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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series 5 : 즐거운(?)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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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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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7 16:25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3월13일(일) 14시15분25초 KST
제 목(Title): 의대 series 5 : 즐거운(?) 산부인과
Part 1. 내진은 이제 그만!!!!!
여학생들은 비뇨기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지만 남학생들의 산부인과에
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staire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부인과 실습 첫날은
전날 저녁부터 잠을 못 이루고 밤새 뒤척였지... 변명같지만, 사실 의대를
다니며 내가 잃은 것 중 제일 심각한 건 젊고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신비감'일거다. 맨날 보는 거라 귀한 줄(?)을 모르게
된다.
처음 내과 실습을 할 땐 여자 환자를 청진하기가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호흡기 청진이야 등쪽에서 하면 되니까 브래지어끈만 적당히 치우면 되는데 순환
기 내과는 앞쪽에서 해야 한다. 혹시 대학병원에서 실습 학생에게 청진을 받아 본
여성은 알겠지만 이녀석들, 가슴을 무지 만지작거린다. 그건 무슨 흑심이 있어서
가 아니라 청진 포인트를 찾는 동작인거다. 예를 들어 삼첨판(우심방-우심실을
연결하는 밸브) 소리를 들으려면 흉골(가슴뼈) 왼쪽 모서리의 4번째, 5번째 갈비
뼈 사이에 청진기를 대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갈비뼈를 센다는 게 이만저만
헷갈리는 게 아닌지라 본의아니게 가슴에다 실례를 하게 되는거다. 물론 2주일
정도만 실습을 하면 한번에 척 갖다댈 수 있다. staire의 경우도 황당한 순간이
한두 번 있었다. 예를 들어 청진 포인트를 찾긴 찾았는데 그곳에 하필이면
젖꼭지가 떠억 버티고 있는 경우... 나중에는 한손으로 방해물(?)을 쓰윽 밀어
붙이고 청진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얘기가 엉뚱한 데로 좀 샜는데... 하여간 밤잠을 설친 staire는 아침 일찍
산부인과 외래 진료부를 찾았다. 같은 조의 윤경이는 태연한 모습... 당연한
일이지만.
외래 환자는 어떤 이유로 왔건 내진(손가락을 집어넣어 여성 생식기를 촉진하는
것)을 하는 게 기본이다. 내과 환자는 무조건 청진을 하는 것과 같다. staire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손을 씻고 또 씻으며 복도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
들을 둘러본다. 근데 좀 많군. 수십명은 되겠네. 저 많은 사람을 점심 전에
해치워야 한다...
"장갑은 써도 좋지만 가능하면 맨손으로 하는 게 감각이 더 세밀해. 환자의 입장
에서도 이물감을 덜 느끼고..."
"예 알았습니다."
드디어 첫 환자가 들어왔다. 몇가지 질문을 거친 뒤 침대에 눕는다...
(적당히 상상해보시오....)
12시 50분, 배고프고 졸린 staire는 아직 환자가 20명 가까이 남았다는 얘길
듣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은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퉁퉁
불었다.
"젠장, 오늘따라 웬 환자가 이렇게 많아... 오후엔 실습 강의도 있는데 점심은
언제 먹지..."
그날 staire는 확실히 알았다.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를 가지고 어쩌구 했다는
얘긴 믿을 게 못된다는 걸.
Part 2. 부인과 수술장에서
여고생의 배가 불러 온다면 부모들의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불운한
여고 1학년 지영이(가명)의 경우가 그랬다. 엄마는 임신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다그쳤지만 본인은 죽어도 아니라는 거다.
"자네들 같으면 무슨 검사를 하겠나?"
이진용 교수님의 질문. 임신 테스트는 여러가지가 있다.
"혈청검사요."
"초음파는 어때요?"
"호르몬 검사... 아이쿠!"
틀리긴 다 마찬가진데 staire는 교수님 바로 옆에 있었다는 죄 때문에 호되게
한 대 쥐어박혔다.
"한심하긴... 우선 hymen(처녀막)이 남아 있는지 봐야 할 거 아냐!"
