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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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2

마린다레베로공작 0 2,820 2006.02.20 16:09
우리 흡혈귀들이 야행성이라고 하지만 인간을 기반으로 다시 부활한 나는 갑자기 피로를 느꼈다. 아마도 부활하면서 그에 따른 힘의 소모량이 많은 것 같았다. 뭐 소모량이 많아도 그런 변태 아저씨쯤이야 저 세상으로 가는 편도열차에 태우고 보내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이불을 덮혔다. 상당히 남정네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이불이었다. 그런데 귓가에 들리는 이 소리는 뭐지? 두 사람의 그것도 서로 다른 성별의 사람의 소리였다. 흡혈귀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잘들린다. 어?! 두사람이 대화하잖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대화내용은 참 대단했다. 아잉~ 오빠 거기는 안돼. 오늘은 넌 내꺼야. 어머나 오빠는 늑대~ 둘이 뭐하고 있는 지 안봐도 알 것 같다. 아마도 저 둘은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 본능을 거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 일이다. 나는 몸을 틀어서 오른쪽으로 누워서 잠을 청하였다. 좀 일찍 일어나서 뭐할까? 라는 생각보단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라는 것은 휴식을 취하면서 의식이 무의식으로 옮겨져 가는 현상을 일컫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1938년 5월 12일 상해의 한 부두에 있었다. 아마도 이건 꿈인 것 같다.
헉-!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 놀랬다. 거기에는 내가 있었고 로사가 있었다. 그때 난 로사를 몰아 붙혀서 그녀의 목숨을 끓기 직전까지 갔었다. 로사는 부두의 한 창고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는 그녀의 머리에 콜트社의 리볼버를 겨누고 있었다. 저 리볼버. 1850년대쯤에 미국의 한 황야에서 폼을 잡고 떠돌고 있는 녀석한테서 뺏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자를 ‘무법자’라고 하던데 총만 쏘고 폼만 잡을 수 알지 너무 손쉬운 상대였다.
꿈 속에 로사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나는 두 눈에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호흡도 가빠졌다. 그래 나는 그녀의 머리에 차가운 철로 되어있는 총알을 박고 싶지 않았어. 늘 가슴 속에 영혼 속에 품고 있는 의문이지만 왜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이지? 누군 좋아서 흡혈귀가 된 줄 알아? 뭐 인간한테는 최악의 사신(死神)인 ‘시간’의 낫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좋긴 하지만 흡혈귀가 되었다는 것만해도 이미 교회의 적이 되어 버렸다. 교회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악(惡). 바로 그 자체로 보아서 우리 존재를 이 지구상에서 말살하려고 했다. 좋아. 난 이런 존재가 되기 싫었지만 살아있으니깐 죽기는 싫어. 날 죽이려 오는 자들은 내가 죽이겠어. 라고 했는데 날 죽이려 온 자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였다니. 아마도 물레의 실이 엉킨 모양이었다. 난 그녀랑 싸울 때마다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녀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죽음이라는 공포와 슬픔과 증오가 교차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마음 속에는 두가지의 목소리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쏴-! 죽여-! 안돼-! 하지마-! 라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 고통이 눈물이 되어서 두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리볼버를 잡은 내 오른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겨누고 있는 나는 총구를 하늘 위로 향하게 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소리를 질렸어.

“도저히 못하겠어! 나 언니를 차마 쏠 수가 없어!”

나의 오른팔은 축 늘어졌고 총구는 땅으로 향하였다. 나는 여전히 울먹거렸고 두 눈에는 수도꼭지가 풀린 수도처럼 눈물이 흘렸다. 로사는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나랑 싸우면서 생긴 왼팔의 상처를 오른손으로 잡으면서 그 두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 서면서 걸었다.

“우리 다시는 이렇게 싸우지 말자. 나 언니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언니도 나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 싫어.”

이 말을 하면서 나는 걸었다. 로사는 미소를 띄면서 품 안에 감추어두었던 리볼버를 뽑고 겨누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실을 몰랐다.

“스테이시아? 아니 마리아?”

그녀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몸도 돌렸다. ‘스테이시아’라는 이름보단 ‘마리아’라는 이름에 기쁘게 반응한 것 같다. 응-? 이라고 몸을 돌린 나의 눈 앞에는 회심의 미소를 띄고 있는 로사와 의식을 마친 은십자가로 만든 총알이 장전되어있는 리볼버가 있었다.

“언니?”

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탕-! 이라는 소리가 나면서 은탄환이 나의 심장을 관통하고 등 뒤로 나갔다. 나의 입에서 쿠엑-! 이라는 소리가 나면서 붉은 피를 토하였다. 나는 바로 무릎을 꿇었고 나의 상처를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나의 두 눈은 로사를 쳐다보았다. 그땐 나는 로사를 증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내 눈에 비친 죽어가는 나의 눈동자는 마침내 죽어서 행복해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사실 그때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다행이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만약 얼굴도 모르는 슬레이어였다면 난 괴로움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준 그녀이니깐 나를 고통 없이 보내준 것이었다. 나의 몸은 빛을 내면서 서서히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윽-! 이걸 보고 있는 나의 심장이 아파왔다. 내 두 눈에 흐르고 있는 건 뭐지? 눈물? 맞다. 눈물이다. 어-? 난 로사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도 눈물이 보였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리아. 미안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정말 미안해. 만약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좋게 태어나.”

로사. 나도 그랬고 로사도 그랬다. 우린 둘 다 갈등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적으로 등장하면 영혼이 뒤흔들리는 정도로 고통스럽고 죽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이 들어갈 것이다.
나의 육체는 소멸되었고 옷과 장식구만 남았다. 그녀는 나의 옷과 장식구를 챙기고 있었다. 그녀가 뭔가를 집어 올리더니 눈물이 흘렸고 울먹이고 있었다. 저건? 나의 15번째. 마리아의 최후의 생일이었던 1635년 10월 12일 금요일에 나한테 주었던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는 죽었던 나의 목에 걸려있었고 301년간 나의 목에 걸려있었다. 그 목걸이는 나에 대한 로사의 사랑의 증표였다. 그녀는 그 목걸이를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사랑해. 마리아”

라는 말을 남기고……
난 이 장면이 단지 꿈을 꾸고 있는 나의 무의식이 만든 환상인지 아니면 나의 영혼이 과거의 이 장소로 와서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이 장면이 진실이라면 무슨 의미일까? 단지 우리는 운명의 장난으로 이런 피비린내 나고 눈물로 얼룩진 싸움을 했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나는 분명히 나의 생존을 위해 싸웠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거룩하다고 하는 교회와 그 신을 위해서인가? 그 신이 우리 둘의 생명과 사랑보다 중요해? 마치 나의 생각이 세간에서 말하는 동성연애자의 이야기처럼 되어버린 것 같지만 지금 나는 그것보다 더 미쳐버릴 것 같다. 그 순간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 분노가 일고 있었다. 나의 행복을 한 줌의 모래로 바꾸어버린 신에 대해 분노가 일고 있었다. 이때까지의 싸움이 나의 생존을 위해서 싸웠다면 지금부터의 나의 싸움은 신에 대한 분노이다.

“나의 행복을 파괴한 자 용서치 않겠어.”

환상의 공간일 지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분노를 폭발하고 있었다. 이게 꿈인지 환상인지 실제 환경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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