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에서의 성령
구약성경에서 성령이란 낱말은 시 51:11; 사 63:10.11 세 구절에만 등장한다.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사 63:10~1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을 두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위의 세구절 조차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성령으로 대체하기는 힘들지만 기독교인들은 이구절을 근거로 성령이 구약부터
존재해온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라해서 히브리어로"루아흐(ruach)", 헬라어로는"프뉴마(pneuma)"란 용어가 구약에 총378회 나오는데
이것은, 바람, 폭풍, 감정, 숨결 등을 의미하는것이다.
비록 기독교인들이 이 "루아흐"를 성령을 표현한것이라 사기치고 있지만, 사실 성령과는 전혀 관계 없다.
그나마 성령과 유사한 위 3구절중 이사야서 63장에 나오는 성령의 표현도 심히 의심이 가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70인역의 제3이사야서는 신약성경이 쓰여지고 난뒤 2세기말엽에 번역됬기때문이다.
즉, 얼마던지 신약의 개념을 구약에 첨가할수 있었던 것이다.(여러 사례가 있음.)
그리고, 시편에 나오는 성신(성령)도, 아람어판 구약에는 그냥 "거룩한 뜻"정도로 해석한다.
이를 근거로 기독교인의 주장과는 전혀다르게, 구약성경에는 성령이라는 개념이 없다.
★ 그럼 기독교인이 말하는 성령이란 무엇일까?
"성령"이란 단어를 말하면 먼저 "대단히 좋은것", "임하기만 하면 연약한 자도 담대해지는것" "지혜+지식의말,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을 분별함, 방언, 방언통역, 기타등등(고전12)을 하는것" 등을 떠올릴것이다.
삼위일체 이론에 따른면, 신은 성부,성자, 성령으로 나뉘는데 동일한 위격이라한다.
그럼 성부(야훼,엘,엘로힘,스스로존재하는자,여호와)를 한번보자.
성부는 그야말로 워낙 나쁜짓을 많이 해서, 어느 유태인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개새끼"다.(매우 적절한 표현임.)
성자(예수)는 몇번 인종차별발언과 나쁜짓을 하지만 대체로 쓸만한 놈이다.
그런데, 성령은 버릴게 하나없는 모든 좋은것을 죄다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상상에의해 창조된것이다.
원래 보해사(모사, 대언자)란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곁에서 돕는자"정도였는데, 갈수록 상상에 상상이 더해져서
"갑"과"을"이 바뀌는 묘한 현상이 발생한것이 바로 "성령"이란 넘이다.
기독교인에게 "하나님 여호와"란 대단히 인자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진 신으로 연상한다.
이 가공의 이미지는 모두 성령때문이다.
구약의 "개새끼"에다가 대단히 좋은 이미지인 "성령"을 덧씌워서 만든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사복음서의 예수는 각기 다른사람같이 느껴지고, 때로는 이방인을 "개"라 표현하는 황당한 놈이다.
그러나. 이 "성령"의 이미지가 입혀지면서, 대단히 인자하고 사랑 그자체인 "신"으로 그려지는것이다.
이 성령론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아마 기독교는 지금처럼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성령교"라해도 이의를 달수없다.
★ "성령"의 출신배경부터 살펴보자.
성령의 탄생은 예수가 세례요한한테 물로 세례를 받을때인데 요때만하더라도, "신의 의지","신의 숨결"정도 였고,
별로 대단치 않았다.
그러나, 별거아니던 요넘은 무럭 무럭 성장해 특정공간, 특정지역에 나타나면서 괭장한 파워를 가진것으로 표현된다.
행 2:1~4
"오순절날이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중략…….불의혀같이 갈라지는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사람에게
임하더니…….중략……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중략……..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쯤되면 요즘개념의 "성령"과 그의 유사할 정도로 성장한것이다.
갈수록 "성령"이라는 망상은 성장해가는데 임하기만하면, 예수에 버금가는 능력을 행하게 되는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처음에는 예수의 제자등 몇몇 마가다락방에 있던 자들에게 강림하여, 위력을 떨치던것이 점점 모든 기독교인이 갈구하게
되고, 지역,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강림하는것으로 설명된다.
이는 12사도라는 선택받은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바울을 사도(12제자와 동일한) 직위로 승격 시키는
작업에서 약간의 이미지가 첨가되고, 그이후는 다양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
성령의 강림방식을 잠시 살펴보자.
ㅇ 평범하고 나약한 신자(무식한자도 있음.) -> 성령이 임함 -> 이전과는 전혀다른 깨달은 사람이 됨(높은 수준의 가르침을 행함)
-> 신적 능력을 보임.
이정도면 눈치 챌것이다.
바로 성령이라는 개념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검은 베일 넘어에서 오는 빛 즉 그노시스적인 깨달음"과 같은것이다.
즉, 성령이라는것의 원형은 불완전한 인간이 신에게 다가설때 깨달게 되는 "그노시스"가 그 기원인것이다.
이런 "망상의 꾸러미"인 그노시스란것이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하필이면 문자주의자들이 뭔말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지꼴리는데로 갖다 붙히면서 갈수록 이상하게 변한것이다.
상당히 편리한 개념이기도 하다.