공돌이도 그렇지만 임상 의학에선 '돈'을 무시하면 안된다. CT(Computerized
Tomography : 단층 촬영)같은 비싼 검사는 꼭 필요할 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의료비 부담을 감당 못한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는 악덕 의사도 적지 않
기에 의료보험 수가 결정에 말이 많은 거지만...
물론 처녀막 유무가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쳐녀라도 처녀막은 상할 수 있고
드물지만 성행위를 경험하고도 처녀막이 온전한 경우도 있는 거다. 물론 처녀막
재생 수술(hymenoraphy)을 받은 경우라면 숙련된 의사의 눈엔 다 걸린다...
"산부인과에서 hymen을 볼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잘 봐두도록... 내진은 신중하
게. 멀쩡한 hymen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글쎄... 그게 그렇게 쉽게 손상되는 거였나? 하여간 staire는 그 말많은 hymen
을 직접 보고 만져보는 영광을 얻었다.
지영이는 처녀였다... Hymen 앞뒷면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상처나 흉터가 없는
지 확인한다. 재생 수술을 받았다면 이 단계에서 걸린다. (물론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잡아내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며칠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양성 난소 낭종(ovarian cyst). 왼쪽 난소만 발병.
오른쪽은 정상. 아주 다행스러운 케이스다. 모녀간의 오해도 풀렸고. 곧 수술
일정이 잡혔다. 부풀어오른 낭종을 떼어내기만 하면 된다. 물론 한쪽 난소는
잃겠지만 하나 더 있으니까... 지영이는 웃음을 되찾았고 모든 게 잘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수술장. 이진용 교수님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배를 열어보니 악성인
거다. 한쪽을 떼어내도 5년 이내에 나머지 한쪽에서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 난소
2개를 모두 떼어내야 한다. 자녀를 낳을 만큼 낳은 여성이라면 두말없이 그렇게
한다. 하지만 지영이는 남자 손 한 번 잡아본적이 없는 여고생이다. 어떻게 불임
수술을 해줄 것인가?
"이럴 땐 어떻게 하죠?"
"흠... 우선 한쪽만 떼어내고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은 후에 재수술을 해야지."
"그 사이에 재발해서 수술 시기를 놓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경우엔 보호자가 선택하도록 되어 있어. 안전하게 둘다 떼어내거나
아니면 한쪽만 떼어내고 서둘러 결혼시키거나..."
그래서... staire는 보호자 대기실로 뛰었다. 보호자가 직접 수술장에 와서 상황
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선 아직도 의문이다.
비전문가가 수술장에 와서 보면 뭐하나? 하지만 의료관계 법규가 그렇다니...
지영이 어머니는 수술장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걸 차마 어떻게 제눈으로
보느냐고... 한쪽만 떼어내도록 하자고는 하셨지만 법규고 뭐고 한사코 안보시겠
단다. 이거 문제다. 보호자가 안 오면 수술을 시작할 수가 없는데 한없이 마취
시킨 채 내버려둘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지영이 이모가 대신 들어가기로 했다.
매일 보는 사람에겐 별 것 아니지만 지영이 이모에겐 그랬을 리가 없다. 자기
조카딸이 배를 열고 시뻘건 내장을 드러내놓고 있는 걸 보시더니 그만 뒤로 쓰러
지고 말았다. 당황한 학생들이 서둘러 부축해서 모시고 나가야 했다...
지영이는 꿋꿋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퇴원 전날 밤, 지영이의 병실을 찾았다. 내일 아침이면 헤어지는 거다. 물론 정
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겠지만.
"퇴원하면 금년에 결혼해야 한대요. 엄마가 중매 알아보신대요..."
"잘 될거야 걱정마..."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하고 몇 달 후에 결혼하는 거 싫어요..."
지영이의 눈에 눈물이 비친 것같았다. 침침한 조명 아래에선 알아보기 힘들 만큼
아주 조금.
"나... 선생님하고 결혼하면 안될까?"
staire는 지영이의 싸늘한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무척 작고 가냘픈...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한참만에 staire는 지영이의 손을 놓고 말했다.
"푹 쉬어."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거다.
몇 년 후에 지영이가 예쁜 공주님을 낳았고 대학생 엄마가 되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다는 얘길 들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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