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필자는 예수의 실존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번 밝힌 바 있다.그러나 삼위일체론 자체를 기독교인들이 목숨처럼 사수하고 있는 게 또한 현실이므로 이글에서는 예수의 실존 문제 보단 그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바이블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밝혀 보고자 한다.
바이블은 여러 명의 기자들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한 작품에도 여러가지 견해가 뒤섞여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이글에선 예수를 화자로 인용한 글 그외 바이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와 바이블 기자의 주관적인 견해 그리고 사탄(마귀,귀신) 등 예수의 대적자들의 주장...
마지막으로 교부를 비롯한 신학자 등의 예수에 대한 견해를 비교해 보고져 한다.
이러한 여러 목소리 중 누구의 견해가 진실에 가까운가를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 되겠다.
신뢰성의 우선 순위를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고져 하는 것은 필자의 생각인데 그대는 동의하시는지?
예수 자신의 말 > 예수의 가족 > 이웃 > 제자 > 동시대 인물 > 바이블의 저자 > 교부 외
1)예수 자신의 말
<<잘 들어라.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 12:6) >>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읍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읍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읍니다." (마 11:25~27) >>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 28:18~20) >>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막 13:32) >>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눅 23:46) >>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 5:17) >>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요 5:22) >>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 들일 것이다. (요 5:43) >>
<<예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 와 있으니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의 아버지시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보내셔서 왔다 (요 8:42)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 10:31) >>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친히 명령하시는 대로 말하였다 (요 12:49) >>
*주지하는 바 예수는 자신을 야훼로 직접 표현한 적은 한번도 없다.예수의 말 중 자신의 신성을 인정해달라는 말이 전혀 없다는 뜻이 되겠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의견을 주로 피력한 글이었음에도 예수 본인은 자신의 신성을 부인한다. 자신은 야훼를 그저 아버지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상기 표현을 예수의 신성에 대한 증명이라고 아직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 자신이 야훼란 말과 똑 같겠다.....그대도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가?
2)예수의 가족
<<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마 12:46) >>
<<그 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를 불러 달라고 사람을 들여 보냈다.(막 3:31) >>
*불행하게도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적인 목소리는 전혀 없다.
*그러나 예수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인정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상기 내용에서 쬐끔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고 본다.
3)이웃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마태 13:55) >>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마태 13:56) >>
*이웃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란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경멸인지...경탄인지....
*어쨋던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고 확인할 수 있겠다.
4) 제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 14:33) >>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마 16:16) >>
<<요한이 예수께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것을 보았는데...막 9:38) >>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요 21:15) >>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요 20:28) >>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신성을 인정한 적은 분명있었다.
*그러나 차후의 행동을 보면 분위기 상 멘트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이 예수를 진정 신으로 생각했다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 등에 임하는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예수와 제자....이 관계에서 우리는 신과 신도의 느낌은 도저히 인지할 수 없다.그렇다.그들의 관계는 인간간의 교류의 하나이었을 뿐이다.
5)동시대 인물
<<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막 15:2) >>
<<빌라도는 다시 군중에게 "그러면 너희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막 15:12) >>
*빌라도는 바울과 함께 바이블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의 말에서도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
*위조된 빌라도의 보고서를 예수의 실존 근거로 인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나 그것 마저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는 보고서는 아니었다.
6)바이블의 저자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마 4:2) >>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마 8:24) >>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눅 2:40) >>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눅 2:52)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4) >>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요 1:1) >>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 1:14) >>
<<....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요 4:6) >>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 (요 19:30) >>
<<그것은 다름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롬 1:3,4) >>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롬 5:15) >>
<<그들은 저 훌륭한 선조들의 후손들이며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읍니다.(롬 9:5) >>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롬 10:9) >>
<<...만일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고전 2;8) >>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읍니다 (고전 15:21) >>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딤전 2:5) >>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읍니다. (빌 2:11) >>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 줍니다. (디 2:13) >>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히 5:7) >>
<<자녀들은 다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히 2:14) >>
<<하느님의 성령을 알아 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요일 4:2) >>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참 하느님을 알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읍니다. 그분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요일 5:20) >>
*바이블 기자들의 견해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인간으로 표현한 사람,신적인 인간으로 표현한 사람...정말 신으로 생각한 사람....
