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역할

한님 0 1,374 2011.08.30 19:07

교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기독교의 교의는  
부정적인것이 사실이며, 때로는 매우 모욕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왜곡된 시각에 대해 수차례 글을 쓸까 생각을 했었지만,  
안티기독적인 글이 될수 없을것 같아 쓰지 않았었습니다.   
비록 아래의 글은 안티성향의 글은 아니지만, 오늘 노아님과 매우   
살짝 토론을 하다 반복되는 여성비하성 글에 다소 의아해 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이하 글은 반어체로 씁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초기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당시 여성들은 교회에서의 일정한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여성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역할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예수의 12제자는 모두 남자였고, 이것은 1세기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교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나타나듯이 여성들도 예수를 따라 다녔다.  
게다가, 이 가운데 일부는 예수와 제자들을 제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예수의 순회 선교 사역의 후원자 역할을 잘 감당했다.(막15:40~47, 누8:1~3)  
예수는 공개적으로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여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막7:24~30, 요4:1~42)  

십자가 처형 장면은 더욱 극적인데 남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을때도 
끝까지 예수를 믿고 따른것은 오로지 여인들뿐이였다.(마27:55 마15:40~41)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복음서 기자들의 보도다.  
 
예수의 메시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여인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예수가 선포 했던 "하나님 나라"라는 메시지는 불의도 없고, 고난도 없고,  
죄악도 없으며, 부자건 가난한 자이건,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당대에 억압당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2세기 말엽에 있었던 켈수스 논박을 살펴보자.  
켈수스의 기독교인 비하 발언을 보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거의 모두 아이들과 
노예들과 여자들이라는 이유로 기독교를 업신여기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것은 변증가 오리겐도 장편의 논박을 통해서 켈수르를 
비판하고 있지만, 초기 기독교의 인적구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들어 그들에게 힘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서 여성들이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간단히 추론할수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의 편지속에는 초기 교회에서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로마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분명히 여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롬14장)  
예를들면,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인 뵈뵈를 언급한다.(1절)  
뵈뵈는 바울의 후원자였으며,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로 이 사람을 
통해 보낼 정도로  바울은 뵈뵈를 신뢰했다.(1~2절)  
브리스길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이방 선교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기독교 공동체가 자기집에서 모임을 가질수 
있도록 힘껏 지원했다(3~4절) 
여기서 브리스길라가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  
마리아라는 여인도 소개된다.(6절) 
그녀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로마 교인들을 위해 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와 버시라는 여인들도 언급된다.(12절)  
그 왜에도 율리아와 루포의 어머니와 네레오의 자매도 있다.  
이들은 모두 공동체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13,15)  
 
이 모든 여인들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인물은 유니아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그녀가 "사도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있다(7절)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어 신약성서의 문장은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고 되어있다.  
 
요약하자면, 바울 시대만 해도 여자들은 혁혁한 역할울 수행했다.  
 
저 유명한 바울의 갈라디아서 선포를 보자.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 3:27~28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다는 사상은 바울 공동체의 예배 의식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여자들은 침묵하는 가운데 그저 수동적으로 "말씀을 든는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활발하게 예배에 참여했다.   
예를 들면,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도와 예언하는 일을 했다.(고전11장)  
 
하지만, 바울이 살던 시대적 한계는 존재했었다.  
고전11:3~16절은 여자가 예배볼때 "권위의 표로" 무언가를 쓰고 할것을 요구한다.  
 
정리하자면, 바울의 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지만은,  
이 것을 근거로 사회적인 관계를 혁명적으로 뒤엎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도래할때가지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든 사람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런 바울의 사상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래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쟁시 바울추종세력들은 성경을 변개하기도 하고,  
아예 바울의 이름을 도용해 편지를 쓰면서, 여성의 지휘를 격하 시키는 짓을 
자행하게 된다.  
 
    <나머지는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

 

   <이어지는 글입니다..>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1~15  
 
위의 구절은 1500년간 여성을 옭아맨 악명 높은 구절이다.  
태생적으로 여자는 마귀에게 잘속는 체질이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게 되면 결국 그 남자를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이끌 뿐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의 구절이다.  

다행히도 이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다. 
이는 예술가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의 생각이다.
(보수적인 학자들도 많이 있음.AD115~130년 사이에 쓰여진걸로 보임.) 
2세기에 접어들어, 제법 많은수의 기독교인들이 생겨 나기 시작하고 
공동체가 여기저기 형성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를 가졌던, 공동체 지도자들은 
여성의 권위를 제안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교회내에서 여성의 직위를 제안하는 논쟁들은 꾸준히 계속 되었으며,  
신약성경에서뿐 아니라, 
속사도들의 편지속에서도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주제였다.  
앞서 전편에서 논한 바울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의 사상은 
2세기경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여성들을 교회에서 
침묵하게 하는 만행을 성공시킨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울이 직접쓴 편지들도 변개 했다.  
 
33 :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34 :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해야 합니다.  
35 :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36 :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났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내렸습니까?  
    - 고전 : 14:33~36  
 
마치 위의 디모데전서 2장을 보는듯한 위의 구절은 변개된 것이다.  
3개의 초기 헬라어 사본과 11개의 초기 라틴어 사본에 보면, 
34~35절의 구절이 33절 뒤에 있는것이 아니라, 40절 뒤에 붙어 있다. 
의심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또한, 이 구절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26~33절은 공중 예배 시간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찌를 가르치고 있고, 
36~40절 또한 같은 주제의 가르침이다.  
만약 34~35절이 빠진다면, 기독교인 예언자들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게  
드러나며, 전체적으로 문맥도 훨씬 부드러워 진다. 
그런데 여성의 역할이라는 34~35절의 주제는 지금 이 단락의 문맥을 끊어 버린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지금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끼어들어, 그 원래 주제의 흐름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문맥의 문제만 아니라, 이 구절은 매우 파격적으로 보인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다른 단락에서 말하는 내용과 너무나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 고전11장을 보면 여자가 교회 안에서 말하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삽입된 34~35절은 정 반대로 말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는 이런말을 하고, 저기서는 저런말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위 구절은 변개된것이 확실하다.  
이뿐 아니라, 헬라어의 원문 단어의 변화도 있는데 이는 너무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므로 생략한다.  
 
또한, 사도행전 17장과 로마서 16장의 여성에 대한 비하도 변개 된 것이다.
(설명 생략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할 이유가 없다. 
목사도 될수 있고,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도 될수있고,  
당회장도 될수있고 무엇이든지 될수있다. 
즉 남자가 전통적으로 해오던 기독교내에서의 모든일을 여자도 다 할수 있고 
해도 괜찮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임과 동시에 기독교에서 그토록 추앙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끝-  
 
제길~ 
안티인 예술가가 왜 이런글을 써고 있는지 모르겠네… 
점점 미쳐가는구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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