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목사 두둔하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 옥한흠목사 정신 차리쇼!!
■옥목사가 불륜 간통과 위증으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교계지도급 목사를 감싸는 궤변설교
http://www.newsnjoy.co.kr/rnews/speech-1.asp?cnewsDay=20010614&cnewsID=2
금주의 <뉴스앤조이> 옥한흠 목사 설교에 절망하는 이유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바로 김 아무개 목사를 두둔하고 면죄부를 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엄연히 음란한 성적 죄를 저질렀고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실제로 벌금을 냈습니다.
그러나 자기 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재판에서 이겼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는 '그 교회 목사를 신뢰하고 두둔하는 그런 교인이 있기 때문에 그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설교한다면, 우린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마치 남의 교회 문제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에도 목사를 믿고 감싸주라고 얘기하시렵니까? 그런 마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하 생략-
<뉴스앤조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김종희 (2001-06-14 오후 2:30:02) 조회수 : 387회 ------------------------------------------------------------------
■아래는 맨 아래에 있는 두 글들의 주요 대목 '좀 무리를 해서라도 헌금들을 하십시오 ...' 당시 포텐샤였던 옥목사님의 차량을 체어맨(약 4-5천만원정도)로 바꾸었지요. 옥목사님께서는 당장에 '어른 섬길줄도 모르는 버르장미 없는 녀석같으니라고, 그런 녀석은 잡아내서 혼구멍을 내줘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님이 나는 더 좋은차를 타야한다 그러시면서 총액으로치면 1억 가까이 되는 하얀색 에쿠스리무진으로 바꾸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옥목사님께 가서 직언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비판의 봉쇄를 통해서 기득권적인 질서를 유지 하려는 동기가 저간에 깔려 있다면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 메시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아래는 3페이지 정도에 있는 글의 주요 대목 옥한흠 목사의 그런 제자훈련에 전혀 동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분의 책도 사서 읽어보고 테잎도 들어보지만, 전혀 복음에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이야기해도 교회를 위한 예수님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중심이 예수님 중심이라고 쉽게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는 주님의 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간중심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리가 불거지고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옥함흠 목사의 문제는, 그가 권위적이라든지, 독선적이라든지, 고급 승용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그는 소위 제자훈련을 통해서 복음을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교회를 다 버려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폐혜는 기도원 운동보다도 훨씬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미 계시화된 교회가 너무나 크니까 입을 다물고 만다는 것입니다.
----------------------------------------------------------------------------- 아래 서로 상반되는 옥한음목사에 관한 두 개의 글을 퍼다 놓았는데 옥목사의 목회세습에 관한 두 개의 다른 견해는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시류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옥한음은 전과가 있다.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교인들이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사로부터 정의의 외침이 나오기를 바라는데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 세상사람들 평신도들이 피흘려가며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너무 젊잖았다는 생각이든다”고 말했는데
어이구! 이 인간아! 그게 젊잖은 건가? 비겁한 거지! 뭐하러 신학교육을 6년씩이나 하고 유학까지 하니?
1984년 전세계 복음주의자들 수천명이 모여 사회정의에 무관심 했을을 반성하고 선언한 ‘로잔언약’을 몰랐을리는 없고...(자세한 건 맨 아래 ‘로잔언약’ 클릭) 지새끼가 물고문 당하다 죽었다면 눈알이 뒤집혀 난리를 칠끼구마!
★옥: "도대체 누가 이걸 자꾸 떠들어서 문제로 만드느냐? (야! 김동호목사, 손봉호 교수가 떠들었다 왜? 몰라서 떠드냐?)
★옥: 세습 반대운동을 벌이는 단체는 한건주의이다
★옥: 아주 적은 몇몇 케이스일 뿐인데... (조용기, 김창인, 김선도, 곽선희, 이성헌, 신현균, 김충기 오관석, 유의웅, 한경수.... 이게 적니? 여기 소속된 무지몽매한 양들이 얼마나 많으니?)
★옥: 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한건주의 아닌가? (야! 그건 니가 한건주의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께 그런소리가 나오는 거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위같이 말하다가 왜 갑자기 아래 같이 말을 또 바꾸니?
■옥:기윤실 등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어느 한 교회가 꼴보기 싫다고 성토하는 게 아니예요. 여기서 방치하면 당연시하는 교회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어서 그래요.
