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선포한 그 설교 내용과 행동이 불일치함은 몇번 거론한 바있다. 이러한 위선적인 행동은 바울도 마찬가지 였는데 아니 오히려 더욱 비틀린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소위 사랑장이라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이 기독인 뿐만 아니라 보편적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어 바울을 사랑의 사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철저히 오해하고 있음을 우선 알려 드리고자 한다.그의 서신을 다시 정독해 보시라.
그러하다. 바울은 믿음이란 관념적 행위외는 증오와 투쟁 그리고 타인에 대한 경멸로 일관된 생애였다.
그가 예수를 전파할 때 가장 의지하고 신뢰했어야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당연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통해 예수의 제자들과는 언제나 거리를 두었고 아니 증오 내지 경멸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다.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그리고 그가 동역자라고 표현한 각별한 사람도 많았다.반면 거기에 제외되는 사람은 오직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소위 좀 배웠다고....무식한 예수의 제자들을 경멸했을까? 아니면 예수의 생시를 목격 못했다는 열등감의 발로였을까?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를 질타했던 바울은 그 자신의 육필인 서신을 보면 더욱 확연하게 그의 입장이 드러난다.고린도후서를 참고로 해보자.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전한 것과는 다른 예수를 전하고 여러분이 받은 성령과는 다른 것을 주며 또 전에 받아 들인 것과는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데도 여러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니까 하는 말입니다. 나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고후 11:4,5) >> *바울이 전한 예수와 다른 예수를 전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다른 성령,다른 복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국 5절을 보면 예수의 제자들을 은근히 비꼬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표출하고 있지 아니한가.... *결국 이단론을 주장하며 나만의 종파 만이 정통이라고 싸우는 오늘의 교회 모습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은가? *나홀로만의 예수.....바울의 본 모습이 아닌가한다.
<<나는 말재주는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지식이 모자라지는 않습니다....(고후 11:6) >> *7절에서 자신을 낮춰가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은 앞절인 상기 내용을 상기할 때 바울이 얼마나 교만했나를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바울이 유식하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그가 정말 제대로된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구약을 해설한 저술이라던가 아니면 헬라 철학에 대한 소견서 정도는 남아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육필 작품은 전혀 없고 오로지 바울 서신으로 알려진 몇편의 편지 그것도 사본뿐인데 무엇을 보고 그를 유식하다고 단정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빈곤했지만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친 일이 없읍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교우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조금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또 앞으로도 그럴 작정입니다(고후 11:9) >> *다른 교회의 도움 즉 마케도니아 교우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주제에 왜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을 강조할까? *고린도교회에 거주시 자신이 빈곤했다는 것을 왜 밝혀야만 했을까? *오늘날 헌금을 갈취하는 목사들 보단 쬐끔 순진하다고 봐야만할까? 아니면 좀더 고차원적인 헌금 강요로 봐야할까?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읍니다. (고후 11:30) >> *말로는 자신의 약점을 자랑한다고 해놓곤 실제 자기 자랑을 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시라...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고후 11:22) >>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읍니다 (고후 11:23) >>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읍니다 (고후 1:24,25) >>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읍니다. (고후 11:26) >>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읍니다. (고후 11:27) >>
<<이런 일들을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읍니다 (고후 11:28) >>
*얼마나 화려한 고생담의 표출인가? *자신은 정통 유대인으로서 배울만큼 배웠지만.... *죽음의 위협과 온갖 고통을 극복했다는 자기 자랑이 아닌가? *그러나 바울은 너무나 뻔뻔하게 그러한 고생담들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한다.....
그렇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 철학만을 위해 모든 것을 합리화한 광신 교주의 모습이라고 보면 정확한 판단이 되겠다.
사족하나:로마서 16장을 보면 약 30명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는데 십여명 정도는 여인들이다. 여성 성차별의 기수 바울이 여인들은 왜 그렇게 챙겼을까?
사족둘:로마서외에 다른 서신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안부를 챙겼던 바울이 예수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에게는 왜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사족셋:바리세인들을 비판하고 예수의 제자들 마저 경멸했던 바울.....그러나 자신의 조국을 강탈했던 침략자 로마에 대해서는 왜 전혀 언급을 하지 않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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