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의 천지창조를 부정하는 요한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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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야훼의 천지창조를 부정하는 요한문서

손오공 0 5,666 2005.08.05 18:00

아직도 창조설화와 진화론이 대화와 토론의 주제가 되는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며 한편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한 논쟁에 별 관심은 없지만, 창조설화를 진실로 믿고 있다는 분들이 하도 많다 보니, 그분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기로 하겠다.


첫번째 질문
그대는 창세기에 묘사된 창조설화를 믿는가 아니면 진화론은 이론적 한계가 있으므로 불가지론 혹은 범재신론이나 이신론에 입각한 그러한 미지의 창조론을 믿는가?


두번째 질문
창세기에 입각한 창조설화를 믿는다면 엘로힘이 창조했다는 1장의 창조순서를 믿는가 아니면 야훼가 만든 순서를 기록한  2장의 의견을 지지하는가?


세번째 질문
천지창조 이전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요한문서와 요한일서 기자의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상기 질문에 대한 답변에 대한 청취는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이 글에선 요한문서의 기자가 창조설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야훼에 대한 관념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추적해 보는 기회를 가져 보기로 하겠다.

 

1)모세를 무시하는 요한문서


구약의 주인공은 어쨋던 모세가 틀림없다. 구약에서 아니 전 바이블을 망라해도 야훼와 일대일 면담을 한 사람은 모세가 유일하다고 신명기 기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요한문서 기자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기자의 주장하는 바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


<< 그 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신명기 34:10) >>

<<일찌기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요한 1:18) >>


이 두 문장만 비교해 보더라도 인격신인 야훼를 신봉했던 구약의 편집자들과는 달리 요한문서 편집자는 불가지론 혹은 이신론에 입각한 신관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말씀 즉 로고스에 대해 논할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요한문서 기록자가 오직 모세만이 야훼를 단독 면담했다는 신명기 기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 되겠다.


2)야훼 창조설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요한문서


J문서 그리고 P문서의 창세기 편집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바이블 편집자들은 야훼가 되었건  엘로힘이 되었건 혹은 테오스이던 인격신인 창조자가 단독으로 사물과 인간 등을 창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몇가지 예를 보기로 하자.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내리소서. (창 14:19) >>
<<당신은 오장육부 만들어주시고 어머니 뱃속에 나를 빚어주셨으니 (시편 139:13) >>


<<그러자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마태 19:4) >>
<<그 때에는 무서운 재난이 닥쳐올 터인데, 이런 재난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또 앞으로도 다시 없을 것이다. (마가 13:19) >>


<<하느님께서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 위에서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행전 17:26) >>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감히 하느님께 따지고 드는 것입니까? 만들어진 물건이 만든 사람한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롬 9:20) >>


*아브라함은 야훼가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시편 기자는 사람을 창조한 이가 야훼라고 한다.


*예수는 테오스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한다.
*행전 기자 는 세상을 창조한 이가 테오스라고 한다.
*바울은 사람을 테오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문서에는 창조자 단독으로 만물을 창조했다는 그러한 고백 내지 인용 기록이 없다.
말씀이라는 보조자의 도움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 1:3) >>


요한문서 기록자는 창조의 권한에 대해 왜 이렇게 다른 견해를 표명했을까?
창조시, 말씀이라는 도구 혹은 보조자가 왜 필요했을까?


3)빛은 피조물인가 혹은 창조주인가?


창세기에 표현된 빛은 엘로힘 혹은 야훼가 만든 창조품의 하나였지만, 요한문서에선 그 빛이 관념적 존재인 창조주로 까지 격상된다. 즉 창조주 = 말씀 = 빛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이자 빛인 존재는 예수로 둔갑하게 된다.


비교해 보기로 하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창 1:3) >>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창 2:7) >>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요한 1:1) >>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4) >>


주지하는 바, 창세기 기자에게는 빛에 대한 관념론 자체가 없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요한문서의 기자는 빛과 어두움이란 이원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빛은 선하고 강하며 어둠은 악하며 빛에게 굴복할 운명이라는 관념을 주입시키고져 하고 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요한 1:5)


그외, 요한 기자의 견해에 따르자면 빛과 어둠은 언제나 공존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빛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어둠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창 1:2,3) >>


즉, 요한문서에서는 말씀 그리고 빛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관념적 존재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이다.


4)로고스(Logos)를 왜 말씀(Word)으로 번역했을까?


창조시에 이미 존재하였으며 창조주와 동일시되기도 하는 말씀(Word)이란 관념적 존재는 헬라어 모든 사본에는 로고스(Logos)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다.


이 로고스(Logos)는 만물을 조화·통일하는 이성(理性). 오성(悟性)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기독인들은 왜 얼토당토않게 말씀(Word)이란 단어로  번역했을까?


