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동정녀 출생과 어린 시절의 비밀

가로수 1 3,207 2008.12.10 23:48
예수의 동정녀 출생과 어린 시절의 비밀


- James Still
- 이민수 옮김





예수의 기적적인 동정녀 출생을 자구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성서학자들이 포기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또한, 많은 자유주의 기독교 종파들은 조용히 철학적 본체로부터 기묘한 부분들을 떼어버리거나, 혹은 편리하게 그 문제 자체를 무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흥미를 자아내는 개념의 매력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여서, 예수의 동정녀 출생은 수백만 명의 절대적인 믿음이 되어왔다. 이 에세이의 목적은 특히 예수와 관련된 동정녀 출생의 의미와 상징에 강조를 두고, 역사상의 탕아들(prodigal children) 사이에서 신화적 연관을 탐색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의 동정녀 출생과 그를 둘러싼 신비들은 당연히 신화적 맥락에서 완전히 탐색될 것이다.


우리는 사막의 유목민들과 비옥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계곡에 자리 잡은 여신 숭배자들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고대 우르와 수메르 사이에 자리 잡은 메소포타미아는, 서력기원 이전 삼 천년 동안 거의 지속적으로 전쟁에 시달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도서관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이다. 니느웨의 아슈르바니팔 왕(fl. 620 BCE)은 아시리아 제국이 쇠퇴의 길을 걷기 바로 직전에 통치했다. 전장에서의 그의 잔인한 성취들은 문자와 배움에 대한 강력한 열정에 의해서 완화되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전리품에는 메소포타미아의 것들을 포함하여, 그가 정복한 주변에서 가져온 종교 서적들과 역사 서적들이 포함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제국은 붕괴되었고, 불과 몇 년 후, 니느웨 자체가 페르시아 침략자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침략자들은 오로지 니느웨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도시의 장벽을 파괴했지만,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은 완전히 무시했는데, 아마도 단순한 기행으로 생각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도서관은 곧 사막의 이동하는 모래에 휩싸여 버렸다. 마침내 1845년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니느웨와 그곳에 묻힌 책들의 보고를 재발견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화되기 전 세계는 다산의 여신이자 어머니 여신인 이쉬타르(Ishtar)를 숭배하는 조그마한 농업 정착지들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이쉬타르는 비가 내리게 했고 곡물들이 출생, 삶, 죽음이라는 지속적인 순환 속에서 자라게 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이쉬타르 숭배는 주변 부족들의 호전적인 남성 신들이 탁월한 위치로 두드러지게 출현함에 따라 쇠퇴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막 부족들의 전사-왕들이 계속해서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땅을 침략해 왔고, 마침내 그 땅을 빼앗아 자신들의 왕국에 편입시켜 함께 흥했다, 쇠하곤 했다. 이들 초기 민족들 가운데 첫 전사-왕은 아카드의 사르곤으로, 2200 BCE에 왕국을 세웠다. 이쉬타르는 이제 훨씬 강력한 부성 신들의 모임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었고, 전사-왕들의 새로운 남성 신들에게 굴복한 작은 신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사르곤은 아마도 영웅적인 출생과 어린 시절을 가진 것으로 이야기되었던 첫 번째 바빌로니아 왕이었을 것이다. 그는 천한 출생의 어머니와 산신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비밀리에 태어났다. 후에 호루스와 모세에게 차용되어 사용된 모티브에서처럼, 사르곤의 어머니는 아이를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넣고 신의 적들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아기는 평민에 의해 하류에서 구출되었고 여신 이쉬타르는, 사르곤의 초기 어린 시절과 마지막 운명, 즉 왕좌에 오르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보호했다. 사르곤의 전기는 “과장” 전통이 시작되게 했고, 이어지는 왕들은 그를 따라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신성한 출생과 숙명이라는 주제는 인간인 왕이 신의 혜택을 입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인정과 힘을 얻는 수단이었고, 이는 종종 죽음 이후에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1000 BCE에 이르면, 우리는 이러한 전통이 왕들이나 중요 인물들의 전기에서 그들이 신성한 출생을 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초월해 그들 자신이 신들이 되었다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족장으로 고대 바빌론에 살면서 설교했던 조로아스터는 하느님에 의해 임신이 되었으며 동정녀 출생이라고 전해졌다. 동정녀 출생은 이쉬타르 여사제들의 책임이었는데, 그들은 다산 의식을 수행했고, 예언하였으며, 바빌론 전역의 사원들에서 정교한 의식을 수행하였다. 사원들을 관리했던 여사제들은 사원의 활동들에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제법 짭짤한 매춘 사업도 벌였다.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갈 때, 바빌론 유수를 겪고 있던 히브리인들은 여사제들과, 그들이 방문한 남성들에게 했던 불경스러운 성적 봉사에 대한 지중해 민족들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함께 지니고 갔다. 이쉬타르 여사제들의 역할은 장래성 있는 남성의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주는 것과 그 아이의 신성한 욕구에 봉사해 주는 것 둘 다였다.


