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Re:Re초대교회의 이단들...차라리 영지주의가 오늘의 기독교보다 우월한 종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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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Re:Re:Re초대교회의 이단들...차라리 영지주의가 오늘의 기독교보다 우월한 종교가 아닌가?

손오공 0 1,330 2004.05.09 07:34


.. <<초대교회의 이단들>>



초대교회 이단의 종류



▶유대교적 이단: ①에비온파(Ebionites) ②엘카사이파(Elkasites)



▶헬라주의적 이단: ①영지주의 ②마르시온 ③마니교



▶교리적 이단: 단일신론(Monarchianism)



초대교회의 분파



▶몬타누스파(Montanism: 터툴리안의 일파)



▶노바티안파(Novatianism)



▶도나투스파(Donatianism)



2세기의 교회는 내외적으로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다. 반체제적인 집단이라는 명목하에 외적으로는 박해에 시달렸고, 내적으로는 비체계적인 가르침과 허술한 조직으로 인하여 이단이 등장했다. 위와같이 여러종류의 이단과 분파가 있으나, 그중 다음의 3개만을 살펴볼 것이다.



㉮ 영지주의 ㉯ 마르시온 ㉰ 몬타누스주의



1. 영지주의



2세기 초엽 소아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역사적 예수와 신앙속의 그리스도 사이에 나타나는 외관상의 대립을설명하고자 하는 몇몇 기독론이 있었다. 그의 비천한 지상생활과 하나님으로서의 선재하심, 그 뒤를 따라오는영광과의 극단적인 대립을 생각한다면, 기독론 문제에 대한 가장 간편한 해결책은 하나님의 지상생활의 실제성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었다.



① 발생원인: 초대교회의 허술한 조직/ 신앙의 근간이 되는 교리의 비확정때문.

② 창시자: 시몬 마그누스(Simon Magnus)

③ 영향력을 가진 기간: 135-160년 사이.

④ 사 상:

현상세계를 전적으로 악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실재하는 이데아의 세계와 보이는 현상세계를 대조시킨 플라톤의 이론을 페르샤의 이원론적 개념으로 해석하여 부연한 것이다. 페르샤의 이원론적 개념이란 한쪽은 인간이 항상 돌아가려 하는 선한 세계로 보고, 다른 한쪽은 인간이 갇혀 있는 전적으로 악한 세계로 보는 관념이다.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를 악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그것을 창조한 신은 높고 선한 신이 아니라 열등하고 불완전한 하위신(Demiurgos)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받고자 한다면 이 악한 보이는 현상세계로부터 자유로와야 하며, 그 자유를 얻는 길은 영적 실체의 참된 세계와의 합일을 가져다 주는 신비한 영혼의 광명, 즉 '지식'(그노시스)에 있다. 이 지식은 신비하고 초 자연적인 지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를 전수받은 사람은 우주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게 되고, 악한 물질 세계로부터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⑤ 특 색: 혼합절충주의(Syncretism) - 영지주의는 혼합주의의 산물로서 헬라적 유대교와 이교와 동양적 근원을 가진 여러 종교에서 영감을 받아 그 근거로 삼았고, 악과 인간 운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분명한 자세와 어떤 특징적 관념을 끌어들였다.(켈리, 고대기독교교리사, 34)

⑥ 역사적 의의

-교회내에 권위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권위에 근거해서 이단이라 말하는가? 따라서 필연적으로 성서관이 확립되었고, 신앙규칙이 정립외었으며, 성경의 요약서인 세례신조(신앙고백서)가 확립되었다.

-삼위일체론 정립의 시발점이 되었다.



⑦ 영지주의를 논박한 학자들



-Iren us: '이단논박'



-Hippolytus: 헬라철학에서 온 것으로 주장



-Origen: 성경해석으로 논박했다. 영지주의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데 대하여, 영적으로 해석해야 함을 역설했다.



-Tertullian: 법률적인 사고로 영지주의를 논박.



⑧ 결 론:

영지주의는 교회밖으로부터 들어온 교회 내부의 가장 위협적인 사상이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과 그들의 하나님을 각기 다른 존재자로 본다. 구약의 하나님은 악한 세상을 만든 하나님으로 악하고 열등하며, 그의 창조 역시 열등한 신의 작품이다. 따라서 그들은 구약성서와 그에 대한 교회의 공적 설교를 반대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그리고 부활등을 거부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깨우치신 일만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구속의 사건은 그들에게는 의미없는 일이었다. 구원은 소수의 영적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며, 신비의식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는 내적인 이러한 문제를 통해서 오히려 치밀한 조직과 명확하게 정의된 신조(Creed)를 발전시킬수 있었다.



