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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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偶像과 理性
손오공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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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9 07:38
.. 偶像과 理性
대학 시절 리영희 교수님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몰래
숨어 읽던 기억이 난다.
옛날 부터 풀리지 않는 의문의 하나가
대중이란 오히려 우상을 형상화하고 그 관념화된 존재에 얽매이고자 하는게
기본 본질이 아닌가 하는 절망에 대한 향수였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란 오히려 소수가 아닌가 하는 무력감 말이다.
이성이 인간 본연의 본질이라면
어떻게 그 긴 동안 봉건 전제정치 혹은 왕권통치 하에서 굴종해 왔으며
덧붙여 터무니 없는 종교란 우상에게 박제된 것 처럼 살아왔겠는가?
어쩌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차라리 굴복하고자 하는게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린 여학생들은 <빠순이>가 되어 강타오빠.희준오빠,고수오빠 등등...
매스컴이 조작한 우상 경배에 여념 없고
소위 성인마저도 박통 심지어 전통에게 까지 향수를 느끼는게
처참한 우리네의 현상이라한다.
종교문제로 넘어 가면 더욱 심각하다.
이성을 유보해 버리고
도그마에 굴종하길 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기독인들....
도그마에 의해 형상화된 그 예수 혹은 바이블 자체가 우상이라는 것을
왜 인식들을 못하는지....
권력에 대한 굴종과 함께
종교의 도그마에 안주할려는 도피는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닌가.
왜들 자유로 부터 도피할려고 하는가!
답답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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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이 정의는 본래의 한자(漢字)를 풀이한 것이며, 그리스어의 에이돌론(eidolon:복수형 eidola), 라틴어의 이돌룸(idolum:복수형 idola)의 역어(譯語)에는 철학적·종교적으로 특수한 의미가 있다. 에이돌론은 원래 모습·영상(影像) 등을 뜻하는데, 철학사상(哲學史上) 지각하고 인식하는 인간과 실재하는 대상과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가 개재하는 상(像)으로 생각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原子論者)의 말에 의하면, 대상에서 작은 상인 에이돌라가 박리되어 감각기관으로 들어가서 혼(魂)의 원자와 만남으로써 인식이 성립된다고 한다. 또한 F.베이컨은 진리의 인식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선입적 유견(先入的謬見)인 이돌라(우상)의 제거를 요구하고, 종족(種族)의 이돌라(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하는 선입관), 동굴의 이돌라(개개의 인간에 부수된 선입관), 시장(市場)의 이돌라(사회생활을 통하여 생겨나는 선입관), 극장의 이돌라(학파나 체계에 부수된 선입관)를 열거하였다. 종교적으로는 물질적인 것(石·骨·像 등)에 신(神)이 깃들어 있다든지, 신성(神性)이 깃들여 있다고 믿고 거기에 예배하는 것을 우상숭배(偶像崇拜:idolatria)라고 한다. 최근의 민속학에 의하면 우상숭배는 종교의 제1단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퇴화된 것이며, 진정한 신관(神觀)을 상실할 때에는 반드시 우상숭배에 빠진다고 한다
<<이성>>
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분되게 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정의가 성립한다. R.데카르트는, 만인에게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추어진 이성능력을 `양식(良識)` 혹은 `자연의 빛`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뿐 아니라, 예로부터 이성은 어둠을 비추어 주는 밝은 빛으로서 표상되어 왔다.
이성에 의하여 우주에서의 제사상(諸事象)을 어떤 비례적·조화적 관계에서 바라볼 때, 어둡고 불분명한 혼돈(混沌:chaos) 속에서 어떤 법칙적 관계 속에 정위(定位)된 조화적 우주(調和的宇宙:cosmos)가 출현한다. 본래 그리스어의 로고스(logos:理性), 혹은 그 라틴어역으로서의 라티오(ratio)에는 비례·균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밝은 빛으로서의 이성에 대비한다면, 감성적 욕망이나 정념(情念)은 어둡고 맹목적인 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은 광기(狂氣)일지도 모른다. 기쁨·슬픔·분노·욕망·불안 등의 정념은 어둡고 비합리적인 힘으로서 내부로부터 폭발한다. 이것을 이성적 의지에 의하여 통어(統御)하지 못하면 정신의 자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
여기에 이성에 의한 정념지배라는 도덕적 문제가 발생한다. I.칸트는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에 기인하는 행동에 대하여, 의무 혹은 당위(當爲:Sollen) 의식에 의하여 결정된 행위가 이성적이라고 하였다. 인간에겐 자율적으로 자기의 의지를 결정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어서, 그것에 의하여 도덕적 행위가 가능하다. 이것이 이론이성과 구별되는 실천이성이다. 감성과 대립하는 의미의 이성은 자발성의 능력으로서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경우 거의 오성(悟性)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은 가끔 오성과 대립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예로부터 개념적·논증적인 인식능력으로서의 이성에 대하여, 진실재(眞實在)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보다 고차적인 인식능력으로서 오성 혹은 지성(知性:intellectus)이라는 말이 쓰였다. 그러나 계몽기 이후 우위관계(優位關係)는 역전되었다. 칸트는 오성이 감각의 다양성을 개념적 통일로 가져다주는 피제약적(被制約的)인 인식능력인 데 대해, 이성은 판단의 일반적 제약을 어디까지나 추구하는 무제약(無制約)의 인식능력이라고 하였다. 또한 G.W.F.헤겔에서는 오성이 추상적인 개념의 능력인 데 대해, 이성은 구체적 개념의 능력이며, 오성적 개념에 의한 대립의 입장을 초월하여 이것을 살아 있는 통일로 가져다 주는 작용이었다.
이성은 또 우주를 지배하는 근본원리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의 누스(nous)설(說)도 그러한 예이지만, 가장 전형적인 것은 헤겔의 세계정신(世界精神)에 대한 견해로, 역사는 세계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이며, 거기에는 어떤 이성적인 원리가 일관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