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우리 민족은 원래 모질지 못하다.죽은 자 특히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는 생시의 공과를 불문하고 가능한 허물을 덮어 주고자 한다.
[몇년 전 중국에서 한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보도는 아무 이유없이 강도살해된 것으로 보도되었고 그로인해 당시 중국에 체류중이었던 한국사람들은 걱정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한다.]
그러나 실제 그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결국 죽은 자의 허물을 덮어주는 한국인의 미덕을 발휘했던 것이었게 그 사건의 실상이었던게다.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그 중소기업의 사장은 술집에서 술을 먹고 중국인 여자와 매춘을 했다. 매춘행위가 끝나고 화대를 달라는 여자의 요구를 받았으나 화대를 주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그날 그 사장을 대접했던 사람은 화대를 계산하지 않았다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말도 잘 안통했을뿐더러 한국식으로 화대가 선불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를 구타하고 모욕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을 무시한다. 특히 한국인들이 중국 술집여자들에 대한 모욕은 상상이상이다. 과거 일본인들이 했던 것 이상이다.)
결국 화대도 받지 못하고 모욕을 당한 그 술집여인은 울면서 호텔을 뛰어나갔고 우연히 근처에 있었던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격분한 중국인들이 한국이 사업가를 구타해서 죽인 것이었다.]
한국언론에는 이 모든 사실이 숨겨졌다. 소위 왜곡되어 전달되어진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중국인 깡패가 한국 사업가를 죽인 것으로 단신 보도되어 죽은 한국 사업가의 명예를 살렸으나 결국 중국인을 모욕했고 그 지역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반감은 상상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죽은 자 혹은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관용의 문화는 최근의 몇몇 사건을 기억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현대 정몽헌 회장의 자살
*안상영 부산 시장의 자살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남모 대우 중공업 사장의 자살.....
물론 죽음은 안타깝고 관계자에겐 비통한 일이지만 그 사람들의 자살로 인하여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덮혀져서는 안된다.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면 자신의 잘못이 노출되어 자신의 기득권이 날라가버리는 자들의 경우 자살의 유혹에 빠질 것이며 제2, 제3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죽은 자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는 것은 그 죽은 자의 허물을 덮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은 자의 잘못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우리 사회가 좀더 건강해질게 아닌가.
예수의 죽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예수가 현실도피의 최후 수단으로 선택한 그 자살 사건을 냉철히 바라볼 수 있는 이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앙도 정보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정보 역시 검증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예수에 대한,바이블에 대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정보의 검색에 인색하다.
예수가 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예수는 생전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예수와 바울의 주장하는 바가 왜 틀리는지
공관복음의 예수와 요한복음의 예수가 왜 틀리는지
예수가 왜 이방인을 개라고 비유했는지....
부언하면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정체성를 확실히 알고 난 뒤
예수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하던지 경멸해야하던지 최종 판단을 내려야하지 않겠는가?
사족하나:우리나라의 목사 그리고 교주들은 예수의 흉내를 잘낸다.소위 신유의 역사와 종말에 대한 협박 등이 그 닮은 꼴이 되겠다.그러나 예수의 죽음 즉 자살에 대해서는 극력 회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