“성스러운 동정녀”는 이쉬타르(와) Aserah의 매춘부-여사제들의 칭호였다. 그 칭호는 신체적 동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성스러운 동정녀”들의 역할은 성적 숭배를 통해 어머니의 매력을 분배하고, 치료하고, 예언하고, 신성한 춤을 추고, 죽은 자들을 위해 곡을 하고, 하느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1]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여사제들의 아이들은 bathur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동정녀 출생”을 의미하는데, 이 아이들은 사원의 신성한 매춘부-여사제들에게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세계에는 이쉬타르의 기묘한 의식과 같은 일이 없었고, 그래서 히브리어의 bathur라는 자구를 parthenioi로 잘못 해석하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 단어는 똑같이 “동정녀 출생”이라는 의미이지만, 영적인 것이 아닌, 신체적 처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로아스터의 우주론에서는 네 개의, 삼천 년의 시간 블록들 속에서, 만 이천 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마지막 시간 블록은 예언저의 신성한 출생으로 시작되며 세계의 계시적인 종말과 악을 이긴 선의 회복을 알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고 한다.


[조로아스터의] 출생과 세상에서의 가르침은 세계의 만 이천 년 중 마지막 삼 천년이 시작됨을 나타낸다. 이 기간이 끝나면, 그의 영적인 아들 Saoshyant, “도래하는 구세주”, 세계의 메시아가 나타나, 거짓을 이긴 진리의 승리를 완결시키고 하느님의 태고의 창조의 회복을 영원히 정립할 것이다. 전설이 이야기하는 바에 의하면, 조로아스터의 출생지는 . . . Daiti 강 옆, 지구의 일곱 개의 땅들 중 가운데에 있는, Eran Vej였다. . . . Angra Mainyu[거짓의 악마]는 북쪽의 땅으로부터 달려와서 자신의 무리에게 “그를 소멸시키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성스러운 아기는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 . . 악마들은 흩어졌다.