*요한복음 기자가 예수의 신성에 관해 가장 관심이 많았던 모양인데 그마저 어떤 때는 예수의 인성에 촛점을 맞출 때도 있었고....
*대체적으로 바이블 기자들의 관점은 예수에게서 신의 모습을 찾고져했다는게 정답이 아닐까한다.
7)마귀,사탄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 4:3) >>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읍니까?" 하고 소리질렀다. (마 8:29) >>
<<예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시며 자기 일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마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 1:34) >>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읍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막 1:24) >>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읍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약 2:19) >>
*마귀 사탄들도 예수를 신자체로 인정하지는 않고 신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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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바이블에 기록된 여러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비교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예수 자신이 자신의 입으로 신임을 선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몇 몇 바이블 기자들이 예수를 신의 위치로 격상시키고져 한 흔적은 있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예수의 행적과 설교 등에서 신의 모습을 찾고져했다는게 정답이 아닌가한다.
만약 오늘날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기독인들만의 주장이 참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예수 자체가 이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사람은 요한 정도 밖에 없는데 요한 외는 모두가 이단이 된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그대는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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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교부들의 주장
8-1:에비온파(Ebionites)와 알로기파(Alogi)
에비온파와 알로기파는,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단순히 사람이었고, 그가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내려오셔서 그에게 메시아 의식을 주셨으나, 그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떠나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으로써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8-2:도케테파(Docetism)
도케테파 혹은 가현설(假現說)은 게린더스(100년경), 그노시스주의자들(Gnostics), 말시온, 사벨리우스파 등의 생각으로서, 앞의 견해와 비슷하지만, 단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입장에서 본다. 즉,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단순히 사람이었고, 신적 그리스도께서 그의 세례 받을 때 내려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그를 떠나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나의 환영(幻影, phantasm)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도 역시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8-3. 아리우스파(Arianism)
아리우스(250-336년경)는 인성(人性)과 연합한 "말씀"(요 1:14)이 하나님이 아니시며 사람보다 나은 최초의 피조물, 즉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반신반인(半神半人)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초대 교부 오리겐은,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이 아니시며 영원 전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그의 본질이 하나님 아버지께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었다.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이런 견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결국,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신성(神性)을 부정한 것이었다.
아리우스의 견해는 아다나시우스의 반박을 받았다. 아다나시우스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주장했다. 마침내, 초대 교회는 주후 321년 니케야에서 모인 세계 종교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과 본체시라는(호모우시오스) 사상을 바른 견해로 선언하였다. 성경이 풍성히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은 그 외의 혹은 그 이하의 어떤 것으로 표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도적 입장을 취했던 반(半)아리우스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비슷한 본질이심(호모이우시오스)을 주장했으나 호모우시오스와 이자 하나만 다른 호모이우시오스라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표현할 수 없다. 반(半)아리우스파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기는 마찬가지이었다.
8-4. 아폴리내리우스파(Apollinarianism)
아폴리내리우스(310-390년경)는,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의 3실체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실 때 신적인 "말씀"이 사람의 영의 자리에 들어오셨고 단지 사람의 혼과 몸만을 취하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사람이심을 부정한 것이었다.
8-5.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네스토리우스(451년경 사망)는, 신적인 "말씀"(로고스)께서 인성(人性)과 한 인격체로 유기적 결합을 하시지 않고 단지 사람 속에 거하셨다고 주장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비록 정도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신자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內住)하심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심을 부정하는 것이요 참된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하는 것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두 분 곧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이다.
8-6. 유티커스파(Eutychianism)
유티커스(378-454년경)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하나로 혼합된 제3의 성(性)이 되었으며, 이 때 인성이 신성에 압도되지만 동시에 신성도 전과 같지 않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는 "일성설"(一性說, monophysitism)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부정한 것이다.
