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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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

손오공 2 2,114 2005.02.12 22:18
예수의 눈물과 악어의 눈물

***필자는 전작 [눈물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와 악어의 눈물]란 글에서 예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묘사된 곳이 요한복음 11장 뿐이라고 쓴 바 있는 데 바이블을 검색하다 보니 누가복음에도 기록된 장면을 발견하였기에 상기 글을 다시 개작하여 아래와 같이 올리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는 슬픔을 알 때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아픔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린다.
*분했을 때도 서러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추워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웃어도 눈물이 나온다.
*하품을 할 때도 눈물을 흘리겠고
*기쁨을 만났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 기아에 허덕일 때도 당연히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 눈물과 웃음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또하나의 증거가 아닌가 한다.


바이블엔 이상하게도 이러한 자연스런 감정의 표출인 눈물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

구약의 주인공들인 노아,아브라함,모세,다윗,솔로몬...등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인간들로 묘사되어 있는 데 그러면 소위 사랑의 표상으로 선전되고 있는,신약의 주인공인 예수는 어떠할까?

 

예수의 일생을 기록했다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두번 나온다.
우선 요한복음에 묘사된 장면을 같이 감상하기로 하자.

 

1)예수와 나사로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요한 11:35)>>

 

예수는 일생을 통하여 그의 가족들...의붓 애비 요셉,모친 마리아 그외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소위 12사도로 불리는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린 바 없다.
물론 그를 따르던 여인들을 위해서도 눈물 한방울 비치지 않았었다.


이렇게 눈물에 인색했던 예수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나사로가 상기에 서술된 뭍 사람들 보다 좀더 다른 의미의 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을까?


해답은 우선 그대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하자.
필자의 감상이 궁금하다고?


나사로를 위해 흘린 예수의 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하는 게 필자의 솔직한 느낌임을 밝혀 두고져한다.


그러면 예수가 눈물을 흘리전 전의 장면,
소위 나자로의 부활로 회자되고 있는 그 장면을 다시 살펴 보기로 하자.

 

*예수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오빠인 라자로를 평소에 사랑했다 한다.(11:5)
*마리아 자매가 라자로의 발병을 예수에게 고한다.(11:3)
*예수는 그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안심을 시킨다.(11:4)


*3절에서 나사로는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해놓곤 갑자기 나사로는 죽었다고 말을 바꾼다.(11:11.14)
*나자로를 부활시키겠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11:11)
*나자로는 무덤에 묻힌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 한다.(11:17)
*마르타는 오빠를 구해주지 않았다고 원망의 말을 한다.(11:21)


*예수는 나자로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11:23)
*마르타는 마지막 날의 부활을 믿으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신앙 고백 한다.(11:24~27)
*마리아는 예수가 있었다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거라고 원망과 안타까움을 표한다.(11:32)
*예수는 마리아와 이웃 유대인이 눈물을 흘리자 같이 운다.(11:35)

 

자 여기 까지다.
왜 예수가 눈물을 흘렸을까?

 

첫번째 추측:
만약 나자로의 죽음이 애통해 울었다면 얼마 전 그의 부활을 공언했으며 조금 있다가 실제로 나자로를 살려내는 기적과 배치된다.즉 예수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두번째 추측:
마리아 자매와 유대인의 믿음 부족이 안타까와서? 그러나 이것도 말이 안된다.믿음이 부족한 자들에게 왜 이적을 행하나?

 

세번째 추측:
마리아가 울고 이웃들이 우니 덩달아서 운다? 역시 말도 안된다.예수 입장으로서 울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울고 있는 군중들을 비웃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역시 악어의 눈물 밖에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악어의 눈물이「거짓 눈물」을 의미하게 됐다고 한다.]

 

예수가 나자로의 병을 즉시 고쳐 주지 않고 죽고 난뒤 살린 것은 그의 목적
즉 자신의 능력을 좀더 극대화시키고 신도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자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예수의 의도에 잘 따라 주는 주위 모든 조연들의 역활을 보니 얼마나 흐뭇했겠는가?

그렇다.
예수는 악어의 눈물을 흘렸던게다.


다른 장면으로 넘어 가기로 하겠다.

2)예수와 예루살렘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누가 19:41) >>

 

복음서에 특히 공관복음에 기록된 예수는 神과 人間의 경계를 넘나드는 반신반인적 존재로 묘사됨과 동시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철저한 유대인으로 그려져 있다.

상기 장면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예언자로서의 예수와 그 종말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유대인으로서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우리는 냉철하게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예수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누가편집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데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 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 싸고 사방에서 쳐들어 와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19:42~44) >>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 첫번째로:누가복음 편집자의 작위성에 대해

주지하는 바 상기 내용은 제1,2차 유대 전쟁을 예언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제1차 전쟁이 A.C.E. 66-70 그리고 제2차 유대전쟁이 A.C.E.131-134 동안에 발발했으므로 누가복음은 적어도 예수의 사후 30여년 후에 편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역사 비평을 인정한다면 예수를 예언자로 묘사한 누가편집자는 철저한 위선자 내지 음모자로 밖에 평가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두번째 견해로 정말 예수가 예언자였다고 인정해 줄 경우를 가정해 보기로 하자.

 30년 혹은 100년 후에 발생할 역사적 사실을 예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참이라면 예수는 정말 神 혹은 神的인 존재라고 평가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예루살렘 시민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평화의 길을 몰랐으며 야훼가 구원하러 올 때를 몰랐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예루살렘을 멸망했어야할까?

그리고 그 멸망을 왜? 이교도인 로마의 힘을 빌려야했을까?

게다가 유대 전쟁 당시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 역시 왜? 죽어야만 했을까?

 

예수가 진실로 인류를 사랑하는 神이었다면

미래의 참상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 전에 그러한 참상이 발생하기 전에 신적인 권능을 발휘해서라도 미연에 그 전쟁을 방비했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예수는 신적인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으며 그외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다는 상기 내용은 당연히 무효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예수의 구속사적인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한다면

예수가 이때 흘린 눈물 역시 "악어의 눈물"로 치부될 수 밖에 없겠다.

 

 

그러하다.

예수는 가족과 지인을 위해 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인류를 위해 진실된 눈물 한방울 비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조국 이스라엘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도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 했다.


그러나 기독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한다.

눈물을 모르자에게 눈물을 바치는 그대여
그대의 눈물은 오해이며
예수 그리고 목사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임을 하루라도 빨리 알게 되시길 바라노라.

 

 

첨언:사실 바이블은 상상력이 부족했던 그리고 치밀하게 글을 쓰는 구성력이 모자란 고대인의 신앙 고백록 정도로 인정해 버리면 모든 의문은 당연히 풀리는 바,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2-13 10:16:28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입으로부족해 2005.02.13 00:22
역시 예수 전문가 답습니다 (__
마밍 2005.02.12 23:03
읽으면 읽을수록 비아냥을 유발하는 바이블,
조목조목 분석된 것을 보니 정말 더더욱 어이없는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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