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1920,30년대.... 일제 식민지 치하란 우울한 시대적 배경은 사이비 종교가 발아하기 좋은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고 보여 진다.신도들이 300여명이나 살해되었다는 처참한 기록을 보여 주고 있는 백백교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며 사이비 종교에 대한 섬찟한 교훈의 시발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때쯤 기독교에서도 자칭 재림예수가 나타났다한다.
황국주는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북간도에 이주하여 용정중앙교회에 출석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1933년경 그는 백일 간의 기도를 마친 후에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을 신언(神言)의 대변자로 자처하였다. 그리고 겉모습을 마치 예수님인양 장발로 머리를 내리고 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그는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 … 전부가 예수화되었다”고 주장하여 자기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었다. 그는 1933년 5월 <영계>(靈界)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는데, 현재는 단지 창간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거짓된 계시의 일단이 이 창간호의 내용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집단은 결혼 관계 이외의 성적 관계도 전혀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숙소에서 남녀가 혼숙을 했기 때문에 큰 말썽을 빚었지만, “완전한 신앙은 남녀가 혼숙을 할지라도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를 일축하였으며”, 그는 오히려 이 모든 처사가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행한 일’이며 ‘완전한 신앙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합리화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황국주 일파의 운동은 심각한 윤리적 방종을 동반하였으므로, 1931년 장로교 황해 노회에서는 황국주의 부흥회 인도 금지를 결의하였으며, 이어서 1933년 안주 노회와 평서 노회는 황국주와 유명화 등을 ‘위험한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1935년도에는 그가 새예루살렘 도성을 찾아 순례자의 길을 간다고 그를 따르는 적지 않은 추종자들과 함께 함경도와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향해 올 때, 전국 교회가 이들로 인해 매우 소란하였다고 한다. 황국주는 후에 서울로 와서 삼각산에 기도원을 세웠는데, 그는 영체 교환(靈體 交換)이라는 성적 행위를 통해 새로운 영성을 지닌 새 인간을 만들어 이들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룬다고 하는 ‘피가름’의 교리를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신앙이라는 미명 하에서 일어난 집단적 혼음 행위는 이후 이와 유사한 사교(邪敎) 집단에서 주로 발생하는 성적 부도덕성의 모델이 되었다.
한국이 배출한 자칭타칭 재림예수니...어린양이니...보혜사니...하는 거룩한 분들의 명단을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01)황국주:삼각산기도원....자칭 메시아 예수(1933년)
휴우...이 쬐끄만 나라에 자칭 타칭 재림예수,보혜사가 얼마나 우굴우글하는가?....
그러면 예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고백했을까?
*그는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이라고한 적이 없다. *신의 아들이라고 시인한 적도 없고
어쩌면 예수는 굉장히 내성적이었던 것 같다. 주위에서 그렇게 예수를 신격화할려는 움직임을 보였어도 그는 자신의 입으로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신성을 고백한 바 없는 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만 하다가 짧은 생애를 마쳤지 않았나 판단된다.(물론 복음서의 설화를 역사적 진실이라고 가정하의 글이니 혹시 에수가 실존했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런데 예수와 전혀 관계없는 동방의 쬐끔한 우리나라에서 예수를 신격화하고 게다가 그 예수를 흉내내는 거룩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출몰하는 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사족:상기 여러 교주 중 이미 고인이 된 황국주,박태선,안상홍 그리고 조희성은 언제쯤 부활할까? |
항상 배워야 한다는... 그리고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이군요...
경의를 표합니다. 연구란 이런거를 말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