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화합물(7): 금기식품
손오공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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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9 07:19
1. 종교와 금기 식품
최초에 인간과 동물에겐 채식만이 허용되었음을 보여 준다(창 1:29). 육식은 노아 홍수 사건 직후에야 비로소 허용되었다(창 9:3). 구약성서에서 식용 동물을 분류하고 있으며 짐승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제시되어 있다(레: 11장). 그 조건은 (1)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된 것, (2) 되새김을 하는 것 등 두 가지인데,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포유류 동물로는 소, 양, 염소, 사슴, 산양 등을 들 수 있다(신 14:4, 5). 이 짐승들은 모두 풀을 먹고사는 깨끗한 짐승들로, 다른 것들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짐승들이다. 여하튼 이 두 가지 조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한 짐승은 먹을 수 없었다. 먹어서는 안 되는 포유류 동물로서 되새김질할 뿐, 또는 굽이 갈라졌을 뿐인 것(낙타, 바위 너구리, 토끼, 돼지),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굽이 갈라져 있지 않는 것(말, 당나귀), 네 개의 발로 걸으나 발바닥으로 걷는 야생의 생물(고양이, 사자, 여우, 이리)이 언급되어 있다.
어류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의 분명한 기준이 제시되어 있다(레 11:12). 그 기준은 바다나 강에 있어도 (1) 지느러미가 있는 것과 (2) 비늘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 조건이라도 없는 것은 부정(不淨)한 것으로 취급되어 먹을 수 없었는데, 그 실례로는 뱀장어 류, 조개 등의 갑각류를 들 수 있다. 조류로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리, 닭, 비둘기이다. 곤충류에서는 뛰는 다리가 있어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곤충은 정(淨)한 것으로 취급되어 먹을 수 있었다. 그 이유인 즉, 긴 다리가 있어 뛰는 곤충들은 기는 것들과 달리 뱀의 부정하고 사탄적인 요소들을 극복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한 곤충으로는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등을 들 수 있다.
돼지고기를 입에 대는 것은 모세의 율법에 위반하는 것이어서, 율법학자 엘르아잘은 돼지고기를 먹기보다는 자진하여 죽음을 택하였다(마카베오하 6:18-20).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진주는 진리나 지혜로운 말을 비유하는데 고대의 랍비(rabbi) 문학에도 그렇게 사용되어 말하기를, "미련한 자에게 지혜로운 말은 돼지에게의 진주니라"고 하였다. 방탕한 아들은 들(field)로 보내어져 돼지를 치게 되었다(눅 15:15).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돼지는 불결한 짐승 중의 하나이다(레11:7; 신 14:8). 따라서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을 뿐더러 돼지를 치는 것조차 꺼려하며 천시하였다.
2. 문화적 탁월 식품
인류가 먼 거리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널리 보급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반 주민 수준에서 고려하면 19세기 이후이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사람들은 거주하고 있는 공간 내에서 일생을 보내고 먹는 것도 거주 공간의 자연조건에 적합한 식료품만으로 충족시켜 왔다. 그 지역의 사람들의 생존을 보증할만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주요 식품의 특징은 (1) 지역의 주된 식품 에너지 공급원이다. (2) 우선적으로 생산 가공 저장이 행해진다. (3) 신화 등으로 상징적인 취급을 받는다. 우리 나라의 쌀에 상당하는 것이 각 지역에 특이하게 존재하여, 유럽에서는 밀, 몽골에서의 우유,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옥수수 등이다. 어떤 지역사회에서도 이런 식품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문화적 특급 식품」(cultural super food)라고 부른다.
인간의 음식물에 대한 기호는 어린이에서부터 익혀서 습득된 것으로, 특정한 환경 속에서 시간이 소요되면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지역적으로 다른 환경 하에서 또한 다른 지역과 교류가 거의 없을 경우에는,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다르게 형성된다. 현대는 국제간의 문화적 교류가 많은 시대이다. 그러나 음식문화의 교류는 도시(都市)에 한정되고 있는 현상으로, 어느 나라이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지역의 문화적 우월 식품에 근거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 쌀은 귀하게 취급되지만, 쌀 이외의 잡곡이나 감자 등의 식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는 쌀은 삼가야할 식품으로 취급된다. 이것을 양(陽)의 상징과 음(陰)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지역에 있어서 문화적 특급 식품에는 많은 경우 양의 상징성이 부여된다. 역으로 문화적 특급 식품의 존재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음의 상징성이 주어지는 것이 많다.
