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은 이성적인 종교가 아니다.

카톨릭은 이성적인 종교가 아니다.

한님 0 2,341 2011.08.30 18:29
"개신교는 광신,맹신적 종교이고, 카톨릭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종교인것 같습니다"
불과 며칠전 나는 또다시 친애하는 안티기독인으로 부터 이런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강도 아닌척 하는 강도"가 얼마나 더 위험한가, 아니 이성적인척하는 차분한 맹신적 종교가 왜 더 위함한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짧은 만남의 시간이 아쉬워 이글을 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톨릭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차분하지도 않습니다.
혹자는 항상웃는얼굴, 포근한 인상, 다정다감하고 진실된모습의 수녀나 카톨릭 신자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그들이 믿는 교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것으로 그런 모습이 관찰되는 한 인간으로써의 품성이 올바른것입니다.
종교가 도덕적인 인간의 품성형성에 일부 기여한다는 의견에는 동의 하지만, 종교뿐 아니라 오랜 역사속에서 형성된 가치체계는
모두 이와같은 기능을 합니다.
오히려 "망상으로 세례"받는 종교를 통한 도덕적 품성형성은 특정 조건속에서 심하게 외곡될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 예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종교적인 선의 기준으로 행한 선행은 오히려 당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것은 이런 종교적인 선의 기준으로 행한 선행은 기독교 탄생이후에 단 한차례도 미화되지 않은경우가 없으며,
때로는 우리가 잔혹한 만행이라 부르는것도 "선행"으로 둔갑되어 찬양 됩니다.
이 모든것이 바로 "거짓을 기초로한 망상의 세례"에서 오는것이며, 교육 받은 한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을
연출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개신교 보다 "선을 행함"을 조금더 강조하는 카톨릭의 교리는 에초부터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질수 있고, 그로 인해 각종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선행"을 하지만, 개개인의 바램과는 다르게
거대한 악의 집단인 카톨릭의 숨겨진 속내막은 다름니다.
"선행의 열매"는 바티칸으로 가고, "선행의 순수한 마음"은 카톨릭의 선교사업으로 포장되어 가공되며, 
"에초부터 마음이 따뜻했던 선행자"들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며, 조직에서는 철저히 감추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조직의 이해
 
1.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카톨릭.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개신교내에서도 내부자에 의한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들을수 있습니다.(단일 종파내에서도 항상 존재함.)
하지만 카톨릭내에서 카톨릭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쉽게 찾을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황으로부터 시작되어 내려오는 카톨릭조직의 라인은 오늘 갓 세례를 받은 새로운 신도까지 피라미드 형식의 계급 라인으로
연결됩니다. 교황은 무오함으로(1870년 교황 피어스9세가 교황 무오설의 교리를 공포함.) 그에의해 배포된 교리는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은체 19단계를 거쳐 최하위인 오늘 세례받은 새로운 신도에게 교육 됩니다.
이과정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자는 가차없이 제거 되기도 합니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계급체계를 가진 카톨릭은 개인의 목소리 따윈 에초부터 존재할수 없습니다.
혹자는 "정의구현 사제단"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신부가 있지 않은가 할찌 모르지만, 카톨릭의 "좋은 이미지 홍보용"으로 개별적인
신부들의 취미활동정도로 허용할뿐, 카톨릭조직내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도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카톨릭조직의 민주화를 외치던 많은수의 신부가 해임됬으며, 그 해임된 신부는 오고 갈데도 없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일선 성당에 있는 신부들은 "겁박용 시범케이스"로 해임되는 조직의 선배들을 보면서, 과연 무엇을 할수 있을까요?
간혹 신중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신부가 생기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성당내에서 지지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다른곳으로 보내버립니다.(심지어 외국으로 보내기도 함.)
신부가 한성당에 있을수 있는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최대 4년까지 이며, 어떠한 특별한 규정도 없이 교구에서 강제 집행합니다.
이 거대한 카톨릭이라는 조직은 한인간을 그들의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매우 효율적이며, 과거의 무수히 많았던 배교자들의
처리과정속에서 쌓이고 쌓인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가끔 인기에 영합하는 신부가 있어 돌출발언을 할때가 있는데, 이럴때면 그신부의 윗선에서 심한제제를 가하게 되고,
이신부는 자기의 발언이 교황청의 교의와 배치되지 않는다 하며 땀을 뻘뻘흘리며 해명하는것을 흔히 볼수 있습니다.
이렇듯 알려진바와 다르게 개인의 생각과 다양성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종교가 카톨릭입니다.
 
2. 성경을 읽는것이 어려운 카톨릭 신자들.
 
카톨릭도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교리를 신봉하고 있어며(때로는 매우 위험한 교리), 신앙의 형성과정도 개신교와 동일합니다.
 
1)관심--->2)대상선정및 심적확인---->3)자기최면-------4)망상의 형성------>5)육체적 또는 심리적 격리를 통한 타 교인들과
망상의 지속적인 공유------>6)순명 혹은 순종을 최고의 신앙적 가치로 여기는 교회의 꼭두각시인형이 됨.
 
