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언제나 돈이 문제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게 그 목적이라고들 하지만 대부분 결국은 물질 문제로 귀착된다.
기독교 역시 예외일 수는 없으며 아니 현 한국 기독교는 그 갈취 방법론에 있어서 중세의 교회를 이미 능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 방법론과 이념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바이블이 되겠다.
헌금 문제를 논할 때 십일조의 율법 여부 문제를 놓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지만 바이블의 기본 입장은 전재산의 헌납을 언제나 요구한다.사실 십일조 정도를 헌금하는 것은 전혀 바이블에 따르지 않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무리한 요구는 기독교 자체가 종말론을 견지하는 종교라는데 그 근원이 있다고 본다.
조만간 예수가 재림하며 곧 인류의 종말이 온다는데 물질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이게 바이블이 가르치는 근본 도그마가 되겠다.예수가 생존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의 사후도 역시 동일하였다.
문제는 예수 생존시도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이 헌금을 갈취할 때 역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오늘 현재도 부도 수표였음이 확인되었다는데 있다.
그러면 예수와 그 제자들이 헌금을 강요하는 그 문제의 장면을 살펴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 갔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 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마태 19:21~24) >>
물질에 대한 허무감을 은근히 부추기는 한편 협박도 양념으로 곁들인다.그러나 노골적인 헌금 강요는 아래의 귀절을 참고로 하면 되겠다.
<<예수께서 헌금궤 맞은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때 부자들은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는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다. 이것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이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마가 12:41~44) >>
즉 전 재산의 헌금화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가 종말론자가 아니었다면
*우선 헌금이 사용되는 용도를 잘 설명하고
*그다음엔 헌금의 과다 여부를 말하기전에 감사한 마음 내지 자발적인 헌납 방법론에 대해 설교했어야했다고 본다.
*헌금 내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아주 치사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가 이렇게 무리한 방법론을 동원한 그 근본 이유는 역시 그가 종말론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다음에 예수의 수제자란 베드로의 행태를 보기로 하자.
베드로는 예수보다 한술 더 뜬다.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은 그의 아내 삽피라와 함께 자기 땅을 판 다음 의논한 끝에 그 돈의 일부는 빼 돌리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 그 때에 베드로가 그를 이렇게 꾸짖었다. "아나니아,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 판 돈의 일부를 빼돌렸소? 팔기 전에도 그 땅은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품었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 이 말이 떨어지자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 거꾸러져 숨지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마다 모두 두려워하였다. (행전 5:1~5) >>
<<젊은이들이 들어 와 그 시체를 싸 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세 시간쯤 뒤에 그의 아내가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들어 왔다. 베드로가 그 여자를 불러 놓고 "당신들이 땅을 판 돈이 이게 전부란 말이오?" 하고 묻자 "예, 전부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서로 짜고 주의 성령을 떠보는 거요? 자, 당신의 남편을 묻고 돌아 오는 사람들이 지금 막 문 밖에 왔소. 이번에는 당신을 메고 나갈 차례요" 하고 베드로가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도 당장 베드로의 발 앞에 거꾸러져 숨지고 말았다. 그 때 그 젊은이들이 들어 와 보니 그 여자도 죽어 있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다. (6~10) >>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자기 땅 팔아 일부만 헌금했다고(설사 속였다고 해도 자기 땅 팔아 자기 맘대로 헌금하겠다는데...)
아나니나 부부를 함께 살해하는 베드로의 잔임함을 보시라.
오늘날의 기독교의 헌금 강요는 이러한 바이블의 가름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보여 진다.
문제는 예수나 베드로는 종말을 믿었음에 틀림없었겠지만 오늘날의 목사 등은 과연 종말을 믿고있는가하는 의문이 되겠다.
만약 종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면
*십일조 나 기타 여러 헌금이 문제가 아니라 전재산을 포기하고 기도나 해야되겠고
종말을 믿지 않는다면
*교회가 헌금을 강요할 근거 자체가 없다는것을 알아야한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극도로 증오하며 한편으론 두려워 한다.
믈론 그들의 주장 근거에는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의 아이덴디티에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으로 볼때 오늘날 한국 기독교야 말로 유물론의 화신이라고 보여진다.
말로는 영혼의 구원이니 영생이니 온갖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하지만 결국은 일부 무노동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유일신을 팔아먹는 집단이라고 본다.즉 그들은 바이블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물질의 갈취론은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이용하는 집단이란 뜻이 되겠다.
다시 한번 더 부언하여
그대가 예수 혹은 요한의 종말론을 믿는다면
* 예수나 베드로 처럼 전재산을 포기하고 그대의 신앙을 유지하시라.
그렇지 앟다면
*헌금을 내는게 신에게 내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시고
*그 사용처의 건전화 부터 추구하시길 권고한다.
*즉 예수나 베드로 흉내를 내지 말 것을 당부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지 않은가?
신이 인간의 물질 즉 돈을 무엇 때문에 필요로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