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야훼는 모세를 통하여 명령한 처음 계명으로 자신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수많은 신들을 창조했다.이들 창조된 신들 대부분은 인류의 문명화와 함께 소멸되었지만 그 중 끈질기게도 생존한 신들이 몇 명있다.대표적인 게 야훼와 알라 ...정도가 되겠는데 야훼가 의도한 다른 신 없애기는 인류의 문명화와는 관계없이 바이블에서는 최우선의 과제로 실행되고 있었다.
열왕기 상권을 보면 이스라엘의 대표적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신의 예언자 간의 대결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엘리야가 당연히 승리한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사로잡으시오." 엘리야는 백성들이 사로잡아 온 그 예언자들을 키손 개울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 (왕상 18:40) >>
*아직 비는 내리지도 않았고
어쨋던 이 삽화를 보면 바알신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 예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보여 진다. 야합왕은 바알신을 신봉하는 이세벨을 왕비로 둔 단지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이스라엘 최악의 왕으로 판정되었으니.....
<<아합이 그 오바디야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나와 둘이서 전국을 다녀 보자. 어쩌다가 풀이 있는 곳을 만날지도 모르니 모든 샘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 보자. 어떻게든 말과 노새를 살려야지 그냥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 (왕상 18:5) >> *야합왕이 백성들을 결코 외면하는 왕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벤하닷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오자 아합왕은 그를 자기의 수레에 태웠다. (왕상 20:33) >> *항복한 적장을 살려 주는 야합왕의 모습을 보면 그의 인간성과 배포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야훼는 잔인하기만 하다.예언자를 통해 전달한 야훼의 잔임함과 증오심을 살펴 보자.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선조의 유산이란 이유로 요구를 거절하자 아합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 가 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음식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왕상 21:4) >>
이세벨의 음모로 인해 나봇이 죽은 연유도 모른체 그 포도원을 소유하게된 야합에게 야훼는 엘리야를 통해 또 끔직한 저주를 내린다.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왕상 21:19) >>
*야합은 정말 억울하다.
그다음 왕의 처 이세벨에 대한 저주도 끔직하기만 하다.
*이세벨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실 이러한 삽화는 야훼의 뜻을 빙자한 그 당시 성직자들의 광오한 횡포의 예화라고 보여 진다.
신의 뜻이라고 백성을 미혹하며 살인과 저주를 일삼는 엘리야의 행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오늘 현재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일방적 믿음을 강요하며 신도들을 갈취하는 목사 등 소위 성직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동일하지 않은가?
바알신이던 야훼신이던
이제 바알을 신앙하는 인류는 거의 없다.
*그들은 알파펫을 발명하여 인류에게 문자 혁명을 선물했다.
이러한 시돈과 두로(페니키아) 도시국가에 비해 참신이라는 야훼신앙을 가진 이스라엘인들이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긴게 과연 무엇이 있는가?
*증오와 폭력 그리고 전쟁을 즐겨하는 기독교라는 종교만이 그들의 유산이 아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