하지만, 카톨릭이 개신교와 다른점은 이 위험한 교리가 성경적 기반이 약하다는데 있습니다.
공의회나 교황의 칙령으로 발표된 교리는 성경의 권위와 동일한것으로 여겨지고, 때로는 성경과 무관한 내용이 교리로
채택되더라도 강력한 조직의 힘에 의해서 선포되고 교육됩니다.(노골적인 정치성향의 교리가 선포되기도함.)
성경적 기반이 약한 교리를 신부는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일반신도는 왜 비판하지 않는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시다 시피 엄청나게 다양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성경을 보더라도 그들이 배우는 교리가 성경적 기반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는것을 알수 있지만,
개신교가 수많은 종파로 분리되는 예에서도 알수있듯이 오직 성경만을 절대적 가치로 둘경우 감당키 힘든 사태가 벌어질것을
너무나 잘아는 카톨릭은 일반신도에게 성경은 미사때나 한 두 구절 읽어주는 참고용 서적으로 여기게 하고 있습니다.
앵무새처럼 달달 외우는 묵주기도나, 9일기도책등이 신앙생활 표본인양 권장됩니다.
간단하게 묵주기도를 살펴봅시다.
 
성호경->사도신경,주님의기도->성모송3번,영광송,신비1단,주님의기도->성모송10번->영광송,구원의기도,신비2단,주님의기도
성모송10번->영광송,구원의기도->신비3단,주님의기도->성모송10번->영광송,구원의기도->주님의기도,신비4단-> 성모송10번
->영광송,권의기도,신비5단,주님의기도->성모승10번->영광송 구원의기도->성모찬송경
 
성당에서는 묵주기도의 은총을 받기위해서는 매일 15단 이상 하라고 권장하고, 심지어 묵주기도만 열심히 해도. 구원에 이르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카톨릭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일반신도가 딴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당 10년을 다녀도 성경일독 한번안한 신도가 대부분이며, 앵무새처럼 지져귀는 기도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 모르는 신도가 수두룩합니다.
생각을 못하게 하는것, 생각을 하는것을 금기로 여기게 하는것이 바로 카톨릭의 목적입니다.
이는 개신교 보다 오히려 더 치밀하고 교활한 짓이며 카톨릭만의 노하우 입니다.
또한, 성령기도회라는것도 있는데, 울고 불고 지랄하는게 개신교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아래글은 <천주교 이단성 연구>라는 논문에서 일부 발췌한뒤 개인적인 견해를 첨가한 글임.
 
카톨릭의 일곱 예수
 
카톨릭에는 일곱종류의 예수 이미지가 있다.
 
1. 크리스마스 시즌의 "아기 예수"(Baby Jesus)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로 이루어진 "성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 아기 예수의 이미지는 자애와 보살핌의 상징이 되고 있다.
남자에게는 가족보호본능을(보살핌) 대다수 신자인 여자에게는 모성본능을(자애) 자극케해서 심리적 마취상태에 이르게 한다.
사실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는것이 아기예수인데 심하다 싶을정도로 강조하고 부각시키는것은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술수다.
 
2. 십자가 고상에 매달린 예수(The crucifix)
십자가 고상 위에 죽어 있는 이 예수는 어느 카톨릭 가정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때로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모습도 있다. 예를 들면, 비참한 몰골의 예수를 힘줄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그 예수 아래
성모 마리아가 잔을들고 예수의 피를 받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십자가 부활사건이 교리의 가장 핵심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상징적으로 표현할수 있을땐데 이렇게 잔인하게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산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신의 노여움을 달래던 저급한 샤머니즘적 대속신앙과 전혀 차이가 없는것이다.
 
3. IHS 성병의 화신 예수(IHS wafer)
"거룩한 성체", 실은 "죽음의 빵 과자". 사제(신부)가 예수를 하늘로부터 낚아채서, 이 예수를 성병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면 이 성병이 로마 카톨릭 교도들에게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된다.
만일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종교재판에서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같은 성병 숭배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기회에 구체적인 자료로 논증하겠음.)
 
4. 성난 예수와 자애로운 마리아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직접 오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사다리를 떠밀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분의 어머니(성모)만은 죄인들을 받아 준다.
그녀는 성난 예수를 진정시키고, 죄인들을 대신해 자기 아들에게 자비를 요구하는 일을 하는데, 예수는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사실 이것은 과거에 바벨론의 니므롯과 세미라미스가 즐기던 게임이다.
 
5. 그리스도의 대리자
이 사람은 지상에서 예수의 "대리 주재자"이다.
설사 주재자인 예수가 무엇을 하고자 하더라도, 오직 교황만이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권위와 전권을 소유한다.
교황은 수억의 사람들로부터 숭상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쥔 최고의 종교적 사기꾼이다.
 
