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의 교회라는 성장을 이루어낸 조용기 목사의 대단한 성공에는 진짜인지 사기였는지 그 진실 여부는 불확실하겠지만, 1958년 최자실 전도사의 집에서 7년 중풍환자를 치료한 조전도사의 무허가 의료 행위가 그 시발점이었지 않았나 판단된다.(그 당시 조용기씨는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이었고, 최자실씨와는 신학교 동기였음)
신유의 능력이란 무허가 치료로 재미를 흠뻑 맛본 조목사, 이제 그 말빨 혹은 사깃빨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자, 그다음 차례로 준비한 게 소위 삼박자 축복이라 불리우고 있는 기복 행위였다고 한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병들고 생활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윤리라든가 도덕이라든가 하물며 천국과 지옥은 하등 흥미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얘기를 그들은 배부르고 편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하나의 악세사리나 사치스러운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우선 따뜻한 밥 한 공기, 약 한 봉지였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겐 복음이었습니다.”]....조용기목사의 <목회자와 설교철학>에서 인용
'예수만 믿으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몸이 강건해진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조목사의 처참한 고백이 되겠다. 물론 조목사는 이에 관계되는 바이블 귀절도 당연히 준비하였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3서 2) >>
자,이쯤에서 장면을 잠깐 바꾸기로 하자.
절에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겠다.
"당신은 왜 불공을 드리러갑니까?"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아기를 가지기 위하여서입니다."
"내 아이가 이번에 대학시험을 보는데 합격을 빌기 위하여 갑니다."
"남편이 몹쓸 병에 걸렸는데 기도하러갑니다."
"나는 결혼이 늦어졌는데 좋은 신랑감을 달라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남편 사업이 번창하도록 기원하러 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교를 기복불교라고 칭한다.
점쟁이,역술가,무당 등을 찾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같은 기복행위를 하는 데도 어떠한 신앙 행위는 미신이라고 하여 경멸을 하고 또 다른 행위는 건전한 신앙 행위라고들 한단다....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
교회에 가서 삼박자 축복을 기대하는 행위와
이른바 미신 행위로 경멸받고 있는 행위는 과연 그 무엇이 다를까?
자,그건 그렇고 우리의 조용기 목사가 주창하고 있는 소위 삼박자 축복이 그가 근거로 인용한 요한삼서 편집자 그리고 그외 바이블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수 있는 지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하자.
개역판을 읽으면 무슨 주문같아,도저히 요령부득이라 공동번역을 인용하기로 하겠다.
1)첫번째 잘못....조목사의 무식함인가 아니면 음모인가?
조용기 목사는 그의 삼박자 축복론의 근거로서 요한삼서 2절의 귀절을 인용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귀절은 삼박자 축복의 전제 조건인 예수를 믿어야 축복을 받는다는 그러한 전제 조건이 아예 없다.
조목사가 그 내용을 알고도 삼박자 축복론을 개진하였다면 틀림없이 무언가를 획책한 그의 음모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잘못 이해하고 주장했다면 신학교를 헛나온 즉 무식한 조목사의 말빨에 수많은 신도들이 희롱당했다고 밖에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그 문제의 바이블 내용을 살펴 보기로 하자.
<<원로인 나는 친애하는 가이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어 나가기를 빕니다. 또 그대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도 건강하기를 빕니다. (요삼:1,2) >>
"긍정적 사고--바라는 것의 시각화와 열심을 다한 기도--행동과 하나님의 축복" 이러한 단계를 밟으면 영혼과 육체 그리고 물질까지 축복을 받는다는게 소위 삼박자 축복론의 정체가 되겠는데,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상기 요한삼서라 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 상기 바이블에는 삼박자 축복에 등장하는 세가지의 단어만이 낱말로 등장할 뿐이다.....영혼, 건강 그리고 사업(물질)
게다가 물질에 관한 내용도 통상적인 하는 일로 표현되었지, 구체적인 물질의 축복 따위는 아예 표현된 바가 없음도 확인된다.
