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교인가 바울교인가....니체에 대한 오해
손오공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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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9 08:09
보편적으로 바울은 기독교의 도그마를 제공한 신학자로
예수의 12제자와 동격 혹은 그 이상으로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건
주지의 사실이겠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의 근본 가르침을 오히려 왜곡했다는 진실은 대부분의 기독인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음 또한 역사적인 사실임에 다름아니다.
이점 니체는 과감하게 그 신학적 진실을 고백한 바
오히려 오늘의 기독교는 니체를 다시금 재조명해야만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니체의 기본적인 생각 즉 예수의 실존은 인정하지만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을 왜곡하였다....물론 본인과 인식의 출발점은
다르지만(본인은 예수의 실존자체에 의문을 갖고 있음)
니체가 주장한 몇몇 명제를 살펴 보기로 하자.
우선 니체의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비판은
<<첫째로, 소위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것은 강자들에 대한 약자들의 원한감정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둘째로, 신이란 무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셋째로, 기독교 도덕은 노예도덕이다. 넷째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이란 숨겨진 허무주의의 표현이다. 다섯째로, 기독교 성직자들은 인간의 자기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관철시킨다.>>
대체로 공감가는 주장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니체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들을 살펴 보면
<<나는 기독교의 똑바른 역사를 말하겠다. 기독교란 말부터가 하나의 오해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인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리고 복음도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 순간 이래로 복음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은 벌써 그가 몸소 생활한 바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것이야말로 나쁜 소식, 즉 禍音(Dysangelium)이었다.>>
즉 니체가 주장하는 바는 예수의 죽음을 그리고 가르침을 왜곡하는 자가
있다는 선포이며 그 범인이 바울임을 지명하고 있다.
그러면 예수에 대한 니체의 인식을 알아 보자.
<<그(예수)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실천이었다. 다시 말해서, 재판관, 포리(捕吏:Häschern), 고소자 및 모든 종류의 중상과 조소를 앞에 둔 그의 태도,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태도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최악의 사태를 도발하고 있다. … 그리고 그는 그에게 악행을 가한 자들과 더불어서, 그들 안에서, 기도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도는 행동하는 것이며, 하나의 다른 행동을 통해서 구별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악의를 지닌 자에 대해서 말로써나 마음에 있어서나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 이방인과 동족,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구별하지 않는 것. 그는 어떤 이에게도 화내지 않고 어떤 이도 경멸하지 않는다. 법정에 나타나지도 않고, 또한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아내의 부정에 대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아내와 헤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원칙이며, 모든 것은 하나의 본능의 결과인 것이다.>>
니체는 예수란 인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였다.
<<예수는 "스스로 천국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스스로를 영원이라고 느끼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반면에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천국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가 없다 ― 에 대한 깊은 본능"을 소유한 인물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초기 기독교가 주창하는 삶이란 예수의 행동과 삶을 본받는 삶이 되어야
한다...즉 믿는다는 것 보다 행동함이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설파하고 있다.
다음으로 니체가 인식하고 표현한 바울에 대한 기록을 보기로 하자.
<< 바울은 증오의 화신이요 환각의 천재다. 예수는 신과 인간의 간격을 제거하고 신인 합일의 내면적 생을 자신의 복음으로서 최후까지 실천하였는데, 바울은 십자가 위의 희생이란 관념을 삽입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간격을 넓히고 그 중간에다가 원죄, 심판, 부활 그리고 신앙에 의한 구원 등등의 여러가지 환상을 개입시켰다. 이리하여 바울은 생의 의미를 사후로, 피안으로, 배후세계로 옮겨 놓았다. 예수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현실의 내면적 생의 긍정 대신에, 피안을 신앙하는 자학의 체계가 등장한다. 생의 중심이 생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안의 무 속에 놓이게 된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에 의하면 바울은 "최초의 기독교도", 혹은 "기독교의 발명자"가 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니체는 바울에 의해 예수의 본래적 가르침이 다음과 같이 왜곡되었다고 선포한다.
1. "참된 삶"과 "거짓된 삶"이라는 대립은, "차안의 삶"과 "피안의 삶"으로 오해되었다.
2. 덧없는 개인적 삶과 대립되는 "영원한 삶"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불멸"로 오해되었다.
3. 헤브라이적 아라비아적 습관으로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형제가 되는 것은 "화체의 비적, Wunder der Transsubstantiation으로 오해되었다.
4. "부활"은 "참된 삶"으로 들어가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 일은 사후 어느 때엔가는 들어가게 될 역사적인 뜻밖의 사건이 되었다.
5.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자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생명 관계였거니와, 이는 "신성의 제2격"이 되어, 모든 인간 ― 가장 비열한 자를 포함하여 ― 의 하나님에 대한 아들의 관계, 바로 이것을 제거하였다.
6. 신앙에 의한 구원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도는 그리스도에 의해 가르쳐진 삶의 실천 이외에는 달리 없다는 것은 무언가 불가사의한 속죄 ― 이는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를 통해 성취된다 ― 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앙으로 뒤바뀐다.
즉 오늘 우리가 기독교로 오해하고 있는 그 종교는 바로 바울교임을
니체는 선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오해가 2000년 동안 계속 되었음을
주지시켜 주고 있다.
사실상 기독교도라는 것은 전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도" 즉 이 천년 동안 기독교도로 불리어졌던 것은 단지 하나의 심리학적 자기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니체의 교회에 대한 인식은
<<교회야말로 정확하게 예수가 그것에 반대하여 설교했던 것이며, 그것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그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 바로 그것이다. >>
다시 니체는 예수란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는, 기독교를 낳은 근원이 아니고, 기독교에 의해서 이용되는 여러가지 수단 중의 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수가 표시한 진리는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전도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어떤 최초의 진리에 배반하여 그 진리가 점차 상실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전혀 예수와는 별개의 근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부언 하면 예수는 바울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수단으로서 그동안 존재
해 왔음을 주장하고 있다.
바울의 기독교는 그 반유태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최후의 유태적 귀결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바울이 설교하는 기독교의 이상은 철두철미 빈혈증적이고 반자연적 이상이다. 빈혈증적 이상이란 세계를 공허하고 창백한 것으로 보고 그 정신화와 감각초월을 완전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반자연적 이상이란 세계를 모순되고 추악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바이블은 몇가지 이론의 정당함를 제공한다.
첫째:바울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바울은 예수의 설교 즉 산상설교 등을 전혀 인용하지 않앗다
셋째:바울은 예수의 여러 이적 즉 오병이어 등을 전혀 몰랐다
넷째:공관복음과 바울서신의 주창하는 바가 너무나 괴리가 크다.
기독인 여러분!
그대들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예수교인가 혹은 바울교인가
오해의 모자를 벗길 두려워하고 있는 기독인들이여
100년전에 니체는 벌써 그 정체를 일부나마 간파하였지 않았던가
니체는 神은 죽었다고 설파했지만
좀더 진실에 가까움은 神은 人間에 의해 창조되었다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