옥한음은 세습반대 운동으로 사회여론을 일으켜 밥 다 되니까 뒤 늦게 숟가락만 들고 뛰어 드는가?
남이 다 해놓으니 뒷짐지고 있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뜻”인가 ?
야! 그리고 전세계의 신학자들에게 물어바바라!
로버츠 슐러의 사고와 행태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통째로 물려준 게 아니라 분과 하나를 맡고 있을뿐이라고 하는 글이 올라온 적도 있다.
그리고 빌리그래함의 술과 마약에 찌든 방탕한 아들이 그리 모범이 되나?
이것도 목회를 하는 건 아닌데... 빌리그래함을 예수 그리스도 이래 기독교에 최대의 해악을 끼친 인물이라고 김장환 목사가 나왔다는 신학교에서 비난하는 것을 알고 있겠지?
----------------------------------------------------------------------------- 옥한흠 목사와 제자훈련 3868번 글을 구득영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 제자는 과연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는가? ]
제가 84년도에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마도 한국교회의 최고절정기를 구가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독재정권의 클라이맥스와 맞물려있어서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연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니고, 아마 그때부터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아는데, 그 유명한 책 "평신도를 깨워라" 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신학생이면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성경해석학에도 상당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소위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몇 몇 젊은 교수들에 의해서 소개되기 시작했지요. 기독교문서선교회를 비롯한 몇 몇의 출판사들에 의해서 책들도 많이 번역되었고 말입니다.
사실 제대로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반대하시는 분들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참고는 저는 구속사를 좁은 의미로,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는 성경해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이 걸렸는데, 신학대학원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신학생들 사이에 화자가 된 것은 이런 말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소위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비롯한 온누리 교회 등이 엄청난 성장을 했지요. 그야말로 신학공부보다는 제자훈련을 비롯한 세미나 온통 정력들을 다 쏟아 부었지요.
박영선 목사님의 남포교회는 조금 다른 입장에 있었는데, 사실 그러면서도 박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 이라는 책이 알게 모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신학생들에게는 이 두 가지의 다른 노선이 형성되었던 것이지요.
지나간 이야기는 그만하고, 저는 일찍이 옥한흠 목사의 그런 제자훈련에 전혀 동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분의 책도 사서 읽어보고 테잎도 들어보지만, 전혀 복음에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을 이야기해도 교회를 위한 예수님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중심이 예수님 중심이라고 쉽게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는 주님의 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간중심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리가 불거지고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겠지요. 그러니 교회의 너무 쉽게 개혁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개혁한다는 것입니까?
옥함음 목사의 문제는, 그가 권위적이라든지, 독선적이라든지, 고급 승용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그는 소위 제자훈련을 통해서 복음을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교회를 다 버려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폐혜는 기도원 운동보다도 훨씬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미 계시화된 교회가 너무나 크니까 입을 다물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그 덩치 앞에서 기가 죽고 마는 것이지요.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말입니다. 과연 평신도가 깨움의 대상입니까? 누가 누구를 깨운다는 말입니까? 같이 잠들어있는 마당에 말입니다.
오직 잠든 자들을 깨우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피 묻은 손으로 말입니다. 그 피 묻은 손을 잡는 것이 제자훈련입니까? 그렇다면 훈련이라는 말을 없애야지요. 그리고 제자는 과연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참된 제자는 오직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에 의해서 말입니다. Contact ■2000 newsnjoy for more information. [158-861] 서울시 양천구 신정1동 1021-9호 현대프라자 401호 Tel) 02-654-8110 Fax)02-652-2947 ----------------------------------------------------------------------------
익명 게시판
글쓴이:퍼옴 한기총 옥 목사님 인터뷰 :
세습반대에 데한 좀다 강경한 . .
9월 28일자 인터넷 동아일보에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님께서 인터뷰하신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의 내용을 보니 옥한음 목사님께서도 보다 분명한 입장으로 목회 세습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이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던 중 옥한음 목사님의 이러한 입장 표명이 지난 8월 26일 "뉴스엔조이"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옥목사님의 입장과는 조금 달라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난 8월 26일 에는 교회의 세습 문제를 단순히 개교회의 문제로 보셨는데, 이번 기사에는 오히려 이러한(세습은 개교회의 문제가 아니냐?) 기자의 질문에 이를 방치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도대체 누가 이걸 자꾸 떠들어서 문제로 만드느냐?"고 하시면서 세습 반대운동을 벌이는 단체를 한건주의로 비난하시는 듯 했지만, 이번 기사를 보면 기윤실의 운동을 어느 한 교회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문화를 생각하는 운동으로 보고 계십니다.