양의 상징으로서 동남 아시아에서의 쌀, 유럽에서의 밀, 몽골에서의 우유 등으로, 이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로서의 신으로부터 또는 신의 대신으로, 생명의 상징,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귀하게 취급된다. 이들의 가공품 예를 들면 한국에서의 떡, 중국에서의 만두, 몽골에서의 흰 치즈, 유럽·기독교 사회에서의 빵 등은 양(positive)의 상징의 대상이다. 이들 식품은 그 지역 사람들의 보다 좋은 생존을 보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상징을 허술하게 취급하는 것은 지역공동체에 적의(敵意)를 나타내는 것이고, 신(神)을 모독하는 것으로 신의 벌(罰)이 내려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식품에 음의 상징을 부여하려고 할 경우에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어떤 규정에 대하여 의미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실상과 허상처럼 되어서, 양의 상징을 모독하고 음의 상징을 수용하는 것은 함께 신의 의지에 위반한다는 이론으로 되는 것이다. 양의 상징이라면 많은 경우에 그래도 비교적 간단하지만, 음의 상징에 위배하여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음의 상징이 된 먹거리는 미리 정해진 신과의 특별한 약속, 요컨대 종교적인 계율(戒律)과 같은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음의 상징으로서 많이 보이는 것은 도살식육(屠殺食肉)에 관한 금기(禁忌)이다. 목축사회에 있어서는 가축의 젖과 육류가 문화적 특급 식품이어서, 그 때문에 도살이 불가결한 행위이다. 더욱이 가축의 경우에는 가축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의 표시로서 도살이라는 행위를 초자연적 존재의 의사(意思) 또는 인간은 그 행위의 대행자(代行者)로 그 행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도살되는 동물은 신(神)·인간·동물의 상호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 한하며, 그런 의무에 적합하지 않는 동물은 도살하여 식용으로 하는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다시 도살의 방법, 생명의 재생을 상징하는 혈액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규범이 생긴 것이다.
유대교(敎)에 있어서 고기를 먹어도 좋은 동물은 구약성서에서 볼 수 있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고 되새김하는 위가 있어서 풀을 먹고 인간과 먹이를 경쟁하지 않는 포유류동물이고, 대체로 무리를 지어 관리함으로써 가축화될 수 있는 동물인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먹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뿐만 아니고,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경우의 암·수의 서열, 동물의 부위, 피를 빼는 등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 가축을 도살하여 식용으로 할 때, 엄격한 규범에 틀림이 없이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일련(一連)의 처리가 틀림이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유대교에서는 성직자의 감독 하에서 올바른 도살을 익힌 도살자가 그 역할을 하였고, 그렇게 처리된 육류 및 가공품을 코셔스(Koshers)라고 부른다. 다만 최근 미국과 같은 선진사회에서 코셔스 표시는 순수 식품이라든가 손으로 만든 계율을 존중한 식품이라기보다 특선 식품의 이미지로 변하였다.
이슬람교에 있어서 음의 상징의 취급은 유대교와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이 종교가 발생한 지역이 고대 기독교와 중복되어 있어서, 어느 것이나 서아시아 및 서남 아시아의 목축민 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슬람교의 계율에 의하면 동물로서는 돼지고기, 부위로서는 혈액, 상태로서는 이미 죽은 것, 다시 자르고 쪼개는 방법으로 도살한 것 이외의 것은 식용이 거부된다(코란 5장, 6장 참조). 유대교에 있어서의 코셔스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는 이러한 도살 처리를 한 육류 및 가공품을 할랄(halal)이라고 부르고, 이교도(異敎徒)의 나라에 거주하여도 반드시 할랄을 공급할 수 있는 체제(體制)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한 긍정·부정은 초자연적 존재와 관련한 것뿐만 아니고, 단지 음식에 대한 습관이 없어서 기피되는 경우, 또는 종교상, 생활양식이나 은유(隱喩)로서 식용이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사회에도 선조의 체험 등이 쌓여서 전승되고 있는 먹거리의 금지와 제한이 있다. 먹거리 그 자체의 경우와 병자나 임산부 등과 같이 사람의 상태와 관련하고 있는 경우에 음식의 금지와 제한이 있다. 이런 금지와 제한은 지역의 독특한 전승이므로 단지 민간에 행해지는 미신적 신앙인지 또는 합리성이 있는 생활의 지혜인지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돼지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부정적이고, 소는 힌두교 사회에서 부정적이며, 말은 프랑스, 일본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부정적이다. 낙타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긍정적이며, 개는 동 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중앙아프리카에서는 긍정적이며, 고래는 일본과 북극 선주민에게는 긍정적이나 기타 지역에서는 부정적이다.