8-7. 일의설(一意說, Monothelitism)
일의설(一意說)은, 일성설(一性說)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의지(意志)만 가지고 계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주후 680년 제3 콘스탄티노플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별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시며, 의지는 성(性, nature)에 속하므로 그가 또한 신적 의지와 인적 의지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질(신성과 인성)과 두 의지를 고백한 것이었다.
8-8. 양자설(養子說)
비잔티움의 데오도터스(주후 2세기)는,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난 사람이며 세례 받을 때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을 받으셨고, 그의 훌륭한 인품과 업적들에 대한 상급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 후, 스페인의 감독 펠릭스(818년 사망)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에 있어서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의 인성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入養)되셨다고 주장했다. 그도 참된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요, 두 아들을 말함으로써 두 인격을 말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8-9. 속성 전달설
다메섹의 요한(675-745년경)이나 루터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신성의 속성들(전지, 전능, 편재 등)이 인성에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혼합을 가져오는 오류이다. 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는 신성과 인성의 구별이 있다.
8-10. 인성 중심의 기독론
칸트(1724-1804)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상적인 윤리적 완전을 실현하셨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신앙은 무의미하고, 그의 도덕적 교훈을 따르는 것이 구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헤겔(1770-1831)은, 인류 역사가 절대자 혹은 하나님의 자기 전개의 과정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과정의 절정이시요, 그의 성육신은 하나님과 사람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범신론적 사상에 불과하다.
슐라이엘마허(1768-1834)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의 끊임 없는, 완전한 연합 의식을 가지고 계셨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완전히 거하셨고,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이셨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예수께서 무죄 완전한 인격으로 이상적 인간성을 충분히 실현하셨다고 보았고, 예수님의 처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릿츨(1822-89)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사람이셨으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시고 그것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셨고, 예수님의 선재(先在), 성육신, 신성과 인성의 연합 등의 교리들은 종교적으로 무가치하며 신앙에 방해거리가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8-11. 게노시스설(Kenoticism)
19세기 루터파 가운데서의 게노시스설은 빌립보서 2:7의 "자기를 비어(에케노세)"라는 말씀의 잘못된 해석에서 나왔다. 이 견해의 주장자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신적 속성들의 일부(G. 토마시우스에 의하면, 전지, 전능, 편재의 속성들만) 혹은 전부(W. F. 게스에 의하면)를 포기하셨으나, 부활, 승천 후 그 모든 속성들을 회복하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의 불변성에 충돌된다(말 3:6; 약 1:17). 또한 이 세상에서 생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빌립보서의 "자기를 비어"(게노시스)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때에 그의 신성의 영광을 감추시고 신적 속성들의 사용을 포기하심으로 마치 신성이 없는 분처럼 행동하셨다는 것이다.
8-12. 점진적 성육신설
I. A. 도르너(1885)는, 게노시스설에 반대하여 성육신을 순간적 사건이 아니고 점진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는, "말씀"(로고스)께서 인성의 수용성의 성장에 따라 점점 더 많이 인성과 연합되셨고, 그 연합이 부활 때에 완성되었고,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의식과 한 의지를 가지신 신인(神人)이 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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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는 이와같이 다양하다.
사람의 생각이 각양각색이듯이 예수의 모습도 그만큼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예수가 신이자 인간이라는 그 억지 도그마만을 주장하고자하는 음모의 그늘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되겠다.
니케아 회의를 비롯해 네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예수의 지위가 결정된 사실을 기억하자.
단지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것은 예수란 존재를 통해 신이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까 정도가 아니겠는가?
인간이 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길가의 풀잎 향기에서도....
밤하늘 유성의 아픔에서도....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에서도.....
예수만이 신이며 더우기 삼위일체의 하나라는 요상한 도그마만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주장을 거절 못한다는 것은 그대가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양함을 인정하는것....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참 실존이라고 다시 강조해 본다.
사족:그대가 아직까지 삼위일체만을 참진리라고 생각한다면,베드로도...바울도....
마태기자도....마가기자도...누가기자도....히브리서 기자도....야고보서 기자도.....
아니 예수까지.....이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