기원전 삼 세기 동안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개척된 그리스 제국에서, 이러한 동방의 믿음과 신화들은 그리스, 이집트, 셈 민족들의 것들과 혼합되었다. 알렉산더는 지중해 세계를 동방의 기묘한 풍습과 관습들과 연결하고 싶어했고 자신의 두 제국들을 정치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그리스인들은 이미 잘 발달된 신성한 임신 개념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구세주 신 디오니소스는 제우스가 뱀의 형태로 페르세포네를 방문한 후에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리스 신화들에 페르시아의 것이 더해져 옛 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 이야기에 동정녀(parthenioi) 출생이라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들어가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이방인 신화들은 이쉬타르 여사제들의 동정녀 출생 의례들을 자신들의 믿음과 종교에 완전히 수용하게 되어서, 각 구세주-신들은 그러한 신성한 출생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세포네가 어머니인 데메테르 여신에 의해 동굴에 감춰져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곳에 있는 동안, 페르세포네는 양털 피륙으로 우주를 거대한 융단으로 짜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뱀으로 변장하고 페르세포네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제우스의 아들을 임신했고 그를 디오니소스라 이름 지은 후, 제우스의 다른 질투심 많은 아내들로부터 어린 아기를 지키기 위해 동굴 속에서 아이를 보살피고 영양을 공급했다. 또한 헤라클레스도 역시 신으로써 태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머지않아, 페르세우스, 미노스, 아스클레피오스, 밀레투스, 기타 많은 신들이 모두 특별하게 선택된 인간인 여성과 신에게서, 이쉬타르의 처녀 여사제들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태어나게 되었다. 종종 특별한 의례에서 신은 여성을 영의 형태로 임신시킬 수도 있었다. 제우스는 다나이(Danae)를 태양빛의 형태로 방문함으로써 임신시켰고, 이쉬타르에게 바쳐진 비둘기가 성령의 형태로 마리아를 임신시키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 선포한다.[3]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신화가 혼합된 결과 하나가 미트라이다. 미트라는 페르시아의 신이었지만, 다름 아닌 그의 이름이 “이국적인 동방의 향취를 주는 데” 사용되었다.[4] 그리스의 미트라교는 완연히 이교적이었다. 미트라교는 그리스도교와 같은 시기에 시작되어 번성하였다. 이 종파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며, 삼 세기에는 수백 개의 미트라에움―미트라를 숭배하는 지하 사원―들이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던 소아시아, 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과 스코틀랜드 국경에 퍼졌다. 미트라는 신체적으로 동정녀 출생이라고 전해지는 지중해의 신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다. 신체적 동정녀 출생은 바빌론의 이쉬타르 여사제들을 그럴듯하게 흉내 낸 것이다. 미트라는 “황소 도살자”로 그려졌으며 돌에 새겨 진 양각들은 미트라가 거대한 황소의 목에 칼을 찔러 넣고 있고, 피가 땅으로 쏟아지고 있는 투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소 도살 장면은 항상 동굴 안에 놓여져 있었는데, 이는 미트라에움이 동굴 속과 지하 석굴 속에 위치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황소 도살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리스-로마 세계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인들은 태양과 달, “움직이는” 별들(행성들), 혜성들, 그리고 기타 천체들이 고정되어져 있는 지구 주위를 움직이고 있는 천상의 신들이라고 믿었다. 태양신(Sol invictus)이 천상의 신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특별히 경배되었고 12월 25일 동지 동안 하늘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매년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되었다.[5] 황도면―태양이 하늘에서 이동하는 길―이 12궁도를 형성하고 있는 열두 가지의 별-패턴 지대를 지나쳐가기 때문에, 태양은 열두 궁도의 신들을 “낳는” 혹은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신으로 생각되었다. 그리스의 천문학자 힙파르쿠스는 기원전 128년, 12궁도의 별자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쪽으로 천천히 흘러서, 동지에 다다른 태양의 위치와 비교할 때, 하늘의 새로운 위치에 나타난다는 놀라운 발견을 해 냈다. 매 2만 5천 년마다, 이러한 별자리들은 서서히 움직인다. 이는 오늘날, 지구가 그 축 위에서 “흔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분점의 세차로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섭고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으며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힙파르쿠스는 세차가 천체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라고밖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즉, 힙파르쿠스의 발견은 전체 우주가 이전에는 아무도 알아차린 적이 없었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것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 . . [그러한 세차 운동은]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새로운 힘이 천체 전체를 움직일 수 있음이 탐지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주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신의 활동을 알려 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6]


힙파르쿠스가 이런 발견을 하던 당시, 태양신의 부활을 신호하는 춘분이 양자리 별자리에서 나타났다. 양자리 전에는, 춘분이 황소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천상의 신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러한 천계의 움직임과 황소자리의 “죽음”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일으켰다. 미트라는 황소를 도살할 정도로 강력하고 천계 그 자체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천상의 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나 그 전에 나왔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미트라교에서는 세상이 선과 악의 끊임없는 전쟁터였다. 악마의 숙주들과 하느님을 섬기는 선민들 사이의 치열한 투쟁인 것이다. 신성이 육체들, 그리고 빛의 선한 운명을 망치는 어둠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미트라는 태양신의 신성한 아들이자 우주의 어둠에 대항해 싸웠던 선한 구원자를 나타낸 것이며,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악의 앞잡이들과 싸웠다.


