아인들은 배신자라고 욕합니다. 그는 헤롯의 주선으로 사제들과 만나다 그 지경이 되었으니까요. 나 또한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총독은 일단 장로가 대제사장 가야바를 만날 의사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했다. 그는 심마쿠스와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게 해 달라는 의사를 전해왔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총독은 편지를 썼다.
‘서둘러서 그런 일이 생겼나 봅니다.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두 지역 주민은 해묵은 감정을 풀지 못하고 지내 왔습니다. 총독인 나로서는 이런 내막을 알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로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총독인 나를 만나려 안토니요새에 오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합니다. 가야바 대제사장도 수시로 제 집무실을 드나들고 있으니까요. 두 분은 그렇게 만나게 되시는 겁니다. 내 보좌관이 스케줄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요.

두 분은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함께 하다보면 해묵은 감정을 풀어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발상도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십시오.’

  푸블리카누스에게 편지를 보내고 총독은 가야바를 안토니요새로 불렀다. 그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사마리아 장로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가야바는 무척이나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제사장이 저럴 수 있을까?실망하는 총독에게 가야바는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형편이 나 땝니다. 사마리아인들도 우리의 형제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총독은 어이없어 하면서,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다.

가야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침묵했다. 총독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고, 가야바는 어떻게 설명해야 총독이 다시는 사마리아 장로와 만나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할까 궁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가야바가 입을 열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우리의 형제요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잡히면 모두가 죽이려 할 겁니다.”

“죽이려는 자가 누구요?” 하고 총독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모두라고 했는데 총독은 선동자 내지 주모자 급을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차마 사두개파 사람들이오.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안나스가 사두개파 총수이고 보면, 가야바는  더 더욱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버렸다.

“하시딤 운동을 계승하려는 자들, 마카비 일가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이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면 모두가 그들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인 것이지요.”

가야바는 내친김에 사마리아인들을 미워하는 것도 하나의 관습이고, 전통이고, 뿌리 깊은 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버렸다. 지금까지 사마리아인들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보더라도 알만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사실이 그랬다. 사마리아인들도 우리의 형제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금기사항에 속한 것이다. 불문율이다. 이것은 계명이나 율법 이전의 문제다. 장자의 직분, 선민주의와 같은 의식에 도달하려면 열등한 민족이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이 되는 법이다. 공교롭게도 사마리아인들이 열등한 민족으로 여겨지게 된 이상, 그 누구도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장자의 직분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가야바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총독이 아니었다. 그는 가야바를 설득하려들었다. 

“언제까지 사육하시렵니까?”

가야바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 젊은이는 유대인이 아니던가요?”했다.

총독은 탐꾸이와 꾸빠 행사장에서의 젊은이 말을 흉내 낸 것이다.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는 가운데 그것을 부정한 사람. 그 젊은이가 유대인이라면 모두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젊은이와 같은 사람이 성전 뜰에 나타난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길조예요. 변화의 때를 알리는 전조란 말입니다. 젊은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유대 땅에 많아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설득작업은 계속되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우리의 형제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남들보다 먼저 생각했으니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가야바 당신과 같은 사람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한다.  

총독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결론을 내렸다. 

“계명이나 율법, 성전, 관습이 어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술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4) 
  마침내, 총독 집무실에서 가야바 대제사장과 사마리아 장로가 마주 앉았다. 사마리아 장로는 총독이 그리심 산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평상복 차림에 혼자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마스커스 문을 거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루살렘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래 전부터 총독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안토니요새를 감시해 왔다.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요나단을 위시해서 일부 사제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총독을 보고 있었으며, 랍비들 또한 백성의 정서를 감안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총독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그 중에서도 인두세 경합에서 탈락한 푸블리카누스는 사람을 풀어 안토니요새 출입자를 체크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줄도 모르고 빌라도 총독과 대제사장 가야바 그리고 사마리아 장로 세 사람은 자리를 함께 했다. 한동안 어색하던 분위기가 슬슬 풀려나갔다. 가야바보다는 사마리아 장로가 분위기를 리드하는 쪽이다. 그는 이와 같은 상견례가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집트의 레온토폴리스 성전을 다녀온 이야기가 나왔다. 

  빌라도 총독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리심 성전 외에 이집트 성전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동한 총독은 언제 그 성전이 만들어졌는지 물었다. 

  가야바는 마케도니아 왕조가 멸망하기 직전, 그러니까 한니발 장군이 자살하고 10년이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사독가문이라면 솔로몬 시대부터 그 당시까지 대제사장을 세습하던 유명한 가문이었는데 대제사장 오니아스 2세가 갑자기 죽고, 안티오쿠스 4세는 슬퍼하는 유족들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빌가가문의 메넬라우스로 하여금 대제사장 지위에 오르게 했다. 

오니아스 3세는 관례에 따

Comments

graysoul 2005.02.08 19:05
와, 너무 재미있는데, 왜 요새 안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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