이 역시 기독교의 거대한 음모라고 판단된다.
전혀 다른 신관을 주장하는 요한문서 편집자의 로고스(Logos)관을  기독인들의 보편적 신관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필요했으리라.


그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방법론을 찾다 보니,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기억났을 터이다.
아, 그렇지.... 창세기1장의 엘로힘은 오직 말만으로 모든 사물을 창조했었지.....
아마 그러한 얄팍한 음모로 로고스(Logos)를 말씀(Word)으로 둔갑, 번역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이 음모 자체가 커다란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인고하니, 창세기 1장의 엘로힘은 말로써 창조했었다지만, 그 다음 2장에 등장하는 야훼는 흙으로 아담과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으며, 게다가 여인은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정녕 몰랐던 모양이다.


부언하면, 말씀으로 번역된 요한 문서는 창세기 1장의 기록하고는 연결 고리 역활이 충분히 가능했었지만, 2장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하다.
기독인들은 솔직히 고백해야만 하겠다.
요한문서에 등장하는 창조주와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신이라고....

 

신의 아들 혹은 신적인 존재였던 예수를 신 자체로 둔갑시키기 위한 기독인들의 음모는 이처럼 눈물겹고 처절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그 음모가 얼마나 유치찬란한 장난이었던가를 확인할 수 있겠다.


이제, 지금쯤은 공관문서하고는 전혀 다른 요한문서가 왜 제4문서로 채택하였나하는 그 의문점이 해결되었으리라 믿는다.


초기 기독교 변증 학자들의 로고스관을 살펴 보면 이러한 음모의 배경이 좀더 확실해진다.
즉,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로고스를 이해불가능한 신적 근원자(Monas)에 종속되는 개념으로서의 이성과 지성으로 보았으며, 반면 이레네우스(Irenaeus)에 의하여 대표되는 다른 하나의 경향은, 이 로고스를 신자체와 동일시하였다 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후일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도그마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논란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쪽이 주장한게 소위 삼위일체란 삼두육신의 등장이 되겠다.


즉,부언하자면, 요한문서는 예수를 신자체로 승격시키위해서는 극히 매력적인 문서였지만, 그 로고스 개념이란게 헤브라이적 유일신관하고는 전혀 별개의 신관이란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삼위일체란 새로운 신이 탄생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바이블 번역 학자들은 그 논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로고스를 아예 말씀이라는 신조어로 둔갑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파토스(pathos)가 없는 로고스의 한계


주지하는 바,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은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요한문서에 등장하는 빛과 어둠의 관계가 그러하다.


로고스를 말씀으로 번역하였을 시, 이 경우 말씀과 대립되는 개념이 없게된다는 모순도 안게 된다.
한편,로고스(Logos)와 대립되는 이원론적인 용어는 파토스(pathos)가 되겠다.


로고스가 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행위가 따라야 할 준칙, 이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理性)을 뜻한다면, 이에 반해 파토스의 의미는 정념(情念) ·충동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다.

이성과 본능 정도로 해석해도 그리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이 로고스와 파토스로 대립되는 관념론이 로마시대의 대표적 철학 사조였던 스토아 학파의 기본적인 사유였던 모양이다.


즉 로고스가 없으면 파토스가 있을 수 없고,
파토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로고스가 불분명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한문서 편집자는 이 철학적 용어인 로고스란 단어를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키고 게다가 육화까지 시키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기독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득했는지는 몰라도 철학적 논리성 획득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여 진다.


로고스와 파토스에 대한 변증은 일단 이정도로 하겠다.
필자의 전공이 철학이 아니므로 좀더 자세한 변증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름을 고백하는데, 혹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이제 다시 정리를 해보기로 하겠다.


*요한문서는 모세만이 야훼와 단독 면담을 했다는 토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대했음에 틀림없다.
*요한문서에는 창조주 단독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토라의 의견을 지지하는 의견이 전혀 없다.


*빛과 어둠이란 새로운 관념론 그리고 그 빛이 창조자라는 주장은 토라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다.
*말씀이란 존재의 등장은 기독인들의 음모로 인해 탄생한 조어이며, 당연히 로고스 혹은 이성으로 번역되었어야만 했다.


그러하다.
요한문서 편집자는 야훼의 천지창조설을 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스토아 철학의 관념론을 일부 차용한 사이비 이신론자였음에 틀림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애매한 신관 때문에 삼위일체란 삼두육체 괴물신이 등장하게 되었음을.....


기독인들은 창조론이 참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그 창조주란 존재가
하나님인지 야훼 혹은 엘로힘인지
아니면 말씀인지...그 정체 부터 확실히 개념 정리를 하고 난 뒤 논하는 것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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