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말로하고 폭력과 분열은 행동으로 실천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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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랑은 말로하고 폭력과 분열은 행동으로 실천한 예수

손오공 0 1,422 2004.05.09 09:20







흔히들 기독교는 사랑과 평화의 종교로 알려져 있으며 예수는 비폭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전쟁과 광기 그리고 증오로 이어져 왔음 또한 사실이다.


이 역설적 괴리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예수의 설교와  그 행동을 분석해 보면 그 모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고 본다.


 


우선 예수가 사랑에 대해 설파한 장면을 보기로 하자.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 >>
그 유명한 산상설교 중의 한 귀절이다.그리고 마태복음19장에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19:19) >>하고 사랑 타령을 한다.
그리고 산상복음의 다른 내용을 예를 들면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마태 5:40) >>
정말 사랑의 화신같기도 하다.


 


과연 그러한가?


 


복음서의 전체적인 흐름은 갈등과 긴장으로 가득차있다.그리고 그 갈등은 종종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은 주인공인 예수 뿐만 아니라 조연 격인 그 주변의 인물도 마찬가지겠다.
*공관복음의 첫 작품인 마태의 전승은 족보 이야기 다음의 첫머리 삽화로 헤롯의 유아 대학살로 시작하는데 이 이야기는 복음서의 갈등을 예고하는 첫머리 화두로 보여진다.
*야훼 혹은 예수 자신이 갈등의 대상으로 때로는 폭력을 야기시키거나 옹호하는 모습으로 묘사됨을 보면 그 증거됨을 확인할 수 있겠다
.


화합 보다는 갈등을 조장하는 그 문제의 장면들을 살펴보자.


 


누가복음 서두에 마리아가 야훼를 찬양하는 장면이 나오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누가 1:52) >>
권력에 대한 굴종을 주장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권력에 대한 증오감은 사회의 불안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음은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한다.권력의 남용에 대해 경고를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마리아의 찬양처럼 행동하다 보면 쿠테타적 발상만 생기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게하는 귀절이 되겠다.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읍니까..(마가 1:52) >> 


마가복음도 악령과의 투쟁으로 예수의 공적인 활동이 시작됨을 보여 주고 있다.


 


왜 복음이라는 예수의 말 그리고 그 행동이 갈등으로 그 긴장감을 고취시켜야할까?
소위 사랑을 주창하는 종교라면
그 대상이 권력이 되었던 마귀가 되었던  갈등 요인을 해소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탄 마저도 사랑으로 개심시키는 신의 모습을 왜 보여 주지 않을까?
기독교의 본질이 복음서의 첫 삽화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부유층에대한 갈등 조장도 마찬가지다.
누가복음 6장20절에서 24절을 보면 빈부에 대한 극단적 이분법으로 그 갈등을 조장하며 심화시키고  게다가 확대까지 시키는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


가히 쿠테타적인 발상이 아닌가?
굶주린 사람에겐 빵을 주던가 그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부유한 자들에겐 그 부의 배분에 대해 방법론을 제시해야지
예수는 그저 갈등의 긴장감만 조성하고 있다.


 


예수와 종교적 대립자라 할 수 있는 바라새인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그들을  설득코쟈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자극하며 저주로 일관하는게 예수의 일관된 행동으로 묘사되어 있다.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이상 누가 11:37~52)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 역시 저주로 일관한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잘 들어라.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이상 누가 11:37~52)


 


빌라도의 갈릴리인 학살에 대한 예수의 발언도 끔직하기만 하다.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은 열 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들인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누가 12장)


로마의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들에게 그저 맹목적 신앙만 요구하고 있다.
위로는 커녕 오히려 저주을 퍼붓는 예수의 폭언에 그대는 무엇을 느끼는가?


 


바리새인이 예수를 나름대로 걱정하여(예수는 그들에게 저주를 퍼 붓기만 하는데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헤롯의 관하로 부터 피신할 것을 권고하자 예수는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헤롯이 싫어하는 행동만을 계속할거라고 말하는 치기를 보여 준다.그 바리새인은 예수의 그 교만에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어서 이 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자 ? >>
<<예수께서는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마친다" 고 전하여라>>...(누가 13장)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후 대대적인 환영에 고무되었을까? 성전에서의 행위는 사랑의 예수란 말 자체가 무색한 그저 교만하고 폭력적인 모습만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 가 거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 내시고 환금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마태 21:12) >>
당시 유대에는 여러가지 화페가 통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전에 예물로 드리는 돈은 오직 유대 화폐만 요구되었다하는데 이러한 관습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앙적 관점에서의 행위만 요구하는 예수의 독선에서 그대는 무엇을 느끼는가?


 


예수는 폭언도 불사한다.
<<이 뱀 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랴?  (마태 23:33) >>


 


예수에게는 설득과 타협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자신을 따르던가 아니면 저주 뿐이다.
*사단 마귀는 말할 것도 없고
*바리새인,율법학자,사두개인
*헤롯왕
*부유층...등등


예수가 진정 사랑을 주창한 인자였다면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소위 그 원수된 자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모습을 보여 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행위는 포기하고 그저 독설과 저주로만 일관했다.


예수 이후 기독교가 인류에게 행한 악행의 그 뿌리가 되겠다.


 


사족 하나:그러나 로마의 권력에 대해서는 너무나 순한 양같은 모습을 보여줬던게 또 다른 예수의 모습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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