미트라는 천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때문에, 우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보아졌다. 미트라의 조각이 알 모양의 petra genetrix, 즉 “생식 바위”로부터 뛰쳐나오는 벌거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그의 출생을 나타내고 있다. 미트라에움이 위치해 있던 바위 동굴들은 미트라가 출현한 “자궁”을 상징한다. 그가 바위에 감금되어져 있다가 탈출한 일은 그가 천체로부터 탈출해서 천계를 지배할 수 있는 우주를 초월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트라의] 출생은 solo aestu libidinis, “애욕의 열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지구가 전형적인 인간을 낳았다―동정녀 출생.[7]


미트라는 12월 25일,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날에 있는 동지 전날에 태어났다. 미트라의 출생에 새벽빛이 밝아올 때, “사제가 사원에서 나와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신이 태어났도다!’”[8]


5세기에 그리스도교가 힘을 얻자, 미트라교를 이단으로 선언하고 무자비하게 응징했다. 그 이전 시기에는, 그리스도교와 미트라교가 공존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에 대해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혼합과 영향은 그리스도교가 미트라교를 추월한 방식에서 명백해진다. 그리스도교는 미트라교의 추종자들을 자신들에게 편입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며 많은 전-미트라에움들이 교회로 변신했다. 오늘날 많은 로마 교회들, 무엇보다도 특히 로마의 성 클레멘타인 교회는 아치형 매장 토굴에 여전히 미트라에움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미트라교와 그리스도교를 나누는 선은, 두 종교가 서로를 맞대고 존재하던 수 세기 동안, 이렇게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미트라교가 그리스도교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흐릿했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두 종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유사성들을 낳았다.


[미트라는] 세상의 어둠과 악을 정복하기 위해 아버지신이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목동들만 출생의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미트라는 길, 진리, 빛, 말씀, 하느님의 아들, 착한 목동 등 다양하게 묘사되었으며, 종종 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어린양을 이끄는 것으로 그려졌다. 미트라의 추종자들은 12월 25일(동지)을 축하했는데, 종을 울리고, 축가를 부르고, 촛불을 켜고, 선물을 나누고, 빵과 물로 성찬례를 행했다. 12월 25일과 춘분(지구의 여신을 이르는 라틴어에서 딴 말이 이스터(부활절)) 사이에는 정의와 사랑의 신인 오시리스를 찾는 40일이 있었다. 이 종파는 또한 불길한 금요일(예수가 처형된 성 금요일을 의미함. 옮긴이)을 지켰는데, 그 날은 지구를 비옥하게 한, 미트라의 희생적인 황소 도살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전투에서 지친 미트라는 상징적으로 시체로 표현되며, 신성한 바위 무덤에 안치되었다가 사흘 후 환희의 축제 때 꺼내졌다.[9]


