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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의 마주이야기
<제 2 라운드)
신부 : 창조주는 널판의 주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이 누리와 만물을 만들었으며, 그분의 전능함 덕택에 우주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 : 그렇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헌데, 그토록 권능에 넘치시는 그분이 무슨 곡절로 당신이 좀전에 말했다시피 자연을 ‘타락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신부 :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더라면 사람의 가치가 대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악한 짓 범하기를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일을 행할 자유가 없다면 사람살이에 무슨 가치가 있겠냔 말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 그렇다면 당신의 하나님은 단지 사람들을 유혹하고 시험할 셈속으로 이 세상을 불완전하게 만들기로 한 것이군요. 그분은 어떻게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의 속성을 모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스스로 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 무지할 수 있었을까요?
신부 : 천만에요, 하나님은 피조물에 대하여 전지(全知)하지만, 사람들이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 대체 왜 그랬답니까? 하나님은 처음부터 피조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능한 존재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전능함을 써서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만 하도록 미리 손속을 부려놓았어야 하지 않나요?
신부 : 그 누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향하신 광대하고 한량없는 뜻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죽어가는 사람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 특히나 결과들을 설명할 때마다 되려 본질을 흐려놓을 뿐인 복잡스런 원인들을 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왜 원인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면서 구태여 결과까지 어렵게 만듭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이 세계는 사실 자연 단독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것만 인정하면 될 걸, 왜 자꾸 창조자의 손길을 고집스레 삽입하는 겁니까?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따지고 보면 아주 단순한 데 있습니다. 한번 물리학을 공부해 보세요. 자연을 훨씬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겁니다. 명료하게 사고하는 법을 배우세요. 머릿속에 들어찬 선입견들을 내버리세요. 이렇게 하고 나면 당신한테 하나님이란 존재는 더는 필요치 않을 겁니다.
신부 : 딱하디딱한 죄인이여! 나는 당신이 쏘시니언(Socinianism 신봉자. Socinianism 은 프로테스탄티즘을 인간 이성 위에다 세우자는 생각운동. 예수의 신성, 원죄, 속죄를 위한 희생 따위 이성으로 납득하기 힘든 모든 교리에 반대했음)임을 진작부터 알고 논쟁할 셈으로 무장하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까 당신이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매일매일 입증하고 있는 참되고 숱한 증거를 보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그런 무신론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더 말해봐야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장님은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 아무렴 눈가리개를 벗어던진 사람보다야 제눈에 가리개를 친 사람 쪽이 더 까막장님이란 건 인정하시지요. 당신은 습관적으로 교화하려고 하고, 논리들을 꾸며내고, 설명할 때는 아주 복잡하게 합니다. 반면에 나는 문제의 소지를 제거하고 단순화합니다. 당신은 오류에다 오류를 쌓아올리고, 나는 모든 오류에 도전합니다. 이렇다면 우리 둘 중 청맹과니는 누가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