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 믿어도 천당은 못갑니다." 이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냐고요? 어렵게 얘기할 것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믿으면 천당 간다'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흔히들 예수 잘 믿다가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요체는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죽어서 천당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과연 천당은 정말 있는 것인지, 구원을 받는다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믿으면'이라고 하는데 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천당은 없습니다"
우선 (이제는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그리고 이미 다른 기사에도 언급이 되고 있지만) '천당'이란 개념은 인간이 죽은 다음에 구원받은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나 비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천당과 천국(하나님 나라)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당이란 말은 원래 성서에는 없는 개념으로 후대의 기독교에 의해서 형성된 하나의 교리적 개념으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성서를 왠만큼 공부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에 나오는 '하늘 나라(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과 죽어서 간다는 '천당'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적어도 성서에 의한다면, 그런 천당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아무리 잘 믿어도 성서에 바탕을 두는 정통적(?) 신앙으로는 결코 천당은 갈수 없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반면에, '천국'이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상의 죄악된 질서와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끝장 나고,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온전히 구현된 세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의 지향점이 내세적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변화된 모습을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던 천국은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세상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종류의 차별이 없는 세상,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존중받는 세상, 서로 아끼고 섬기고 사랑하는 세상을 비전으로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 나라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적인 변화-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져 간다고 믿으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이 세상의 죄악된 삶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하고, 바로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세상이 천국이 되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이 바로 그것 아닌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요약하면 구원이란 타락한 세상의 삶의 질서와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의 전환 또는 회귀를 의미합니다. 성서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천당' 가는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 예수의 길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요? 그것은 곧 '믿으면'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고 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여러 교리들 -하나님의 존재,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 교리, 동정녀 탄생, 부활, 재림, 십자가 대속의 교리, 성서의 여러가지 기적 등등을 믿는 것이 믿음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다' 함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그런 교리를 믿기 이전에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가 친히 살으시고 가르치신 삶의 방식과 길이 옳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며, 인간 본연의 삶임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또한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런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방식과 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니 어찌 쉬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 길을 가겠다고 결단하며 예수를 따라나서는 것, 바로 그것이 믿음이란 말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으면 (천당 아닌) 천국(구원의 삶)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교회는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면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성서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은 이미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르치고 행하기를 주저해 왔습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의 수많은 병폐들-기복적 신앙, 형식주의, 배금주의, 이기적 신앙 등등- 은 어찌보면 이처럼 잘못 가르친 내세적 천국관 또는 구원관으로 인해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최종적인 목적이 잘 믿어서 영혼이 천당가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현실이라면, 그래서 왜곡된 이신칭의론이 득세하고 있는 신앙풍토라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살라는 외침은 그저 허공을 때리는 헛된 설교에 그쳐버리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국 교회는 그동안 알면서도 감추어왔던 천국에 대한 올바른 내용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믿습니다. 구원론의 커밍아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언제까지 그동안 울궈먹은 천당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오도하렵니까?
구원론 논쟁보다는 구원의 삶 살아야
한가지 첨언하자면, 구원론에서 흔히들 논쟁하는 행위 구원이냐 믿음으로만 구원이냐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양측 모두 구원을 내세적 영혼 구원으로 귀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입장은 당연히 구원 받을 수 있는(또는 천당에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기준, 즉 자격을 정해야 되는 것이고, 자연히 그 기준이 무엇이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그 자격 기준의 획득이 행위로서냐 아니면 오직 믿음으로만이냐 하는 논쟁이 아닙니까?
그러나 구원을 현실의 삶에서,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리로의 변화된 삶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런 논쟁 자체가 불필요해집니다. 구원을 받았느냐 못받았느냐의 논쟁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얼마나 구원의 삶을 더 많이 살고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한 예로, 평생 불신자로 살다가 죽기 5분 전에 예수 믿는다고 고백해도 천국에 가는냐는 질문이나, 평생을 잘 믿은 사람이나 죽기 얼마 전에 겨우 믿은 사람이나 구원은 똑같이 받는다는 식의 생각들이 다 허망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자신의 평소의 삶에서 구원의 축복을 얼마나 누리고 살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한번 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그런 구원관이 교회 안에 올바로 자리잡아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의 교회 중심, 예배 중심, 교리 중심의 외면적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더욱 많이 실천적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럼 천국은 없는거네...
사기꾼들~ 사기나 치고 댕기고...
문제에 봉착하면 요리 삐져나가고 죠리 삐져 나가고...
그래 어디까지 도망 댕기나 보자... ㅋㅋㅋ
천당과 천국은 있습니다.
그건 에어컨간통먹사 장효희와 그 간부 김여사만 압니다.emoticon_001emoticon_001emoticon_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