조용기 목사는 무식한 목사일까?
아니면 자신의 명예와 돈의 획득을 위해 음모를 꾸민 모사꾼인가?
정답은 그대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겠다.
2)두번째 잘못....청부론인가 청빈론인가?
최근 기독교내에서 청부론과 청빈론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목사의 삼박자 축복론에 따르자면, 기독인들이 부를 누리는 것은 모두 은사에 해당하다는 견해이므로 청부론도 아닌 그저 賤富論 정도로 판단된다.
사기를 치던, 강도짓을 하던 혹은 재수좋아 돈을 벌던 한편 각고의 노력을 해서 부를 축적하던....모든 것은 예수의 은덕이라는게 삼박자 축복론의 정체가 아닌가 한다.
그러하다.
삼박자 축복론은 무당 대신에 예수를 믿는 그저 단순한 기복신앙일뿐이다.
삼박자 축복론은 기복신앙이 분명함에도 조목사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청부론으로 위장하기를 즐겨 한다.
3)세번째 잘못....그 모델이 없다.
구약에는 아브라함이라던가 요셉 등 야훼의 축복을 받아 물질과 명예 그리고 장수까지 누린 자들이 틀림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조목사를 비롯한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며, 게다가 기독인들이 주장하듯이 지금은 신약 시대라고 보면, 당연히 신약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즉 예수와 바울을 모델로 삼아야 기독교의 모든 이데올로기가 합리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신약의 두 주인공,예수와 바울의 생애 그리고 그외 조연들의 삶을 보면,청부론이던 청빈론이던 모두 약점을 지니게 된다고 판단 한다.
즉 신약 시대의 공통적 소망이었던 종말론에서 배재된다는 뜻이다.
종말론을 무시하고 있는 게 현 기독교의 한계라는 의미가 되겠다.
종말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허무의 종교임이 틀림없다.
언제일 지 모르는 예수의 재림 혹은 지구촌의 종말을 주장하는 종교에서 부니 건강이니 명예니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종말을 믿지 않는 기독교는 모두 사이비 기독교임이 틀림없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로 부터 바이블의 일부 만을 도용하기를 즐겨 했다.
신약 대부분의 내용은 종말 시대를 맞아 생산은 아예 도외시 하고 공동 분배만을 주장하는 공동체의 실현에 대해 할애를 하였다.
극히 일부, 예를 들자면 달란트의 비유같은 데서는 빈익빈 부익부를 주장하는 내용이 있는 데, 사실 이러한 일부 예는 기독교가 천민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그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는 근거로 활용되었다고 보여 진다.
조용기 목사는 누구를 모델로 하여 삼박자 축복론을 창작해 냈을까?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단 한가지,조목사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전도 혹은 설교시 어떻게 접근하고 질문을 하여야 하는 그 방법론을.
*예수를 믿으면 천국을 가고 불신하면 지옥에 갑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믿고 복받기 바랍니다.
조목사는 세번째 방법론으로 접근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고백해야만 한다.
기독교는 기복신앙이며, 오직 기복신앙울 고수해야만 큰 무당 조용기 목사 처럼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첨언: 한국의 대형 교회치고 반공,신유,은사를 포기하고 성공한 곳이 과연 단 한군데라도 있을까?
교회가 커지니 언론사도 만들어 정치권이나 사회 입막음도 하고 여기저기 기업체만들어 친인척 명의로 묶어두고 반대하는 장로들 쫒아내고,여차하면 신도수가 칠십만이니하여 선거표 칠십만표 운운하고,,,여튼 한국교회의 세속화에 앞장선 본보기죠.한국의 중대형교회의 먹사들 소원이 조먹사처럼 되는것이 꿈이라는.....제기럴....
목사는 세일즈 맨이다.교회는 먹사의 사업장