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석탄일 대신 한글날을 국경일로"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5월 15일 (목) 15:51
▲ 토론자들이 한글날 국경일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2003 신향식
한글날의 문화국경일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특정 종교 기념일인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을 법정공휴일에서 빼고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4대 국경일에 포함된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보다 한글날을 더 우선적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대표 주경복)와 '한글날 국경일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본부장 서정수)는 5월 14일 오후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이 국가 발전에 끼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이 발표자들의 토론을 열심히 듣고 있다.
ⓒ2003 신향식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문화와 언어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경제논리를 앞세워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뺀 것은 큰 잘못”이라며 “이제라도 행정자치부와 국회는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승격하고, 경제계도 여기에 협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6년부터 공휴일로 지내오던 한글날은 90년 11월 노태우 정권 당시 "노는 날이 많아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10여 년째 한글운동단체들과 문화계가 한글날의 문화국경일 승격을 호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일수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에 지장이 많다”는 재계의 주장만 수용해 왔다.
▲ 주경복 교육개혁 시민연대 운영위원장(오른쪽 두번째)이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정하는 것의 타당성'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2003 신향식
주경복 대표(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자본가들의 신자유주의 논리로 보면, 무역을 하거나 금융거래를 하거나 산업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안되면 한글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역시 문화나 역사에서 한글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하기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노동일수를 계산하여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조장희 교사(신일중, 서울경기 국어교사모임 회장)도 “경제적인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도록 부추긴 경제단체들의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논리는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면서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찌 ‘돈’이 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특정 종교 기념일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한 것과 4대 국경일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류병균 평화통일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자유토론시간에 “공휴일이 많아 경제활동이 위축된다면, 국민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만든 종교 기념일을 우선적으로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총장은 “성탄절은 해방 직후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을 위해 외세에 의해 공휴일로 지정됐고, 석가탄신일 역시 독실한 불교신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공휴일로 만든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또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일부 종교의 기념일을 법정공휴일로 만든 것은 헌법에도 위배되고 다른 종교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면서 “기독교인이건 불교신자건 모든 국민들이 기념해야 마땅한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진월스님(동국대 교수)이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승격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2003 신향식
진월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광명불교대학장)도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법정 공휴일에서 폐지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면서 “한글날이 종교 기념일보다 뒤로 밀릴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현철씨(전직 교사)는 “4대 국경일인 삼일절과 광복절은 일본에게 예속됐던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고, 제헌절은 반만년의 우리 역사에 비추어 볼 때 그리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제헌 헌법의 내용도 모순덩어리”라면서 “4대 국경일에 한글날이 빠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씨는 또 “경제인들이 한글날의 중요성도 모르면서 한글운동가들을 국수주의자로 오해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진용옥 교수(경희대)는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한글의 힘과 한국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동북아시아를 한글한자 정보문화 공동체로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이것은 로마자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책”이라고 밝혔다.
▲ 진용옥 경희대 교수가 한글한자 동북아 정보문화 공동체를 이루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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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진 교수는 “공휴일이 많아 문제라면 한글날을 10월 9일로 못박지 말고 10월 둘째 토요일로 정한 뒤 개천절(10월 3일)부터 한글날(10월 둘째 토요일)까지 한글문화 국경절로 만들어 성대하게 기념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주최측은 한국경영자총협회에도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으나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관한 경총의 입장’이란 제목의 문건만 보내 왔다. 경총은 이 문건에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판단기준을 경총이 갖고 있지 않아 가부를 말할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현재 근로자들에게 국경일은 단순히 노는 날로 인식돼 있고, 우리나라 법정공휴일은 17일로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을 웃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서정수 교수(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본부장)는 인사말을 통해 "국민들이 한글의 참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경양 회장(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은‘한글날 국경일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대표 모임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을 촉구했다.
