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참 기묘한 존재이다. 기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이면서 또한 완전한 신이라한다.
온갖 기적질로 점철된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를 반신반인의 애매한 존재로 일단 인정해 주자. 그러면 공생애 이전 즉 유소년 시절의 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만약 그때도 신이었다면 그 기간 동안은 신으로서 직무 유기 기간이 되겠고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면 공생애 기간 동안의 예수는 무당이란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우리 인류는 인종에 따라 언어가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는 지역간 인종간의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거의 같은 소리를 낸다.그만큼 가장 자연에 가까운 감정 표출이란 얘기가 되겠다.
예수는 이러한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아니 외면하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 장면에서 이해못할 울음 장면외 우는 장면이 거의 없다.
더우기 웃는 장면은 전혀 없다.
울지 않고 웃지 않는 예수
웃음은 인간이 기쁘거나 즐거울 때, 혹은 특별한 감정이 들 때에 얼굴 근육을 움직여 일정한
표정을 짓는 반응을 일컫는 말이다. 뚜렷한 생물학적 목적이 없는 웃음의 유일한 기능은 "긴장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웃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웃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웃음의 효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웃음은 힘을 준다.
*웃음은 극복할 능력을 준다.
*웃음은 상호간에 대화와 마음의 통로를 열어준다.
*웃음은 긴장감을 완화하여 준다.
*웃음은 분노를 몰아내고 공격성을 없이한다.
*웃음은 학습효과를 높여주고 기억력을 증진시킨다.
*웃음은 의학적 가치가 있어 병을 고치는 치료제로 이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즐겨 한다.
우는데 인색한 예수
전혀 웃지 않는 예수
예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과 그대로 대입된다.
사실 말세 운운 하면서 종말을 기다리는 기독인들이 웃을 일이 언제 있겠는가?
예수가 공중 재림한다면 그때쯤 웃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