성령이라하면 웬만한것은 다해결되니까.
이런 사상은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에 이미 있었다.
참으로 성경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많이 담겨있다.
예수 스토리의 최소 1/3정도는 유대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것으로 여겨진다.(바울의 초기편지,요한복음등에도 있음.)
세례요한과 만남 장면에 나오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다"도 사실 영지주의자들의 표현이다.
바울이 다마스커스 가는길에서 "예수의 영"과 만나는 장면도 위 성령과 같은 개념으로 "그노시스"를 의미하는것이다.
사도바울은 특이한 인물로 영지주의자들에도 "위대한 사도"로 숭배받고 있으며, 문자주의자들에게도 "위대한 사도"로 숭배받는다.
이렇듯 성령이란것은 처음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적 체험 "그노시스"를 표현한것인데, 희한하게 형상화 되고
이상야릇하게 변화하면서 오늘날 정체를 도데체 알수없는 모호한 괴물이 된것이다.
★ 성령이란 존재의 허구성
"성령"은 영적 엘리트주의자(영지주의자)들에 의해 창조된 "망상의 꾸러미"였다.
하지만, 문자주의 기독교인이 이 "망상의 꾸러미"를 이용해서 기독교가 신비한 체험의 종교인양 포장하는 과정에, 기적이미지를
첨가하고, "신"의 이미지를 첨가해서 만든것이다.
현재 주위에 성령이 임했거나,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자들(사기꾼)의 증언을 들어보자.
ㅇ 조용기 목사의 증언.
조목사의 저서 "4차원의 영성"이라는 잡서를 보면, 성령이 역사한 경험을 이렇게 적고있다.
미국에 전도차 갔는데, 사고로 한쪽팔을 읽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한군인을 만났다고 한다.
이 군인은 몇날 며칠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조목사가 대체 무엇을 바라길레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나 살펴보니
"짤려서 없어진 팔을 자라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한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짤려진 팔을 자라나게 하는것은 어렵지 않겠나 생각하고, 안타까워 하던 조목사는 바로 그때 성령이 임하면서,
믿을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한다.
바로 조용기 목사 눈앞에서 기도하던 군인의 짤려 없어진 팔이 "수~욱"하고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정상인과 같이 되었다는것이다.
ㅇ A모양의 성령체험
믿음이 그리 독실하지 않았던 A모양은 본교회의 부흥회에 참여하게 되었다한다.
처음에는 너무 난잡하고 시끄러워 혼란스러웠으나, 차츰 분위기에 적응하고 나자 평소 자기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뒤 드디어 부흥강사의 은혜로운 설교가 끝난뒤 찬송을 연달아 이어 부를때, 한번도 경험한적인 없는
성령체험을 경험했다고한다.
그것은 처음에 불같이 뜨거운기운이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몸으로 퍼지는것을 느꼈는데, 다음 인간의 의지로서는 멈출수 없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되고, 그렇게 한동안 울고난뒤 세상모든것을 다얻은듯한 편안함, 기쁨을 체험했다는 고백이다.
ㅇ B교회 모목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지독한 알콜중독자를 하루만에 치료했다한다.
ㅇ 처음 다섯명으로 시작한 달동네 C교회에가 당췌 부흥이 되지않았는데, 이 5섯명이 100일간 합숙기도회를 했는데 마지막날
오순절 성령강림처럼 불같은 성령이 이 다섯명에게 내려져 1년사이 믿을수 없게 부흥하게 되었다한다
. …………………………무수히 많음.
A모양 같은경우는 정신병리학이나 심리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므로 생략하자.
나머지 경우는 소위 성령의 기적이다.
이 소위 성령의 기적이라는것은 주장만있을뿐 대체로 증거가 없고, 또한 증거가 있다고 보여주더라도 충분히 다른 무엇으로
설명이될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즉, 성령의 기적이라는것의 90%은 사기이고, 나머지 10%는 흔히 일어날수 있는 일을 성령의 기적이라 굳게 믿는 "뇌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않는다라 하는 말은 개별 사건을 성령과 연관지어 상상하는 뇌가 존재함을
증명해줄뿐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요즘 한국개신교에서 "성령의 강림"이라 표현하는것의 의미와 "신내림 굿판"과의 차이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겠다.
성령은 탄생부터 이미지가 첨가되고 변화되면서 성장 진화해 오던것인데 한국 개신교에 와서는 집단 광신적 신내림굿판으로
전략한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이런 성령강림을 매우 경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개신교에서 말하는 저런 굿판 형식의 신내림 성령을
"위경험"(가짜경험)이라고 한다.
(그나마 양심있는 신부들이 하는말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카톨릭 성당내 모임에서도 성령기도회라는 비슷한 집단 광신집회가 있다.)
성령은 없다.
성령이 강림했다고 사기치는놈들은 선량한 신도의 돈을 갈취하고 싶은자이고, 예쁜 여신도를 강간하고 싶은자이고, 유능하고
유명한 목사라 칭함을 받고싶은자이고, 더나아가 한종파의 교주가 되고 싶은자이고, 한 가정을 파탄낼수있는 자인것이다.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시는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단 한톨의 심함도 없는 말이다.
이글을 읽은 모든분들은 이성이 충만하여 항상 진실되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