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김은희의 간증(1) .....재탕

bs5.gif ar.gif


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Re:김은희의 간증(1) .....재탕

손오공 0 1,738 2004.05.09 07:41
김은희의 간증(1)

저는 CCM가수이자 작곡가이고 음악 프로듀서인 최덕신의 아내 김은희 입니다. 현재 저는 최덕신과 간통 고소로 인한 이혼 소송으로 법정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싸움을 선포하고 진행해 오면서, 저는 최덕신이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 자신을 돌이켜 주기를 일말에 희망을 걸고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최덕신이란 사람의 인간성과 그의 행동들에 대하여 조용히 간과하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까지 할 수밖에 없는 저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덕신은 현재 간통 혐의로 마포 경찰서에 고소 되어있고, 서부 경찰서에서 수사 착수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지않아 빠른 시일 안에 같은 혐의자인 ‘김앵’을 대동하고 소환 될 예정으로 대기 중입니다.

가수 최덕신은 한 가정의 남편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이라 수년 동안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그가 가족회복 운운하며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오지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며 마치 자신이 일방적으로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동정심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체 앞에서 자신을 거짓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혼 소송의 원인이 최덕신과 “김앵“의 불륜이라는 사실을 그도 압니다. 그렇기에 이 소송의 해결책은 그가 불륜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덕신은 현재 불륜을 청산하지도 않은 채 대중 앞에서만 가족회복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혼을 선포하고 친정에 가있는 자신의 아내인 저 김은희를 집나간 여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덕신의 거짓된 행동은 그 수위를 더해갔습니다. 최덕신은 주위 사람들과 매체에서는 본인이 가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최덕신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있던 제게 그가 ‘김앵’과 소비하느라 진 카드 빚을 갚을 돈을 친정집에서 구해오라며 협박하고 죽이려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최덕신은 지금까지 한번도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한 사역자의 아내로서, 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싶었습니다. 전 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더라도, 최덕신이 한 번 만이라도 “김앵”과의 불륜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저는 그를 용서하고 그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저의 친정식구들과 주위에 저희 가정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김앵과의 불륜관계를 유지 하였고, 주위사람들에게 가정이 회복되길 원하고, 불륜관계가 정리되었다며 자신을 은폐시켰습니다. 최덕신은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더 주변 사람들과 대중들에게 동정과 위로를 구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식적인 기도제목을 올려놓고 여러분을 속였습니다.


최덕신은 실제 간통 고소장에 대한 답변서에 "돈도 없고 이혼할 마음도 없다고,”기록하여, 자신의 죄를 시인하기보다 어떻게든 이 소송을 무마시키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역자란 어떤 사람이여야 합니까? 최덕신은 저와 결혼 시작부터 지금까지 방법만 달랐을 뿐 늘 이런 식으로 의도적인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 가족인 아내, 자녀들, 심지어 주위 사람들까지 이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최덕신은 새로운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최덕신에게 “사역”이라는 명목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그 일들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일이 아닌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최덕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돈들은 다시 여자들과의 향락을 위해 흥청망청 쓰여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더 이상 최덕신이라는 사람에게 속지 않으셔야 합니다.


최덕신은 이 일이 추진되는 동안 제가 있는 친정이 어딘지 뻔히 알고도 ,한번도 친정으로 전화한 적도, 찾아와 잘못을 구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잘못을 구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는 그 최덕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


저는 주찬양 선교단 단장이었고, 복음성가 가수이며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최덕신의 아내 김은희입니다.