예수의 동정녀 출생 전통은 아마도 이 시기 동안 만들어졌을 것이다. 마태오와 루가는 각각 1:18-25, 1:26-35에서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쓰고 있다. 공관복음들 중 가장 오래된 마르코복음에는 그러한 주장이 나오지 않으며 요한복음은 신성한 말씀(Logos)인 예수를 단순한 피와 살로 격하시키는 일을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은 그 이전의 Q―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직접 나왔다고 믿어지는 40개 정도의 구전 격언들―와 밀접한 유사성을 가지며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기 전 예수의 생애를 다루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예수의 출생 장소 혹은 출생 방법들은 전혀 불필요한 것들이었다. 하느님의 왕국은 곧 올 것이었고 전달자 예수는 그 사실과 살아 있는 동안 오게 될 새로운 천국과 지구를 준비하라는 것을 경고했다. 예수의 계시적 메시지와 회개하고 주를 기다리라는 지시를 감안할 때, 누구의 후손이라는 전기는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대로 하느님의 나라가 당면해 있다면, 현재에 요약된 것을 읽을 더 이상의 세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구전에 의해 예수의 가르침이 짤막하고 간결한 pericopes(짧은 경구)로 보존되었고, 예수의 추종자들은, 당시에 일어난 묵시적 운동의 특성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들을 적어 놓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화 된 유태인들과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고려하고 있던 그리스 이교도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지연이 대답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야기했다. 게다가, 그리스도교가 개종자들을 내고 있었고 마침내 번성하게 된, 그리스 이교도들은 어떠한 새로운 구세주나 약속받은 천상의 보상에 대해서도 천성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이들 그리스인들은 당시에 발생한 수많은 신비종파나 신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그것들은 각각 천상의 내세에서의 부와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들 그리스인들에게 제공할 것이 거의 없었다. 누구에게 듣더라도, 그는 인간인 유태인 메시아였을 뿐이며, 아브라함의 아들들에게만 이야기했고, 자신의 선택된 민족들에게만 새로운 예루살렘을 지어주실 주를 위한 길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1 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 추종자들에게 알려졌던 마르코의 예수(마태오, 루가, 요한복음 이전의)는 디오니소스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유서 깊은 도덕적 구세주 신들의 특성을 아무 것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에 대해 나중에 추가된 동정녀 출생은, 예수가 그리스 세계의 이교도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히브리의 가르침들은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나야 한다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바로 그 사상 자체가 메시아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유태인의 기대에 생소한 것이었다. 그리스화 된 예수와는 정 반대로, “유태인의 신성한 책들 속에는, 메시아 혹은 그 누구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거나, 혹은 태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은 전혀 아무 것도 없다.”[10] 예수는 새로운 왕국으로의 안내인이 될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 유태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거부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예수를 이방인들에게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은 요르단 강의 세례자와 예수가 거기에서 세례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인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 유포되었던 마태오와 루가 복음의 초기 버전들도 역시 세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 이들 그리스도교도들은 자신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던 그리스의 구세주 신들의 본을 따 자신들의 구세주를 손질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를 이교도 신들처럼 강력하고 명예롭게 해 줄 수 있도록 예수의 전기를 쓰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르코 복음(70 CE)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유포되어 있었지만, 마태오와 루가의 복음은 예수의 어린 시절 전기를 추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마태오 복음의 처음 두개의 장과 루가 복음의 처음 세 개의 장은 이교도들의 신비 종파의 신들과 같이 신성하게 태어난 구세주 신만을 받아들이려는 그리스화 된 사람들에 의해 2 세기에 추가되었다.[11]


1세기가 끝나갈 무렵, 예수의 기원을 적어서 이교도 비평가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모시고 있는 신들이,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처럼 잘 알려져 있었고 신과 동정인 어머니 사이의 일치에 의해 태어나게 되었다고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신을 따르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독립적으로 글을 쓰면서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의 작가들 혹은 가필자들은 자신들의 복음 처음에 예수의 출생에 관한 설화를 첨가함으로써, 예수를 그리스의 구세주 신들의 지위로 향상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 최종 결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비록 동정녀 출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태오와 루가가 “신의 영감을 받은” 작가들로 여겨지고 있기는 하지만 . . . 그들은 사소한 내용에서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마태오에 따르면 천사는 요셉에게, 루가에 따르면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수태고지(주의 강림을 알리는 천사 가브리엘의 선언)는, 만일 루가가 옳다면 마리아가 수태하기 전에 있었고, 마태오가 옳다면 후에 있었다.[12]


마태오와 루가 복음에 가필되던 당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 세계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으며 모태가 되었던 종교인 유태교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전의 이교도들이 집단으로 개종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을 새로운 종교로 지니고 들어왔다.


히브리의 Tanakh마저 잊혀져서 그리스의 70인역으로 대체되었는데, 그것은 구약성서를 그리스 용어와 개념으로 바꾼 것이어서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부정확하거나 히브리어 본문을 잘못 해석한 경우가 있었다. 그리스어를 하는 마태오 복음의 저자는, 70인역의 잘못된 번역본에 의존해서, 글을 쓰면서 히브리어 almah(젊은 여인)를 그리스어 parthenos(처녀)로 썼다.