지난 8월 뉴스 엔조이의 입장과 단지 1개월 정도가 지난 9월 28일자 옥한음 목사님의 입장이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많은 부분에 입장이 틀려지신 것 같습니다. (그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9월 18일에 한목협의 입장 표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목협의 입장은 조금은 무책임한 양비론이라는 논쟁도 야기하였습니다 : 기윤실 게시판 참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목회자 세습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점차 커져나가자 입장을 어느 정도 수정하신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 언론(뉴스엔조이)과 일반 대중 언론(동아일보)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이 옥목사님의 의중을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오해나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었는지?
그저 함께 생각해봐 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지난 8월 26일 뉴스엔조이의 기사와 9월 28일자 동아일보의 기사 전문을 함께 올립니다. -----------------
8월 26일 자 뉴스엔조이 기사 :
담임목사 세습문제에 대한 옥한흠 목사의 생각 "개교회 문제인데 그토록 문제 삼을 필요 있나?"
한국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의 한 사람인 옥한흠 목사(교갱협 한목협 대표회장■사랑의교회)는 담임목사 세습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 영성수련회가 열리고 있는 8월 21일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옥한흠 목사를 만났다.
옥 목사는 "원칙적으로는 반대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옥한흠 목사의 얘기를 그대로 옮긴다.
"세습이란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굳이 세습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용어를 써야 하는가. 또 잠재적 가능성만 있을 뿐이고 아주 적은 몇몇 케이스일 뿐인데,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문제인 양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예를 들어 광림교회는 발표만 했을 뿐 인수인계가 된 것도 아니고 충현교회는 1, 2차를 거쳤기에 처음부터 세습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세습 통해 성공한 경우도 있다. 인천의 이 아무개 목사(편집자) 교회의 경우 아버지가 목회할 때 300명 정도 됐는데 아들이 인수해서 성공한 교회로 세웠다."
교갱협 수련회 기간인지라, '갱신'과 '세습'의 연관성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갱신과 세습을 연결시킬 건 없다. 갱신할 때 떠오르는 것이 세습은 아니다. 이건 아주 특수한 일이다. 보편화된 일을 회개하고 기도하고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갱신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그건 당신들이 더 잘 알잖아" 했다. 물론 잘 안다.
교갱협은 지난 5년간 교단의 금권타락선거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옥 목사는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이걸 자꾸 떠들어서 문제로 만드는가? 언론인가 어떤 기관인가?"
아마 어떤 기독교단체를 마음에 두고 묻는 거 같았다.
"한국교회를 안고 씨름할 때 정말 고통스럽게 소리칠 문제인가? 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한건주의 아닌가? 세습 한창 떠들다가 심심하면 다른 거 또 꺼내지 않겠나? 그리고 그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지 않은가. 기독교는 큰 공동체다. 그리고 지상교회는 좋은 교회와 나쁜 교회가 있다. 세습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개교회의 실수다. 전체교회는 보호해줘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이 문제가 대두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의 50%가 신학생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경우는 그렇다. 아마도 교회가 은혜스럽게 잘 될수록 세습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가능성에 대한 제동장치로 볼 수 있다."
김종희 (2000-08-26 오전 10:44:53) -----------------------------------------------------------------------------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옥목사께...
옥목사님은 비판을 수용하셔야 합니다. 몇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98년도로 기억합니다.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님이 담임하시는)가 20주년이 되었었답니다. 그리고 마침 그당시에 IMF가 터져서 다들 난리였지요.
사랑의 교회는 당시 안성수양관을 짓고 있었는데, 재정이 모자랐습니다.
건축비가 예상밖으로 많이 들어간데다가 IMF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옥 목사님께서는 이미 이전에 수양관을 짓기 위해 성도들과 더불어 작정헌금을 하하면서 '내 평생 마지막 작정헌금입니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다시 한번 더 성도들을 독려해서 수양관 건축을 위한 작정헌금을 했습니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좀 무리를 해서라도 헌금들을 하십시오 ...'
