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사람이 차제구(茶諸具)를 내어와 녹차(綠茶)를 우려내었다. 곧 그윽하고 깊은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자 흑립의 소년은 녹차를 한 모금 머금더니 그대로 물마시 듯이 한 번에 들이켰다.
그것을 본 비대한 사람이 한마디 던졌다.
"무식한 놈 그게 얼마나 비싼 녹유차(綠乳茶)인데 그걸 한 번에 마시냐?"
"백년간 말린 만년설삼왕(萬年雪蔘王)과 만년화극홍련실(萬年火極紅蓮實)을 분말로 만들어 만년공청분유(萬年空淸粉乳)를 버무려서 거기다 백록환(百綠丸)을 녹인 차잖아요."
"그런데 알면서 그 걸 한 번에 마시나?"
"참나 뱃속에 들어가는 건 마찬가진데 한 번에 마시든 음미하며 마시든 뭔 차이래요?"
"쯧쯧 약차(藥茶)의 진가를 모르는 놈 기 껏 몸 생각해서 어렵게 구해 만들어 줬더니"
누군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만일 그게 약재상이나 무림인이었다면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극한지에서 자라는 눈처럼 새하얀 산삼을 설삼이라하고 그 중 만 년 묵은 설삼을 설삼왕이라고 하여 영성이 생겨 보통 사람이 먹으면 불로장생의 영약이 되고 무림인들이 먹으면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극양(極陽)의 영초이다.
설련실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빙극설련실(氷極雪蓮實)을 떠올린다. 하지만 빙극설련실 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것이 화극홍련실이다. 빙극설련실은 천지간에 가장 냉(冷)하다는 대설산(大雪山)에서 연이 닿으면 찾을 수 있지만 화극홍련실은 화천(火川)이 있는 천 장 깊이의 지하에 화하(火河)가 더 흐르지 못하고 화지(火池)가 형성된 곳에서 피어나는 영초가 화극홍련이고 여기서 백 년마다 열매를 맺는데 이것이 천지간에 가장 뜨거운 불의 결정인 화극홍련실이다. 이 때 까지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다. 다만 천 년전의 대의성(大醫聖) 유이태(柳理泰)가 자신이 저술한 의서 역천의경(逆天醫經)에서 그 가능성을 거론하였을 뿐이다.
공청석유란 천지 간의 특별한 조화가 서린 동굴의 종류석에서 지 정이 응집하여 우유빛 액체의 형상으로 백 년에 한 방울 맺힐까 말까 하여 떨어지는데 이걸 공청석유라고 한다. 이 것이 떨어져 고이고 고인 공청석유는 오래 묵을수록 그 효과가 뛰어나다. 이 석유를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무공을 모르 는 일반인은 무병장수하게 되며, 무공을 익힌 자는 내공을 속성으로 높여 주는 공능을 가지고 있다. 보통 영약이 내공의 경지를 올려준다면 공청석유는 많이 복용할수록 마르지 않는 공력이 계속 증가한다. 만 년간 떨어져 고인 만년공청석유는 그 효과가 탁월하며 여기서 만 년간 고인 공청석유를 채취하여 따로 습기가 없는 곳에서 천 년간 말리면 증발하여 사라지는데 그 자리엔 빛이나는 희미한 미세분말만이 남는다. 이 분말이 만년공청분말(萬年空淸粉末)이다. 효과는 석유 상태보다 일백 배 좋다.
백록환이란 천 년전의 대의성 유이태를 능가하는 의신이라 불리는 어느 인물이 백 여가지의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초를 모아 그 만의 배합방식으로 만들어 낸 절세의 영약인데 백록환 한 알로 거의 모든 병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백록환은 재료는 쉽게 구하지만 배합방식이 까다롭고 제조과정이 오래 걸려 일 년에 고작 한 알을 만들 뿐이었다.
소년은 머리에 깍지를 끼고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만년옹(萬年甕) 속에다 재배한 것인 거 다압니다. 그리고 백록환은 동포(仝匍)형님께서 십 년 전에 한 알 만든거로 쌍경옹(雙鏡甕)안에서 다량으로 복사 한 거 다 알아요."
비대한 체구의 장한은 밑천이 들통 난 듯
"그저 입만 살아 가지곤 쯧"
그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비대한 체구의 장한이 손을 한 번 흔들자 차제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철립의 소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형님"
"왜에?"
"기왕 갈거면 주찬궁(主讚宮)쪽 어때요?"
"거기? 거기 또 뭔 삽질을 하냐?"
"아니 아까 여기 오는데 월력호리가 주찬궁 애들에게 쫒기고 있길래..."
"월력호리? 월력호리면 하오밀문주(下午密門主)의 장중주(掌中珠) 잖아. 그런데 주찬궁에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