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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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Randomist 2 4,334 2005.01.13 05:07
 "내 생각엔 말야..."

 결국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내 13번째 전도 대상자. 반에서는 '멍청한 사색가'로 불린다. 평소 하는 행동은 얼빠진 것 같지만 철학쪽에는 여러 의미에서 머리가 잘 돌아간다. 그래서 아마 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으리라 믿고 전도해보려 했건만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꺼낸 이야기다. 난 그 대답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네 생각은?"

 그녀석은 잠시 이마에 손을 댔다. 그리곤 약간 피곤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신이란 없어. 아니, 신이란 있긴 하지만 그 것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신이 아니야."

 화가 났다. 결국 너도 이런 거였냐?

 "교회다니기 싫으면 싫다고 해. 무슨 신이 있고 없고야?"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난 기분이 더 나빠졌다. 그러면서 내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 정색하는거 아닌가? 그건... 아무래도 이 녀석에겐 이상한 기대가 있었나보다.

 "끝까지 들어. 분명 세상엔 신비한 일들이 많아. 그리고 그 일들을 보고 있으면 어쩜 신이란 것은 있을지도 모르지. 가령 지구에 생명이 태어난 것 말이야. 보통 하는 말은 바다에 녹아있던 탄소계 무기물들이 고압의 전류로 유기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유기물들이 과연 세포라는 놀라운 존재로 우연히 결합할까? 그건 '레고박스에 레고를 가득 넣고 흔들었더니 성이 만들어졌다'보다 더 희박한 가능성이지. 물론 단세포라고 해도 말야... 세포란건 어쨌든 그렇게 전기 보낸다고 만들어지는것 같지는 않거든."

 "하느님이 만드셨어. 하늘도 땅도 생물도..."

 이상했다. 이 말을 하면서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 어떤 증거도 댈수 없어서일까? 내 스스로도 뭔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느낀 것일까? 그가 만약 거기에 대해 반박했다면 난 그냥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신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뿐만 아냐. 정말 세상엔 신이 있을것 같다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지. 가장 신기한 것은 이 새상 자체라고. 특히... 사람 말야. 신을 믿는 사람들의 경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곤 하잖아? 가령... 부활하는 것이라던가... 그런 초능력? 그런 것 말야. 넌 그런 현상을 그저 하느님이 주신 힘이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래. 우리 이모도 교회에서 기도를하다가 갑자기 일본어를 하게됐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일본어로 기도를하더란거야. 처음엔 기도할때만 일본어를 쓰더닌 나중엔 평소에도 일본어로 읽고 말하고 쓰고 할 수 있게 됐지. 그런 것 뿐만 아니라 여러 증거들이 있다고."

 "그래... 확실히 없는 것은 아닐꺼야. 하지만 말야... 그렇게 치면... 무당의 칼춤은 어떻게 생각해? 맨발로 작두위에서 춤을 추는 것은 신기하지 않아?"

 갑자기 날 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당예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 것인가?

 "그건 미신이잖아. 무당이니 부적이니..."

 "미신? 그래 작두위에서 춤추는 것은 미신이라 치자. 그럼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것은? 3일만에 부활한 것은? 그건 믿을만하고?"

 "그건... 성경에 나와있어!"

 "성경이 틀렸어. 성경은 온갖 비논리의 상징이야. 성경대로 하면 하느님은 아주 쪼잔한 존재라고. 신이 어떻게 그렇게 베타적일 수 있겠어? 만물의 신이 말이야. 성경은 사람이 만든거야. 만드는 과정에서 내용도 많이 바뀐 것도 당연한거겠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오히려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신의 뜻을 잘 알수 있지?"

 "..."

 이렇게 되자 할말이 없었다. 성경은 사실 사람이 만든 거니까...

 "그렇다고 기독교가 완전 무가치한 종교는 아니라고 봐. 어쨌든 놀라운 일들은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 생각은..."

 결국 아까 네가 하려는 말을 하는 것이구나.

 "그래... 네 생각은?"

 "신은 생명체 그 자신이야. 다시 말해서 나도 신이고 너도 신이지."

 "웃기지마! 네가 그렇게 대단해? 그건 오만이야."

 "아니, 끝까지 들어. 애초에 생명체에겐 엄청난 힘이 있어. 기독교의 말을 빌어보자면 신이 만드신 것이라고. 당연히 존귀하고 큰 힘이 있지. 그런데... 그 힘이 완전히 발현되는 것은 아니고... 잠재해 있는거야.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다 죽겠지.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체들은... 그런데... 그 중에 사람은 종교라는 것을 이용해서 그 잠재력에 틀을 잡는 거야. 가령 공만 가지고 노는 것과 축구를 하는 것은 다르잖아? 그렇게 종교라는 틀을 이용해서 잠재력을 더 쉽게 표출하는거야."

 잠재력...

 "그러니... 신은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이기도 하고. 결국 그 자신이 신인거야. 이렇게 되면 말야... 기독교도 옳은 것이고 불교도, 도교도, 그 어떤 종교도 옳은 것이야. 그 틀이 어떤 모양이든 그 틀에 맞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교회만이 옳은 것이 아냐. 무당도 옳고 귀신도 옳아. 그래서 난 그 어떤 종교라도 받아들일 생각이야. 굳이 전도하려할 필요는 없다고."

 난 좀 허탈했다. 지금껏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뒤집혔다. 하지만 오히려 더 홀가분했다. 그 뒤로 난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대신 '멍청한 사색가'와 함께 여러 종교들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깨닭았다. 교회만 옳은 것이 아냐. 종교는 종교라는 것만으로도 옳은거야.

Comments

직접 쓰신 건가요?!
(넘 내용이 좋아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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