그런데, 그때가 사랑의 교회 20주년이었고 공교롭게도 옥목사님 환갑때였습니다(참고로, 옥목사님은 38년생입니다).
하여간에 교회에서는 당시 포텐샤였던 옥목사님의 차량을 체어맨(약 4-5천만원정도)로 바꾸었지요.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전해듣기로는 교역자들도 대부분 몰랐다고 그러더군요.
성도들에게는 무리해서라도 수양관 건축헌금을 하라고 하시고선 본인은 차량을 비싼 차로 바꾸시는 것을 보면서 몇몇 사람들은(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밖에 반응이 없었지요) '다른 분은 몰라도 옥목사님은 저러시면 안되는데 ...' 이렇게 생각을 했었답니다.
하지만 청년중 한사람이 옥목사님 비서실에 팩스를 넣어 '이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옥목사님께서는 당장에 '어른 섬길줄도 모르는 버르장미 없는 녀석같으니라고, 그런 녀석은 잡아내서 혼구멍을 내줘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교역자회의때 하신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를 개척해서 20년간이나 섬기셨고 옥목사님은 충분히 체어맨을 탈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환갑이나 되셨으니까요.
하지만, 성도의 입장에서 바라기는, '조금 더 기다리셨다가, 한 일이년 뒤에 IMF도 가라앉고 수양관도 다 짓고 그 다음에 눈총받지 않고 차를 바꾸셨더라면... 그리고 성도들도 다 알만하게 바꾸셨으면 ...' 이런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답니다.
옥목사님이 차를 바꾸시니까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님이 나는 더 좋은차를 타야한다 그러시면서 총액으로치면 1억 가까이 되는 하얀색 에쿠스리무진으로 바꾸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옥목사님이 차량을 체어맨으로 바꾸던 당시에, 매달 마지막주에 비전헌금을 일반헌금과는 달리 더 드렸습니다.
물론 비전헌금은 수양관을 짓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이것때문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수양관 짓는 것이 진정 사랑의 교회가 '비전'이라고 이름붙일만한 것이냐는 항의들이 많았지요. 흠 ...
2) 다른 이야기꺼리들도 많이 있지만 위의 한가지만 언급하려고 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옥목사님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분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분 스스로도 성장해 나가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분입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점에서 비판과 비평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옥목사님에 대한 비판과 비평이 당장에는 옥목사님께 흠집을 내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옥목사님은 이제 한사람의 개인이면서 더불어 한국교회의 어른이십니다. 옥목사님께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당장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옥 목사님은 비판과 비평을 들으셔야만 하고 그것을 겸허히 수용하셔야 합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청년부 출신입니다.
지난 98년도에 몇몇 청년들과 더불어 옥목사님의 차량문제를 청년부가 아닌 다른 교역자분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옥목사님께 가서 직언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과 비평을 무조건 흠집을 내기 위해서 저런다고 그렇게 생각핮 맙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지만 더불어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자식의 단점을 이야기해주면 아무리 그 말이 옳다 하더라도 듣기 싫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외삼촌이 조카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지 흠잡고 뜯어먹기 위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린 모두 한형제 한 자매들이지 않습니까?
3) 비판과 비평에 과연 자격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신문기자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인물에 대해서 비평적인 기사를 실을때는 '그 기자가 그 사건을 경험해본다음에만 기사를 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가 아니면 의사들의 잘못을 기록할 수 없고(한국의 열악한 의료환경속에서 의사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의사들이 잘못하고 있는 일을 기사로 기록할수 없다고 말하면 다들 웃을 겁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면 신문기자들을 비평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제가 알기론 한종호님과 김종호님이 적어도 기독언론과 상관된 일들을 상당기간하신 분들이시고 정규대학과정을 다들 마친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자신이 직접 목회를 하지 않고 있다고해서 목회자의 잘못된 관점이나 잘못된 설교에 대해 비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여유가 없고 비상식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4) 한종호님께서 옥목사님의 설교를 비평한 것에 대해서 ... 자꾸만 '왜 그렇게 한 사람을 때려잡냐?' 이런 식으로 반응들을 보인다면, 한종호님은 원래 그런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옥목사 때려잡으려고 그러는가보다' 그렇게 비치게 될겁니다.
