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카잔차키스의 아토스산 순례기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아토스산 순례기

한님 0 2,502 2011.08.30 18:30
아래글은 이윤기교수님의 "무지개와 프리즘"이라는 책중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관한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쓴글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아토스산을 오르며 여차직하면 내려오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아토스 산은 기암절벽의 험산이다.
아토스 산은 수도원과 수도승의 산이다.
사람이 기거하는 곳이라고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제비 집처럼 붙어 있는 수도승들의 거처뿐이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고부터 천년 세월이 지나도록 성산 아토스는 여자가 오른 적이 없는 산이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염소나 닭이나 고양이 따위의 짐승의 암컷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산이다.
영혼은 천사의 몫이고 육신은 악마의 몫이라는 가르침에 익을 대로 익어 있던 그가 수도승들의 고통스러운 금욕의 투쟁을
싸고 도는 허실의 슬픈 공간을 목격한 것이 그때의 일이다.
청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토스산 순례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종신형을 살기 위해 어두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악마와 지옥의 불길과 피투성이 젖가슴을 한 매춘부 아니면 뿔이 달린 지옥의 괴물 그림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자는 교회의 갈망이 그대로 투영된 묵시론적 협박….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카잔차키스는 이산에서 고행을 통하여 천국에 이르려는 무수한 거짓 수도승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반미치광이 수도승도 있었다.
수도원 앞의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아래에는 백골이 널려 있었다.
고행을 통하여 날개를 얻었다고 믿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본 미치광이 수도승들의 백골이다.
그는 이 산에서 "동굴의 마카리오스"를 만난다.
"동굴의 마카리오스"는 수도승 가운데서도 거룩함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성인"이었다.
그는, 천국에 들기 위해 아토스 산에서 목숨을 걸고 고행하는 무수한 수도승들의 이기적인 수행의 의미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인" 마카리오스에게 묻는다.
카잔차키스가 한 얘기 중의 수도자는, 극락행을 미루고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을 연상시킨다.
 
"마카리오 신부님, 저는 천국에서도 도무지 평안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어느 수도자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도자가 한숨을 쉬자 하느님이 불러서, 왜 한숨을 쉬느냐고 물었다지요.
그러자 그 수도자는, 천국의 한가운데로 저주받은 자들의 눈물의 강이 흐르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 습니까,
하고 반문하더랍니다. 고행을 통하여 혼자 천국에 드는 것이 마침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성인>은 성호를 그은 다음 하늘을 향하여 침을 뱉고는 외친다.
"사탄아 물러가거라."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어르신 저는 사탄도 아니고 어르신을 유혹하러 온 사탄의 심부름꾼도 아니올시다.
저는 순진하고 소박한 농부처럼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믿고 싶은 청년일 뿐입니다.
사람의 육체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형상에 따라 빚으신 작품입니다.
어째서 육체를 부정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수 있는지 몰라서 이러는 것입니다."
"너에게 화 있으라, 지옥으로 떨어진 악마도 같은 주장을 했다. 너의 이성에, 너의 자아에 저주가 내릴 것이다."
"어르신 바로 그자아가 있어서 인간은 짐승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섬깁니다. 그 자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지요."
"그러던 자아가 하느님을 능멸하게 되었다. 이제 그 노새를 타고 떠날 일이다."
<성인>은 이 말끝에 빙그레 웃었다.
그가, 웃는 까닭을 묻자<성인>은 대답한다.
"………이토록 행복한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노새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인데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겨우 이런 대답이나 듣자고, 삶을 거부하고, 육체를 부정하고, 그 험한 바위산을 기어올라 왔단 말인가……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게 삶은 아직도 아름답다. 내눈에 보이는 세계는 아직도 아름답다. 나는 이 세계를 증발시킬 수는 없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어서자 <성인>은 비아냥거리듯이 이렇게 말한다.
"내려가려고?, 행운을 빈다. 세상에 안부나 전해다오."
그도 비아냥으로 <성인>에게 응수한다.
"천국에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리고 하느님 만나시거든, 제가, 인간이 이렇듯이 죄악과 악마에 시달리는 것은 하느님 탓이라고
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든 탓이라고요."
 
청년 카잔차키스는 내려오는길에 한 파계승을 만나는데, 그 파계승은 고해하듯이 이런 고백을 했다.
"………내 나이 벌써 예순………..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수도승이 되었어요.
그로부터 근 20년 동안 나는 저 아토스 산 수도원에서 하느님 말씀만 묵상했어요.
태어난 뒤로 한번도 여자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으니, 여자에 대한 열망으로 괴로워할 일이 있었을 리 없지요.
날이면 날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땅바닥을 짚고 기도를 올렸지만 하느님은 내 앞에 나타나 주시지 않았어요.
나는 절망한 나머지 하느님께 간구했지요. 하느님. 나같이 하잖은 인간이 무슨수로 하느님 뵙는 영광을 누릴수 있겠습니까만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이승 것이든 천국 것이든 구원의 기쁨을 경험할수 있게 하시어, 제가 기독교인이 된 보람을 느끼게
해주시고, 아토스 산에서 보낸 세월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울고 불고,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하릴없었어요.
내 마음은 열리지 않았어요. 악마가 내 마음을 잠그고 열쇠를 감추어 버렸었나 봐요………………..
그렇게 헛된 세월을 보내다가 살로니카로 파견된 뒤에야……….그래서는 안되는 일인 줄을 알면서도
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답니다.
아………그 여자와 동침한 날 밤, 나는 평생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가 부활하고 있다는 기가 막히는 느낌을 경험했답니다.
육신이 쾌락의 절정을 누리는 순간, 하느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날이 밝아오기까지 감사 기도를 드렸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나는 기쁨을 모르는 인간, 기뻐해서는 안 되는 줄만 알고 있던 인간이었어요.
그러나 여자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인간이 되었지요.
나는 그제서야 하느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하느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신지 깨닫고 감사 기도를 올릴수 있었어요.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를 통하여 나를 잠시나마 천국으로 이끌어 주셨던 것이지요.
나는 단식이나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자를 통해서 하느님을 뵙고 그 품에 안길수 있었던 것이지요.
40년 전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죄 역시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
속죄하라고요?
나는 안해요.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느님의 벼락을 맞아 콩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속죄하지 않겠어요.
내게는 뉘우칠게 없어요………."
 
마카리오스 성인의 가르침과 사뭇 다른, 그 파계승의 고해를 듣는 순간, 청년 카잔차키스는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후 카잔차키스는 베르그송의 생철학을 통해서 <신>이라고 하는것은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확인하고는, 기독교와 인견을 끊고 호전적인 청년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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