다만 그 금지와 제한의 조립에 사상적 구조를 갖는 것이 있고, 그 전형적인 것은 고대 중국의 음양설(陰陽說)이다. 우주 만물을 음과 양으로 나누고 그 조합에 의하여 길흉을 판단한다는 주역(周易)의 사상으로, 이것이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양설의 구조에 음식물을 형식적으로 끼워 넣어 합리성이 없는 것이 많다.
다른 금지와 제한의 구조에는 동남아시아, 중남미에서 온냉설(溫冷說)이 믿어지고 있다. 이것은 음식을 더운 것과 찬 것으로 나눈다. 그 기준은 온도이어서 혈액은 따뜻하지만 젖 즙은 체외로 나오므로 차가움의 성질을 갖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음식을 선택함에 있어서 따뜻함과 차가움이 균형이 되도록 주의하여 조합하여야 하고, 어느 극단으로 기울어지면 인체에 해로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동물성 식품이나 지방이 많은 것은 따뜻한 것으로 야채류는 찬 것으로 분류되는 것이 많은데, 이것도 지역에 따라서 다르다. 이 음식의 온냉설은 여성의 생식 사이클과 결부되고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신생아는 모체의 체온을 빼앗아 출산하므로, 이것을 보충하기 위한 산욕(産褥)과 젖을 주는 기간은 피의 흐름을 좋게 하여 빈혈을 막기 위하여 더운 음식을 권장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개념은 현대의 영양학적인 근거와 일치하므로 모두 미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식품을 산성, 알칼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영양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널리 믿어지고 있는 것도 이런 종류의 금지 구조의 일종이라고 고려된다.
3. 음식 금기의 원인
원래 누구도 먹지 않는 것이라면 금기(禁忌)로 할 필요는 없으므로, 어떤 의미 부여에 근거하여 음의 상징을 규범적으로 결정하는가는 흥미 있는 문제이다. 유대교에 있어서 돼지고기 먹기 금기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먼저 레위기와 신명기에 서술되어 있는 「정(淨)한·부정(不淨)한」 것의 기준에 대하여 생각하는 입장이다. 정(淨)한 기준에는 되새김위를 갖고 굽이 갈라진 포유동물과 조류에서는 갈고리 모양의 발톱을 갖지 않고 나르는 것과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어류만이 해당한다. 유대교에서는 이들 동물만이 신의 의사에 적합한 진정한 동물이라고 하고 있다. 진정한 동물은 인간에 대하여 우호적이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또한 인간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이들 이외의 동물은 모두 인간에 대하여 비우호적이다. 이처럼 동물계를 둘로 나눈 구조를 가정한다. 그래서 진정한 기준에 맞는 동물에는 「올바른 것으로」, 맞지 않는 동물에는 「음의 상징」을 정의한다. 이것은 구조주의적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유대민족은 유목(遊牧)을 생업으로 하는 것을 신으로부터 계시된 선택된 민족이었다. 그런데 이집트에서는 유목적(遊牧的)이 아닌 생활을 강요당했다. 따라서 모든 「비유목적인」상징을 심하게 배척한다. 돼지와 같이 「더러워진」동물은 모두 비유목적인 상징이다. 즉 음식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행동 매체는 모두 이스라엘민족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강조하는 기능이라고 말하는 입장이다. 요컨대 민족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기능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인간은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행동은 하여도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가 서아시아에서 성립한 기원전 10-15세기경에는 이미 기상조건의 변화에 의하여 삼림지대로부터 반건조(半乾燥)한 초원지대로 변하여 있어서, 지상에는 응달이나 물이 있는 곳이 적다고 하는 입지조건으로 변화하여 있었다. 그런데 돼지는 피부의 단위면적 당 땀샘의 수가 적은 동물이다(인간이 내는 땀의 량은 평균 1kg/m2피부면적, 돼지는 30g/m2피부면적). 돼지는 몹시 더위타는 동물이므로 기온이 높아지면 서늘한 응달이 필요하게 된다. 응달이 없으면 어디에서나 뒹굴어 흙탕물이나 배설물에도 몸을 문질러 발라서 체온을 내리려고 하므로, 보기에는 불결하게 보인다.