음 ...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렇게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한종호님을 '매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건드리지 않을만한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매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한다고해서 거칠게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일부분이라 하더라도 옥목사님의 설교가 정말 문제가 있구나'를 받아들이면서 '음 ...옥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야겠구나. 옥목사님께서 한국교회와 본인을 위해 더욱 더 바른 성경해석을 하시도록, 더욱 더 그리스도를 닮으시도록 기도해야겠구나' 이렇게 반응을 보이도록 합시다.
5) 목사는 김일성이 아닙니다. 틀린것도 맞다고 생트집을 잡아가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그런 직분이 아닙니다.
물론 옥 목사님의 인격도 '본인이 설교한 내용중에 틀린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 자신이 잘못 설교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해서든 책임을 지려고하는 올바른 양심'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틀린 것도 맞다고 옹호해주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보일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옥목사님께 뉴조의 글들이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교회 비서실이나 수석부목사님께서 아마도 가로막고 계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옥목사님꼐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겸허히 비판을 수용하시고 성경해석에 잘못된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건 자기자신의 영적 권위를 깎아먹는 일이 아니라 겸허함을 통해 자기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온전히 세우며 영적인 귀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 말이 길어졌습니다.
98년도였던 것 같습니다.
남북나눔을 위한 청년연합집회가 충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동안교회의 김동호 목사님이셨는데 ... 그때 목사님께서 설교하시기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설교했던 것들중에 성경본문을 잘못 해석한 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몇군데가 있었고 ... 그래서 오늘 그중에 한가지를 제대로 잡으려고 합니다...' 왠지 그때 김동호 목사님의 웃음띤 심각한 얼굴이 생각나는군요. 아무도 김동호 목사님의 잘못된 설교때문에 그분을 '못된 목사, 자질이 부족한 목사'라고 말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분이 보이신 태도를 보면서 말입니다.
다음글 : 고등법원,충현 (조각돌) Contact ■2000 newsnjoy for more information. [158-861] 서울시 양천구 신정1동 1021-9호 현대프라자 401호 Tel) 02-654-8110 Fax)02-652-2947 http://www.newsnjoy.co.kr/
옥한흠 목사의 ■비판하지 말라■는 설교에 대한 반성적 재고 하나님의 의가 침묵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옥한흠 목사의 최근 설교(6월3일)인 ■비판하지 말라■는 성서의 ■비판하지 말라■는 대목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설교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옥한흠 목사는 마태복음의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각도에서 자신의 설교를 구성하고 전개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마태복음의 대목은 교회 내에서 교권적 권위 방어를 위해 비판적 발언을 봉쇄시키려는 자의적 목적으로 자주 등장시키는 수가 많다는 점에서, 본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긴요하다.
옥한흠 목사가 이 설교를 통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바가,
비판이라는 명목 아래 날이 선 말로 형제들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일 터이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의 강조가 분명 부분적으로나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비판이라도 그 비판의 봉쇄를 통해서 기득권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동기가 저간의 중심에 깔려 있다면 이것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메시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성서의 본래적 의미를 바로 아는 일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비판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고 모두 뭉뚱그려 비난의 계열에 분류해 버리는 오류를 낳음으로써 교권적 질서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을 유도하거나 강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비판하지 말라는 율법주의적 정죄에 대한 비판 마태복음 본문의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율법주의적 정죄 내지는 상대의 속 깊은 사정에 대하여 사려 깊이 헤아리지 않은 일방적, 단정적 심판에 대한 경계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율법주의적 정죄를 앞세워 교권적 지배를 꾀하였던 당대의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과감한 공격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논리에 뭇 백성들이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거나 따라가지 말라고 일깨우시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율법주의적 정죄론에 사회가 휘말리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논리에 희생당하고 서로에 대한 정죄주의적 추궁과 일방적 심판이 횡행하여 살벌해지는 것을 꿰뚫어 보신 것이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변호 과정도 바로 이러한 논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죄 없음에 대한 자신이 있다면, 혹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못한 처지에서 자신의 의를 절대화하는 율법주의적 단죄 또는 심판은 택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이렇게 자신의 불의에 대한 청산 작업은 전혀 하지 않고 타자의 사소한 잘못을 과장하여 정죄의 자리에 세우려는 율법주의적 자세를 겨냥하신 말씀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오늘날 현대적 의미에서의 이성적 비판 작업의 중단 내지 금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아픔이나 사연을 도외시한 채 자기 의를 절대적인 우위에 놓는 율법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면 이 율법주의적 정죄관을 극복하는 자리에서 가능해지는 비판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이것이 분명해져야 우리는 율법주의적 심판과, 건강한 비판 의식의 육성을 가려낼 수 있으며 그로써 이 성서의 대목이 교권적 방어를 위해 본의에 맞지 않게 동원되는 오류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타인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주는 행위는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특히 신앙공동체를 멍들게 하고 병에 걸리게 하며 신앙으로 한 형제 자매 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파괴하고 만다는 점에서도 강력하고 분명하게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로 충만한 사람이 그 입으로 타인의 마음과 영혼의 살을 도려내고 아프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판을 통해 상대를 죽이는 것은 음해 옥한흠 목사의 비판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이 그의 설교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는 왜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제자인 우리를 보고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하는 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판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형제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서 험담하거나 공격하는 언어의 폭력입니다. 이게 비판이에요.