이어서 임종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가 ‘한글날 국경일 지정이 국가발전에 끼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발제를 하고 주경복 대표(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와 조장희 교사(서울 신일중, 서울경기 국어교사모임 회장)가 토론을 한 뒤 김영명 교수(한림대 정치외교학과,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토론회 논평과 방청객 자유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 토론회를 마친 뒤 주요 참석자들이 "한글날! 국경일!"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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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국경일 제정이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김영명 한림대 교수 '한글날 국경일 제정 토론회'에 대해 논평
▲김영명 교수(오른쪽 첫번째)가 '한글날 국경일 제정 토론회'에 대해 논평을 하고 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해야 한다는 임종인 선생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여러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잘 논증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덧붙이거나 뺄 것이 없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대체로 당위론의 성격이 강하고 논점이 구체화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논평자가 그 동안 느껴오던 몇 가지 쟁점 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기회를 흐릿하던 논점을 명확히 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
우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이나 국경일 제정을 반대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무지몽매함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논리의 지배다. 이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노태우 일당이나 지금의 행자부 공무원들, 그리고 재계 인사들은 도대체 문화나 언어, 한글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 뿐 아니라 지금 정관재계를 장악한 사람들은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몽매한 사람들이다. 일반 국민들도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 어찌 보면 국민 수준이 이 정도란 것이 근본적 문제일 수 있다.
경제 논리의 지배는 개발 독재 시절 이래 쭉 그랬던 것이지만, 그래도 박정희 시절에는 독재의 한 수단으로 민족 문화를 강조하였으므로 한글이나 '우리 것'이 우대 받기도 했다. 민주화, 탈냉전 시대가 오면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되어 돈 숭배가 극에 달하게 되자, 정신의 양식이나 국어·한글은 천시하고 미국말이 돈을 벌어다 준다고 잘못 믿게 되었다.
한글날 국경일 반대 논리를 깨려면 위 두 차원 모두 다루어야 한다.
첫째, 문화와 언어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문화와 정신과 독자성이 중요하고 그 근본에 한글이 있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또 한글이 왜 중요한지, 한글날이 왜 다른 국경일보다 더 중요한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이 점은 발표자께서 잘 지적해 주었다.
둘째로, 경제 논리를 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한다고 해서 경제에 손실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논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논리 개발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좀더 논의해 보자.
발표문에는 "말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빛내는 정책을 펴는 정부와 나라는 부강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주시경 선생도 "말글이 오르면 나라도 오른다"고 했는데, 말글이 오르면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는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말글이 오르면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도 오르는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한글 우대가 경제에 해롭지 않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무지몽매'한 경제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한글이 우수하고 소중한 것은 누구나 알고 동의한다. 심지어 경제론자들도, 한글날 국경일 반대자들도 이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니 한글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발표문에서 제시하는 이유들은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들이다. 그렇지만 좀더 작은 차원에서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었을 때와 아닐 때 나타나는 차이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면 더 좋을 것이다. 또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른 공휴일들을 줄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반대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적한 것들은 대개 '한글날을 국경일로'의 명분에 관련된다. 그런데 실상 더 중요한 것은 정치 싸움이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은 명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정치 싸움이고 숫자 싸움이다. 반대론자들도 한글날 국경일의 명분 자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하고 회피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며, 무엇보다 국회에서 숫자를 확보하여 국경일 제정을 밀어붙여야 한다. 명분론은 이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다. / 김영명 교수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판단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토론회 참석 않고 '한글날 국경일'에 대한 입장 보내와
기본적으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판단기준을 경총은 갖고 있지 않으므로 가부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됨. 다만 현재 근로자들에게 국경일은 단순히 공휴일 즉 "노는 날 내지는 쉬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됨.
우리나라의 법정공휴일은 현재 17일로 주요선진국인 일본(15일), 미국(10일), 영국(8일), 프랑스(11일), 싱가포르(11일)등을 상회하고 있는 실정임. 더불어 우리나라의 전체 연간 휴일·휴가일수는 월차휴가 12일, 연차휴가 10~40일, 일요일 52일 등 91~121일(여성은 생리휴가 12일을 더하여 각 103~133일)에 이르고 있는 실정임.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주 5일 근무제 관련, 정부입법안은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를 15~25일로 부여할 계획임. 이럴 경우, 우리나라의 연간 휴일·휴가일수는 136~146일이 되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일본(129~139일)보다 7일 정도 많아지며, 선진 8개국의 평균 연간 휴일·휴가일수 127.4일에 비해서도 많아지게 됨.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현재 경영계는 공휴일 4일 정도를 축소할 것을 건의해 왔으며 이는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필요불가결한 조치로 이해해주시기 바람. / 경총
/신향식 기자 (
shink@gangna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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