보라, 처녀(parthenos)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여라. 이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다.[13]


70인역은 이사야서 7:14의 임마누엘에 대한 예언에서 신체적인 동정녀 출생을 주장함으로써 이쉬타르 숭배의 동정녀 사원 관행을 일부 유지했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의 나중 작가들은 참고 서적으로 70인역에 의존했다. 이사야서의 이 구절들을 읽은 후, 마태오는 이사야가 말한 동정녀 출생 역할에 예수를 끼워 맞추는 방법과 그로 인해 바로 예수의 출생이 예언을 달성하게 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 생각의 유인가와 마침내 그것을 정경에 영구적으로 끼워 넣게 된 동기는 엄청난 수의 이교도 개종자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개종자들은 미트라와 페르세우스와 같은 동정녀 출생인 신들을 뒤로 하고 그렇지 않은 유태인 메시아를 선택하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사야서 7:14의 본문은, 히브리어 Neviim으로부터 적절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확실히, 나의 주님은 스스로의 방법으로 징표를 주실 것이다! 보라, 젊은 여인이 아이와 함께 있고 아들을 낳으려 한다.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게 하여라.


이 “젊은 여인”은 아마도 결혼하지 않았거나 신체적으로 동정녀일 수도 있겠지만, 구세주 신들을 낳는 임무를 띠고 있었던 이쉬타르의 이교도 성전에 있는 성스러운 동정녀들의 역할과 혼동을 일으키지는 않아야 한다. 이 구절은 이사야의 시대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야웨의 직접적인 표징 외에는 아무 다른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특별히 예언자가 아하즈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에게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유대와 전투를 벌이지 않게 될 것임을 확신시키면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한 것이다.[14] 이사야는 “단순히 아하즈에게 지금은 동정인 한 여인이 곧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정치적인 위험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15] 마태오는, 예수의 동정녀 출생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이사야의 구절을 맥락에서 잘라내어 예수의 동정녀 출산을 통해 성취된 예언이라는 식으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그 어린아이가 아직 아기일 동안에 “다마스커스의 보화와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전리품”이 아시리아에 의해 약탈될 것이라고 한 점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8:3-4에서 맥락이 잘렸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침략과 그 결과인 노획은 기원전 7 세기에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한 교리가 어떻게 공표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너무나 명백하다. 초기에, 유대화 된 사람이 예수를 재림(Parousai)해서 유태 왕국을 세울 메시아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구절들을 가필했다. 그런데, 약 115-125 (CE)에, 이러한 가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화 된 어떤 사람들이 마태오 1:18-25와 루가 1을 그 위에 덮어 썼고, 그래서 예수는 동정녀 출생을 하게 되었으며, 디오니소스와 일반적으로 유사한 구세주가 된 것이고, 따라서 이교도 세상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16]


첼수스(Celsus, fl. 180 CE)와 같은 이교도 철학자들이 동정녀 출생 신화를 공공연히 비난하게 된 시기에 이르러서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그 교리는 이미 집단의 마음속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원고 속에 내제되어 버렸던 것이다. 첼수스는 동정녀 출생 설화 뒤에 담긴 동기를 간파하고 이교도 구세주 신들을 모방하기 위해 예수가 동정녀 출생을 했다고 한다며 그리스도교인들을 비난했다.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그리스도교에 의해 채택된 것과 유사한 교리들을 지니고 있다. 호머의 Galactophagi, 갈리아족의 드루이드들, 심지어는 (예를 들어) Getae도 매우 유사한 교리들을 믿었다(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사실성). . . Linus, Musaeus, 오르페우스, Pherecydes,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그리고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교리들을 이해했다. . . . 얼마나 웃기는가! 분명히 그리스도교는 다나이와 Melanippe, 혹은 Auge와 Antiope의 신화들을 사용해서 예수의 동정녀 출생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17]


첼수스의 신랄한 비난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변명은 취할 수밖에 없었던 방어적인 자세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유세비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교부들은 예수를 이교도 신들과 비교하거나 강하게 대비시키면서, 만일 예수가 거짓이라면, 미트라와 헤라클레스도 그렇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기 동안,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여전히 이교도적 뿌리에 매달려 있었고 어째서 자신들의 신이 미트라, 디오니소스, 혹은 기타 그리스나 로마 신들과 동등하게 간주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보수적인 위치에서(conservative status quo position) 그리스도교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던 로마 비평가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은 어째서 그리스도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지위가 확인된 신들의 표준적인 레퍼토리를 가진 신들에게 맞추기를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세주 신이 동정녀 출생이라는 이교도적 생각은 매우 완고했다.