저와 남동생이 초기 찬양하는 사람들로 활동할 때, 극동방송에서 최덕신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최덕신이 활동하고 있던 주찬양선교단은 그다지 명성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찬양단과 최덕신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덕신은 제 남동생을 통하여 저에게 관심을 보였고 끈질긴 데이트 신청을 하였습니다. 견디다 못해 이루어진 만남속에 결국 2달 만에 친정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의 권유로 급작스럽게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2월 5일 오후2시 백주년 기념관)

결혼과 동시에 전 주찬양선교단에서 엘토 멤버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주찬양 멤버들은 시아주버님이신 최유신 전도사님과 K단장, Y양, 최덕신, 김은희 (본인).5명 이었습니다. 이들과 매일 모임을 갖고 교제할 때마다 저는 이상하게도 멤버들이 최덕신과 저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특히 시 아주버님은 동생인 최덕신이 이야기하는 것마다 인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자 저는 같은 멤버인 Y양을 만나서 선교단속의 인격무시와 시 아주버님의 행동에 대한 원인들을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Y양은 저에게 최덕신에 대해 얼마만큼 서로에 대해 알고 결혼했냐고 반문하였습니다. 다른 주찬양 멤버들은 최덕신의 여자관계와 모든 사생활들을 제가 알고, 결혼 한 줄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밖에 Y양은 결혼 전에 주찬양선교단이 최덕신 때문에 두 번이나 해체 위기가 있었음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최덕신과 팀 자매들 간의 복잡한 이성관계로 자매들 안에서 분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최덕신은 결혼하기 직전까지 선교단내의 자매와 교제 중이었으며 갑작스런 저와의 결혼 때문에 자연히 단원들이 탈퇴하여 5명으로 팀 멤버가 조정 되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인 최덕신이란 사람에 대하여 알게 된 사실들은 저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찬양 멤버들이 저희 부부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저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 속 에서도 저는 시부모님을 모셔야만 했으며 매월 20회 이상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습니다.

첫아이를 임신 한 후, 열 달 동안은 입덧을 해가면서도 꾸준히 최덕신과 함께 주찬양선교단 활동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공식적인 단원공모에서 열 몇 명의 신입단원이 들어오고, 주찬양이 알려지면서 멤버들이 2,30명으로 늘어나고 선교활동도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1990년 둘째아이 의선이를 낳고 저는 주찬양 활동을 접게 되었습니다..


매달 20회 이상 지방 공연 활동을 했던 최덕신은 이무렵부터 앨범 녹음과 선교단일로 한달에 반 이상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끔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계속적으로 반복 또 반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금의 이러한 상황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가장 수치스럽고 말하기조차 창피하고 힘든 일을 쓰려고 합니다.

ccm가수 송정미씨가 1집을 만들 당시였습니다. 저는 남편의 권유로 친정집에 며칠간 머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며칠 뒤 최덕신은 느닷없이 약 봉투를 제게 내밀면서.. 자신이 성병인 매독에 걸린 사실을 통보하였습니다..그리고 자신이 결혼하기 전부터 청량리 588을 수시로 다녔음을 시인하며 약을 같이 복용 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의사의 처방조치)

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매독에 걸린 그의 속옷 에는 온통 피 고름이 뭍어나 있었고 매독에 걸린 그의 성기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문란한 성생활과 무절제한 사창가 출입으로만 옮는다고 하는 매독이 제 남편, 그것도 사역을 한다는 사람에게서 발견 되었을 때, 저는 그 사람과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수치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횟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망연자실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최덕신이 사역자였기 때문에,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은혜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하나만 조용히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행각은 제주도에서 살 때도 해외로 사역(일본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을 나갈 때마다 계속되었습니다. 여행가방속에서 수차례 성병으로 인한 비뇨기과 약을 발견하였습니다. 최덕신은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차마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제 남동생 이름으로 약을 지어왔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병적 성 도착증에 대하여 저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최덕신은 또다른 불륜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인가도 별로 없는 벽제 산속에 산장 집에서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차가 있어야 나갈 수 있고 밤이면 주변에 불빛이라곤 보이지 않는 집에서 저와 어린 아이들은 꼼짝없이 갇혀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갇혀 산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말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외부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덕신은 연락두절로 며칠이고 외박을 감행했고 그때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의 손을 붙잡으며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기도했습니다.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간신히 잠재우고, 남편인 최덕신을 기다리느라 밤을 세우기 일 수 였습니다. 정말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가장에게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최덕신이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가정을 돌봐줄 것과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권유 하였습니다.그러나 최덕신은 사역한다는 이유로 제 의견을 무시해 버리기 일 수 였습니다.

