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입술로 쏟아낸 말들의 성찬 중 산상수훈은 그중 백미로 꼽히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이 그 설교에 감동,감화를 받았다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음을 여러번 밝힌 바 있다.(궁금하신 분들은 필자의 전작 [예수의 팔복을 비판함] [희대의 사기꾼, 그대의 이름은 예수]...등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그 유명한 예수의 산상설교 중 보복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우선 그 장면을 인용하겠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마태 5:38~42) >>
언뜻보면, 정말 근사한 내용이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정말 지상낙원이 구현될 듯도 하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을 조금만 자세히 그리고 생각하며 읽어 보면, 수많은 함정이 도사린, 오히려 반사회적이며 비도덕적인, 위선과 허구로 가득한 주장임을 알게 된다.
하나씩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1)개인과 개인의 갈등인가 아니면 사회적 폭력 문제인가?
예수가 인용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문장은 출애굽기의 한 장면을 차용했음에 분명하다.
같이 보기로 하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 21:24) >>
여기서 우리가 필히 유의해서 봐야할 점은, 이러한 주장이 어떠한 배경하에서 제기되었나하는 사건의 발생 경위와 그 처리과정을 살펴 보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즉, 개인과 개인의 증오나 원한 관계인지 혹은 사회적 범죄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인지 분명히 구별해야만 된다는 뜻이다.
함께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하겠다.
<<사람들이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밀쳐서 낙태시켰을 경우, 다른 사고만 없으면 그 여인의 남편이 요구하는 배상액을 재판관의 조정 하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고가 생겨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출 21:22,23)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 (출 21:24,25) >>
그러하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처벌은 개인적 한풀이 혹은 갈등 등의 처리 정도가 아니고, 폭력에 의한 임부의 유산이란 엄청난 범죄 행위가 병행된 형사 피의 사건의 처리 과정임이 분명하다.
한편 그 행위가 우발적 사건이었던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이었던 결과적으로 한 생명이 유실되었음이 분명한 살인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마태문서에 인용된 그 처벌의 배경에는 이러한 인과관계가 선행되었음을 인지하여야하며, 추가로 다른 사고 즉, 그 임부가 목숨을 잃었으면 그 사건 유발자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을 다쳤으면 눈으로, 치아가 부러졌으며 자신의 치아로 과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게 고대 유대인의 율법 개념이라 한다.(태아와 임부의 권리에 대해 고대 유대인들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생각해도 되겠다.)
한번쯤 그대가 이러한 피해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시라.
과연 예수의 말대로 복수심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개인의 증오심이야 참을 수 있다고 쳐도, 이러한 사건을 은폐시킬 수 있겠는가?
최소한,법률에 의한 구속 심판은 당연히 이루워져야 한다고 판단되지 아니 한가?
2)죄형법정주의에 대하여
근대적 시민 계급의 성장과 함께 죄형법정주의란 개념이 생겼다고 알고 있다.
오랜 세월 권력의 죄형전단주의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 되겠는데, 예수 당시는 물론 그러한 죄형법정주의란 시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아직 성립되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율법은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는 시민을 위한 안전 장치였다고 판단돤다.
예수 이전 약 1,700여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에선 이미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으며
유대인들에겐 모세의 율법이, 그리고 예수 당시엔 로마법이 있었음도 기억 하자.
그렇다면, 예수의 행동은 그러한 모든 관행과 법률을 무시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으로 비판받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예수의 철없는 이 설교는 자칫하면 민중을 기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 한다. 시민의 저항권을 말살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죄형법정주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엄격히 지켜지는 대원칙이지만, 나치스 독일이나 파시즘 이탈리아 등에서는 부인되었고, 인민재판을 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무시되고 있음도 필히 기억 하자.
3)성선설인가 성악설인가?
보복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예수의 주장은, 사건의 당사자가 앙갚음을 하지 않더라도 야훼가 그 복수를 대신해 줄거라는 생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복수가 복수를 부르게 되니 그 죄를 그대가 용서해 주면 가해자 역시 양심이 있을터이니 개과천선을 하리라는 기대감일 수도 있다.
전자의 주장은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 만사에 신성한 개입을 하여야 한다는 뜻이므로 전적으로 불가능한 관념론일 수 밖에 없으며, 후자의 주장은 인간의 원죄와 성악설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근본 도그마와 배치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예수는 과연 어떠한 생각으로 이러한 주장을 했을까?
판단은 그대의 몫으로 남겨 두겠다.
4)자신은 실천했는가?
야훼의 신성한 개입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건, 인간의 양심을 믿었던 그 진상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선언했으면 최소한 자신만이라도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어야만 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 예수는 말다르고 행동다른 전형적인 위선자가 아니었던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곁에 서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며 예수의 뺨을 때렸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요한 18:22~23) >>
이정도의 모욕도 참지 못하는 예수가,
실지 상기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예를 들어 자신의 마누라 혹은 애인이나 친지 등이 유산을 당하고 이빨이 부러졌다고 했을 때....정말 그냥 가만히 있었을까?
오른쪽 이빨이 부러졌으니 왼편 이빨도 박살내달라고 과연 그렇게주문했을까?
5)무저항주의인가 아니면 범죄조장인가?
원래 자이나교의 대금계(大禁戒)에서 첫째로 꼽히는 불살생(不殺生)·무해(無害), 즉 모든 생물을 살해하지 말며, 또 남이 살해하고 있는 것을 용인하지도 않는다는 사상에서 나온 무저항주의는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그 모범적 실천으로 인류에게 감동을 준 바 있는 비폭력주의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무저항 혹은 비폭력주의가 불의에 대한 외면을 요구하는 행태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의 보다 적극적인 저항권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고
*뺨을 돌려 대며
*겉옷 마저 내주라는 ...
개인간의 감정 갈등 정도야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겟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 방안이 사회적 범죄 행위나 비윤리적 행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심각한 모럴 해저드가 만연하게 되며, 불법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이 조성되어 파시즘이 활개치는 위험한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판단한다.
한편,
*겉옷 마저 내주고
*오리를 더 가주며
*꾸려는 사람의 청 마다 거절하지 않는다면.
그 요구하는 사람이 범죄자일 경우 오히려 범죄를 더 조성하게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만 했다.
예수는 심각한 착각을 한 셈이다.
*예수는 자신도 지키지 못할 무저항주의를 그저 말로만 하는 위선을 저질렀으며
*구약을 인위적으로 인용하는 잘못도 범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태아의 목숨쯤 우습게 여기는 반사회적 패륜을 범했음도 진실이었다.
*게다가 대체 방안 없이 율법이나 법률을 그저 부정하기만 했으니,
그로인한 사회 혼란과 도덕적 해이에 대해 예수는 필히 책임을 져야만 하겠다.
너무 심각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판단이 드는가?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이경우 전제조건이 당연히 따르게 된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사회 경험 마저 일천한,젊디 젊은 청년 예수가 던진 한마디....
즉,철없는 젊은이가 던진 농담 정도로 받아들일 지혜가 그대에게 있으면 필자처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당연히 없어도 되겠다.
그러나 예수의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성한 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다면, 부언하자면
바이블을 믿천으로 온갖 사기질과 협박을 일삼는 종교 장사꾼들의 입을 통해, 예수의 말이라면 무조건 야훼니 하나님이니 등 신의 말씀으로 둔갑을 시켜버리는 그 음모에 동참하고 있다면,
필자의 고언에 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목사 등 종교 사업자들의 반사회적 행위 그리고 비윤리적 작태에 대해 용서나 무관심을 거절하고, 보다 엄격한 심판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