그러한 이야기(동정녀 출생)가 종교적인 파벌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한 가지 . . . 요인은 Gilbert Murray가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교의 구세주 신들이 종종 동정녀 출생임을 지적했다. 아버지 신이 인류에게 구세주인 자신의 아들을 주는데, 이는 여신이나 인간을 임신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는 욕정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의 목적은 인류의 위대한 구세주를 출생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임신은 육욕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행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이오는 신성한 손위에 누움으로써 임신하게 되었고, 다나이는 황금빛 태양광에 의해 임신하게 되었던 것이다.[18]


어디에서도 공관복음의 가필이 심하게 뿌리내렸던 그리스-로마 세계에서처럼 동정녀 출생이 강하게 강조되지는 않았다.


동정녀 출생의 교리는, 그것 없이는 어떠한 예언자나 구세주 신도 신성하게 수태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어떠한 종교의 설립자도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고대 종파들 가운데에서 그토록 흔하게 나타났던 것이다.[19]


예수가 태어났다는 동정녀 출생은 나중의 이교도인이 첨가한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구세주를 추가로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유일한 목적에서 가필될 것이다. 유태인들과 같은 확고한 성서적 기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존재하고 있던 신들의 특성과 사건들이 자신들의 구세주에게도 일어났다고 함으로써 그를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는 신으로 전통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메시아적 유대주의에서 그리스-로마 이교 신앙으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이 구체화된 것이다.


외경서―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헌들―들에 나타난, 예수의 동정녀 출생의 지속성을 설명하는 단서들은 아마도 50 CE에 쓰여졌을 도마 복음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비유를 써서 사막에서 설교하면서 “귀가 있는 사람은 듣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한 여성이 다음과 같이 외쳤다. “당신을 지니고 있던 자궁과 당신을 먹여 주었던 가슴들은 축복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과 그것을 진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축복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신하지 않았던 자궁과 젖을 내지 않았던 가슴들은 축복받았습니다’라고 하게 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20]


예수는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닥칠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정말로 하느님의 왕국으로 이르는 길은 좁기 때문이었다. 복음 속에서 예수는 종종 비유적인 말을 사용하고자 할 때 자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그려지는데(예를 들어, 니고데모의 ‘위로부터 나기’ 이야기), 이것도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아무 땅으로나 가서” “여자에게서 나지 않은 사람을 보거든, 엎드려 절하고 그를 경배하라”고 이야기한다.[21] 도마의 예수는 계속해서 말장난을 벌이면서 제자들에게 시작을 찾는 것에 의해서만 여행의 끝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이 문구의 불교적 색체는 제외하고, 나중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제자들이 여행하며 설교한 후에는 그러한 존재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작”(예수)이 여인에게서 나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을 수 있다.



복음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마르코 복음은 예수가 유태인 메시아이며, 다윗과 같은 메시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태어났음을 이야기한다. 다윗의 아들이 와서 재림을 이루고 왕좌에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던 유태인 금욕주의 교파들은 그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마르코 복음이 기반을 두고 있는 그 이전 문헌들은, 예수가 그곳이 아닌 나자렛의 갈릴래아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공관 복음들 중에서 마지막 두 개,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은 예수의 출생을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림으로써 마르코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시도한다. 메시아에 대한 유태인들의 기대에 전혀 무관심했던 요한복음은, 오로지 “그로 말미암아 군중 가운데에는 분열이 생겼다”(요한 7:43)면서 소개한 갈등의 원인을 위해서 예수를 다시 나자렛으로 돌려놓았다. 이 갈등은 예수가 태어났을 때 나자렛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갈릴래아에 없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사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스운 자기 충족적 예언에 힘입어, 그 갈릴래아 마을은 예수의 출생지라는 소식이 유명해 진 후 3 세기에 세워졌다. 예수를 나자렛과 연관짓는 이러한 기묘한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구전보다도 오래된 것이며 태양 숭배의 한 형태를 수행하고 있던 에세네파와 같은 묵시적 집단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태양신으로 간주한 것일 수 있다. 나자렛은 히브리어에서 “(12궁도의) 열 두 표식”인 Nazaroth과 상당히 유사하게 만들어진 말이다. 어근이 된 동사 nazar는 “둘러싸다”는 의미이며, 이는 매일 밤 머리 위를 지나치는 12궁도의 열두 별자리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2] 욥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야웨의 거룩한 천계의 힘을 깨닫게 되었고, 야웨는 맹렬한 사막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너는 좀생이를 끈으로 묶을 수 있느냐, 또 오리온자리를 매단 밧줄을 풀 수 있느냐? 너는 열 두 궁성(Nazaroth)을 제 철에 이끌어 낼 수 있느냐?[23]