그러다가 여자문제가 부각 될때면 그때 마다 그는 아이들이 보고있는 상황에서 이성을 잃고 저를 죽일 듯이 목을 조르고 온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며 사정없이 저를 폭행하고 입에담지못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최덕신은 끝까지 여자문제를 헛소문으로 몰고갔습니다. 참을수 없는 가정폭력 속에서 전 그말을 거짓으로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찬양 단원들의 자체적인 추적으로 최덕신과 여자멤버와의 불륜관계는 공식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헛소문일 뿐이라며 내 목을 조르던 남편 최덕신은 이 일로인해 주찬양단팀을 해체하게 되었습니다.

최덕신과 같이 무리를 일으켰던 여자 단원은(이름을 밝힐 수없음) 불륜사실이 드러난 직후 주변 목사님들의 권유를 받아 부모님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덕신은 주위의 많은 목사님들의 권유로 근신기간을 갖게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가정은 모두 하와이로 신앙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와이에서 돌아온뒤 최덕신은 거처를 제주도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해외 사역시 수시로 사창가를 찾는 그의 변태적인 행동들은 가까스로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제게 더 큰 절망을 안겨줄 뿐이었습니다.

제주도는 비행기가 없으면 뭍으로 나올 수 없으므로 한번 지방집회를 떠나면 오랜시일이 걸 릴 수밖에 없음을 당연시 하며 ,최덕신은 지방의 집회를 거의 매주일 다녔습니다.

어디서 무슨 집회를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언제쯤 집에 오는지, 가족들에게 한번도 연락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최덕신이 오가는 일들을 관여하지 말아야 했고 어쩌다 조심스럽게 한번 숙소에 대해서 물어보면 윽박지르며 어디서 묵었는지조차 묻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덕신이 혼자서 집회를 다니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집회가 끝나면 관계자들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않고 홀로 호텔에 투숙하여 포르노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는 호텔방에서 포르노를 보며 자위행위를 즐겼고, 윤락녀와의 섹스에 빠져 있었습니다.

최덕신의 그러한 행동은 늘 사역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이중적인 모습에 저는 최덕신을 남편으로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기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94 바이블에 서술된 자살에 관한 소고 손오공 2004.05.09 1319
493 사단을 경배하는 캐롤송...고요한 밤 거룩한 밤 손오공 2004.05.09 1549
492 기독교 정당 출범에 즈음하여 손오공 2004.05.09 1263
491 기독교의 천박함 그리고 캬바레 손오공 2004.05.09 1681
490 죽은자에 대한 너그러움 그리고 예수에 대한 관대함 손오공 2004.05.09 1755
열람중 Re:김은희의 간증(1) .....재탕 손오공 2004.05.09 1739
488 Re:Re:김은희의 간증(2) .....재탕 손오공 2004.05.09 1837
487 Re:Re:Re:김은희의 간증(3) .....재탕 손오공 2004.05.09 1921
486 루터와 칼빈에 대한 소고 손오공 2004.05.09 1776
485 용과 사탄 그리고 청와대 손오공 2004.05.09 1485
484 기독인의 위선 손오공 2004.05.09 1505
483 첫 4세기동안의 기독교(2) 손오공 2004.05.09 1421
482 [위선]목사 설교 중 ......질문하기 운동을 제창하시길 바랍니다. 손오공 2004.05.09 1643
481 (4)일반 오류 손오공 2004.05.09 1877
480 시련과 유혹 손오공 2004.05.09 1797
479 .. 다니엘사관학교, 100일만에 문닫은 사연 손오공 2004.05.09 1574
478 매일 매일 창조하는 한국 기독교 손오공 2004.05.09 1365
477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한국 기독교 손오공 2004.05.09 1326
476 피를 먹고 자라는 기독교(부제:드라큐라는 야훼의 또다른 이름) 손오공 2004.05.09 1625
475 娼婦같은 기독교 손오공 2004.05.09 1635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65 명
  • 오늘 방문자 1,890 명
  • 어제 방문자 5,217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581,392 명
  • 전체 게시물 14,416 개
  • 전체 댓글수 38,042 개
  • 전체 회원수 1,668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