자기 안경을 쓰고 다른 사람을 보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판의 봉쇄를 통해서 기득권적인 질서를 유지 하려는 동기가 저간에 깔려 있다면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 메시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승범) 것이 비판이요, 자기의 자로 다른 사람을 재면서 길다 짧다 늘어놓는 것이 비판이지요. 물론 여러분, 비판 중에는 건전한 비판도 있습니다.
주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해서 아예 비판 의식을 모두 정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가 잘못되어 가면 건전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교회가 바로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한국 교회가 조금이라도 부패하고 세속화되어 간다면 우리는 이런 교회를 가슴에 안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하는 비판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뭐냐? 교회 안에서 형제끼리,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용납하지 못해 말을 가지고 형제들을 상처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옥한흠 목사는 비판의 바리새적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정리해내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내세우는 의가 뭡니까? 다른 사람 죽이고 자기가 사는 의요. 그렇지요. 다른 사람 까뭉개고 자기가 의로워지는 것이 바리새인의 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주님을 섬긴다는 우리가 바리새인들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 거요.
우리에겐 더 나은 의가 필요해요. 더 나은 의가 뭡니까? 형제를 비판하지 않는 의입니다. 나를 죽이고 형제를 높이는 의요.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되기를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판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교회 안의 형제가 아니에요. 세상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은 우리가 영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요.
비판을 통해서 자기를 내세우고 상대를 죽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비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음해이자 악의적 공격이며 분열주의적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옥한흠 목사가 경계하고 있는 비판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세상 사람들은 신앙인이 영적 기준에 의해 비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영적 판단의 여지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시 말해서 영적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신앙인에게는 그렇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신앙공동체 내부로 비판의 화살을 돌리지는 말 것이나, 그것이 신앙공동체 밖의 사람들을 향해 쏘아질 때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가 비판의 정의를 매우 이중적으로 또는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즉, 세상 사람에 대한 비판은 그가 내린 비판의 정의대로 상대가 세상 사람이기 때문에, 신앙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어 상처 내는 일은 괜찮다고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신앙인의 세상 사람에 대한 비판은 세상 사람들의 허물과 약점을 고쳐서 바로 잡아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니 그것은 상처인 것 같지만 상처 내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만일 비판이라는 것이 옥 목사의 정의대로, 형제의 약점이나 허물을 들추어내서 험담하거나 공격하는 언어 폭력이라면, 그것은 신앙공동체 내부에서나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나 그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생명을 바로 세우는 비판, 언어 폭력으로서의 비난 그런데 그는 세상 사람들은 신앙인의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때의 비판은 이러한 언어 폭력으로서의 비판이 아니라 건전한 영적 비판 행위를 의미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언어 폭력의 성격을 지닌 비판을 세상 사람을 겨냥해서 해도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면 그의 설교는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된다.
말하자면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의 허물을 공격하고 상처를 주어도 되는 자격과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독선과 오만이요 자기의 영적 기준을 절대화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옥 목사의 의도를 선하게 받아들여 세상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신앙적 기준에 맞추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요,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비판은 형제에 대한 언어 폭력적 공격이라고 구별해서 이해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신앙적 기준에 맞춘 비판은 인정되고 있음을 수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