이 이론은 플리니우스가 에세네파라고 한, 사해 근처 쿰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전통적인 태음력에 기초를 둔 유태교의 달력이 아니라 태양력에 기초를 둔 달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지지된다. 소 플리니우스는 112 CE에 Trajan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은 새벽녘에 만나는, 그리스도 quasi deo(그리스도, 마치 그가 신이라는 듯이)를 존중하며 찬가를 부르는 무해한 사람들로 보입니다”하고 보고했다.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의 계보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 넣으려 했다. 유태인 메시아들은 “인간의 아들”의 역할을 완수하고 그들을 임명한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측면에서만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메시아 자신은 그가 수행하도록 선출된 임무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태오와 루가가 글을 쓸 때, 예수는 단순히 메시아의 소임을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교에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이전 글들과 격언 자료가 보여주는 것보다 예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했다. 서로 독립적으로 글을 쓰면서, 마태오와 루가는 구약 성서와 수비학(numerology)에 기반을 두고 서로 상치되는 계보를 쓰게 되었다.


마태오의 계보는 강력한 수비학적 마법의 신뢰성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이다. 그는 14씩 세 번에 걸친 역사상 분수령이 된 사건들에 예수의 계보를 위치시켰다.


“그리하여 세대수는 모두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으로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로부터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사 대이다.”[24]


히브리어에서 “일곱”이 마법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계보를 7로 나누어지는 묶음으로 만들려는, 그리고 그렇게 묶음으로써 예수의 탄생이 “바빌론 유배”와 다윗 왕 자신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을 표시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마태오가 뽑아낸 여섯 묶음의 일곱 이름들이 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
 아람
 암미나답
 나흐손
 살론
 보아스
 요셉
 이새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삽
 여호사밧
 요람
 우찌야
 요담
 아하즈
 히즈키야
 므나쎄
 아모스
 요시야
 여고니야
 여고니야
 스알디엘
 즈루빠벨
 아비훗
 엘리아킴
 아졸
 사독
 아힘
 엘리훗
 엘르아잘
 마딴
 야곱
 요셉
 예수
이스라엘의 형성 바빌론 유배메시아로써의 예수



마태오는 반으로 나뉘면 7이라는 숫자의 마법적인 특성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완전한 세 묶음의 14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열왕기상 3의 계보에 나오는 요아스, 아마지야, 아조리야를 빼먹었고, 여고니야를 두 번 세는 실수를 범했다. 마태오의 계보에 의하면 예수는 다윗왕 자신의 “세 번 그리고 한 번의 일곱 번째 아들”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인상적인 계보이며 고대 세계와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에 점성술과 수비학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교도 비평가들은 그리스도교가 이집트 학자들로부터 배운 궤변(속임수)과 마법을 수행한다고 비난했다.

마태오와 루가의 출생 설화도 역시 천체에서 별들이 올바른 위치에 있을 때 예수가 태어나게 함으로써 점성술적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신화 만들기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복음에 활력을 넣지만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마법적 특성을 부가시키는 이러한 첨가들과 예수가 태어날 때 마법사들이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이교도 개종자들을 위해 예수를 그리스화 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라고 가정해도 안전할 것이다.

Comments

기똥찬 2009.10.11 20:17
잘 읽었습니다 스크랩 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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