6. 사제
사제가 성직 수임을 받을 때, 그는 "alter christus"로 불리는데, 이 말은 "또 다른 그리스도"(another christ)를 의미한다.
이것은 사제들에게 예수의 지위를 침해할 여지를 허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카톨릭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가려면 반듯시 사제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필히 세례를 받은 신자는 일년에 두번씩 죄가 사해졌다고 위로하듯이 선언하는것이라 예수(신)처럼 참으로 죄를 사하여 주는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해야한다. 웃어야할까 믿어야 할까?
 
7. 혁명가 예수
최근에 등장한 이 예수는 "해방신학"을 위해 창조되었다.
칼 마르크스의 복음을 제시할 목적으로 바티칸에서 창조해 낸 예수인 만큼, 공산주의자들은 이 예수를 사랑한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극히 일부 성경속의 예수발언을 근거로 해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 신앙
 
1. 마리아는 또 다른 구원자다.
".....(마리아는) 하늘에 올림을 받은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을 위한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준다." -카톨릭 교리 중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전달해주고 있으므로 마리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창세기
3장15절은 바로 마리아에 대한 예언으로써 "죄에 떨어진 원조에게 약속된 뱀에 대한 승리 속에 이미 예언적으로 그 여인의 모습이
암시되어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그리스도보다 더 자비로우므로 죄인들이 그녀의 무한한 자비에 의해 구원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2. 마리아 무염시태.(마리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구원받았고, 전혀 죄를 짖지 않았다고 주장)
1854년 교황 비오9세는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의 새 교리를 선포하고 정의했다.
"그녀가 임신하는 첫 순간에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특권과 은혜로 인해서 인간의 견해로 볼 때 동정녀 마리아는 원죄의 모든
더러운 흔적으로부터 제외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모든 카톨릭 신자들은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중보자임을 믿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에 전혀 이러한 교리가 없는 것을 시인한다. "이 교리의 직접적이거나 명백하고 유력한 증거는
성경으로부터 가져올 수 없다."
"..."은총이 가득한" 그녀는 "구속의 가장 빼어난 열매"이다.
그녀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에서 완전하게 보호되고, 인생동안 본죄에 물들지 않았다." -생활교리-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생동안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
「마리아는 원죄없이 태어났으므로, 이 충동(죄를 지을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평생 죄를 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루카 1, 28)를
근거로 마리아가 예수의 구원 은혜를 미리 입어 죄 없이 태어나셨기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축일표에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로 기록하고 있다.
 
3. 마리아 종신 처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라는 천사의 인사는 마리아가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구속 계획안에서 주의 각별한 선택을
받은 분이라는 뜻이며 마리아 자신도 이 계획을 따라 충실히 살았다고 하면서 마리아가 평생동정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 충성을 다 지켰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아는 동정으로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고, 동정으로 그분을 낳고, 동정으로 그분을 길렀으며, 동정으로 당신의 젖을 먹이고,
항상 동정이었다." =>그냥 웃자……
"종종 성서가 예수님의 형제자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항상 이 대목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왔다. 사실 "예수의 형제들(마13:55)"와 요셉은
"다른 마리아(마28:1)"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일이 내게 있으리이까"〈눅 1:34〉의 "알다( )"는 현재형이므로, 영구적인 처녀성을 맹세했다고 주장한다」
 
4. 마리아 성덕의 구원.
불순종으로 모든 죄인들의 어머니가 되었던 하와대신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라는 하느님의 전갈을 받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옵니다.
말씀하신 대로 따르오리다"라고 흔쾌히 수락한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로서 아드님을 통하여 구원될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었기에,
구세주의 어머니시며 구원의 협조자이신 성모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5. 마리아 또 다른 중재자
"...... 그 때문에 교회에서는 복된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시며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6.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한 분,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중략)
......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셔 주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며,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7. 동정녀 마리아의 몽소승천-"마리아 천지의 여왕"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평생 동정이신 깨끗한 마리아는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 속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하면서 이 교리를 선언하였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았다....."
 
<참고문헌>
가톨릭 교회 교리서 3,4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가톨릭 신학개설 개정판, 박양운 저 : 가톨릭출판사 1994.
구세주의 어머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1987.
기초신학, 박도식 저 : 가톨릭출판사 1993.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 :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2002.
마리아를 따라서, 알렉상드르 드 루빌르 지음, 서요셉 역 : 크리스챤 출판사 1986.
사회교리, 요한 바오로 2세 저, 한용희 편저 : 분도출판사 1985.
성모님의 양친 이야기 - 성 요아킴과 성 안나의 생애, 이케다 도시오 저, 김창현 역, 영남주보인쇄사 1997.
성체조배, 알퐁소 리고리오 저, 이석진 역 : 도서출판 크리스찬, 1979.
 
 
이상 살펴본바와 같이 카톨릭은 결코 이성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현행범수준의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개신교보다 적을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피해도는 카톨릭이 개신교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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