2. 마르시온

① 발 생:

약 140년경에 발생했다. 마르시온은 신앙심이 돈독했던 조선업자였다. 로마에 와서 영지주의와 접하게 되고, 영지주의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잘못된 시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따라서 몇가지 기본적인 사항에 있어서 영지주의와 비슷하다. 즉 우선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왜냐하면 물질세계인 창조 그 자체를 천하고 악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한다. 이것 역시 물질이 악하다는 근본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존신자들과의 문제가 생기자 스스로 교회를 세웠고, 짧은 시간에 큰 교회를 이루었다. 이 교회조직의 흔적은 6세기에 이르기까지 발전되었다.



② 사상적 특징: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을 구분한다. 창조주는 악신이다. 악한 물질 세계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정의를 요구하면서 복수극을 벌이는 불완전한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반면 신약의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아버지로서 선할 뿐만 아니라,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는 하나님이다. 마르시온은 철저한 이원론적 사고를 지양한다. 율법과 복음,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과 교회등등. 이것은 그의 신학의 출발점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마르시온은 그 율법에 관한한 그것은 이미 폐지되었으며, 복음은 일체 율법에 대한 언급없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다(신학사,53).



▶구약적인 모든 것을 배제시킨다. 율법을 강조하는 내용은 모두 삭제되었다.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사도바울의 서신들을 우선적으로 취하였다. 그가 작성한 신약성경목록은 디모데와 디도(목회서신)를 제외한 바울서신과 누가복음만으로 이루어졌다. 나머지는 구약적이기에 제외시킨 것이다. 정경을 과감하게 뜯어 고치려고 시도한 혁신적인 인물이었다(신학사,54)



▶금욕을 강조했다. 인간이 악한 물질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훈련 보다는 육신을 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결혼이나 육식을 금했다. 기혼자들은 부부관계를 안하겠다는 서약후에 받아들여졌다.



③ 결 론



이원론적 입장이나, 물질세계를 악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영지주의와 매우 유사하다(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러나 마르시온에게는 영지주의와는 다른 특유의 독창성 또한 존재한다. 하르낙이 그의 저서 교리사에서 말했듯이, 영지주의가 기독교와 헬라의 철학을 혼합시킨 종교적 잡록집이라면, 마르신온은 사도바울에게서 나온 특정의 사상들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급진적 재편과, 아울러 모든 유대주의적 요소들을 제거하려 시도했다는 점이다.(벵트 헤그룬드, 신학사, 46). 다시말하면 영지주의는 혼합적이나, 마르시온은 혼합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판단하여 복음이라 보기에 적합치 않은 것은 제거함으로서 기독교를 개혁하고자 했다(신학사,51). 또한 영지주의의 신비적 요소를 전혀 수용치 않았다. 마르시온은 영지주의가 말하는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단순한 신앙을 전파 할 뿐이다. 따라서 교리사가 하르낙 이후, 오늘날 마르시온을 더 이상 영지주의자라고 간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개혁가로 분류한다. 그는 잊혀질 듯 했던 바울의 사상을 다시 발견! 하면서, 신학에서 도덕주의가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났던 시기에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을 선포했던 사람이었다. 교부들이 모든 이단들 가운데 마르시온이 가장 난해한 자 였다고 한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마르시온의 신학 가운데 또 다른 측면들, 즉 그의 신론과 기독론,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혁신적 구분등이 그를 평가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신학사,52).



④ 평 가



마르시온은 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교회는 신약의 정경화를 서둘러야 했다. 그때까지도 신약성경은 한권으로 편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책들도 따로따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도들이 저술한 것처럼 위장한 것도 있었다. 영지주의로 인하여 교회 내부의 가르침에 대한 조직과 체계의 필요성이 증가되었다면, 성서 정경화 작업의 가속화라는 순기능은 마르시온의 영향이었다.



3. 몬타누스주의



앞의 두 이단과는 다르게 몬타누스 주의는 한 하나님 한 주 그리스도를 교회의 신앙대로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성령운동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지향한사고보다는 그들이 취한 그 방법에 있었다. 성령을 받기위해서, 성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성령운동에 대한 교회의 비판적인 거리감은 이들로 인해서 시발이 되었다.



① 발 생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에서 156년경 몬타누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본래 무당이었다. 어느날 기독교를영접했으나, 옛 방법에 의존하여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 더불어 '맥시밀라'와 '프리실라'라고 부르는 두 여인과 합하여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교회안에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새로운 종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감독과 장로들을 중심으로 몬타누스 교회는 약 500년결까지 유지되다가 사라졌다.



② 사 상



-임박한 재난과 재림에 대비하여 거룩한 생활을 요청했다.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기다렸다.



-초대교회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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