소, 양, 염소는 되새김동물로서 섬유질이 많은 식물성 먹이로 잘 성장하는 초식동물이다. 이들은 고대 서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식품을 생산하는 동물이었다. 이들은 인간과 먹이의 경쟁이 별로 없으며, 비료로서의 분(糞)과 쟁기를 끌 견인력을 제공함으로써 농업 생산력을 높인다. 더욱이 의류를 위한 섬유와 펠트, 신이나 마구(馬具)를 위한 가죽을 공급한다.
이에 비해서 돼지는 잡식성(雜食性)이지만 위가 하나 뿐이다. 실제로 소화기관, 필요한 영양물에 관해서 돼지는 원숭이와 유인원 이외의 어느 포유동물보다 인간에 가장 닮았다. 아테롬성동맥 경화증, 칼로리·단백질 부족증, 영양물 흡수작용, 신진대사에 관한 의학연구에 돼지가 잘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과 먹이를 경쟁한다. 또한 오랜 시간을 걷기에 적합하지 않고, 양이나 염소와 함께 유목행동을 할 수 없다. 이런 조건을 생각하면 돼지는 식육으로서 맛은 있어도,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축으로 하기에는 매우 비용이 높게 들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해리스(Marvin Harris)의 분석이다. 이처럼 상징으로서 식품의 규정은 그 지역의 식품의 본질, 그 지역의 사회가 이루는 경제적 기반, 구성인 집단의 동질성(identity)의 요인이 복잡하게 관련지어져 있다.
이처럼 고대 이스라엘의 돼지고기에 대한 기피는 본질적으로 비용/이익 관계에 근거한 선택된 결과라는 설(說)에 대하여 이스라엘인들의 '약속의 땅'을 포함한 서아시아의 넓은 범위에서 돼지 사육이 매우 잘 사육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제시되어 비판이 있다.
분명히 돼지는 서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1만년 전부터 사육되고 있었다. 양과 염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소보다는 그 이전부터 사육되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최고의 신석기시대의 집단 부락에서 야생 종에서 가축 종으로 이행을 나타내는 특징을 갖는 돼지 뼈가 출토되고 있다. 전기청동기 시대의 몇 개의 집단부락(4000-2000 B.C.)에서 의례적(儀禮的)인 돼지 도살이 행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가 탄생한 시기에 성지(聖地)의 땅에서 돼지가 얼마간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갈리리 호수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땅에서 마귀 들린 어떤 사람에서, 마귀를 산에서 풀을 뜯고 있는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돼지 떼가 비탈길을 내리달려 호수에 빠져 죽으니, 그가 낫더라(눅 8:26-38). 당초부터 사육된 돼지의 수는 소, 양보다 적었다. 세월이 감에 따라 이 지역에서 돼지사육은 전반적으로 축소하였다.
인류학자 칼턴 쿤에 의하면 서아시아에서 돼지가 모습이 사라진 것은 삼림파괴와 인구증가 때문이었다. 신석기시대의 처음에 돼지는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숲에서 먹이를 찾아 살았다. 이들 숲에는 도토리, 너도밤나무의 열매 등 많은 먹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널리 나무 그늘과 뒹굴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농경지가 증가하고,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숲은 작물, 특히 올리브나무를 심기 위하여 벌채되었고, 그 결과로 돼지를 사육할 장소가 빼앗겼다. 삼림이 파괴되어 감과 동시에 농지와 목초지도 메말라져 가서, 요컨대 삼림에서 경지로, 경지에서 목초지로, 목초지에서 사막으로 연속적으로 변화하였다. 각각의 단계에서 되새김동물의 사육에는 유리하게, 돼지 사육에는 불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